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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40권, 연산 7년 1월 30일 기묘 2번째기사 1501년 명 홍치(弘治) 14년

학문과 정사를 닦기를 청하는 대사헌 성현 등의 상소

대사헌 성현(成俔) 등이 상소하기를,

"근일에 전지(傳旨)를 보오니, 금년 정월 18일에 천변(天變)이 있어 구언(求言)을 하교하사 중외에 영을 내려 주문(奏聞)토록 하셨습니다. 삼가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상고하옵건대, ‘천구성(天狗星)027) 이 땅에 떨어지면, 그 소리가 천둥과 같고 꿩들이 다 울게 되는데, 이는 천도(天道)가 편안하지 못한 까닭이다.’고 했습니다. 대저 화기(和氣)는 상(祥)을 이루고, 괴기(怪氣)는 재이를 이루게 되니, 천도는 어김이 없어 찬연하기가 초목과 같아서 털끝 만한 차이도 없는 것입니다. 임금은 하늘을 받드는 분입니다. 하늘을 받들되 능히 순종하지 못한다면, 하늘이 재이를 내리어 임금을 경계하고 두렵게 함으로써 고치고 깨달아서 그 정치를 바로잡도록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임금에게 대하는 것이 마치 어진 아비가 자식에게 대하는 것과 같아서 깊이 사랑하여 그 어지러움을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상서가 많으면 그 나라는 번창하고, 재이가 잦으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하(夏)나라, 은(殷)나라가 번성할 적에 가뭄과 홍수(洪水)의 재앙이 있었고, 태무(太武)무정(武丁)과 같은 어진 임금에게도 치구(雉雊)028)상곡(桑穀)029) 의 재이(災異)가 있었지만, 정치에 해로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일컬었으니 재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임금이 재제(裁制)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지금 삼양(三陽)의 달030) 에 천도(天道)가 마땅히 순조로와야 되는데, 도리어 진동을 하니, 이는 하늘이 이 일로써 전하를 경계하고자 한 것입니다.

신 등이 생각하옵건대, 전하의 구도(求道)하는 마음이 지난날과 같지 못해서 조정에는 실정이 많고 나라에는 사치의 풍속이 있으며 없애야 할 폐단이 없어지지 않고 편안해야 할 백성이 편안하지 못하니, 이야말로 전하가 근심하고 두려워해야 할 시기입니다. 전하는 하늘을 공경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고, 좌우의 여러 신하들에게도 또한 전하의 하늘 공경하는 마음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삼도록 하옵소서. 대저, 백성은 하늘의 낳은 백성이니 한 사람이라도 안정을 얻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며, 벼슬은 하늘이 맡긴 벼슬이니 소인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 처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재산은 하늘의 재산이니 그것을 사용할 적에는 사치하기보다는 검소해야 하며, 형벌은 하늘이 치죄하는 것이니 그것을 사용할 적에는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오히려 실형(失刑)하는 것이 낫습니다. 어두운 방안이나 깊숙한 곳에서도 항상 하늘이 밝게 임한 듯하시고, 한 마디의 말과 한 번의 행동도 항상 하늘이 지시하는 것같이 하시면 풍류와 여색(女色)이 전하의 성(誠)을 소모할 수 없고, 간사와 아첨이 전하의 경(敬)을 어지럽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전하가 곧 하늘[在人之天卽在天之天]이며 전하의 소위(所爲)는 곧 하늘의 소위입니다.

