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42권, 연산 8년 1월 27일 경자 2번째기사
1502년 명 홍치(弘治) 15년
양세영의 종 필동이 전쟁에서 세영이 힘을 다해 싸우다가 죽었음을 상언하다
내금위(內禁衛) 양세영(楊世英)의 종 필동(必同)이 상언(上言)하였는데, 그 대략에,
"세영(世英)은 이극균(李克均)의 군관(軍官)으로서 산양회진(山羊會鎭)에서 나누어 수자리 살다가 적을 만났는데, 적의 세력이 매우 강성하여 권관(權管) 김언겸(金彦謙)이 스스로 항복하여 사로잡히자, 세영(世英)은 충분(忠憤)을 이기지 못하여 힘을 다해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하였다. 경변사(警邊使) 이극균(李克均)과 종사관(從事官) 안윤덕(安潤德)·유순정(柳順汀)이 그의 충성스럽고 용맹함을 가상히 여겨 제문(祭文)을 지어 제사지내고 작위(爵位)를 추증(追贈)하고 자손을 녹용(錄用)하기를 원하였다. 그 일이 병조(兵曹)에 내려가니, 병조에서 아뢰기를,
"세영(世英)이 야인(野人)들과 만나 힘을 다해 싸우다가 죽음을 당했지만 절개를 지켜 의리를 위해 죽은 예(例)와는 같지 않으니, 정문(旌門)을 세우고 호역(戶役)을 면제할 수는 없습니다. 세영(世英)의 아들은 초상을 마친 후에 관직으로 상줄 것을 이미 전교(傳敎)하셨으니, 그 재주에 따라 서용하소서."
하니, 그대로 좇았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42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468 면
- 【분류】외교-야(野)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