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려 습독관 어무적이 나라의 근본을 회복하는 등의 제안을 상소하였으나 회보하지 않다
율려 습독관(律呂習讀官) 어무적(魚無跡)090) 이 상소(上疏)하기를,
"신(臣)은 서얼(庶孽)의 천한 신하로서 바닷가에서 자라났는데, 국운이 번성하는 때를 만나 맑은 교화(敎化)에 젖어서 몸은 비록 노복이지만 배불리 먹고 일이 없어, 일찍이 경서(經書)와 사서(史書)에 힘쓸 수 있었습니다. 견마지치(犬馬之齒)가 차츰 많아지매 빈대좀[蟫蠧책갈피에 생기는 좀. 독서의 욕망에 비유.]의 어리석음이 더욱 돈독해져 성인(聖人)을 비방하는 글은 읽지 않고, 의리에 벗어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지극히 비천(卑賤)함을 생각하였기에 공명(功名)과 사업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지만,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여 삼대(三代)의 정치를 돌이키려는 마음만은 곤궁하여 넘어지는 일 때문에 일호도 좌절(挫折)되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는 하늘이 그 덕(德)을 돕고 귀신이 복을 도와서 문명(文明)의 정치가 삼대에 비길 수 있는 시대를 삼가 만났습니다. 그러하오나, 좋은 상서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고 재앙의 징조가 자주 나타나니, 생각해 보건대, 그것이 또한 미진(未盡)한 데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새는 지붕은 위에 있지만, 새는 줄 아는 것은 밑에 있다.[屋漏在上知之者在下]’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세상에서 밑에 있으면서 잘 볼 수 없는 위의 일을 아는 사람은 신보다 자세한 자가 없습니다. 또한 금년 봄에 구언(求言)의 하교가 간절하지 않음도 아니요, 조야에는 말할 일이 없음도 아닌데, 끝내 충언(忠言)·당론(讜論)으로써 전하의 뜻에 보답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므로, 신은 적이 부끄럽게 여깁니다. 어찌 위엄과 형벌을 두려워해서 마음속으로 비방하는 생각을 품고, 사방을 총명하게 비쳐 보시려는 전하의 거룩한 마음을 저버리겠습니까. 더구나 신은 어릴 적부터 질병이 많으므로 하루아침에 죽어서 초목(草木)과 더불어 함께 썩는다면 죽어서도 남은 한이 있을 것입니다. 진실로 신(臣)의 천루(賤陋)함을 더럽게 여기지 마시고 대궐 안에서 대답할 기회를 주신다면, 전하의 귀가 미처 듣지 못한 바와 전하의 눈이 아직 보지 못한 바를 한결같이 들으시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큰 근본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신(臣)이 삼가 생각하옵건대, 송(宋)나라 절효 선생(節孝先生) 서적(徐績)이 일찍이 말하기를, ‘자기의 힘을 수고롭게 하고 자기의 재물을 소비해야 〈군자가 될 수 있다면〉 군자가 되지 않아도 가하거니와, 자기의 힘을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재산을 소비하지 않아도 〈군자가 되는데〉, 제군(諸君)들은 어찌하여 군자가 되지 않는가. 고을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고 부모가 미워한다면 군자가 되지 않아도 가하거니와, 고을 사람들이 영광스럽게 여기고 부모가 바라는데 제군들은 왜 군자가 되지 않는가.’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진실로 이 말을 본받는다면 누구나 다 요(堯)·순(舜)이 될 수 있습니다.
신이 이 말의 뜻을 부연(敷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국가의 힘을 수고롭게 하고 국가의 재물을 소비해야 〈성군이 된다면〉 성군이 되지 않아도 가하거니와, 국가의 힘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 국가의 재산을 소비하지 않는데 군주는 왜 성군이 되지 않습니까. 백성들이 원망하고 조종(祖宗)이 미워한다면 성군이 되지 않아도 가하거니와, 백성들이 기뻐하고 조종(祖宗)이 원하는데 군주는 어찌 성군이 되지 않습니까. 군주가 성군이 되는 길은 부처가 되고 신선을 구하는 일처럼 허망(虛妄)하고 괴이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하게 하는 사이에 있을 뿐입니다. 이 마음이 한번 바르게 되고 이 뜻이 한번 성실하게 되면 천리(天理)가 이기고 인욕(人欲)이 없어져서, 군자가 가까이하고 소인(小人)이 멀어지며, 아첨하는 사람이 그 간사(奸邪)함을 부릴 수가 없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성취한 일을 요동 시킬 수가 없게 되어, 마치 청천 백일(靑天白日)하에 도깨비와 여우가 도망하거나 숨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제(堯帝)·순제(舜帝)·우왕(禹王)·탕왕(湯王)·무왕(武王)의 정치입니다. 이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이 뜻이 성실하지 못하면, 정치의 효과가 이와 반대가 되나니, 이것이 바로 후세(後世)의 분분하고 선(善)이 없는 정치입니다. 