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감과 강혼이 교지를 받들어 신하가 경계하는 글을 짓다
대제학(大提學) 김감(金勘), 직제학(直提學) 강혼(姜渾)이 교지(敎旨)를 받들어 ‘신공을 경계하여 격려하는 글[警策臣工文]’을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함은 상도(常道)를 지키는 양능(良能)243) 에서 비롯하고, 자기를 움직이고 자신을 세움[行己立身]244) 은 방책(方策)245) 에 갖추 있어서 본받을 수 있거늘, 이를 좇으면 비궁(匪躬)246) 하는 군자(君子)요, 이를 어기면 자기(自棄)247) 하는 소인(小人)이니라.
아아! 너희 신공(臣工)248) 은 내가 경계하여 이르는 것을 들을지어다.
임금을 섬기되 예(禮)를 다함을 경(敬)이라 하고, 벼슬을 맡아서 속임이 없음을 성(誠)이라 하고, 쉽든 어렵든 피하지 않음을 충(忠)이라 하고, 안팎이 한결같음을 직(直)이라 하나니, 자신을 믿고 위를 오만함은 경(敬)에 거스르고, 지혜로운 듯이 꾸며 거짓을 행함은 성(誠)에 거스르고, 위태로운 것을 피하여 편안한 데로 감은 충(忠)에 거스르고, 앞에서는 좇고 돌아서서는 헐뜯음은 직(直)에 거스르느리라. 이 네 가지를 살펴서 네 한 마음을 삼갈지어다.
오만한 모습이 없고 교만한 뜻이 없이 하여, 법도를 잃지 말고 능히 네 위의(威儀)를 공경히 할지어다. 선니(宣尼)249) 는 성인인데도 동료(同僚) 앞을 지날 때에는 낯빛을 고쳤고, 곽광(霍光) 같은 훈벌(勳閥)로서도 황제를 뵈는 데에는 상도(常道)가 있었나니, 너는 마땅히 두려운 듯 조심하여 혹시라도 게으르고 오만하지 말지니라.
법(法)을 굽히지 말고 마음을 속이지 말아서, 일인(一人)250) 을 공경히 두려워하고 삼척(三尺)251) 을 삼가 받들지어다. 임금 뜻을 맞추고 위를 속임은 용서받지 못할 죄이며, 사사로운 뜻에 따라 사사로이 행사하면 원망을 누가 당하랴. 너의 삐뚠 생각을 버리고 너의 참된 마음을 간직할지니라.
편안할 생각을 말고 일을 가리지 말아서, 나아가고 물러감에는 명대로 따르고 죽든 살든 행할지어다. 한자(韓子)252) 가 정신(挺身)함에는 조정의 많은 물의를 피하지 않았고, 소무(蘇武)가 수절(守節)함에는 흉노(凶奴)를 꺼리지 않았나니253) , 전대(前代)의 충현(忠賢)은 후인(後人)의 긍식(矜式)이니라.
수근거리지 말고 아첨하지 말아서, 그 말을 두 가지로 하지 않고 그 덕(德)을 온전히 할지어다. 속으로 다른 뜻을 품음은 곧 못난 사람의 허물이요, 물러가서 뒷말하는 것은 곧 대순(大舜)254) 이 미워하는 바이니, 너의 절조(節操)를 지키고 이를 생각하여 잊지 말지니라.
더욱이 말이 궁위(宮闈)에 미치거나 일이 기밀(機密)에 관계되거든 귀로 들었더라도 입으로 전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일찍이 듣건대, 옛사람은 이 도리를 애써 행하여, 궁중의 나무를 묻는 이가 있어도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고, 들어가 아름다운 꾀를 드리면 밖에 퍼뜨리지 않았나니, 힘써 선철(先哲)을 따르고 남의 허물을 본받지 말아서, 흥융(興戎)을 막고 출화(出話)를 삼갈지니라.255)
또한 인물의 착하고 그렇지 못함과 조정의 잘잘못에는 언관(言官)256) 에게 책임이 있고 육식(肉食)257) 에게 꾀가 있으나, 직위가 낮은데도 말이 높은 자 또한 그르며, 속으로 비방하고 숨어서 의논하는 자도 모두 죄이니, 처사(處士)가 마구 의논함258) 은 전국(戰國)의 풍속이요, 여남(汝南)에 비평259) 이 있음은 한(漢)나라의 행복이 아니었음이, 역사에서 갖추 상고할 수 있거늘 네 어찌 못 들었으랴. 금인(金人)의 함(緘)260) 을 경계로 삼고, 백규(白圭)의 점(玷)261) 을 늘 외울지니라.
혹시 요행을 바라고 남의 숨은 일을 폭로하기 좋아하며, 오만하여 스스로 어진 체하며, 남다른 것을 세워서 높기를 힘쓰며, 인정(人情)을 등지고 명예를 구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 옳은 듯하나 그 행위를 헤아리면 실상은 그르니, 이를 험인(憸人)262) 이라 이르나니 어찌 정사(正士)라 하랴.
