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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9일 무진 1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전향과 수근비를 능지하다

추관(推官) 유순(柳洵) 등이 빈청(賓廳)에 가서 전향(田香)의 부모·동생·족친 등을 국문하였으나, 사관(史官)은 다 참여하여 듣지 못하였다. 전교하기를,

"사세가 매우 명백하나 곤고(困苦)하기에 이르지 않고서는 승복하지 않으리라. 이 익명서(匿名書)는 내간(內間)의 일을 아는 자가 아니면 이토록 하지 못하리라. 이 일은 해묵어서 뒤쫓아 묻지 말아야 하겠으나 일이 중대하므로 끝까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내가 덕이 없어서 가져온 것이니 내가 매우 부끄럽다. 그 부모 및 종[婢子]을 형신(刑訊)하기도 하고 낙형(烙刑)하기도 하여 국문하라."

하매, 추관들이 낙형을 써서 김이덕(金伊德)·최금산(崔今山)·자마지(者亇知)·춘금(春今)·향비(香非)를 형신하였으나, 다 승복하지 않았는데, 전교하기를,

"장 숙용(張淑容)의 집의 종[奴] 돌동[石乙同]이 익명서를 볼 때에 한 여인이 유모(油帽)를 쓰고 지나며 말하기를 ‘이 문에 붙은 글은 이 집에 관계되니 떼어 가라….’ 하여, 돌동이 그래서 익명서를 떼었으나 미처 잡지는 못하였거니와, 그 유모를 쓴 까닭은 얼굴을 가리고자 한 것이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지은 양으로 속여서 남이 알지 못하게 하였으나, 궁중의 일을 이 사람이 아니고서는 모르니, 삼족(三族)을 없애고자 한다. 비록 방자(房子) 따위 미천(微賤)한 것이라도 대궐에서 나가면 궁중의 일을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전향은 오래 시녀(侍女)의 줄에 들어 있었음에랴. 이러하여서는 안되리니, 금부 낭청(禁府郞廳)이 배소(配所)에 바삐 가서 능지(凌遲)하여야 하며, 그 부모·동생 및 가인(家人)은 낙형하여 정상을 알아내야 하리라."

하고, 전교하기를,

"전향의 부모·동생·가인들에게 ‘수모자(首謀者) 전향을 이미 능지하게 하였거늘 너희들은 어찌하여 바로 아뢰지 않느냐?’고 말하며 다그쳐 물으라. 또 금부 낭청을 온성(穩城)에 보내어 수근비(水斤非)를 능지하라."

하였다.

이는 장녹수(張綠水)가 참소(讖訴)하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모습이 고와서 녹수가 마음으로 시기하여 밤낮으로 왕에게 참소하여, 두 사람의 부자 형제(父子兄弟)를 하루아침에 다 죽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54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36 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가족-친족(親族) / 왕실-궁관(宮官)

○戊辰/推官柳洵等詣賓廳, 鞫田香父母同生族親等, 史官皆不得與聞。 傳曰: "事勢甚明, 然不至於困, 則必不服。 此匿名書, 非知內間事者, 不至於此。 此事年久, 不當追問, 然事大, 故不得不窮問。 此予不德所致, 予甚慙靦。 其父母及婢子或刑訊、或烙刑鞫之。" 推官等用烙刑、刑訊, 金伊德崔今山者亇知春今香非皆不服。 傳曰: "張淑容家奴石乙同見匿名書貼付時, 有一女着油帽以過言曰: ‘此門貼書, 屬於此家, 可取去。’ 云云。 石乙同因取匿名書, 未及捕捉。 其所以着油帽者, 欲隱蔽其容也。 其人詐爲他人所作, 使人不得知之, 然宮中事非此人不知, 欲夷三族。 雖如房子之微, 自闕而出, 不可言宮中之事, 況田香久在侍女之列, 不宜如是。 可遣禁府郞廳, 急往配所凌遲, 其父母、同生及家人, 烙刑得情。" 傳曰: "其語田香父母同生家人等曰: ‘首謀田香, 已令凌遲, 汝等何不直告?’ 刻督問之。 且遣禁府郞廳于穩城, 凌遲水斤非。" 此綠水讒之也。 兩人容色艶麗, 綠水心忌之, 日夜譖之於王, 兩人父子兄弟一朝盡殺之。


  • 【태백산사고본】 15책 54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36 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가족-친족(親族) / 왕실-궁관(宮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