대체로, 군주는 안일한 처지에 태어나기 때문에 교만하고 사치스런 마음이 생기기 쉽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정치를 해롭게 하고 사치스런 마음은 재물을 해롭게 합니다. 교만한 마음이 극도에 이르면 성질이 괴팍(乖愎)해지고, 성질이 괴팍해지면 국사(國事)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치가 극도에 이르면 황음(荒淫)해지고, 황음해지면 재력(財力)은 돌볼 수 없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순제(舜帝)는 대성(大聖)이었건만 우왕(禹王)이 오히려 경계하기를, ‘단주(丹朱)091) 와 같이 오만하지 말라.’고 했으며, 성왕(成王)은 현철한 군주였건만, 주공(周公)은 오히려 경계하기를 ‘은왕(殷王)은 수(受)092) 와 같이 마음이 미란(迷亂)하지 말라.’고 했으니, 어찌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하게 함이 어렵다고 하여, 부지런히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미치지 못한 것같이 함이 아니겠습니까.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임금은 그 임금 노릇하기가 어렵다.’고 했고, 공자도 말하기를, ‘임금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그 어려움은 알아서 생각을 여기에 두시고,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게 해서 마땅히 탕왕(湯王)의 날로 진보함과 문왕(文王)의 근신함과 같이 해서, 앉고 눕고 자고 먹고 하는 일에도 요(堯)·순(舜)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이 생각하고, 교사(郊社)와 종묘에 제사를 모실 때에도 요(堯)·순(舜)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움으로 삼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봄에도 요(堯)·순(舜)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움으로 삼고, 남면(南面)해서 조례(朝禮)를 받을 때에도 요(堯)·순(舜)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움으로 삼는다면, 정사를 발하매 한결같이 요(堯)·순(舜)을 본받게 되며,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부정(不正)한 사람을 물리치는 데에 한결같이 요(堯)·순(舜) 본받게 되며, 이목(耳目)을 총명히 하는 데도 한결같이 요(堯)·순(舜)을 본받게 되며, 형벌을 삼가고 관리(官吏)의 공과(功過)를 조사하는 데도 한결같이 요(堯)·순(舜)을 본받게 될 것입니다.
무엇으로써 요(堯)·순(舜)을 본받을 것이냐 하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이를 행함이 이미 오래되고 진작(振作)함이 그치지 않아서 덕(德)이 닦여 천성을 이루게 되면, 전하에게는 털끝만한 손상도 없을 것이며, 귀신과 사람이 모두 기뻐할 것이며, 온화(溫和)한 기운이 충만(充滿)해서 명성(名聲)이 상국(上國)에 들리게 되고, 교화(敎化)가 사방을 움직여서 오랑캐들이 모두 복종하고, 홍범(洪範)093) 에서 말한 오복(五福)이 다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순제(舜帝) 때의 고요(皐陶)와 기(夔)와 후직(后稷)과 설(挈)과 같은 명신(名臣)이 없어서 더불어 일할 만한 사람이 없다거나, 세상의 도의가 이미 경박해져서 다시 순후(淳厚)해질 수 없다고 말하지 마소서. 옛사람이 말하기를, ‘상등[上]에서 본을 따야 겨우 중등[中]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삼가 이후의 군주들의 병폐는 중주(中主)되기를 구하고, 성군(聖君)이 되기를 바라지 않은 데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남의 좋지 못한 일을 본받지 마시고 상등[上]에서 본을 받아 한(漢)나라·당(唐)나라도 비천(鄙賤)하게 여기시면, 천지와 귀신과 사람과 자손들의 억만 년 그지없는 경사가 이 하나의 행사(行事)에 있을 것입니다.
둘째, 선비들의 기개(氣槪)를 기르는 일입니다. 신은 삼가 나라에 인재(人材)가 없으면 백성을 다스릴 수 없으며, 사람이 절의(節義)가 없으면 쓸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므로 성군(聖君)과 명왕(明王)은 작록(爵祿)으로써 그 인재를 기르고, 상벌(賞罰)로써 그 절의(節義)를 장려했기 때문에 선비는 염치 있는 행실을 숭상하고 국가는 문명(文明)의 교화를 이룩했던 것입니다. 우리 조종(祖宗)의 여러 임금들께서 백여 년 동안 인재를 길렀으니, 많은 선비들이 마땅히 훌륭해야 하고, 문학을 숭상하는 기풍이 마땅히 융성해야 하고, 절의가 마땅히 두드러져야 할 터인데, 지금은 도리어 선비들의 기개가 소진(消盡)되고 선비들의 풍습이 낮은 데로 떨어져서, 입장마(立仗馬)094) 로 경계를 삼고 강직한 기질을 유순으로 변하는 것[繞指柔]095) 으로 법을 삼으며,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나라에 보답하려는 신하는 적고 눈앞의 안일만 도모하여 국록(國祿)만 탐내는 신하가 많으니, 이것은 모두 선비들의 기개가 부진한 까닭입니다.
