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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1권, 중종 1년 9월 19일 을미 8번째기사 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기신재 폐지 건의를 물리치다

예조 판서 송일이 아뢰기를,

"기신재(忌辰齋)는 비록 선왕조에 하던 일이지만 몹시 좋은 정사는 아니었습니다. 폐왕이 일찍이 이를 폐지하였기 때문에 승도(僧徒)들이 모두 흩어졌는데, 지금 만약 다시 시작하면 사방의 승도들이 풍문을 듣고 떼를 지어 서울에 모여들 것이니, 그 폐를 장차 구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혁파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여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제 만약 새로이 사찰을 창건한다면 안 되지만, 이 일은 성종같이 명철(明哲)하신 임금님으로도 선왕(先王)·선후(先后)를 위하여 폐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홀로 나에 이르러 이를 폐하랴?"

하였다. 정승이 또 아뢰기를,

"신 등은 예조의 아룀을 듣고 윤허를 얻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좇지 않으시니, 신 등은 모두 온당치 못한 줄로 생각됩니다. 이른바 기신재는 곧 선왕·선후를 굴욕(屈辱)되게 하는 것이요, 조종을 존경하는 바가 아닙니다. 성종조에서 비록 갑자기 혁파하지는 못했으나, 지금은 폐왕조에서 폐지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이제 시작을 바로하는 처음을 당하여 다시 이 재(齋)를 행하면, 정치에 큰 누가 될 것입니다. 이제 만약 반드시 이를 행한다면, 이는 바로 오늘날에 허수아비를 만드는 것087) 입니다. 만약 폐지할 수 없다면, 다만 능소(陵所)에서 제사하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 사대부들도 부모를 그 집에서 제사하고 승재(僧齋)를 행하지 않는데, 하물며 성스러운 정치를 하는 초기인데 차마 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혁파하는 것이 매우 합당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조종(祖宗)이 행해 오던 일을 폐하여서는 안 된다."

하였다. 정승이 아뢰기를,

"기신재는 성스러운 정치에 보탬이 없을 뿐더러 정치를 방해하는데 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옛사람은 불교를 음란한 소리와 아름다운 여색과 같이 여겨 멀리 하였으니, 청하건대 속히 혁파하소서."

하였는데,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79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상-불교(佛敎)

  • [註 087]
    오늘날에 허수아비를 만드는 것 : 《맹자》 양 혜왕(梁惠王) 상편에, 맹자가 공자의 "처음 허수아비를 만든 이는 후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한 데서 유래한 말. 그것은 사람 모양과 같이 허수아비를 만들어 순장(殉葬)하는 습속을 나무라는 것이었는데, 뒤에 흔히 좋지 못한 일을 시작하는 것을 비유하여 쓰였다.

○禮曹判書宋軼啓曰: "忌辰齋, 雖先王朝所爲事, 甚非善政。 廢王嘗廢之, 故僧徒皆散, 今若作俑, 四方僧徒, 聞風坌集京都, 弊將難救。 臣意謂革之爲便。" 傳曰: "今若新創寺刹, 則果不可。 此事則以成宗明哲之主, 爲先王、先后, 而不廢, 何獨至於我而廢之乎?" 政丞又啓曰: "臣等聞禮曹之啓, 意謂蒙允, 今乃不從, 臣等皆以謂未便。 所謂(忌晨齋)〔忌辰齋〕 者, 乃屈辱先王、先后, 非所以尊祖、敬宗也。 在成宗朝, 雖不卒革, 今則在廢王朝, 中廢已久矣。 今當正始之初, 復行此齋, 則有累政治大矣。 今若必行之, 則此正作俑於今日也。 若不得廢, 則只祭於陵所可也。 今之士大夫, 祭父母於其家, 而不行僧齋, 況聖治之初, 尙忍爲之乎? 革罷甚當。" 傳曰: "在祖宗所行之事, 不可廢也。" 政丞回啓曰: "(忌晨齋)〔忌辰齋〕 無補聖治, 而妨政、害治, 莫此若也。 是故古人以佛敎爲當如淫聲、美色而遠之, 請亟革罷。" 不允。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79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