신 등이 듣자옵건대, 나라 다스리는 일에는 학문보다 큰 것이 없고, 학문엔 자신의 힘으로 닦는 것보다 간절한 것이 없다 합니다. 임금이 배우느냐 배우지 않느냐에 천하의 치란(治亂)이 매인 것입니다. 진실로 학문을 연구한 공이 없이 마음을 바로잡을 수 없고 만물의 정당함을 저울질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사(邪)와 정(正)의 분별을 살피며 다스리는 도를 통달할 수 있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대왕의 학문은 반드시 먼저 격물치지(格物致知)031) 하며, 사물의 변화를 규명하고 성의정심(誠意正心)032) 하여 천하의 사물에 대처하시면, 마치 물건이 저울에 얹히매 경중(輕重)이 저절로 분별되듯, 거울이 형상을 비추매 곱고 더러움이 저절로 나누어지듯 하여 사람의 사정(邪正)과 일의 선악이 도무지 도망할 수 없습니다. 요제(堯帝)·순제(舜帝)·탕왕(湯王)·문왕(文王)은 옛 성인(聖人)이지마는 스스로 성인이라 생각지 않고 학문에 힘써서, 조심하고 두러워함으로써 정일(精一)한 학문을 얻었고, 이른 새벽부터 그 덕을 크게 밝힘으로써 날로 새로운 공부를 얻었으며, 저녁에도 쉬지 않음으로써 빛나는 학문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화락[雍熙]하고 태평[泰和]한 정치를 이룬 까닭입니다. 세종(世宗)성종(成宗)은 우리 나라에서 전에 볼 수 없던 성군인데, 뜻을 성실히 하고 학문을 힘써서 경전(經典)을 연구하여 하루 동안 세 차례나 경연에 나아갔고, 또한 야대(夜對)·상참·조계(朝啓)·윤대(輪對) 등의 일을 조금도 폐한 적이 없었으니,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전하는 총명하고 지혜로와 참으로 크게 하옴직하신 임금입니다. 그러나, 학문의 공이 아직 옛날 성인(聖人)에게 떨어지고, 힘써 행하는 실상은 세종·성종에 미치지 못하시면서, 근년에는 경연(經筵)을 정지하는 일이 많아서 혹 시작하기도 하고 혹 그만두기도 했으며, 상참과 조계(朝啓)를 자주 그만두고 시행하지 않으므로 여러 관사(官司)가 아뢴 일이 또한 지체됨이 많았습니다. 신 등은 망령되게, 전하가 뜻을 공손히 해서 학문을 애씀이 차츰 처음만 같지 못하다고 여겨집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부지런히 경연에 나아가 학문에 마음을 두시되, 육경(六經)부터 힘써 배워 그 근본을 세우시고, 다음으로 여러 사적(史籍)을 살펴 그 치란(治亂)을 상고하기를 바랍니다. 박잡(駁雜)한 글과 겉치레한 문장은 보지 마시고 어진 선비와 대부(大夫)를 날마다 가까이하여 성정(性情)을 함양해서 치도(治道)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 신 등의 소망입니다.

신 등이 가만히 듣자옵건대, 임금의 정사는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고, 신하의 직책은 간언을 드리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신하는 마땅히 간담을 털어 놓아 조용히 극간하여 짤막한 말 가운데서도 임금의 뜻을 깨닫게 해야 하며, 임금은 마땅히 말과 얼굴빛을 너그러이하여 허심탄회하게 간언을 받아들여서 허물 없는 처지에 몸을 두시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임금은 간언을 거절한다[拒諫]는 이름을 얻어 마침내 그름[非]을 조성하고, 신하는 입을 다문다[括囊]033) 는 이름을 얻어 마침내 불충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대저, 언로(言路)가 세상에 있는 것은 혈기가 사람 몸에 있는 것과 같아서 혈기가 잠깐이라도 통하지 않으면 온몸이 병을 얻어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며, 언로가 하루라도 통하지 않으면 사방이 그 해를 입어서 군주가 편안하지 못할 것이니, 두렵지 않겠습니까. 급암(汲黯)034)무제(武帝)를 가리켜 욕심이 많다고 했는데도 벌을 받지 않았으며, 위징(魏徵)035) 은 조정에서 태종(太宗)을 욕했는데도 태종이 성내지 않았으니, 제왕의 넓은 도량이 진실로 마땅히 이와 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조정이 곧은 신하를 두면 적국(敵國)이 두려워하고, 선비가 다른 의논이 없으면 식자(識者)가 걱정하는 법입니다. 바른 말과 바른 의논을 숭상함은 진실로 군주의 약석(藥石)036) 입니다. 혹 약석인 〈곧은 말·바른 의논〉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정을 쓴다면 조정의 정치는 장차 피폐하고 해이해져서, 백성은 아래에서 원망해도 임금은 듣지 못하고 일이 아래에서 밀려 있어도 임금은 알지 못할 터이니, 어찌 작은 폐단이겠습니까. 세종(世宗)께서는 재위하신 지 30년이나 되었는데도 바른 말 구하기를 목마른 것같이 하였고, 선비의 풍습을 격려해서 후손을 위해 남긴 계책이 매우 원대하였습니다. 일찍이 말씀하기를, ‘내가 날마다 정사를 보살펴 밀리거나 막힘이 없도록 할 것이니, 이 뒤로는 일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승지[代言]가 모두 조계(朝啓) 때에 직접 말하라.’고 하셨으니, 그야말로 물정을 환히 아심이요, 깊이 후환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성종(成宗)께서는 언로를 넓게 열어서 간언을 받아들임에 어려움이 없었으며, 말이 비록 중용을 잃었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했으므로 사람마다 충성스러운 마음을 품고 군색한 마음이 없어 모두 강직한 신하가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전하께서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근일에 언관들이 혹은 언사한 것으로써 옥에 갇히기도 하고, 혹은 공사(公事)로 인하여 파직되기도 하였으니, 신 등의 망령된 생각엔 전하의 간언을 따르는 마음이 처음보다 못하다고 여겨집니다. 어찌 성덕(聖德)의 누(累)가 아니겠습니까. 《서경》에, ‘네 덕이 아니거든 커지지 말게 할지어다. 그 종사(宗祀)를 실추(失墜)시킬 것이다.[爾惟不德罔大墜厥宗]’037) 하였으니,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오로지 큰 덕을 힘쓰시고, 조그만 흠이라 하여 소홀히 하지 말기를 바라옵니다.

