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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36권, 연산 6년 1월 8일 계해 3번째기사 1500년 명 홍치(弘治) 13년

정승들이 흉년이 되었으니 수령과 감사에게 구황의 정사에 힘쓰게 할 것을 청하다

정승들이 아뢰기를,

"구황(救荒)의 정사는 별도로 조례(條例)가 없고, 다만 그 흉년의 경중에 따라 절차를 만듭니다. 흉작이 경하면 혹 종사만을 보내어 구황(救荒)하고, 중하면 특별히 진휼사(賑恤使)를 보내어 각도에 달려가서 구원하되, 의창(義倉)003) 의 〈양곡을〉 내어서도 부족하면, 군자창(軍資倉)004) 의 양곡으로 구제하였습니다. 금년에는 경기 및 각도에 흉작이 너무도 심하니, 만일 감사(監司)에게 하서(下書)하시어 구황하는 정사를 잘 수행하게 한다면 수령들이 위의 뜻을 알아차려서 경계하고 신칙함이 있을 것이고, 주린 백성들 역시 모두 살려고 힘쓰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또 산짐승과 물고기의 진상은 역고(驛路)로 운수하는 폐단이 적지 않으므로, 조종조에서부터 모든 건물(乾物)의 진상을 그 생산되는 곳에 따라 그 수효를 정하였습니다. 지금 들짐승과 물고기를 그 물건의 형체를 보시려고 하여 잡아서 산 채로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종조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승검초[辛甘菜]005) 는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적당한 토질에 있는데 그 채취 운송하는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 적변(賊變)이 매우 치열하여 부득이 응하는 것이니, 서정(西征)은 비록 작은 폐해가 있더라도 거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사 나들이를 금한 법은 오래되었습니다. 갑오년006) 《대전(大典)》에 이르기를, ‘사사로이 관부(官府)에 출입하는 자는 참(斬)한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다만 형장 1백에 도형(徒刑) 3년입니다. 또 비록 이 법이 있더라도 수령(守令)들이 오로지 봉행(奉行)하지 않기 때문에 그 폐단을 가져왔습니다. 만일 다시 밝혀서 금지하게 한다면 그 폐단을 조금 제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각도의 토산(土産)인 산짐승과 물고기는 감사와 수령이 모두 먹고 있으니, 고기잡고 짐승 사냥하는 폐단이야 공사간에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이것은 언제나 봉진(奉進)하는 것이 아니요, 얻는 대로 진상하는 것이다. 그것을 수송하는 것도 다른 진상품과 함께 오면 따로이 무슨 폐단이 있겠는가. 내가 대비전(大妃殿)을 위하여 이 명을 낸 것이다. 들짐승과 물고기는 형체를 보려고 하기 때문에 진상하라고 명한 것이요, 역시 이것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승검초 역시 대비전을 위하고 또 약 짓는 데 소용되기 때문에 캐어 진상할 것을 명하였다. 대저 사람이 누구나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 백성을 학대한 일이 있더라도 나는 꼭꼭 다 알지 못할 것이다. 무릇 지금 백성을 학대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정승들에게 물어 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3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93 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구휼(救恤) / 재정-진상(進上) / 재정-창고(倉庫) / 군사-군정(軍政) / 사법-법제(法制) / 농업-농작(農作)

  • [註 003]
    의창(義倉) : 흉년에 빈민을 구제할 목적으로 평년에 백성으로부터 곡류(穀類)를 여분으로 징수하거나 유지로부터 기부를 받아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
  • [註 004]
    군자창(軍資倉) : 군용에 필요한 양곡을 저장하는 창고.
  • [註 005]
    승검초[辛甘菜] : 한자 심감채는 승검초의 취음(取音). 승검초는 산지에서 나며 뿌리는 당귀(當歸)라 하여 한약재로 쓰고, 잎은 가루를 만들어서 떡·강정·다식 등에 향미(香味)·식채를 돕기 위해 섞어 씀.
  • [註 006]
    갑오년 : 1474 성종 5년.

○政丞等啓: "救荒之政, 別無條例。 但隨其凶歉輕重, 爲之節目。 凶歉輕則或遣從事官救荒, 重則特遣賑恤使, 奔救於各道。 發義倉不足, 則以軍資倉穀賑之。 今年京畿與各道, 凶歉太甚。 若下書于監司, 令修擧荒政, 則守令知上之意, 有所戒飭, 飢餓之民, 亦皆有生生之心矣。 且生物進上, 驛路輸轉之弊不貲。 自祖宗朝凡乾物進上, 隨其所産, 以定其數。 今野獸水族, 欲觀其物形, 其令生捕以進, 然祖宗朝未有此事。 辛甘菜非處處有之, 必有土宜, 其採掇轉輸之弊, 不可勝言。 且賊變甚熾, 則不得已應之。 西征雖有小弊, 不可不擧。 禁私行, 其法尙矣。 甲午年《大典》云: ‘私出入官府者斬。’ 今則只杖一百, 徒三年。 雖有此法, 守令等專不奉行, 以致其弊。 若申明禁止, 其弊少祛。" 傳曰: "各道土産生物, 監司、守令皆得而食之。 其漁獵之弊, 公私何異? 且非常常封進, 隨所得以進耳。 其轉輸亦與凡例進上偕來, 則別有何弊耶? 予爲大妃殿, 有是命耳。 野獸、水族欲見形體, 故命進, 亦非以此爲恒例也。 辛甘菜亦爲大妃殿, 且有用於劑藥, 故命採進耳。 大抵人皆不自知其所爲, 雖有虐民之事, 我必不自知也。 凡今虐民者何事耶? 其問政丞。"


  • 【태백산사고본】 10책 3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93 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구휼(救恤) / 재정-진상(進上) / 재정-창고(倉庫) / 군사-군정(軍政) / 사법-법제(法制) / 농업-농작(農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