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 40권, 연산 7년 6월 10일 병술 1번째기사
1501년 명 홍치(弘治) 14년
승지 권주를 시켜 안태사 신수근을 제천정에서 전송하게 하고 어제시 한 절구를 내리다
승지 권주(權柱) 등에게 명해서 안태사(安胎使)080) 신수근(愼守勤)을 제천정(濟川亭)에서 전송하도록 하고, 어제시(御製詩) 한 절구(絶句)를 내리기를,
짙어가는 더운 기운이 바야흐로 깊어만 가는데
멀고 먼 장안까지 몇 개의 바다위 묏부리던가
오늘 사람을 시켜 정자 위에서 전송하노니
몇 달 동안 소식 듣지 못함이 근심스럽구나
하였다. 신수근(愼守勤)이 정인인(鄭麟仁)을 종사관(從事官)으로 삼았다. 홍문관에서 상소하여 시사(時事)와 외척에 관한 일을 의논하면서, 정인인으로 하여금 기초(起草)하게 했는데, 정인인(鄭麟仁)은 다만 다른 일만 범론(泛論)하고 외척에 관한 일은 한 마디 말도 없었는데, 저작(著作) 안처선(安處善)이 그것을 보고 말하기를,
"상소가 이 정도에 그칠 바에야 그만두는 것보다 못하다."
하니, 정인인(鄭麟仁)이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처선(安處善)은 천성이 순정(醇正)하고 지조가 확실해서 세쇄(細瑣)한 일에 구애되지 않고 대인의 기상이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40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444 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사급(賜給) / 어문학-문학(文學)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註 080]안태사(安胎使) : 왕자(王子)의 출생시에 그 태반(胎盤)을 태봉(胎峰)에 묻으려 출장하는 특사(特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