신 등은 가만히 듣자옵건대, 재물은 백성을 살리는 근본이요 국가의 먼저해야 할 일이라 합니다. 《역경(易經)》에는 절용하라는 경계가 있고, 《주례(周禮)》에는 구식(九式)038) 의 법을 설정했으며, 《홍범(洪範)》의 팔정(八政)에는, 음식물[食]과 재화(財貨)가 제일 먼저 있습니다. 《대학(大學)》에는 오로지 명덕(明德)을 힘쓰면서도 재산을 늘리는 것[生財]을 천하의 큰 도리로 삼았습니다. 유자(有子)039) 는 말하기를 ‘백성이 넉넉하다면 임금은 누구와 더불어 넉넉하지 못하겠으며, 백성이 넉넉하지 못하다면 임금은 누구와 더불어 넉넉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대개 용도(用度)를 절약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용(財用)을 손실하게 되고, 재용을 손실하면 반드시 백성을 해치게 되는 데 이르게 되니 용도를 절약하지 않고서 능히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임금은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요, 백성은 곡식과 쌀과 명주와 베를 바쳐 임금은 섬기는 사람들이며, 임금이 세금을 징수하는 데는 법도가 있고 백성이 세금을 바치는 데는 한도가 있습니다. 궁중의 수용(需用)과 유사(有司)의 녹봉과 아래로는 백공(百工) 잡례(雜隸)의 미천한 것에 이르기까지 늠료(廩料)에서 받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 용도(用度)는 범위가 넓습니다. 군주가 깊은 생각과 먼 장래의 염려가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여 한 번 주는 것은 재용(財用)에 탈 될 것 없고 한 번 쓰는 것은 백성에게 해로움이 없지마는, 그대로 계속해서 마침내 격례(格例)가 되면 창고가 설령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장차 쉴 새 없이 소모되어 백성들에게서 조세(租稅)를 더 징수할 수밖에 없으며, 백성에게 더 징수하게 되면 백성의 생활이 날로 궁핍해지며, 백성의 생활이 날로 궁핍해지면 나라는 나라의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漢)나라 문제(文帝)당(唐)나라 태종(太宗)같은 이는 모두 용도를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해서 백성의 생활을 윤택하게 했기 때문에 서한(西漢)의 잘된 교화(敎化)에 변질된 쌀을 먹지 않았으며, 정관(貞觀)040) 의 좋은 정치에 쌀 한 말 대금이 3전(錢)을 했으니, 이것은 모두 공손하고 검소한 데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세종성종은 인덕(仁德)이 백성에게 스며든 것이 깊어서 백성에게서 받는 것이 법도가 있었고 소비에 쓸데없이 쓰지 않았으며 재정을 절약하고 물자를 아껴서 남용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모두 쉴 수 있었고 태평을 이룩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라가 편안하니, 전하는 마땅히 이를 본받아야 할 것인데도 근년 이래로 점점 처음보다 못합니다. 내수사의 세력이 매우 중대해져서 민가의 완악하고 건장한 종들이 내수사에 투속(投屬)하는 자가 날로 늘고, 호조(戶曹)에서 쓰는 물건이 내수사로 실어 들어가는 것이 끊어지지 않으며, 사여(賜與)에 소용되는 것이 옛날에 비해 훨씬 많고 사람을 대접하는 비용이 전일보다 배나 됩니다. 삼인검(三寅劍) 같은 것은 이 무슨 물건입니까. 재앙을 물리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데, 조관들이 그 역사(役事)를 감독하여 맡고, 일을 하는 군사가 무려 수백 명이나 되고, 대장간을 궁중에 설시해서 밤낮으로 쇠를 녹여 두드리니, 이것은 모두 나라에 이익이 없고 백성에게 해만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이 폐단을 깊이 알아내어서 급하지 않은 일은 멈추게 하고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기를 바라옵니다.

