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유순 등이 익명서의 옥사를 가지고 와서 친자식만을 옥에 가두기를 아뢰다
영의정 유순(柳洵), 좌의성 박숭질(朴崇質), 의금부 당상 김감(金勘)·정미수(鄭眉壽)·김수동(金壽童)·이계남(李季男)이 익명서와 옥사(獄辭)를 가지고 와서 아뢰기를,
"이것은 반드시 무뢰하고 불초한 무리의 소위이므로 신 등이 꼭 잡아 죽여서 그 나머지를 징계하려고 하였습니다만, 지금 만연되어 옥에 갇힌 자가 1백 60인이고, 이미 해가 지났는데도 마침내 사실을 밝히지 못하였습니다. 예전에 태평한 때를 일컬을 적에 반드시 감옥이 비었다 하였는데, 지금은 풍속을 바꾸어 바루고 정치 교화가 높아져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일이 누(累)가 되어 감옥이 비게 되지 못하였으니, 신 등이 모두 함께 통분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어제 신 등이 분부를 받들고 내놓을 만한 사람을 의논해 본즉 모두가 죄인의 친아들이나 아우·조카이었고 소원한 친족은 없었습니다. 신 등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익명서 던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데 부자간의 간절한 정이 아니면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어찌 조카로서 아재비를 위하고, 아우로서 형을 위하여 감히 이런 일을 하여 제 몸을 지극히 위험한 땅에 던지려 하겠습니까. 그러니 친자식만 제외하고 아우와 조카는 모두 먼 도(道)로 나눠 보내면, 옥에 갇힌 자도 넘치지 않을 것이며, 죄수를 너그러이 처벌하는 뜻도 될 것입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갇혀 있는 자가 다 절친(切親)이라면 어찌 꼭 내놓아야 하느냐. 옛적에 장량(張良)이 〈진시황(秦始皇)을 죽이려다가〉 잘못하여 다음 수레를 맞히고 둔갑(遁甲)하여 도망하므로 크게 찾았으나 잡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이 장차 어디로 도망갈 것인가."
하였다. 예조에 전교하기를,
"흥청을 두어 후정(後庭)588) 을 채운 것은 아무 구속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옛말에 ‘길가에 버들 담에 핀 꽃이라.[路柳墻花]’ 하였으며, 또 ‘동편 집에서 잠자고 서편 집에서 밥먹는다.[東家宿而西家食]’ 하였으니, 본래 금방(禁防)에 관계가 없는 자들인데, 자주색 치마를 입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니, 판서 김감(金勘)이 아뢰기를,
"비록 입는 것을 허락하더라도 무방하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60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4 책 31 면
- 【분류】사법(司法) / 변란-정변(政變) / 가족-친족(親族) / 예술-음악(音樂) / 의생활(衣生活) / 역사-고사(故事)
- [註 588]후정(後庭) : 후궁(後宮).
○丁巳/領議政柳洵、左議政朴崇質、義禁府堂上金勘ㆍ鄭眉壽ㆍ金壽童ㆍ李季男, 將匿名書獄辭以啓曰: "此必無賴不肖之輩所爲, 臣等必欲得而誅之, 以懲其餘。 今蔓延係獄者, 一百六十人, 歲旣一周, 竟未得實。 古稱(大)〔太〕 平之盛曰, 囹圄空虛, 方今風俗革正, 治化之隆, 無以加矣。 第此事爲累, 囹圄未至空虛, 臣等所共痛憤。 昨者臣等奉敎, 議可放之人, 則皆罪人親子與弟姪, 無疎遠之親。 臣等竊意, 投匿名書, 事甚危險, 非父子情切, 不得爲也。 豈以姪而爲其叔, 弟而爲其兄, 敢爲此事, 以投身於不測之地耶? 親子外, 弟姪皆分送遠道, 則獄囚不至於塡溢, 於疏決之意得矣。" 傳曰: "被囚者若皆切親, 何必放之? 昔張良誤中副車, 遁甲以逃, 大索不得。 今此人將何逃也?" 令傳于禮曹曰: "設興淸充後庭, 欲其無所拘檢。 古云: ‘路柳墻花。’ 又云: ‘東家宿而西家食。’ 本不關於禁防, 而禁紫裳何也?" 判書金勘啓, "雖許着無妨。"
- 【태백산사고본】 16책 60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4 책 31 면
- 【분류】사법(司法) / 변란-정변(政變) / 가족-친족(親族) / 예술-음악(音樂) / 의생활(衣生活)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