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에 가서 문선왕에게 제사지내고, 경회루에서 백관의 하례를 받고서 반교하다
평명에 왕이 의정부에 가서 문선왕에게 제사지내고, 옮겨서 경회루(慶會樓)에 임어(臨御)하여 대사례(大射禮)를 거행하고 백관의 하례를 받고서, 반교(頒敎)하기를,
"대개 듣건대, 사(射)라는 것은 남자의 일이다. 천하에 사변이 있으면 전승(戰勝)하는 데에 이것을 쓰므로 과녁을 꿰뚫기[主皮]에 힘을 들이는 것은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잘 막아내기 위함이요, 천하에 사변이 없으면 예의(禮義)에 이것을 쓰므로 대사(大射)481) ·향사(鄕射)482) 의 예(禮)를 행하니, 용의(容儀)를 익히고 기예(技藝)를 익히며 덕(德)을 보아서 사(士)를 뽑는다. 전대(前代)의 사후(射侯)를 내리 살펴보면 유우(有虞)에서 비롯하여 육우 삼후(六耦三侯)483) 의 제도가 주(周)에 이르러서 크게 갖추어졌는데, 내려와 후세에 미쳐서는 혹 이것을 강습(講習)하지 않았다. 오직 우리 성종(成宗)께서 특별히 광전(曠典)484) 을 취하여 거행하셨으니, 어찌 대례(大禮)의 부흥이 오직 이 때를 기다린 것일까. 내가 덕 없는 몸으로 홍서(鴻緖)를 이어받아, 아침 저녁으로 삼가 조심하고 전대(前大)를 우러러 생각하여, 임술년485) 에 일찍이 선성(先聖)에게 친히 제사하고 이어 학궁(學宮)에서 사례(射禮)를 강습하여, 몸을 바루고 나라를 편안케 하는 방법으로 삼았다. 요사이 조정이 화목하고 외방[邊鄙]이 무사하며, 풍속이 바뀌고 중외(中外)가 편안하니, 어찌 사정(四正)486) 의 잔[爵]을 들어서 칠절(七節)487) 의 용(容)을 밝히지 않으랴. 오늘 9월 13일 갑오에 선성에게 친히 잔을 바치고, 아래로 여러 선현(先賢)·선유(先儒)에게까지 다 제물을 올리고서, 곧 경회루 밑에 나아가 좌우에 시종(侍從)하는 여러 공(公)·경(卿)·사대부(士大夫)와 더불어 대사례를 행하여, 진퇴(進退)가 예절에 맞고 읍양(揖讓)에 예의가 있으니, 국가의 성사(盛事)로서 무엇이 이보다 크랴. 널리 깨우쳐서 모두가 들어서 알게 함이 마땅하리라. 작헌례(酌獻禮) 및 대사례(大射禮)의 집사(執事)에게 각각 1자급(資級)을 더하되 자궁(資窮)한 자는 대가(代加)한다. 아! 대위(大位)를 보전하고 공업(功業)을 이룩하니 칠덕(七德)의 무(武)488) 가 이미 중하고, 예(禮)를 닦고 악(樂)을 절(節)하니 군자(君子)의 다툼이 볼 만하다."
하였다.
그때 선성(先聖)의 위판(位版)을 종학(宗學)에 옮겨 모셨다가, 왕이 종학이 좁다 하여 위판을 의정부에 옮겨서 제사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59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4 책 19 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상-유학(儒學)
- [註 481]대사(大射) : 대사례.
- [註 482]
향사(鄕射) : 주대(周代)에 향대부(鄕大夫)가 3년마다 현능(賢能)한 사람을 뽑아 임금에게 바치기 위하여 행하던 활쏘기의 의식. 또 지방 장관이 봄 가을로 백성을 모아서 활쏘기를 익히던 의식을 말하기도 했음. 《의례(儀禮)》.- [註 483]
육우 삼후(六耦三侯) : 여섯 쌍의 사수(射手)와 세 개의 과녁.- [註 484]
광전(曠典) : 세상에 드문 법제(法制).- [註 485]
임술년 : 1502 연산군 8년.- [註 486]
사정(四正) : 술잔을 넷으로 등분(等分)하여 올리는 것. 옛날 활을 쏘려면 술을 네 차례 올리니 곧 손님·임금·경·대부[賓君卿大夫]에게 각각 올리고서 활을 쏘았음. 《예기(禮記)》 사의(射義).- [註 487]
칠절(七節) : 제후가 활쏠 적에 연주하는 이수(狸首) 7절을 이름. 절(節)은 시를 노래하여 화살을 쏘는 절도를 말하는데, 한 곡조가 끝남을 1절이라 하여 살 하나를 쏨. 그러나 천자는 9절, 제후는 7절, 경대부는 5절이고, 모두가 활을 네 번밖에 쏘지 않으므로, 활을 쏘기 전에 천자는 미리 5절을 연주하고 쏘기 시작하며, 제후는 3절을 연주하고, 경대부는 1절을 여주하고서 쏘았음. 이수의 시는 현재 전하는 《시경》에 빠져 있는 일시(逸詩)임. 《예기(禮記)》 사의(射義) 주(注).- [註 488]
칠덕(七德)의 무(武) : 당(唐)나라 정관(貞觀) 7년에 진왕(秦王:당 태종)의 파진악(破陣樂)을 고쳐서 칠덕무(七德舞)라고 하였음. 《좌전(左傳)》에 의하면 칠덕(七德)이란, 금포(禁暴)·즙병(戢兵)·보대(保大)·정공(定功)·안민(安民)·화중(和衆)·풍재(豊材)를 이름. 《당서(唐書)》.○甲(子)〔午〕 /平明, 王如議政府, 祭文宣王, 移御慶會樓, 行大射禮, 受百官賀頒敎曰
蓋聞射者, 男子之事也。 天下有事, 則用之於戰勝, 故主皮呈力, 所以克敵禦侮。 天下無事, 則用之於禮義, 故大射、鄕射之禮, 所以習容習藝, 觀德而選士。 歷觀前代明(侯)〔候〕 , 始於有虞, 而六耦三侯之制, 至周大備焉, 降及後世, 莫之或講。 惟我成宗, 特採曠典, 擧而行之, 豈大禮之復, 將有待於斯時歟? 予以否德, 纉承鴻緖, 夙夜祗懼, 仰惟前代, 時若歲在壬戌, 嘗親祀先聖, 仍講射禮於學宮, 以爲正身安國之具。 今者朝廷和洽, 邊鄙晏然, 風俗移易, 中外寧謐, 盍擧四正之爵, 以明七節之容? 以今九月十三日甲午, 躬獻先聖, 下逮群賢諸儒, 咸奠蘋藻, 乃御慶會樓下, 與左右侍從群公、卿、士, 行大射禮, 進退中禮, 揖讓有儀, 國家盛事, 孰大於此? 宜廣曉諭, 咸使聞知。 酌獻禮及大射禮執事, 各加一資, 資窮者代加。 於戲! 保大定功, 七德之武旣重。 容禮節樂, 君子之爭可觀。"
時先聖位版, 移安宗學, 王以學狹隘, 移位版于議政府, 祭之。
- 【태백산사고본】 16책 59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4 책 19 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상-유학(儒學)
- [註 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