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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40권, 연산 7년 윤7월 8일 갑신 3번째기사 1501년 명 홍치(弘治) 14년

좌의정 성준 등이 《서북제번기》 및 《서북지도》를 찬술하여 바치다

좌의정 성준(成俊)과 우의정 이극균 등이 《서북제번기(西北濟蕃記)》 및 《서북지도(西北地圖)》를 찬술(撰述)하여 진상(進上)하면서 아뢰기를,

"부령진(富寧鎭)배설(排設)103) 한 곳이 매우 좁고 또한 땅도 비옥하지 못합니다. 서쪽으로 2식경의 거리에 한 군데 빈 땅이 있어 지명(地名)이 정승파오달(政丞波吾達)이라 하는데, 그 곳 지세(地勢)가 넓고 토질이 비옥해서 남도(南道)로 쳐들어오는 도적들이 모두 이곳을 경유하게 됩니다. 정승파오달로부터 서쪽으로 1식경 거리에 지명이 허수라(虛水羅)라는 곳이 있는데, 또한 땅이 비옥하고 토지는 백여 결(結)에 불과합니다. 신 등의 생각에는 만약 정승파오달부령진(富寧鎭)을 옮겨 설치하고 허수라 지방에 왕래하면서 경작하여 도적이 침범하는 길을 막는다면, 삼동량(三東良)·금천(衿天)·박가천(朴加遷) 등지에 사는 야인(野人)들이 모두 성 밑의 백성이 될 것이니, 비단 저들이 도적질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다른 도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음이 5진(鎭)의 성 밑에 사는 야인들과 같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도의 백성이 오래오래 편안히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별해(別害) 및 신방구비(神方仇非) 등지는 모두 요충지(要衝地)이므로 성을 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곳을 한꺼번에 다 쌓을 수는 없으니 함흥(咸興) 이남의 백성은 금년에 별해에 성을 쌓게 하고, 함흥 이북의 백성은 명년에 신방구비에 성을 쌓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40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448 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과학-지학(地學)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

○左議政成俊、右議政李克均等撰《西北諸蕃記》《西北地圖》以進曰: "富寧鎭排設處甚隘, 地亦不饒。 西距二息許, 有一閑曠處, 名曰政丞波吾達, 地勢廣闊, 土品沃饒, 南道入寇之賊, 皆由於此。 又自政丞波吾達西距一息許, 有地名曰虛水羅, 亦土饒而田則不過百餘結。 臣等謂, 若於政丞波吾達移置富寧鎭, 而往來耕作虛水羅之地, 以控賊路, 則三東良衿天朴加遷所居野人, 皆爲城底之氓。 非徒自不爲賊, 亦可禦他賊之入, 如五鎭城底野人矣。 然則南道之民, 可萬世安寢矣。 且別害(心方仇非)〔神方仇非〕 等處, 皆要衝之地, 而城不可不築。 然此兩地未可一時竝築, 請以咸興以南之民, 今年築別害, 以北之民, 明年築(心方仇非)〔神方仇非〕 何如?" 傳曰: "依所啓。"


  • 【태백산사고본】 11책 40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448 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과학-지학(地學)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