선비들 기개를 진작(振作)시키려면 다만, 언로(言路)를 크게 틔워서 어진이를 끌어올리고 부정(不正)한 사람을 물리치는 것뿐입니다. 대체로, 대간(臺諫)과 시종(侍從)은 전하의 이목(耳目)입니다. 전하께서 미처 듣지 못한 것을 대간과 시종은 듣게 되고, 전하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대간·시종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정직한 의논을 마땅히 서둘러서 듣고 낱낱이 좇고도 오히려 백성의 뜻이 위에 미치지 못할까 좋은 말이 숨겨질까 두려워해서 말이 비록 지나치더라도 또한 용서해서 우(吁)해야 할 때는 ‘우’하고, 불(咈)해야 할 때는 ‘불’할 뿐이옵거늘, 어찌 대간과 시종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해서 갑자기 용납하지 않으시나이까.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덕(德)을 청(聽)하되 총(聰)을 생각해야 한다. [聽德惟聰]’했고, 부열(傅說)은 말하기를,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군주는 간언(諫言)을 좇으면 성군(聖君)이 된다.[木從繩則直 后從諫則聖]’고 했습니다. 가만히 보건대, 전하는 대간과 시종(侍從)을 대접하기를 지성으로 하지 않고, 대간에게는 더욱 조금도 용서하지 않아서 오래 있는 자라야 불과 7∼8개월에 파직(罷職)되고, 심한 자는 수 개월만 가게 하는데 대간과 시종은 국가에서 맡긴 책임이 무겁기 때문에 그 직책의 임명을 받는 사람은 대개 사대부(士大夫) 중에서도 재주와 덕망(德望)이 있는 사람들이요, 완고하고 우둔(愚鈍)하며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로 뒤섞여 있는 여느 관과는 다릅니다. 이런 까닭으로, 상등인(上等人)은 관직(官職)을 손상시키는 것을 두려워하고, 중등인(中等人)은 물의(物議)를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며, 하등인(下等人)은 배운 바를 저버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의 지론(持論)과 주장이 혹 과격해서 중도를 넘어서는 일은 있을지언정, 어찌 사심(私心)을 먹고 자기 몸만 꾀하여 나라 일을 그르치는 일이야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능히 대간의 말을 서둘러서 듣거나 낱낱이 좇지도 아니하고, 특히 ‘덕(德)을 듣되 총명함을 생각하고, 간언(諫言)을 들으면 성군(聖君)이 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어, 소위 대간이라는 자가 조석(朝夕)을 보장하지도 못하는데, 어느 여가에 죽을 힘을 내어 대사를 논하며, 임금으로 하여금 허물 없는 땅에 서도록 하겠습니까.
만약 죽는 것을 자기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능히 뇌정부월(雷霆斧鉞)인 임금의 위엄을 범하면서 국가에 충성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선비의 기개가 부진함이 여기에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벼슬길에 나아가는 자는 도필(刀筆)096) 로써 서로 높이고 법률을 읽는 것을 어질다 하며 선비는 옛것을 본받지 않은 지가 이미 오래 되었으므로, 도덕과 경국 제세(經國濟世)의 학문을 하는 선비를 얻고자 해도 어렵습니다. 신은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정신을 깨끗이 하고 치도(治道)를 활짝 열어서 대간(臺諫)으로써 심복(心腹)을 삼고 시종(侍從)으로써 이목(耳目)을 삼으며 현명한 사람을 끌어올리고 무능한 사람은 가려내어 사대부로 하여금 유유낙낙(唯唯諾諾)097) 함이 없고 아첨하고 모호함이 없으며 당파를 세워서 서로 아첨함이 없고 사소한 결점을 지적하여 착한 것을 가리움이 없으며 은혜와 원수를 제멋대로 갚음이 없고 도필(刀筆)의 사무를 숭상함이 없도록 하시어 묵은 폐습(弊習)을 일신하옵고, 전하께서도 또한 반구저기(反求諸己)하시며 노성(老成)한 사람을 예로써 높이고 조급한 승진을 억제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선비의 기개가 저절로 떨치고 선비의 풍습이 날로 높아져서, 문헌(文獻)에 넓게 밝은 선비가 많이 나올 것입니다. 신은 듣자옵건대 ‘명철한 군주는 선비를 기르되, 마땅히 닭을 기르는 법은 곧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데 있을 뿐인 것처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전하께서 모든 일을 환하게 살피시옵기를 바랍니다.