신 등이 가만히 듣자옵건대,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 두 개의 권력이 있다 하니, 문(文)과 무(武)를 말하는 것입니다. 으로써 태평을 이룩하고 무로써 화란(禍亂)을 평정하게 되니, 이것이 서로 번갈아 쓰인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덕(文德)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무사(武事)를 갖추고, 무사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문덕을 닦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내정(內政)이 다스려진 뒤에라야 외적(外敵)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본디 선후가 있는 법입니다. 옛날의 제왕은 다 선비를 높이고 도학(道學)을 소중히 여겼으며, 문치(文治)를 숭상하고 교화(敎化)를 하여, 학교에 나아가서 나이 많은 사람을 공경하고 경서를 펴들고 어려운 것을 물었으며, 삼로(三老)를 봉양하고 오경(五更)041) 을 섬겼습니다. 한(漢)나라 문제(文帝)당(唐)나라 태종(太宗)은 모두 이 일을 거행했으니, 진실로 제왕의 덕화(德化)는 유학에 기인(基因)되고, 정치의 근본은 문교(文敎)에 있는 까닭입니다. 세종(世宗)께서는 성균관과 사학(四學)을 소중히 여겨 유생을 기르고 사유(師儒)를 높였으니, 그 권장하는 방법이 지극했습니다. 세조(世祖)께서는 늘 문신과 선비를 불러와서 육경(六經)을 강론하고, 때로는 이들을 뽑아 올려 썼으니, 한때 함장(凾丈)의 벼슬에 있던 사람이 높은 지위에 많이 승진되었습니다. 성종(成宗)께서는 더욱 뜻을 문교(文敎)에 두시고, 자주 성균관에 나아가 공자(孔子)의 위패에 알현하고 혹 경서를 펴 들고 어려운 것을 물었으며, 때로는 선비를 뽑을 적에 대사례(大射禮)042) 를 행하기도 하고, 혹은 친히 유생을 대접하기도 하고, 혹은 학자(學者)를 보조하는 포백과 곡식을 내리기도 하였으니, 이로써 사방 선비들이 떼 지어 서울에 모여 성균관의 을 에워 싸고 보고 듣는 사람이 만(萬)을 헤아렸습니다. 문교(文敎)가 크개 행해짐이 먼 옛날에도 견줄 데가 없었으니, 이는 전하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전하는 즉위하신 지가 지금에 8년이나 되었는데, 한 번 학궁(學宮)043) 에 납시어 다만 작헌(酌獻)의 예를 행했을 뿐, 문방(文坊)에서 행해야 할 일은 아직 하지 않으시면서 무신의 기예(技藝)에는 마음을 두사 혹은 궁중에서 혹은 궁 밖에서 불시(不時)로 친시(親試)를 하시며, 또 문사(文士)를 뽑아서 한 달에 한 번씩 활쏘기를 시험하시니, 무사(武事)에 있어서는 부지런하시다 하겠습니다. 비록 문명(文名)이 있는 사람도 본업인 학문에는 힘쓰지 않고 활쏘기를 먼저 배우며, 학관(學官)과 사유(師儒)는 오활(迂闊)하다고 생각하여 만약 이 직책에 주의(注擬)를 받으면 온갖 계책으로 모면하기를 꾀하니, 어찌 조정이 크게 한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임금은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을 삼가지 않을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치우침이 있으면 신하들은 다투어 거기로 향하는 것입니다. 외적(外敵)을 물리칠 준비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나, 내치(內治)의 근본에 비하면 어느 것이 무겁고 어느 것이 가볍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는 세종·세조·성종이 성인의 도를 숭상한 것을 본받아 더욱 문명의 교화를 밝히기를 바라옵니다.

신 등은 가만히 듣자옵건대, 군주는 조종의 창업 수통(創業垂統)한 일을 주재하여 천지와 귀신과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것이므로, 임금이 받들고 높이는 예(禮)는 제사보다 중한 것이 없다 합니다. 옛날 어진 임금들은 사직(社稷) 종묘에 공경하고 엄숙히 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봄 가을로 게을리하지 않고 향사(享祀)를 어기지 않은 것은 진실로 나라의 큰 일은 제사에 있으며, 효도는 조상을 받드는 일보다 더 큼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종(成宗)께서 성(誠)과 경(敬)을 독실히 지녀 시종(始終)이 한결같았고 지극한 효심이 생전과 사후가 다름이 없사와 제사 때에는 여러 번 몸소 행했으니, 이는 모두 전하께서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지가 8년이나 되었는데 종묘 사직 제사에 한 번도 친히 행하지 않으셨고, 원묘(原廟)와 여러 왕릉에 성묘하는 일도 또한 소홀히 했습니다. 정리(情理)로써 말하면 선릉(宣陵)044)전알(展謁)045) 하는 일은 더욱 자주 하지 않을 수 없거늘, 지금 오랫동안 게을리 하시니, 신 등은 전하의 조선을 받드는 정성이 지극하지 않으신가 두렵습니다. 성덕에 손상이 되는 것이 이보다 큰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선농(先農)046) 은 의식(衣食)의 근원이요, 공자(孔子)는 백대(百代) 임금의 스승이므로 역대의 현명한 군주들은 이들을 높이 받들지 않은 이가 없었고, 조종(祖宗)께서는 몸소 행하여 폐하지 않으셨거늘, 전하는 다만 한 번 알성(謁聖)047) 하셨을 뿐, 선농(先農)에 대한 예는 친히 행하지 않으시니, 선사(先師)를 존경하는 뜻에 심히 위배됩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밝게 제사 일을 닦으시고 정성껏 제향하시어 효도와 공경의 실상을 힘써 다하기를 바라옵니다.