이뿐만 아니라, 일을 버려 두고 구경을 즐기며 한가히 노는 것으로 날을 보내며, 권세를 믿고 남에게 우쭐대며 마구 술마시고 성명(性命)을 끊음은, 벼슬에 있으면 나라를 좀먹고, 집에 있으면 어버이를 욕되게 하나니, 너에게는 무슨 꾸짖을 것이 있으랴만 남에게는 끼지 못하느니라.
모든 서사(庶士)야! 훈사(訓辭)를 경계로 삼으라. 전에는 몰랐으니 혹시 범하였으려니와, 이제는 너에게 알렸으니 못 들었다 말고, 네 새로운 마음을 기르고 네 낡은 마음을 버리라. 이 여덟 조목을 한 몸에 차서, 위현(韋弦)263) 에 비(比)하고 좌우(左右)에 명(銘)하여, 마음에 간직하여 잃지 말며 살펴 바루되 늘 곁에 있듯이 하라. 알기는 어렵지 않으나 행하기는 쉽지 않으니라. 너희들은 저마다 삼갈지어다. 내 두 번 말하지 않으리라."
- 【태백산사고본】 15책 54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634 면
- 【분류】어문학-문학(文學)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
- [註 243]양능(良能) : 천부(天賦)의 능력.
- [註 244]
자기를 움직이고 자신을 세움[行己立身] : 수양(修養)·행의(行儀)·영달(榮達) 등을 가리킴.- [註 245]
방책(方策) : 기록(記錄)·서적(書籍) 등.- [註 246]
비궁(匪躬) : 자기의 이해(利害)를 돌보지 않고 국가에 충성함.- [註 247]
자기(自棄) : 스스로 본심(本心)을 버림.- [註 248]
신공(臣工) : 온갖 신하.- [註 249]
선니(宣尼) : 문선왕 중니(文宣王仲尼), 곧 공자(孔子).- [註 250]
일인(一人) : 임금.- [註 251]
삼척(三尺) : 법률.- [註 252]
한자(韓子) : 한유(韓愈)를 높여 부르는 말. 한유는 당(唐) 중기의 사람으로 문장이 탁월하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꼽힘. 그가 감찰 어사(監察御史) 때에 궁안에 저자를 두는 것을 상소하여 극론(極論)하여 산양령(山陽令)으로 좌천된 일이 있고, 헌종(憲宗) 때에는 불골(佛骨)을 궁안에 맞아 들이려는 것을 상표(上表)하여 극간(極諫)하여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된 일이 있다.- [註 253]
소무(蘇武)가 수절(守節)함에는 흉노(凶奴)를 꺼리지 않았나니 : 한 무제(漢武帝) 때에 중랑장(中郞將)으로서 흉노(匈奴)에 사신 갔다가 큰 굴에 갇히고 음식도 주어지지 않으매, 눈[雪]을 먹고 전모(旃毛)를 씹었으며, 또 북해(北海)가에 옮겨져서는 들쥐를 잡아 먹고 풀 열매를 먹는 고초를 거듭하였으나, 한나라의 절(節 : 사신에게 내리는 지휘권의 상징)을 지팡이 삼아 양을 치며 늘 절조를 지켰는데, 그 절의 모(旄)가 다 떨어지기에 이르러 소제(昭帝) 때에 흉노와 화친이 성립되어 돌아왔다.- [註 254]
대순(大舜) : 순임금.- [註 255]
흥융(興戎)을 막고 출화(出話)를 삼갈지니라. : 나쁜 말을 삼가고 좋은 말을 하여 벌을 받지 말고 상을 받으라는 뜻. 《서경(書經)》 대우모편(大禹謨篇)에 "입은 좋음을 내기도 하고 병기(곧 군사)를 일으키기도 한다.[惟口出好興戎]"라 하였는데, 그 전(傳)에 "좋음[好]은 선(善)을 칭찬함(곧 상줌)을 뜻하며, 병기[戎]는 악(惡)을 침(곧 벌줌)을 뜻한다." 하였으며, 그 소(疏)에 "좋음을 낸다 함은 남을 사랑하여 좋은 말을 낸다는 뜻이므로 선을 상줌을 뜻하며, 병기를 일으킨다 함은 남을 미워하여 군사[甲兵]을 움직인다는 뜻이므로 악을 벌줌을 뜻한다." 하였다. 또 《시경(詩經)》의 탕십(蕩什) 억편(抑篇)에 "너의 말을 냄을 삼가며 너의 위의를 공경히 하여 부드럽고 아름답지 않음이 없게 하라.[愼爾出話 敬爾威儀 無不柔嘉]" 하였다.- [註 256]
언관(言官) : 간관(諫官).- [註 257]
육식(肉食) : 후한 녹(祿)을 받아서 고기, 곧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 곧 관직에 있는 자.- [註 258]