셋째, 여악(女樂)을 없애는 일입니다. 여악은 춘추(春秋)의 쇠망(衰亡) 시대에 처음으로 이 좋지 못한 예(例)가 생긴 것으로, 한(漢)나라·위나라에서 시작되었으니, 진실로 제왕이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좋은 도구가 아닙니다. 이러므로 계환자(季桓子)가 여악을 받으매, 공자(孔子)가 떠나셨던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써 헤아리건대, 하루라도 빨리 제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년 동안 제거하지 않으면 1년의 풍교(風敎)를 해치고, 10년 동안 제거하지 않으면 10년의 풍교를 해치게 됩니다. 아! 그 유래가 오래되어 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선왕(先王)이 만든 좋은 법과 아름다운 일이라도 때로는 고쳐야 할 것이 있는 법인데, 유독 여악을 가리켜 제거해야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아! 그 유래가 오래되어 뻔뻔스럽게도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도 감히 시비(是非)를 논하는 자 없이 오늘에 이르렀으니, 어찌 수천 년 동안의 폐법(弊法)이 마침내 오늘의 전하의 고명(高明)함을 기다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여악이 종묘를 위해 설치된 것인지 오랑캐를 위해 설치된 것인지 백성들을 위해 설치된 것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다만 신라(新羅)·고려(高麗) 말기(末期)에 황음(荒淫)하고 유희(遊戲)하던 도구로서 우리 조종(祖宗)의 여러 임금께서 예악(禮樂)을 제작하실 적에 미처 제거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지금 서울 기녀(妓女)와 시골 기녀가 있는데, 이것은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상고해 보면, 군사 가운데 아내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 이것이 어찌 군사를 위해서 설치된 것입니까. 가령 군사를 위해서 설치된 것이라도 여자가 군중에 있는 것은 병법(兵法)에서 꺼리는 것이며, 더구나 선왕(先王)의 정치에 군사를 위하여 창기(娼妓)를 두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신이 보는 바로 말하오면, 사대부들의 잔치 때에 노래하고 춤추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여악(女樂)의 폐단이 불교와 도교(道敎)보다 10배나 되는데도 대간(臺諫)·재상·시종(侍從)의 신하들 중 한 마디 나무라는 사람이 없으니, 이것은 대간·재상·시종들이 모두 이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의 공검(恭儉)한 임금으로 한(漢)나라 문제(文帝)와 수(隋)나라 문제(文帝)와 같은 분은 다 여러 번 세탁한 옷을 입었고, 왕후들은 치마가 땅에 끌리지 않았습니다. 송(宋)나라 영강 공주(永康公主)가 수놓은 속옷을 입으매, 태조(太祖)가 이것을 금하며 이르기를, ‘여러 사람이 반드시 서로 본받을 것이다.’고 했으니, 이것들은 모두 성대한 덕망(德望)을 가진 이의 일입니다. 지금 기녀는 어떤 사람이기에 눈은 누에가 어떤 것인 줄도 모르면서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으며 금옥과 구슬·비취로써 치장하니, 이것이 어찌 귀천(貴賤)과 존비(尊卑)의 분수이겠으며 자상하고 공검(恭儉)한 교화(敎化)이겠습니까. 지금 기녀 한 사람의 옷의 장식이 평민(平民) 열 사람의 의복보다 지나칩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도둑도 딸 다섯을 가진 집의 문앞을 지나가지 않는다.’고 했으니, 딸이 많으면 가난하게 됨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토지의 넓이와 둘레가 수천 리인데, 주(州)와 군(郡)의 창기(娼妓)가 무려 수천 명입니다. 그들이 옷감을 장만함엔 밭을 가는 것도 아니요 베를 짜는 것도 아니며 또한 하늘이 주었거나 귀신이 보낸 것도 아니며, 오직 사대부(士大夫)로 인연(因緣)하거나 관(官)의 위세를 빌어서 백성들의 고혈(膏血)을 몰래 빨아먹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어찌 딸 다섯 가진 자의 집을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대체로 창기(娼妓)는 미도(媚道)로써 사람을 홀리기를 여우처럼 하기 때문에 비록 행검이 높고 지조가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음부(陰部) 속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적습니다. 관직(官職)을 구하고 송사(訟事)를 다투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뇌물을 주고 부탁하여 흑백(黑白)을 바꾸어 어지럽히며, 무지(無知)하고 어리석은 세속(世俗) 사람은 다투어 그 요염한 자태를 부러워합니다. 대신(大臣)의 첩들도 기녀를 본뜨고 서민의 아내들도 기녀를 본따서 아름다움을 다투고 사랑을 시기하여 기녀로써 스승을 삼게 되며, 왕왕이 높은 집안과 빛나는 문벌에게도 매우 추잡한 소문이 있게 되니, 《시경(詩經)》 관저(關雎)편의 풍화(風化)를 크게 더럽히고 있습니다. 기녀에 물드는 것이 신(臣)의 생각하는 바로는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옛날 제(齊)나라 태자(太子)가 사호(邪蒿)098) 를 먹으매, 형치(邪峙)가 사(邪) 자(字)가 있다는 이유로써 간(諫)하여 이를 중지시켰는데 글안(契丹)의 군주도 또한 이 일을 듣고 감탄했습니다. 지금 여악(女樂)의 폐단은 어찌 사호에 그치겠습니까.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음탕한 노래와 괴상한 의복을 만들어 여러 사람을 의혹(疑惑)시키면 죽인다.’고 했으며, 공자(孔子)는 ‘정(鄭)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버린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예기(禮記)》와 공자의 말씀에 의거하여 한 번 용단을 내려 인심(人心)을 바로잡고 풍속을 착하게 해야 되니, 이것이 제일 상등이 될 것입니다.