신 등은 가만히 듣자옵건대,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하면 뜻이 거칠어지고, 뜻이 거칠어지면 정사에 게을러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왕(武王)이 서려(西旅)에서 바친 개[獒]를 받으매, 소공(召公)상지지계(喪志之戒)048) 가 있었고,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매와 개를 바치도록 조서(詔書)를 내리매 위징(魏徵)십점의 상소[十漸之疏]049) 를 올렸습니다. 주(周)나라 무왕(武王)당(唐)나라 태종(太宗)은 어진 임금이므로 그 뜻이 거칠어지는 지경엔 이르지 않을 것이 확실한데도 소공(召公)위징(魏徵)의 경계가 그러하였으니, 이 어찌 ‘작은 행실을 삼가지 않으면 큰 덕이 마침내 누(累)에 이른다.’는 때문이 아닙니까. 성종(成宗)이 응방(鷹坊)을 설치했다가 대간의 말 때문에 파해 버렸고, 새끼매를 기르다가 대간의 말 때문에 놓아 주신 뒤 일찍이 뜻을 이런 일에 두지 않으시고, 뜻을 둔 것은 다만 시서(詩書)와 문예(文藝)뿐이었습니다. 가만히 듣자옵건대, 전하는 특히 궁궐 안에 응방을 만들어 매와 개를 많이 모아서, 선상노(選上奴)050) 를 정해서 지키게 하고, 태창(太倉)의 쌀로써 사육(飼育)하여 매들이 대궐 안 동산에 떼 지어 날고, 사냥개들이 궁궐 뜰에 무리를 지어 짖는다 하는데, 남이 보기에도 또한 아름답지 못할 뿐더러 이것들을 길러 장차 어디에 쓰시려는 것입니까. 만약 양궁(兩宮)의 불시(不時)051) 봉양을 위한 것이라 할진대, 한 나라의 힘으로써 봉양함이 지극하지 못함이 아닐 터인데 어찌 이런 물건을 길러야만 그 찬(饌)에 이바지하겠습니까. 만일 애완(愛玩) 거리라 할진대, 뜻이 거칠어지는 조짐이 장차 여기 있는 것이며, 이목(耳目)이 하고 싶은대로 하면 사냥에 달리고 싶은 마음이 부쩍 일어날 것이니, 이와 같은 물건은 마땅히 멀리하고, 가까운 곳에 두고 기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금수를 기르지 말고 모든 법도에 사육을 물리치고 마음을 바르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신 등이 의논한 여섯 가지 일은 모두 예사로운 말, 진부한 이야기로 전하가 싫도록 듣고 보신 것들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대사가 이보다 긴절(緊切)한 것이 없으며, 전하께서 체념(體念)하실 일 또한 여기에 벗어남이 없기에, 신 등이 아뢰는 바입니다. 전하께서 인구 책궁(引咎責躬)052) 하심으로써 뜻을 삼으시매, 신 등 또한 진언 극간(盡言極諫)053) 으로써 마음을 삼으며, 전하께서 실봉(實封)으로써 하유하시매, 신 등 또한 실봉으로써 아뢰오니,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는 재이가 적다고 해서 소홀히 하지 말고, 말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업신여기지 마시고, 하늘의 경계를 지극히 조심하여 그 정사(政事)를 닦으소서. 너그러이 직언(直言)을 받아들이고 언로를 넓게 열면, 한갓 신 등의 다행만이 아니옵고 또한 온 나라 신민들의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4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439 면
  • 【분류】
    군사(軍事) / 사상-유학(儒學)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재정-국용(國用) / 재정-상공(上供) / 재정-진상(進上)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027]
    천구성(天狗星) : 유성 또는 혜성을 가리킴.
  • [註 028]
    치구(雉雊) : 은(殷)나라 무정(武丁)이 자기 부친의 사당에 제사를 풍후(豊厚)하게 지냈더니, 꿩이 주방에 날아 들어와서 울었다는 이상한 일.
  • [註 029]
    상곡(桑穀) : 은(殷)나라 태무(太武) 때에 뽕나무와 닥나무가 함께 조정의 뜰 가운데 나서 하루 동안에 한아름이나 컸다는 이상한 일.
  • [註 030]
    삼양(三陽)의 달 : (정월).
  • [註 031]
    격물치지(格物致知) :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넓힘.
