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 41권, 연산 7년 10월 7일 임자 1번째기사
1501년 명 홍치(弘治) 14년
대사헌 한사문이 유자광과 한명회의 일에 대해 아뢰다
상참을 받고 경연에 납시었다. 대사헌 한사문(韓斯文)이 아뢰기를,
"유자광(柳子光)이 천청(天聽)을 속인 죄를 국문하고 명하여 《정원일기(政院日記)》를 상고하도록 하소서. 신 등이 서거정(徐居正)의 ‘수직론(守職論)’을 보니, 처음에는 한명회(韓明澮)의 일에 대하여 저술했고 끝에 가서는 서로 붕당(朋黨)을 맺어서 조정(朝政)을 흐리고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을 훈적(勳籍)181) 에서 지워버리고 모두 먼 곳에 귀양보낼 것을 말했습니다. 이른바 무망(誣妄)이란 것은 곧 서로 붕당을 맺어서 조정을 흐리고 어지럽게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지 한명회를 가리켜서 한 말이 아닙니다."
하였다. 한사문(韓斯文)과 대사간 최관(崔灌)이 아뢰기를,
"벼슬과 상은 임금이 마땅히 소중하게 아껴야 하는 것인데, 구수영(具壽永)이 대군(大君)의 사위인 까닭으로 벼슬이 2품(品)에 이르렀고, 지금 또 공로가 없는데도 발탁하여 승진시켰으니, 모름지기 개정(改正)하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4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454 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인사-임면(任免)
- [註 181]훈적(勳籍) : 공신록(功臣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