넷째, 술[酒]의 근본을 근절시키는 일입니다. 국가는 교사(郊社)와 종묘에 제사지내는 큰 예절이 있으니, 술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무릇 신민(臣民)들의 제사에 있어서는 의례(儀禮)에도 단술이 있고 명수(明水)099) 가 있어 모두 술에 대신할 수 있으니, 술은 없앨 수 있습니다. 경사(卿士)는 말할 것도 없고 어리석은 백성들도 부질없이 술을 많이 마실 줄만을 알아서 술에 취하기 때문에 1년의 곡식이 반이나 술에 소비됩니다. 그것은 이미 양식을 모자라게 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 병이 되며, 1주(周)가 되기도 전인데 벌써 굶주림에 울면서 곡식을 팔아야만 된다고 하니, 지금 백성을 해치는 것은 술입니다. 무릇 술은 누룩이 아니면 빚을 수 없고, 누룩은 밀[小麥]이 아니면 만들 수 없습니다. 신은 바라옵건대, 민간에 조서(詔書)를 내려 밀을 심는 것을 금지시킨다면 몇 해 후에는 백성들이 술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용(國用)에 쓰는 술은, 경기(京畿) 지방에 땅을 가려 따로 밀을 심어서 일정한 조세(租稅)로 바치게 하면 매우 편리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신의 말을 좇아 기녀를 없애고 술을 금하신다면, 다만 백성의 재물을 넉넉하게 할 뿐 아니라 또한 백성들의 목숨을 연장시킬 터이니, 백성들의 행복이 모두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불교를 금하는 법을 세우는 일입니다. 신은 삼가 생각하건대,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처음으로 좋지 못한 예(例)를 만든 이래로 불법(佛法)을 믿고 받드는 군주가 어느 대이고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장생 불사하는 군주가 현재 살아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럴진대, 부처는 족히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은 지혜로운 이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부처가 이미 허망한 것이라면 불교를 배우는 무리들을 엄중히 금해야 마땅하겠거늘, 어찌 높이고 받들 수 있습니까. 신이 삼가 보건대, 두 종파(宗派)100) 의 우두머리 중이나 군주를 대신해서 중이 된 사람이 다투어 살찐 말을 타고 종을 많이 거느리고 거리를 출입하며 조정(朝廷) 관리들과 나란히 말을 타고 다님으로써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신은 매우 부끄럽게 여깁니다.
왕제(王制)101) 에 이르기를, ‘옳지 못한 도리로 정사(政事)를 어지럽히면 죽이고, 괴상한 복장(服裝)으로 여러 사람을 의혹(疑惑)시키면 죽이고, 거짓을 행(行)하면서도 고집하고 거짓을 말하면서도 변설(辯舌)을 놀리면 죽이는 것이니, 이 4종류의 죽임은 들어 주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를 해석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모두 단호히 죽이고 다시 심험(審驗)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진실로 이 중에서 한 가지만 범(犯)해도 이를 죽이고 의심하지 않거늘, 하물며 한 사람이 4가지를 범(犯)함이겠습니까.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어서 비록 왕제(王制)에 있는 대로 다할 수는 없더라도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중의 무리들이 말을 타고 종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을 금지하시기 바랍니다. 신의 생각에는 전하께서 능히 중들의 외람됨을 통찰(洞察)하시지 못한 때문에 지금껏 금하지 않으신 줄로 아옵니다. 옷을 골라서 입고 여자를 골라서 간통(奸通)하며 사람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일 등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차마 더러운 말을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여섯째, 성(城)을 쌓는 일을 정지시키는 일입니다. 신은 삼가 생각하건대, 요해지(要害地)를 설치하여 나라를 지키라는 말은 성인(聖人)의 말씀입니다. 대저 이른바 요해지를 설치한다는 말은 하필 만리 장성을 이름이겠습니까. 힘을 헤아려서 할 뿐입니다. 진(秦)나라 시황(始皇)과 수(隋)나라 양제(煬帝)는 모두 요해지를 설치하라는 말에 구애되고 힘을 헤아리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삼가 듣자옵건대, 국가에서 장성(長城)을 쌓을 것을 의논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또한 힘을 헤아린 것입니까. 신의 말은 곧 백성들이 시끄럽게 걱정한다면, 비록 성(城)을 높이 쌓아 문짝을 만든다 해도 버들가지를 꺾어 울타리를 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제왕(帝王)의 계책은 그 귀함이 만전(萬全)을 도모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어찌 국가의 근본인 백성을 먼저 흔들리게 하여 놓고 오랑캐를 천 리 밖에서 막을 수 있습니까. 신은 전하께서 세 번 다시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지금 큰 역사를 일단 일으키시면 백성은 밑에서 원망하고, 도적들은 벌떼처럼 일어날 것이며 남쪽 삼포(三浦)의 왜놈들은 소문을 듣고 곧 틈을 타서 몰래 쳐들어 올 터인데, 이렇게 되면 북쪽에 쌓은 장성(長城)으로 어찌 남쪽의 왜구(倭寇)를 막겠습니까. 변방을 방비하는 계책이란 훌륭한 장수를 뽑고 변방의 관리를 가려서 쓰며 수자리 사는 군졸을 늘리고 봉화불을 잘 살펴, 오면 막아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 뿐이온데, 어찌 갑자기 큰 역사(役事)를 일으켜 백성들의 마음을 놀라게 하려 하십니까. 삼가 유념(留念)하시기 바랍니다. 신은 멀리 초야(草野)에 있으므로 생각이 있어도 주달할 수 없사옵니다. 오늘 말씀드린 것 또한 만분의 일분입니다."
