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광이 남효온의 시를 근거로 안응세·홍유손 등이 김종직의 일파라 하여 국문하기를 청하다
유자광은 아뢰기를,
"남효온(南孝溫)은 헌명(軒名)110) 이 추강(秋江)하므로, 김종직이 그 기안(氣岸)을 허여하였으며 시에 능하다고 칭찬도 하였습니다. 효온은 종직의 당으로 일찍이 시(詩)를 지었는데,
안생이 죽으니 지음이 없어지고
홍자(洪子)가 시골에서 부역을 하니 우리 도가 궁하도다.
대유(大猷)는 있지만 추향(趨向)에 고달프니
이 심회를 농서공(隴西公)에게나 이야기하리
하였습니다. 이른바 ‘안생’은 그 동류 안응세(安應世)이고, ‘홍자’는 곧 홍유손입니다. 박처륜(朴處綸)이 남양 부사(南陽府使)로 있을 적에, 세상을 경히 여기고 큰 소리하는 유손을 미워하여 향리(鄕吏)의 부역(夫役)을 복원시켰는데, ‘우리 도가 궁하다.’고 한 것은 유손을 공자(孔子)에 비한 것이오며, ‘대유(大猷)’는 김굉필(金宏弼)의 자(字)로 굉필이 처음에는 효온(孝溫) 등과 동지였으나 마침내 과거에 응시하였기 때문에 추향에 고달프다 이른 것이오며, ‘농서공(隴西公)’은 이윤종(李允宗)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상의 사람들이 결탁하여 당원(黨援)이 되어 고담(高淡)·궤설(詭設)을 일삼이 선비의 기풍을 손상하고 있습니다. 유손(裕孫)의 헌명(軒名)은 헌헌헌(軒軒軒)이온데, 반드시 헌(軒)의 이름을 지어준 자가 있을 것이오며, 또 유손이 그 동지들을 허여하여 죽림 칠현(竹林七賢)111) 이라 이름하였으니, 대개 진(晉)나라 완함(阮咸)112) 등의 일을 사모한 것입니다. 쇠세(衰世)의 일을 본받아서 다시 성명(聖明)의 세상에 행하려드니, 청컨대 국문하여 그 죄를 징계하소서. 또 강응정(姜應貞)이란 자가 있어 그 무리를 허여하여 십철(十哲)113) 이라 부르고, 그 무리들은 응정을 추앙하여 부자(夫子)라고 부르고 있사오니, 청컨대 아울러 국문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른바 헌헌헌과 농서공이란 것은 무슨 뜻이냐?"
하자, 자광(子光)이 아뢰기를,
"농서공(隴西公)이란 것은 옛날에 이릉(李陵)과 이백(李白)이 농서에서 살았기 때문에 후세 사람이 이씨(李氏)를 통칭해서 농서라 이릅니다."
하였다. 의금부에 전지(傳旨)하기를,
"홍유손은 아무개 아무개와 더불어 죽림 칠현(竹林七賢)이라 호칭하고 방랑하여 기탄이 없는 행동을 하므로 사연(辭緣)이 남효온(南孝溫)의 시(詩)에 미쳤다.
‘안생(安生)이 죽으니 지음(知音)이 적어지고
홍자(洪子)가 고을의 부역을 하니 우리 도가 궁하도다.
대유(大猷)는 있지만 추향에 고달프니
이 심정을 농서공에게나 이야기하리.’
라고 시를 지은 본뜻과 헌명(軒名)을 헌헌헌이라 한 이유를 아울러 국문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31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329 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어문학-문학(文學)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변란-정변(政變)
- [註 110]헌명(軒名) : 서재 이름.
- [註 111]
죽림 칠현(竹林七賢) : 진(晉) 초에 노장(老莊)의 사상을 숭배하여 속세를 떠나 죽림에서 놀던 7사람. 곧 혜강(嵇康)·완적(阮籍)·산도(山濤)·향수(向秀)·유영(劉伶)·왕융(王戎)임.- [註 112]
완함(阮咸) : 위씨(尉氏) 사람. 죽림 칠현의 하나.- [註 113]
십철(十哲) : 공자 제자 중 뛰어난 현인 10사람. 곧 안연(顔淵)·민자건(閔子褰)·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재아(宰我)·자공(子貢)·염유(冉有)·계로(季路)·자유(子遊)·자하(子夏임).○己卯/柳子光啓: "南孝溫軒名秋江, 金宗直許與氣岸以能詩稱之。 孝溫, 宗直之黨, 嘗作詩云: ‘安生已逝知音少, 洪子役鄕吾道窮。 縱有大猷趨向苦, 心懷說與隴西公。’ 所謂安生, 其類安應世, 洪子卽洪裕孫也。 朴處綸爲南陽府使時, 疾裕孫輕世高談, 復鄕吏之役。 謂之吾道窮者, 以裕孫比孔子也。 大猷, 金宏弼字也。 宏弼初與孝溫等同志, 而竟赴科擧, 故云趨向苦。 隴西公指李允宗也。 右人等結爲黨援, 高談詭說, 傷毁士習。 裕孫軒名曰軒軒軒。 必有名軒者。 且裕 孫與其同志者號曰竹林七賢, 蓋慕晋室 阮咸等事也。 效衰世之事, 復行於聖明之世, 請鞫之, 以懲其罪。 又有姜應貞者, 與其徒號爲十哲。 其類推應貞曰夫子, 請竝鞫之。" 傳曰: "可。 所謂軒軒軒、隴西公者, 何義也?" 子光曰: "隴西公者, 昔李陵、李白居隴西, 故後人稱李姓通謂之隴西。" 傳旨義禁府曰: "洪裕孫與某某人, 竹林七賢稱號, 放浪無忌辭緣及南孝溫詩, ‘安生已逝知音少, 洪子役鄕吾道窮。 縱有大猷趨向苦, 心懷說與隴西公。’ 作詩意趣及命軒名軒軒軒者竝鞫之。"
- 【태백산사고본】 9책 31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329 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어문학-문학(文學)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변란-정변(政變)
- [註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