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 권주가 함부로 법을 제정하고 어수선하게 고치지 말 것을 아뢰다
상참을 받고 경연에 납시었다. 지평 권주(權轃)가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서 쓰는 법으로서 《대명률(大明律)》·《경국대전(經國大典)》 및 《대전속록(大典續錄)》 같은 것이 있어 자세하지 않음이 아닌데, 지금 한 사람의 재상이 만약 어떤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하면 이를 제정하고, 한 사람의 재상이 만약 어떤 법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말하면 이를 고치게 되니, 날마다 점점 어수선하게 고치게 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만약 실행할 만한 법이면 의정부와 육조(六曹)와 한성부로 하여금 함께 의논하여 이를 제정하고 어수선하게 고치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형조에서, 공천(公賤)과 사천(私賤)을 데리고 있기를 허락받은 사람이, 문기(文記)를 위조하여 자기의 노비(奴婢)로 만들고는 관부(官府)에 송사하고, 그 죄를 모면하려고 하는 사람이 만약 간사하게 속이는 것이 뚜렷이 드러나면 온 가족을 변방에 옮기게 한 것은 수교(受敎)로 입법(立法)한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이와 같이 한다면 삼도득신(三度得伸)626) 의 법은 실행되지 못할 것입니다. 대체로 노비가 세력있는 집에 의탁해 살고 있으므로 본 주인이 만약 혼미(昏迷)하고 약하면 도리어 주인이 간사하게 속인 것으로 인정되어 주인이 스스로 변명하지 못하여 갑자기 온 가족을 변방으로 옮기게 되니, 비록 스스로 억울함을 펴고자 하더라도 그것이 되겠습니까?
대체로 관리는 현명하고 우매함이 같지 않으니, 서울에는 장례원(掌隷院)과 형조 같은 곳에 관원이 한 사람이 아니므로 공정한 판결이 오히려 가능하지마는, 지방에는 한 사람의 수령의 편견(偏見)으로 그들이 가려서 판결하는 바가 어찌 모두 다 적당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으면서도 갑자기 죄를 다스리게 하는 것은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만약 마지못해서 이 법을 쓰고자 한다면,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위에 계문(啓聞)하여 재결을 받은 뒤에 죄를 다스리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대간의 아뢴 바가 옳으냐?"
하매, 특진관 윤효손(尹孝孫)이 아뢰기를,
"권주(權瑧)가 아뢴 바대로, 형조에서 수교를 받아서 하는 것은 과연 온당하지 못합니다."
하였다. 정언 오익념(吳益念)은 아뢰기를,
"주역(周易) 복괘(復卦)에 ‘우레가 땅 속에 있는 것이 복(復)의 괘상(卦象)이니, 선왕(先王)이 이를 본받아서 동지(冬至)에 관문(關門)을 닫으므로 상려(商旅)들이 다니지 아니하며 임금도 지방을 살피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것은 동지에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는 까닭으로 조용하게 지킴으로써 천도(天道)에 순응하고자 한 때문입니다. 지금은 동지에도 하례(賀禮)를 받고 풍악을 울리며, 혹은 서로 문안(問安)을 하고 상려들이 떼 지어 다니니, 천도에 순응하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또 동지와 설날에는 보통 삼대전(三大殿)에 방물(方物)을 바치는데, 성종께서는 일찍이 하교하시기를 ‘외방에서 바치는 방물은 모두 백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니 마음 속으로 미안한 바이지만,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감히 폐지하지 못할 뿐이다.’ 하셨습니다. 내년에는 중국 사신이 나오므로 접대하기 위한 세금의 징수가 반드시 번거로울 것이요, 금년에는 또한 입거(入居)로 인하여 민간이 소란스럽습니다. 형편에 따라 동지와 설날에 바치는 방물을 그만두게 하소서."
하니, 답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46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523 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 재정-국용(國用) / 재정-진상(進上)
- [註 626]삼도득신(三度得伸) : 세 차례 자기의 억울함을 펴게 하는 것.
○丙寅/受常參, 御經筵。 持平權輳曰: "我國所用之法, 如《大明律》、《經國大典》及《續錄》非不詳也, 今一宰相若云某法可立則立之, 一宰相若云某法不便則改之, 日漸紛更。 臣意, 如可行之法, 則令議政府、六曹、漢城府同議立之, 勿使紛更。 今刑曹以公私賤許接人, 或僞造文記, 爲己奴婢, 訟于官府, 規免其罪者, 若奸詐現著, 則全家徙邊事, 受敎立法。 臣意, 如此則三度得伸之法不行矣。 凡奴婢投托于勢家, 主若迷弱, 則反以主爲奸詐, 主不能自明, 遽使全家徙邊, 則雖欲自伸, 其可得乎? 凡官吏賢愚不同, 京中則如掌隷院、刑曹非一員, 猶云可矣, 外方則以一守令之偏見, 其所辨決, 豈皆盡得其宜乎? 如此而遽使治罪, 甚未便。 若不得已用此法, 則令觀察使啓聞決折後治罪。" 王曰: "臺諫所啓是耶?" 特進官尹孝孫曰: "輳所啓, 刑曹受敎果不便。" 正言吳益念曰: "《周易》復卦云: ‘雷在地中復, 先王以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 以其冬至一陽始生, 故欲靜以守之, 以順天道。 今則冬至, 受賀、用樂, 或相問安, 商旅雜行, 殊非順天道之意。 且冬至、正朝, 例獻三大殿方物。 成宗嘗敎云: ‘外方所貢方物, 皆出於民, 心所未安, 其來已久, 故不敢廢耳。’ 明年天使出來, 調度必煩。 今年亦因入居, 民間騷擾, 請權罷冬至、正朝方物。" 不答。
- 【태백산사고본】 12책 46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523 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 재정-국용(國用) / 재정-진상(進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