하였으나, 회보(回報)가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40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446 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외교-왜(倭) / 신분-천인(賤人) /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예술-음악(音樂) / 사법-법제(法制)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註 090]어무적(魚無跡) : 원문에 어무적(魚無赤)으로 되어 있음.
- [註 091]
단주(丹朱) : 요제의 아들.- [註 092]
수(受) : 주(紂)의 이름.- [註 093]
홍범(洪範) : 《서경》의 편명.- [註 094]
입장마(立仗馬) : 입을 다물고 말하지 말자는 경계. 당나라 간신 이임보(李林甫)가 재상으로 있을 적에 입장마를 들어 조정 제신들의 입조심을 경계하기를, ‘그대들은 저 입장마를 보지 못하느냐. 온종일 아무 소리 없이 삼품 추두(芻豆 : 말먹이 콩)를 먹으며, 한 번 울면 쫓겨나지 않는가.’라고 한 데서 연유함.- [註 095]
[繞指柔] : 강철(鋼鐵)을 굽혀 손가락에 끼운다는 말인데, 즉 강직한 기질을 변화시켜 유순하게 만든다는 뜻.- [註 096]
도필(刀筆) : 서리(書吏)의 직무를 이름.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대쪽에 칼로써 붓을 대신하여 글자를 새겼던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 [註 097]
유유낙낙(唯唯諾諾) : 예예 하고 무조건 순종하는 태도.- [註 098]
사호(邪蒿) : 풀 이름.- [註 099]
○乙亥/律呂習讀官(魚無赤)〔魚無跡〕 上疏曰:
臣以孽子賤臣, 生長海隅, 遭逢盛際, 沐浴淸化。 身雖僕隷, 含飽無事, 嘗得用力於經史。 犬馬之齒漸多, 而蟫蠹之癡愈篤, 非聖之書未嘗讀, 非義之說未嘗言。 自以至賤, 無心於功名事業, 而忠君愛國, 挽回三代之心, 不以窮躓顚沛, 一毫少挫也。 伏遇殿下天相其德, 神扶其福, 文明之治, 媲三代。 然而嘉祥不至, 咎徵屢見, 意者其亦有所未盡者乎? 古人有言曰: "屋漏在上, 知之在下。" 當今之世, 在下而知漏者, 莫詳於臣也。 且於今年春, 有敎求言, 辭非不切也, 朝野非無一事可言也, 竟不聞有以忠言、讜論, 上答天意, 臣竊恥焉。 豈以雷霆、斧鉞爲可畏, 而含蓄腹誹, 以孤殿下明四目、達四聰之盛心乎? 況臣少多疾病, 恐一朝塡溝壑, 與草木同腐, 則死有餘恨。 苟不鄙臣之賤陋, 賜對閶闔, 則殿下之耳所未聞, 目所未見者, 一輸聖聽。 其一, 正大本。 臣伏念, 宋 節孝先生 徐積嘗曰: "使勞己之力, 費己之財, 則不爲君子可也; 不勞己之力, 不費己之財, 諸君何不爲君子? 鄕人賤之, 父母惡之, 如此則不爲君子可也; 鄕人榮之, 父母欲之, 諸君何不爲君子?" 善哉言乎! 苟師此言, 人皆可爲堯、舜, 臣請演義而獻說焉。 使勞國家之力, 費國家之財, 則不爲聖主可也; 不勞國家之力, 不費國家之財, 人君何不爲聖主? 百姓怨之, 祖宗惡之, 不爲聖主可也; 百姓悅之, 祖宗願之, 人君何不爲聖主? 人君之爲聖, 非如成佛、求仙之茫昧怪誕, 只在正心、誠意間耳。 此心一正, 此意一誠, 則天理勝, 而人欲盡; 君子親, 而小人遠, 讒諛無所聘其奸, 權幸無以搖其成, 如靑天白日, 魑魅、狐狸逃遁之不暇者, 卽堯、舜、禹、湯、文、武之治也。 此心不正, 此意不誠, 則治效反是, 此後世紛紛無善治也。 