처사(處士)가 마구 의논함 : 주(周)나라의 운이 기울매, 임금으로는 잘난 이가 나지 않고 제후(諸侯)는 방자하고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초야(草野)에 있는 선비)는 정당하지 못한 논의를 함부로 하였다는 고사(故事) 중에서 나온 말인데, 《맹자(孟子)》의 등문공 하편(滕文公下篇)과 《한서(漢書)》의 이성 제후 왕표(異姓諸侯王表) 등에 보임.- [註 259]
여남(汝南)에 비평 : 동한(東漢)의 여남 사람 허소(許劭)와 그의 종형인 허정(許靖)이 함께 고명(高名)이 있었는데, 향당(鄕黨)의 인물을 핵론(覈論)하기를 좋아하며 달마다 그 품제(品題)를 갈았다는 고사(故事). 《후한서(後漢書)》 허소전(許劭傳).- [註 260]
금인(金人)의 함(緘) : 공자(孔子)가 주(周)나라에 가서 태조(太祖)인 후직(后稷)의 사당에 들어갔을 때에 섬돌 앞에 금인(金人 : 아마도 구리로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그 입을 세 겹으로 봉하고 있었으며, 그 등에 새기기를 ‘옛적의 말을 삼간 사람[古之愼言人也]’이라 하였더라는 고사(故事).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 [註 261]
백규(白圭)의 점(玷) : 이 글귀가 들어 있는 시(詩)를 뜻하는 것. 이 글귀는 《시경(詩經)》의 탕십(蕩什) 억편(抑篇)의 제5장(章)에 있는데, 공자(孔子)의 제자인 남궁괄(南宮括 : 별칭 남용(南容))이 이것을 하루에 세 번 되풀이 외니 공자가 형의 딸을 주어 장가 들게 하였다고 한다. 그 귀절은 다음과 같다. "백규(白圭 : 희고 맑은 옥)의 흠은 오히려 갈 수 있으나 말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다.[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 [註 262]
험인(憸人) : 간사한 사람.- [註 263]
위현(韋弦) : 위는 손질하여 부드럽게 한 가죽, 현은 활시위. 위는 부드럽고 현은 급한 성질을 따서 자신을 경계하는 데에 의지로 삼는 물건으로 한다. 서문표(西門豹)는 성품이 급하므로 위를 차고[佩] 동안우(董安于)는 마음이 느리므로 현을 차서 단점을 고치는 경계로 삼은 고사(故事). 《한비자(韓非子)》 관행(觀行).忠君愛國, 源於秉彝之良能, 行己立身, 具在方策而可法, 順之則爲匪躬之君子, 悖之則爲自棄之小人。 嗟爾臣工! 聽予戒諭。 事君盡禮之謂敬, 當官勿欺之謂誠。 夷險不避之謂忠, 內外如一之謂直。 挾己傲上, 反於敬, 飾智行詐, 反於誠, 避危就安, 反於忠, 面從背毁, 反於直。 察此四者, 愼乃一心。 無慢容、無驕志, 不愆于度, 克敬爾儀。 宣尼聖人, 過位變色, 霍光勳閥, 見帝有常。 爾宜戰兢, 罔或怠傲。 毋枉法、毋欺心, 祗畏一人, 謹奉三尺。 要君罔上, 罪在不原; 徇己行私, 怨使誰任? 去爾邪慮, 存爾誠心。 毋懷安、毋擇事, 進退唯命, 死生以之。 韓子挺身, 不避庭溱; 蘇武守節, 不憚凶奴。 前代忠賢, 後人矜式。 毋噂
、毋諂諛, 不二其辭, 惟一其德。 內懷異志, 是宵人之尤; 退有後言, 斯大舜所惡。 直汝之操, 念玆勿忘。 至於言及宮闈, 事關機密。 耳雖得聽, 口不可傳。 嘗聞, 古人勉行此道, 有問省樹, 不言其名; 入獻嘉猷, 不宣於外。 勖率先哲, 毋效人尤。 禁爾興戎, 愼爾出話。 亦復人物臧否、朝廷得失, 言官有責。 肉食有謀, 位卑而言高者亦非; 腹誹而巷議者皆罪。 處士橫議, 乃戰國之風, 汝南有評, 非漢室之福, 史具可考。 爾豈不聞? 宜戒金人之緘, 常誦白圭之玷。 其或僥倖好訐, 亢亢自賢, 立異務高, 矯情干譽, 聽其言則似是, 較其行則實非, 是謂憸人, 豈曰正士? 不特此也, 廢事玩物, 度日優游, 席勢驕人, 縱酒伐性, 在官則蠹國, 在家則辱親, 於爾何誅, 於人不齒。 凡厥庶士, 用戒訓辭。 曩旣不知, 容或有犯, 今旣告汝, 罔曰無聞。 長爾新心, 棄爾舊志。 將此八目, 佩之一身, 比諸韋弦, 銘于左右, 服膺勿失, 顧諟在玆。 知之非艱, 行之不易。 爾各自愼, 予不再言。
- 【태백산사고본】 15책 54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634 면
- 【분류】어문학-문학(文學)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
- [註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