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종 부원군 어세겸의 졸기
함종 부원군(咸從府院君) 어세겸(魚世謙)이 졸(卒)하였다. 자(字)는 자익(子益)이고 본관(本貫)은 함종(咸從)인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어효첨(魚孝瞻)의 아들이다. 경태(景泰) 병자년 과거에 합격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에 선보(選補)되었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여 예문관 직제학에 이르렀으며, 성화(成化) 정해년에 승정원 우부승지에 임명되었고, 무자년에 남이(南怡)가 반역(反逆)을 꾀하다가 처형될 때에 추충정난 익대 공신(推忠定難翊戴功臣)으로 책훈(策勳)되어, 평안도 관찰사(觀察使), 이조·예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공조·호조·형조·병조 판서, 홍문관 대제학을 거쳐 문형(文衡)을 맡았다가 의정부 좌우찬성(左右贊成)을 지냈고, 갑인년에 우의정으로 승진되었다가 이어 좌의정으로 전임되었다. 무오년에 사초(史草)의 일로써 면직(免職)되었으나 후에 함종 부원군(咸從府院君)으로 봉작(奉爵)되고 영경연사(領經筵事)에 임명되었다가 이때에 졸(卒)한 것인데, 나이 71세였다. 문정(文貞)이란 시호(諡號)가 내렸는데, ‘문견이 넓고 많은 것을 [博聞多見]’을 문(文)이라 이르고, ‘청백하게 지조 지킨 것[淸白守節]’을 정(貞)이라 이른다. 천품이 확실(確實)하고 기개와 도량이 크고 넓어 첩(妾)을 두지 않았고 용모를 가식하지 않았으며, 청탁을 하는 일이 없고 소소한 은혜를 베풀지도 않았다. 천성이 또한 청렴하고 검소하여 거처하는 집이 흙을 쌓아 층계를 만들고 벽은 흙만 바를 뿐 붉은 칠은 하지 않았다. 경사(經史) 읽기를 즐기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손이 오면 바로 면접하여 종일토록 마시었다. 문장을 만들어도 말이 되기만 힘쓰고 연마(硏磨)는 일삼지 않았으나 자기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며, 평생동안 사벽(邪辟)하고 허탄(虛誕)한 말에 미혹(迷惑)되지 아니하여 음양 풍수설(陰陽風水說) 같은 것에도 확연(確然)하여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젊을 때부터 나아가 벼슬하는 일에는 욕심이 없어 요행으로 이득 보거나 벼슬하는 것과 같은 말은 입밖에 내지를 않았고, 비록 활쏘기와 말타기 하는 재주가 있었지만 일찍이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으며, 일찍이 편지 한 장하여 자제(子弟)들을 위해 은택(恩澤) 구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졸(卒)하게 되자 집안에 남은 곡식이 없었는데, 세상 평판이 추앙하고 존중하여 재상(宰相)감이라고 하였었다. 그러나 공무에는 부지런하지 못하여 일찍이 한성 판윤(漢城判尹)으로 있을 적에 해가 한낮이 되어서 출근(出勤)하므로 오고 당상(午鼓堂上)이란 조롱이 있기도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39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435 면
- 【분류】인물(人物)
○咸從府院君 魚世謙卒。 字子益, 咸從人, 判中樞府事孝瞻之子。 中景泰丙子科, 選補承文院正字, 累歷至藝文館直提學。 成化丁亥, 拜承政院右副承旨。 戊子, 南怡謀不軌誅, 策勳推忠定難翊戴功臣。 轉平安道觀察使, 吏、禮曹參判, 司憲府大司憲, 工、戶、刑、兵四曹判書, 弘文館大提學, 典文衡, 轉議政府左右贊成。 甲寅陞右議政, 尋轉左議政。 戊午以史事免, 後封咸從府院君, 領經筵事。 至是卒, 年七十一。 謚文貞, 博聞多見文, 淸白守節貞。 天資確實, 氣量宏闊。 不畜姬妾, 不修容飾。 不事干謁, 不行小惠。 性又淸儉, 所居室累土爲階, 壁圬而已, 不加丹堊。 耽經史, 喜飮酒, 客至輒留飮竟日。 爲文章, 務辭達, 不事鍜鍊, 自成一家。 平生不惑邪誕, 如陰陽、風水之說, 確然不以動其心。 自少恬於進取, 口不出僥倖利祿之言。 雖有射御之才, 未嘗自衒, 未嘗作一書, 爲子弟求恩澤。 旣卒, 家無餘粟, 物論推重, 稱爲宰相之器, 然於公務, 不勤臨莅, 嘗判京兆, 日晏而仕, 有午鼓堂上之譏。
- 【태백산사고본】 10책 39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435 면
- 【분류】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