大抵人君生于逸, 易生驕侈之心。 驕心害政, 侈心害財。 驕極爲愎, 愎則謂國事不足爲也; 侈極爲荒, 荒則財力不足恤也。 是以, 舜大聖也, 禹猶戒之曰: "無若丹朱傲。" 成王哲王也, 周公猶戒之曰: "無若殷王受之迷亂。" 豈非以正心、誠意爲難, 而拳拳納誨, 猶不及哉? 《書》曰: "后克艱厥后。" 孔子曰: "爲君難。" 伏願殿下, 知其艱、知其難, 念玆在玆, 日新又新, 當如湯之日躋, 文王之翼翼, 坐臥寢食, 以不如堯、舜爲愧; 郊廟享祀, 以不如堯、舜爲愧; 仰天俯地, 以不如堯、舜爲愧; 南面受朝, 以不如堯、舜爲愧, 則發政施仁, 一以堯、舜爲法; 用賢去邪, 一以堯、舜爲法; 耳目聰明, 一以堯、舜爲法; 愼刑考績, 一以堯、舜爲法。 何以法堯、舜? 正心誠意而已。 行之旣久, 作之不已, 德與性成, 於殿下無毫髮之損, 而神人胥悅, 和氣充塞, 蜚聲上國, 風動四方, 蠻夷率服, 《洪範》之五福畢至矣。 殿下勿謂無皋、夔、稷、契, 不足與有爲也; 世道已薄, 不可復淳也。 古人有言曰: "取法於上, 僅得其中。" 臣以爲, 三代以下人主之病, 在求爲中主, 而不求爲聖主。 殿下勿效尤, 而取法於上, 以漢、唐爲鄙, 則天地、神人、子孫億萬年無疆之休, 在此擧。 其二, 養士氣。 臣伏念, 國無人材不可治, 人無節義不可用。 是以, 聖主、明王爵祿以養其材, 賞罰以礪其節。 故士尙廉恥之行, 而國賴文明之化。 我祖宗列聖, 百餘年儲養人才, 多士宜濟濟也, 文風宜郁郁也, 節義宜表表也。 今反士氣消索, 士習汙下, 以仗馬爲戒, 以繞指爲法, 赤心報國之臣少, 而偸安冒祿之臣多, 此由士氣不振故也。 欲振士氣, 不過大開言路, 進賢退邪而已。 夫臺諫、侍從, 殿下之耳目, 殿下之耳未及聞者, 臺諫、侍從聞之; 目未及視者, 臺諫、侍從視之, 其所讜論, 當汲汲而聽, 一一而從, 猶懼其下情之未達也, 嘉言之或攸伏也。 言雖過中, 亦且容之, 當吁曰吁, 當咈曰咈而已, 豈可以臺諫、侍從之言爲不足信, 而遽不容乎? 伊尹曰: "聽德惟聰。" 傅說曰: "木從繩則直, 后從諫則聖。" 竊見, 殿下待臺諫、侍從, 不以至誠, 於臺諫尤不少假, 久者不過七八月而罷, 甚者數月而去。 臺諫、侍從, 國家倚以爲重, 而膺其選補其職者, 例士大夫之有才望者也, 非如他官頑鈍無恥者之雜處也。 是以, 上畏玷官職, 中畏招物議, 下畏負所學, 其持論、主議, 或激而過中者則有之矣, 焉有懷私、謀身, 以誤國事者哉? 殿下不能汲汲而聽, 一一而從, 殊無聽德惟聰, 從諫則聖之義。 今云爲臺諫者, 不保朝夕, 何暇出死力, 論大事, 納君於無過之地乎? 人非視死如歸, 孰能犯雷霆、斧鉞之威, 盡忠許國乎? 士氣之不振, 莫不由此。 今之仕進者, 以刀筆相高, 讀律爲賢, 而士不師古久矣, 欲得道德、經濟之士難矣。 臣伏願殿下, 澡雪精神, 大開治道, 以臺諫爲心腹, 侍從爲耳目, 簸之揚之, 沙之汰之, 使士大夫無唯唯諾諾, 無脂韋模稜, 無樹黨相比, 無指瑕掩善, 無擅報恩讎, 無崇尙刀筆, 一新舊習, 殿下亦反求諸己, 尊禮老成, 黜抑躁進, 則士氣自振, 士習日高, 文獻博雅之士, 彬彬出矣。 臣聞: "明主養士, 當如養雞, 政在不畜猫耳。" 亦惟聖鑑明燭。 其三, 罷女樂。 臣竊考, 女樂春秋衰叔之作俑, 而濫觴於漢、魏, 固非帝王治天下國家之良具也。 是以, 季桓子受而孔子行。 以臣愚料之, 不可一日不去也。 一年不去, 則害一年風敎; 十年不去, 則害十年風敎, 於戲! 其來已久, 而悅之者衆也。 雖先王制作良法美意, 時有因革, 而獨未聞指女樂爲可去者。 於戲! 其來已久, 故恬不爲怪, 悅之者衆, 莫敢是非, 以至今日, 豈非數千載弊法, 終有待今日之聖明乎? 臣不知女樂爲宗廟設乎, 爲朝廷設乎, 爲夷狄設乎, 爲生民設乎, 此特新羅、高麗之季, 荒淫遊戲之資, 而我祖宗列聖, 制作禮樂, 未遑刪去者也。 今有京妓、鄕妓。 考之《大典》曰: "爲軍士之無妻者。" 噫! 此豈眞爲軍士設乎? 