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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39권, 연산 6년 11월 30일 경진 2번째기사 1500년 명 홍치(弘治) 13년

헌납 정환이 문체의 부화함을 숭상하는 폐단을 아뢰다

경연(經筵)에 납시었다. 헌납(獻納) 정환(鄭渙)이 아뢰기를,

"오늘날 선비들이 부(賦)를 짓게 되면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논(論)을 짓게 되면 또한 떳떳하지 못한 의논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옛날 진(晉)나라 때에는 문체(文體)를 청허(淸虛)한 것을 숭상하다가 마침내 방탕(放蕩)한 기풍을 조성했고, 수(隋)나라 문제(文帝) 때에는 문체가 경박하므로 이악(李諤)이 상소하여 개혁할 것을 청하였으며, 당(唐)나라 태종 때에는 장창령(張昌齡)왕공근(王公瑾)의 문사(文詞)가 제일이었는데, 왕사단(王師旦)이 공거(貢擧)를 주관하면서 문체가 경박하다 하여 물리쳤으며, 송(宋)나라 때의 선비들은 서곤체(西崐體)241) 를 본받아 문사(文詞)가 어렵고 괴벽하였는데, 구양수(歐陽修)가 공거(貢擧)를 주관하면서 극력 배척하였으므로 송(宋)나라 때의 문장이 전실(典實)해졌던 것인데, 오늘날 문체가 또한 부화(浮華)한 것을 숭상하고 있으니 개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영사(領事) 성준(成俊)은 아뢰기를,

"문체가 부허(浮虛)하다는 것은 과연 대간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잡문(雜文)의 체제는 신이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부(賦)의 체재는 문답식(問答式)의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아 짓게 되므로 전실(典實)한 점이 없습니다. 성균관(成均館)의 관원들이 거개 모두 경학(經學)에는 능하지마는 제술(製述)을 품평(品評)하는 사람이 적으니, 문체를 변경하기가 어려운가 합니다."

하고, 시강관(侍講官) 김감(金勘)은 아뢰기를,

"지금의 문체가 과연 부화(浮華)합니다. 문장을 잘하는 사람이 객사(客辭)를 허구(虛構)하여 우등을 하게 되므로, 문장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또한 허사(虛辭)를 늘어놓아 남의 흉내를 내게 되어 난잡하고 서투른 솜씨가 점차로 부화(浮華)하게 되어가니, 개혁할 기틀이 문형(文衡)을 관장(管掌)한 사람의 책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고, 집의(執義) 유헌(柳軒)은 아뢰기를,

"성균관의 관원을 경학(經學)하는 선비만을 임명할 것이 아니라 문사(文詞)를 제술(製述)하는 사람으로 번갈아 임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동지사(同知事) 성현(成俔)은 아뢰기를,

"지금의 문신들은 또한 문장에도 힘쓰지 않으며, 그 월과(月課) 짓는 것도 또한 마음을 두지 않으니, 이것은 매우 옳지 못합니다."

하였는데, 왕이 이르기를,

"단속하기 여하에 매여 있는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3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436 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임면(任免)

  • [註 241]
    서곤체(西崐體) : 당(唐)나라 이상은(李商隱)·온정균(溫庭筠)의 시체(詩體).

○御經筵。 獻納鄭渙曰: "今之儒者, 作賦則設客辭, 作論則亦爲不經之議。 昔時, 辭尙淸虛, 遂成放蕩。 文帝時, 文體輕薄, 李諤上疏請革之。 太宗時, 張昌齡王公瑾詞華第一, 王師旦知貢擧, 以文體輕薄黜之。 朝儒士, 效西崐體, 文詞險僻, (歐陽脩)〔歐陽修〕 知貢擧, 極力排之, 朝文章典實。 今之文體, 亦尙浮華, 不可不變易也。" 領事成俊曰: "文體浮虛, 果如臺諫所言。 雜文體則臣未見也, 賦體則設問答客辭以製之, 而無有典實。 成均館員類皆能於經學, 而評品製述者少, 恐變易文體之難也。" 侍講官金勘曰: "今之文體果浮華, 能文者鋪張客辭, 以取優等; 不能文者亦設虛辭效嚬, 而荒蕪拙作, 漸成浮華, 變易之機, 在典文衡者之責耳。" 執義柳軒曰: "成均館員不可偏授經學之士, 以文詞製述者, 交差可也。" 同知事成俔曰: "今之文臣亦不致於文, 其製月課亦不用心, 此甚不可。" 王曰: "在檢擧如何耳。"


  • 【태백산사고본】 10책 3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436 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