  • [註 032]
    성의정심(誠意正心) : 뜻을 성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함.
  • [註 033]
    입을 다문다[括囊] : 괄낭은 주머니의 주둥이를 묶는다는 말인데,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는 비유.
  • [註 034]
    급암(汲黯) : 한(漢)의 직신.
  • [註 035]
    위징(魏徵) : 당 태종 때 명재상.
  • [註 036]
    약석(藥石) : 약과 침.
  • [註 037]
    ‘네 덕이 아니거든 커지지 말게 할지어다. 그 종사(宗祀)를 실추(失墜)시킬 것이다.[爾惟不德罔大墜厥宗]’ : 《서경》의 이훈(伊訓)에 나옴.
  • [註 038]
    구식(九式) : 아홉 가지 용재(用財)의 절도(節度). 곧 제사(祭祀)·빈객(賓客)·상황(喪荒)·수복(羞服)·공사(工事)·폐백(幣帛)·추말(芻秣)·비반(匪頒)·호용(好用)임.
  • [註 039]
    유자(有子) : 공자의 제자.
  • [註 040]
    정관(貞觀) : 당 태종 재위 때의 연호.
  • [註 041]
    오경(五更) : 고대(古代)에 천자(天子)가 부형(父兄)의 예(禮)로써 우대한 노인으로서, 한 마을의 교화를 맡았음. 삼로(三老)와 오경(五更)이 각각 한 사람임.
  • [註 042]
    대사례(大射禮) : 임금이 성균관(成均館)에 거둥하여 선성(先聖)에게 제향(祭享)하고 나서 활을 쏘는 예(禮).
  • [註 043]
    학궁(學宮) : 곧 성균관을 말함.
  • [註 044]
    선릉(宣陵) : 성종 왕비 정헌 왕후의 능.
  • [註 045]
    전알(展謁) : 성묘.
  • [註 046]
    선농(先農) :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친 신(神).
  • [註 047]
    알성(謁聖) : 공자의 신위에 배알함.
  • [註 048]
    상지지계(喪志之戒) : 뜻을 상한 다는 경계.
  • [註 049]
    십점의 상소[十漸之疏] : 점차로 폐단이 많이 나타나는 열 가지 일을 말한 것.
  • [註 050]
    선상노(選上奴) : 외방에서 뽑아 올린 노비.
  • [註 051]
    불시(不時) : 정한 때가 아님.
  • [註 052]
    인구 책궁(引咎責躬) : 허물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와 자신을 책망함.
  • [註 053]
    진언 극간(盡言極諫) : 할 말을 다하여 간함.

○大司憲成俔等上疏曰:

近奉傳旨, 今正月十八日有天變, 下敎求言, 令中外實封奏聞。 謹按, 《文獻通考》云: "天狗墜地, 其聲如雷, 野雞皆鳴。 此天道不寧之所致也。" 夫和氣致祥, 乖氣致異。 天道不僭, 賁若草木, 曾無毫髮之差。 人君奉天者也。 奉天而不能若, 則天出災異, 以警懼之, 冀其改悟, 改紀其政。 是天之於君, 猶慈父之於子, 愛之深而欲止其亂也。 是故, 祥多者其國昌, 異衆者其國亡。 以盛時, 而有旱乾、水溢之災; 以太戊武丁之賢, 而有雉雊、桑穀之妖, 無害於治, 而反稱其美, 其轉禍爲福, 專在人主之樞機也。 今三陽之月, 天道宜順, 而反震動焉, 是天欲以此警殿下也。 臣等以爲, 殿下求道之心, 不如曩昔, 朝多闕政, 國有侈俗, 弊之可袪者未袪, 民之可安者未安, 此正殿下憂勤惕厲之秋也。 殿下能以敬天爲心, 而使左右群臣, 亦各以殿下敬天之心爲心也。 夫民爲天民, 不可使一夫之不獲, 而官爲天官, 不可使小人處之也。 