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 60권, 연산 11년 12월 23일 계유 2번째기사
1505년 명 홍치(弘治) 18년
성종의 기신에 고기 반찬 아닌 소찬을 올린 사옹원의 관계 관원을 국문하게 하다
전교하기를,
"임금이 이미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였으니, 오늘은 마땅히 고기 반찬을 올려야 할 것인데 감히 소찬[素膳]을 올렸으니, 사옹원(司饔院)의 관계 관원을 국문하라."
하였는데, 이날이 바로 성종 기신 재계(忌辰齋戒)의 날이었다.
이보다 앞서 왕에게 진계(進戒)하는 자가 성종을 본받으라고 많이 말했는데 왕이 듣기를 싫어하였으며, 그 소행이 무도하여 항상 성종과 반대되므로 성종을 매우 미워하고 원망하였다.
하루는 내관 박성림(朴成林)이 세자의 처소로부터 왔다. 왕이 ‘세자가 얼마나 성취하였던가?’ 하매, 성림은 대답하기를 ‘세자의 기상이 꼭 성종을 닮았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왕은 노하여 칼을 잡고 쳐서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또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왕이 궁중에서 성종의 반신(半身) 영정(影幀)을 가져다가 표적으로 삼아 활을 쏘기도 하고, 혹 크게 취하여 미쳐서 부르짖으며, 좌우에 명하여 선릉(宣陵)601) 을 파가지고 오라 했다.’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60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4 책 32 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註 601]선릉(宣陵) : 성종의 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