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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59권, 연산 11년 9월 15일 병신 2번째기사 1505년 명 홍치(弘治) 18년

가흥청의 나인이 죽으면 각사의 제조가 맡아서 담당하게 하다

전교하기를,

"가흥청(假興淸)의 이접소(移接所)에 죽은 나인(內人)이 있다. 그 염빈(殮殯)의 모든 일을 승지(承旨)가 가서 살피고, 해장 각사(該掌各司)의 제조(提調)는 모두 다 친히 그 일을 담당하라. 만약 소루(疏漏)함이 있으면 비록 제조의 높은 신분일지라도 매를 면치 못한다."

하였다.

나인은 원주(原州) 기생 월하매(月下梅)이다. 음률(音律)을 알고 희학(戲謔)을 잘 하여 왕의 뜻에 많이 맞았으므로, 왕이 늘 호방(豪放)하다고 칭찬하여 사랑이 컸었는데, 병이 나서 별원(別院)에 옮겨 있으매 왕이 늘 가서 문병(問病)하였다. 죽어서는, 왕이 애도(哀悼)하여 여완(麗婉)이란 칭호를 주고, 봉상시(奉常寺)에 명하여 제전(祭奠)을 베풀게 하고, 지제교(知製敎)에게 제문(祭文)을 짓게 하였는데, 글이 뜻에 맞지 않으매, 곧 강혼(姜渾)을 시켜서 고쳐 짓게 하였으며, 친히 두세 번 전(奠)을 올리고는 번번이 통곡하였으며, 그 부모 형제를 불러서 인견(引見)하였다. 또 후원(後苑)에서 야제(野祭)를 베풀어, 왕이 비·빈(妃嬪)·흥청(興淸)들을 거느리고 친히 무당의 말을 들으며 더욱 비통(悲慟)해 하였다. 장사지낼 즈음에는, 이런 제사를 한두 번 베푼 것이 아니었고, 재상(宰相)들로 하여금 제사하는 곳에 와 모이게 하였으며, 추혜서(追惠署)·영혜실(永惠室)을 설치한 것도 다 여완으로부터 비롯하였다.

왕이 두어 해 전부터 광질(狂疾)을 얻어 때로 한밤에 부르짖으며 일어나 후원(後苑)을 달렸다. 또 무당 굿을 좋아하여, 스스로 무당이 되어 주악(奏樂)하고 노래하고 춤추어 폐비(廢妃)가 와 붙은 형상을 하였으며, 백악사(白岳祠)에 자주 올라가 굿을 하였으므로, 궁중에서는 폐비가 빌미가 되었다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59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4 책 20 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예술-음악(音樂) / 신분-천인(賤人)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傳曰: "假興淸移接所, 有內人身死者。 其斂殯諸事, 承旨往監之, 該掌各司提調, 竝皆親庇其事。 脫有疎漏, 則雖提調之尊, 亦未免笞(朴)〔扑〕 。" 內人, 原州月下梅也。 解音律善戲謔, 多中王志, 王每以豪放稱之, 眷愛(持)〔特〕 重, 得病移寓別院, 王每往問病。 及死, 王悼贈麗婉之號, 命奉常寺設奠, 知製敎撰祭文, 文不如意, 卽令姜渾改製, 親奠再三, 輒痛哭, 召其父母兄弟引見。 又設野祭于後苑, 王率諸妃嬪、興淸, 親聽巫語, 益自悲慟。 比葬, 設是祭不一再, 至使宰相, 來會祭所, 追惠署、永惠室之設, 皆自麗婉始。 王自數年前, 得狂疾, 時於中夜叫呼, 起走後苑。 又喜巫覡祀禱之事, 身自爲巫, 作樂歌舞, 爲廢妃憑依之狀, 數登白岳祠行巫祀, 宮中以爲廢妃爲祟。


    • 【태백산사고본】 16책 59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4 책 20 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예술-음악(音樂) / 신분-천인(賤人)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