假使爲軍士而設, 女子在軍, 兵法所忌。 況未聞先王之政, 爲軍士設娼妓也。 以臣所見言之, 不過爲士大夫遊燕歌舞之資耳。 今女樂之弊, 十倍佛、老, 而臺諫、宰相、侍從之臣, 無一言非者, 是臺諫、宰相、侍從之臣, 皆悅之故也。 古之恭儉之君, 如漢 文帝、隋 文帝皆衣再澣之衣, 皇后以下衣不曳地。 宋 永康公主衣帖繡鋪翠襦, 太祖禁之曰: "衆必相效。" 此皆盛德事。 今妓是何人, 目不知蠶, 而被以紗羅綾段, 飾以金玉珠翠, 豈貴賤尊卑之分, 慈祥恭儉之化耶? 今一妓服飾, 過常民十分之衣。 古人有言曰: "盜不過五女門。" 言女多則貧也。 今我國家, 幅員數千里, 州郡娼妓, 無慮數千人。 其服飾之資, 不耕不織, 又非天錫而鬼輸, 不過因緣士大夫, 憑借官威, 潛吮民膏血而已, 何不慮五女門耶? 大抵娼妓例挾媚道, 誤人如狐, 雖自許行行高人貞士, 鮮不陷其陰中。 至於求官爭訟者, 行賄附托, 變亂黑白, 無知愚俗, 爭羡妖態, 卿士之妾效之, 庶人之妻效之, 爭姸妬寵, 以妓爲師, 往往高門華族, 頗有醜聲, 大累《關雎》風化之美, 妓之染也。 臣之所慮, 不止此耳。 昔齊太子食邪蒿, 邢峙以邪字諫而止之, 契丹之主, 亦聞而感嘆。 今女樂之累, 豈止邪蒿耶? 《禮》曰: "作淫聲異服, 以疑衆殺。" 孔子曰: "放鄭聲。" 伏願殿下, 據《禮經》及孔子之言, 一發神斷, 正人心、善風俗, 此爲第上。 其四, 斷酒根。 國家則有郊、廟大禮, 酒不可無也。 凡臣庶祭祀, 則《禮》有醴、有明水, 皆可以代酒, 酒可無也。 卿士則已矣, 愚民徒知崇飮, 至于沈酗, 一年之稔, 半費於酒。 旣乏其食, 又因爲病 年未周而已啼飢、告糶矣。 方今之害民、害財者酒也。 凡酒非麴無以釀, 麴非小麥無以成。 臣願詔民間, 禁耕小麥, 則數年之後, 民不知酒矣。 至於國用, 則可於京畿擇地, 別種小麥, 以爲常賦甚便。 殿下若從臣言, 罷妓、禁酒, 則非徒裕民之財, 亦足續民之命, 元元之福, 盡在此矣。 其五, 立僧禁。 臣伏念, 自漢 明帝作俑以來, 人君之信奉佛法者, 何代無之? 而至今未聞有長生不死之主, 見在於世, 則佛不足信, 不待智者而後知也。 佛旣誕妄, 則學佛之徒, 固宜痛斷, 何可崇奉乎? 臣伏見, 兩宗酋僧及代主爲僧者, 競乘肥馬, 多率僕從, 出入坊市, 與朝士竝駕齊驅, 駭人瞻視, 臣甚恥焉。 《王制》曰: "執左道以亂政殺, 異服以疑衆殺, 行僞而堅、言僞而辯殺, 〔假於鬼神卜筮以疑衆殺。〕 此四誅者不以聽。" 釋之者曰: "皆決然殺之, 不復審驗。" 苟犯於一, 殺之不疑, 況一人而四犯乎? 其來已久, 雖不盡如《王制》, 伏願殿下, 禁僧徒騎馬率奴。 臣愚以爲, 殿下不能洞照僧徒之濫, 故未之禁遏耳。 擇衣而服, 擇女而奸, 誣人、欺世, 何可勝言? 臣不忍必陳醜言。 其六, 停築城。 臣伏念, 設險守國, 聖人之言也。 夫所謂設險, 何必謂萬里城哉? 量力而爲之耳。 秦 始、隋 煬俱泥於設險之言, 而不量力者也。 伏聞, 國家議築長城, 其亦量力乎? 臣謂, 下民嗷嗷, 則雖崇城到天, 鐵關而石扉, 曾不若折柳之樊圃也。 帝王之策, 貴在萬全。 豈可使邦本先搖, 禦戎狄於千里之外哉? 臣伏願殿下三思。 今大役一起, 民怨於下, 盜賊蜂起, 南方三浦之倭, 聞風望塵, 乘間竊發, 則北築長城, 何以禦南寇乎? 防邊之策, 不過選良將、擇邊吏, 增置戍卒, 警察烽燧, 來則禦之, 使無入而已, 豈宜遽興大役, 以駭民心哉? 伏望殿下留神焉。 臣邈在草澤, 有懷未達。 今日所言, 亦萬分之一。
不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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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註 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