財天産也, 其用則與其奢寧儉; 刑天討也, 其用則與其殺不辜, 寧失不經。 暗室、屋漏常若天之照臨, 一言一動, 常若天之所發, 聲色不得耗其誠, 奸侫不得亂其敬。 若然則在人之天, 卽在天之天, 而殿下之所爲, 卽天之所爲也。 臣等竊聞, 爲治莫大於學, 學莫切於自修。 人主之學不學, 係天下之治亂。 苟無講學之功, 則不能得此心之正, 權萬物之宜, 況能審邪正之辨, 達爲治之道哉? 是故, 帝王之學, 必先格物致知, 而極事物之變; 誠意正心, 而應天下之務, 如物在衡, 而輕重自別; 如鑑照形, 而姸醜自分, 人之邪正, 事之善惡, 擧莫逃矣。 上古聖人也, 然不自爲聖, 而强勉學問, 兢兢業業, 而有精一之學昧爽丕顯, 而有日新之功, 日昃不暇, 而有緝熙之學, 此所以成雍熙、泰和之治也。 世宗成宗東方未有之聖也。 篤志力學, 硏窮經典, 一日之內, 三御經筵, 又有夜對、常參、朝啓、輪對等事, 無有少廢, 豈偶然哉? 殿下聰明睿知, 眞大有爲之君也。 然學問之功, 猶遜於往聖; 力行之實, 未及於二宗, 而近年以來, 多停經筵, 或作或輟, 常參、朝啓屢廢不擧, 諸司所啓之事, 亦多遲滯。 臣等妄謂, 殿下遜志敏學, 漸不如初也。 伏願殿下, 勤御經筵, 留心於學, 先務六經, 以立其根本; 次質諸史, 以考其治亂。 (駮)〔駁〕 雜之書、雕篆之文, 不接於目, 賢士大夫日近於前, 涵養性情, 有裨治道, 此臣等之所望也。 臣等竊聞: "人君之政, 莫急於納諫; 人臣之職, 莫先於進諫。" 是故, 人臣當披寫肝膽, 從容極諫, 悟主意於片言之間; 君當假借辭色, 虛懷聽納, 置躬於無過之地。 不然, 君獲拒諫之名, 而終至於遂非; 臣得括囊之名, 而終陷於不忠。 夫言路之在天下, 猶血氣之在人身, 血氣一息不通, 則百體受病, 而天君不能安; 言路一日不通, 則四方受害, 而人主不能安, 可不畏哉? 汲黯武帝多慾, 而罪不及焉; 魏徵廷辱太宗, 而怒不加焉, 帝王弘量, 固當如是。 朝有直臣, 敵國畏之; 士無異論, 識者憂之。 上直言、讜論, 固人主之藥石也。 苟或不聞藥石之言, 而任己自私, 則朝廷之治, 將至廢弛, 民怨於下, 而上不聞; 事滯於下, 而上不知, 夫豈小弊哉? 世宗在位三十餘年, 求言如渴, 激勵士習, 貽謀甚遠。 嘗曰: "予逐日視事, 俾無留滯。 今後事無大小, 代言皆於朝啓親達" 其燭知物情, 慮患深遠矣。 成宗廣開言路, 聽納無難, 言雖失中, 類當容貰。 由是, 人懷忠懇, 莫有苟且之志, 皆成骨鯁之臣, 此皆殿下所當法也。 近日言官或以言事而繫獄, 或因公事而罷職, 臣等妄謂, 殿下從諫之心, 漸不如初也, 豈非聖德之所累乎? 《書》曰: "爾惟不德, 罔(小)〔大〕 墜厥宗。" 伏願殿下, 專務大德, 勿以小疵而忽之。 臣等竊聞, 財者生民之本, 而國家之所先務也。 《大易》著節用之戒, 《周禮》設九式之法, 《洪範》八政, 食貨爲先, 《大學》專務明德, 而以生財爲天下之大道。 有子曰: "百姓足, 君誰與不足; 百姓不足, 君誰與足?" 蓋用之不節, 則必至於傷財, 傷財必至於害民, 未有不節用, 而能愛人者也。 君者莅民者也, 民者出穀米、絲麻, 以事其上者也。 上之所徵有法, 下之所納有限, 宮闕之供、百官有司之俸, 下至百工、雜隷之微, 莫不受其餼廩, 其用廣矣。 人主不深思遠慮, 任己所爲, 一賜與無傷也, 一費用無害也, 因仍不已, 遂成格例, 則倉廩雖積, 將有尾閭之洩, 不得不加斂於民。 加斂於民, 則民生日瘠; 民生日瘠, 則國非其國矣。 如文帝太宗, 皆節用、愛人, 以阜民生, 故西漢之敎, 紅腐不食; 貞觀之治, 斗米三錢, 此皆恭儉之所致也。 世宗成宗仁德之入人者深, 取民有制, 而費不虛枉; 節財嗇物, 而不至於濫。 故人皆休息, 馴致太平, 至于今邦域奠枕, 此殿下之所當法也, 而近年以來, 漸不如初, 內需司之勢甚重, 人之頑奴、健僕投屬於彼者日衆; 戶曹經費之物, 轉輸於彼者不絶。 賜與所用, 比舊猥多; 饋人之費, 倍於前日。 至如三寅劍者, 是何物也? 不過爲禳災之具, 朝官監掌其役, 而所役軍人, 無慮數百。 