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에게 시정만 기록하고 임금의 일은 기록하지 못하게 하다
전교하기를,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서(史書) 뿐이다. 《춘추(春秋)》294) 에 이르기를 ‘어버이를 위하는 자는 은휘한다.[爲親者諱]’ 하였으니, 사관(史官)은 시정(時政)만 기록해야지 임금의 일을 기록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근래 사관(史官)들은 임금의 일이라면 남김없이 기록하려 하면서 아랫사람의 일은 은휘하여 쓰지 않으니 죄가 또한 크다. 이제 이미 사관에게 임금의 일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나 아예 역사가 없는 것이 더욱 낫다. 임금의 행사는 역사에 구애될 수 없다. 전조(前朝)의 예왕(睿王)295) 의 시(詩)에 이르기를,
이때 한 잔 술이 없다면
울적한 생각을 어찌 씻으랴
하였으니, 호탕하고 방일(放逸)하기 이를 데 없다. 진(秦)나라 2세의 말에 ‘눈과 귀가 좋아하는 바를 다하고, 마음과 뜻이 즐거운 것을 다한다.’ 한 것을 후세에 모두 그르다 하나 불가할 것이 없다. 옛날 급암(汲黯)296) 이 한 무제(漢武帝)에게 간하기를
‘속에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仁義)를 베푼다.’ 하였는데, 급암이 아무리 고지식할지라도 임금 앞에서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죄주기로 한다면 간신(姦臣)들 보다 앞서야겠는데, 경 등은 생각이 어떤가?"
하니, 승지 강혼이 아뢰기를,
"《춘추》는 공자가 쓴 것인데, 노(魯)나라는 부모의 나라이므로 ‘어버이를 위하는 자는 은휘한다.’ 한 것입니다. 역사를 쓰는 사람은 마땅히 사실에 의거하여 바르게 쓰되, 시정(時政)을 기록할 뿐 임금의 일을 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예왕은 성격이 문아(文雅)를 좋아하여 항상 곽여(郭輿)와 더불어 창화(唱和)하되, 시사(詩辭)가 극히 호일(豪逸)하였으니, 그러는 것이 무슨 해롬이 있겠습니까. 급암의 말은 과연 옳기는 했지만 너무 지나쳤기 때문에 무제가 ‘심하도다, 급암의 고지식함이며.’라고 탄식한 것입니다. 고지식하다는 것은 곧 어리석고 곧다는 뜻이니, 성상의 하교가 지당하십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63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4 책 64 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
- [註 294]《춘추(春秋)》 : 공양전(公羊傳).
- [註 295]
예왕(睿王) : 제17대 예종(睿宗).- [註 296]
급암(汲黯) : 한대(漢代)의 유명한 간신(諫臣). 자는 장유(長孺). 태자 세마(太子洗馬)와 동해 태수(東海太守)를 거쳐 구경(九卿)에 오름. 성격이 엄하여 직간(直諫)을 잘하므로 무제가 옛날의 사직을 담당한 신하와 같다고 하였음.○傳曰: "人君所畏者, 史而已。 《春秋》云: ‘爲親者諱。’ 爲史者但當記時政, 不宜書君上之事。 頃者史官, 君上之事, 則書之猶恐不及, 在下之事, 則諱而不書, 罪亦大矣。 今則已令史官, 不得書君上之事, 然不若無史之爲愈也。 人君行事, 不可拘於史也。 前朝睿王有詩云: ‘此時無一盞, 何能(條)〔滌〕 慮哉?’ 豪逸莫甚。 秦 二世云: ‘悉耳目之所好, 窮心志之所樂。’ 後世皆以爲非, 然未爲不可也。 昔汲黯諫武帝云: ‘內多欲而外施仁義。’ 黯雖戇諤, 君上之前, 不可如是。 若罪之, 則當在姦臣之上, 於卿等意何如?" 承旨姜渾啓: "《春秋》 孔子之所書, 而魯國則父母之邦, 故云: ‘爲親者諱。’ 爲史者當據事直書, 聊記時政, 而不宜書君上之事。 睿王性好文雅, 常與郭輿唱和, 辭極豪逸, 此何妨? 汲黯之言, 果是太過, 故武帝曰: ‘甚矣汲黯之戇。’ 戇乃愚直之意也, 上敎允當。"
- 【태백산사고본】 17책 63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4 책 64 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
- [註 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