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족이 포로를 되돌려 주기를 청한 일에 대하여 의논하다
전에 기주위(岐州衛)의 야인(野人)들이 평안도 고산리보(高山里堡)에서 도둑질하다 장지(將只) 등 4명은 관군에게 죽고, 사을두(沙乙豆)는 생포되어 경상도 거제현(巨濟縣)으로 옮겨졌는데, 이때 와서 야인 왕산적하(王山赤下)가 문서[書契]를 보내어 자기의 전일 공로를 늘어놓으면서, 전일 포로된 사람들을 돌려가려고 하므로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
"사을두의 생존을 저들이 믿지 않으니, 반드시 직접 사을두를 본 뒤에야 그 경위를 자세히 알고 원한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사연도 없이 돌려준다면 저들이 반드시 우리를 덕으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경멸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요, 만일 끝내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역시 이적(夷狄)을 대우하는 도리가 아니니, 뒤에 만일 다시 와서 청한다면, 우선 일러주기를 ‘네 사람은 당초 관병에게 항거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고 한 사람만이 항복하여 사로잡혔는데, 국가에서 그 무지한 것을 가엾게 여겨 살려둔 것이니, 너희들이 만일 마음을 고치고 성의를 바쳐 우리를 배반한 말응산(末應山)·한세충(韓世忠)과 근래에 잡아간 사람들을 돌려준다면, 국가에 계청(啓請)하여 돌려주겠다….’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저들 다장개(多將介)가 박귀동(朴貴同)과 그 처자를 잡아갔는데, 도지휘(都指揮) 산찰(産察)이 우리에게 밀고하였으며, 포주(蒲州)의 저들이 양가 여자 막비(莫非)를 잡아갔는데, 망합(莽哈)이 빼앗아 오고, 또 다장개를 잡아 베었는데, 이들은 모두 추장(酋長)이니, 가을이 되면 우선 서울로 올라오게 함이 어떠하리까?"
하고, 또 아뢰기를,
"저들 가운데 고발대(高發大)가 도망해 와 조정에 들어가 모시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그의 재주가 출중하지도 않고 성질 역시 길들지 않았으니 들어줄 수 없는데, 만일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우리 변방의 허실(虛實)을 잘 아는지라 포주(蒲州)로 들어가게 될 것이니, 어찌하리까?"
하니, 의논하도록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성준(成俊)·이극균(李克均)·유순(柳洵)이 의논드리기를,
"배반한 백성 한세충·말응산 등의 쇄환(刷還)을 기필할 수 없는데, 단지 사을두만 머물려 두는 것은 이익이 없으니, 병조에서 아뢴 대로 강계 부사(江界府使)를 시켜 저들의 통신 왕래하는 사람을 보고 의사를 전달한다면 저들이 반드시 회답하며 청하는 말이 있을 것이니, 변장이 계문(啓聞)한 뒤에 조치한다면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산찰(産察)과 망합(莽哈)은 제일 강한 추장으로 여러 부(部)에서 추앙 복종하는 자들이며, 지금 또 나서서 박귀동 등을 돌려보내는 일을 고하였으니, 그들의 소원대로 서울에 올라오게 하고 벼슬을 제수하여 후일에 쓰임이 되게 하소서."
"고발대(高發大)는 재주가 출중한 것도 아니요, 성질이 또 길들지 않았으니, 조정에서 모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서울에 올라오게 하여 벼슬을 제수한다면 성밑에 사는 저들이 벌떼 일듯 하여 금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비록 우리 변방의 허실을 자세히 알고 포주(蒲州)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우리의 방비가 허술하지 않다면 뭐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하고, 성준은 의논드리기를,
"고발대가 재주는 출중하지 못하지만 우리 나라의 허실을 갖추 알고 있으니, 포주로 들어가서 도둑의 병력을 돕게 할 수는 없으니, 서울로 올라오게 하여 벼슬을 제수해서 조정에 모시게 함이 어떠하리까?"
하고, 이극균은 의논드리기를,
"고발대의 삼촌숙(三寸叔) 고숭례(高崇禮)를, 신이 본도 관찰사 때에 계문하여 조정에 모시게 하였는데, 숭례의 재주 역시 출중하지 못하였지만, 조종 때에 조정에 모신 야인(野人)으로 고발대와 같은 자가 많았으니, 신의 생각으로는 서울에 올라오게 하고 벼슬을 제수하여 편리하게 살도록 함이 어떠하리까?"
하니, 극균의 의논을 좇았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50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564 면
- 【분류】외교-야(野)
○初, 岐州衛 野人等作賊于平安道 高山里堡, 將只等四人爲官軍所殺, 沙乙豆生擒, 移置于慶尙道 巨濟縣。 至是, 野人 王山赤下通書契, 自敍前功, 欲還前日被虜人, 兵曹啓: "沙乙豆生存, 彼不信之, 必親見沙乙豆然後, 當悉其始末, 不生怨恨。 然無辭還給, 則彼必不我德, 而反生輕侮之心, 若終不還, 則亦非待夷之道。 若更來請之, 姑語之曰: ‘四人則當初抗官兵, 中箭而死, 獨一人投降就擒。 國家憐其無知, 生存之。 汝若革心輸誠, 反我逆民末應山、韓世忠及邇來虜去人, 則當啓國家還給。’ 云云可也。 且彼人多將介誘去朴貴同及妻子, 而都指揮産察密告于我。 蒲州彼人虜良女莫非, 而莽哈奪來, 又捕斬多將介。 此輩皆酋長, 請於秋來, 爲先上京何如?" 又啓: "彼人高發大逃來, 請入侍朝。 然才非出衆, 性亦不馴, 不可聽也。 若不聽所願, 則詳知我邊虛實, 將入蒲州, 何以處之?" 命議之。 尹弼商、成俊、李克均、柳洵議: "逆民韓世忠、末應山等刷還, 未可必也。 但沙乙豆留之無益, 依兵曹所啓, 令江界府使, 見彼通信人傳意, 則彼必有答請之辭, 邊將啓聞後, 措置幸甚。 産察、莽哈最强酋長, 爲諸部所推服。 今又首告朴貴 〔同〕 等刷還事, 當從情願, 令上京除職, 以收後日之用。" 從之。 尹弼商、柳洵議: "高發大才不出衆, 性亦不馴, 不宜侍朝。 如此等人許令上京授職, 則城底彼人, 蜂起難禁。 彼雖詳知我邊虛實, 移入蒲州, 若我防備不踈, 何畏之有?" 成俊議: "高發大雖才不出衆, 我國虛實, 備嘗知之, 不可令移入蒲州, 以資寇兵。 許令上京, 授職侍朝, 何如?" 李克均議: "高發大三寸叔高崇禮, 臣爲本道觀察使時, 啓聞侍朝。 崇禮之才, 亦不出衆, 祖宗朝侍朝野人, 如發大者多。 臣意, 許令上京授職, 從便居住何如?" 從克均議。
- 【태백산사고본】 13책 50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564 면
- 【분류】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