設爐冶於宮掖, 日夜鼓鑄, 此皆無益於國, 而有害於人。 伏願殿下, 深知此弊, 停不急之務, 省無用之費。 臣等竊聞, 治天下國家有二柄, 文武之謂也。 文以飾治平, 武以靖禍亂, 交相爲用久矣。 故有文德者, 必備武事; 有武事者, 必修文德。 然必內治修然後, 得以外攘, 則二者固自有先後矣。 古之帝王, 咸以崇儒、重道, 右文、興化爲先務, 臨雍拜老, 橫經問(亂)〔難〕 , 養三老、事五更, 漢帝唐宗皆擧行焉。 誠以王化基於儒學, 而治本在於文敎故也。 世宗重成均、四學, 貯養儒生, 崇奬師儒, 其勸礪之方至矣。 世祖每引文臣及儒士, 講論六經, 有時拔擢, 一時函丈之官, 多陟崇班。 成宗尤致意於文敎, 屢幸泮宮, 親謁素王, 或橫經問難, 有時取士, 或行大射禮, 或親饋儒生, 或賜贍學布穀。 由是, 四方儒士坌集京師, 圜橋門而觀聽者, 可以萬計, 文敎大行, 夐古無比, 此殿下所當法也。 殿下卽位八年于玆, 而一幸學宮, 只行酌獻, 文坊可行之事, 皆未遑焉, 而留心於武臣之藝, 或於闕內、或於門外, 不時親試, 又抄文士, 月一試射, 其於武事, 可謂勤矣。 雖有文名者, 不務所業, 先治弓矢, 學官師儒視爲迂闊, 若注此職, 百計規免, 豈非朝廷之大恨也? 人主好尙, 不可不謹, 小有所偏, 爭相趨向。 外攘之具, 誠不可不慮, 其視內治之本, 孰爲輕重? 伏願殿下, 遵三之崇重斯道, 益闡文明之化。 臣等竊聞, 人君主祖宗創垂之業, 爲天地、神人之主, 其所以奉崇之禮, 莫重於祀事。 古昔聖賢之君, 有社稷、宗廟, 罔不祗肅者, 有春秋匪懈享祀不忒者, 誠以國之大事在於祀, 而孝莫大於奉先故也。 成宗篤守誠敬, 終始如一, 蒸蒸孝思, 罔間存亡, 其於祭祀, 屢皆躬莅, 此皆殿下所當法也。 殿下卽位八年于玆, 而廟社之祭, 一不親行, 原廟、諸陵展敬亦疎。 以情而言, 宣陵展謁, 尤不可不數, 而今猶久曠。 臣等恐殿下奉先之誠, 有所未至, 聖德虧損, 孰大於是? 且先農衣食之源, 宣聖百王之師, 歷代明王莫不尊奉。 祖宗躬行不(贊)〔替〕 , 而殿下只一謁聖, 先農之禮未及親行, 甚非所以尊敬先師之意也。 伏願殿下, 明修祀事, 精意以享, 務盡孝敬之實。 臣等竊聞, 玩物則志荒, 志荒則政怠。 是故, 武王旅獒之獻, 而召公有喪志之戒; 文皇詔鷹犬之貢, 而魏徵進十漸之疏。 周武唐宗聖賢之君, 必不至於志荒, 而二公之誥戒若是, 豈不以細行不謹, 則大德終至於累乎? 成宗曾設鷹坊, 以臺諫之言而罷之; 養畜鷹子, 以臺諫之言而放之, 曾不留意於此, 而所留意者, 只詩書文藝而已。 伏聞, 殿下特於闕內, 新搆鷹坊, 多聚鷹犬, 定選上奴以守之, 輸太倉米以飼之, 鷹鸇連鞲禁苑, 韓盧群嘷闕庭, 其於瞻視, 亦不爲美, 未審畜此將何用之, 若爲兩宮不時之奉, 則以一國養非不至, 何待畜此物然後, 供厥膳哉? 若爲戲玩之具, 則志荒之漸, 將在於玆, 耳目爲其所役, 則馳騁田獵之念, 油然而生。 如此之物, 固當遠之, 不宜留養於近密之地也。 伏願殿下, 勿畜禽獸, 百度惟貞。 臣等所論六事, 皆常言陳說, 殿下所飫聞、厭見者也。 然國家大事, 莫切於此, 而殿下所當體念者, 亦無逾於此者, 此臣等必以此而啓之也。 殿下以引咎、責躬爲意, 臣等亦以盡言、極諫爲心, 殿下以實封下諭, 臣等亦以實封仰陳。 伏願殿下, 勿以災小而忽之, 勿以言微而侮之, 克謹天戒, 以修厥政, 優受直言, 廣開言路, 則非徒臣等之幸, 抑亦一國臣民之幸。


  • 【태백산사고본】 11책 4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439 면
  • 【분류】
    군사(軍事) / 사상-유학(儒學)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재정-국용(國用) / 재정-상공(上供) / 재정-진상(進上)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