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청 당상 어세겸 등이 사초 사건과 무관함을 변명하다
실록청 당상(實錄廳堂上) 어세겸(魚世謙)·이극돈(李克墩)·유순(柳洵)·홍귀달(洪貴達)·윤효손(尹孝孫)·허침(許琛) 등이 차자(箚子)올리기를,
"신 등이 모두 무상(無狀)한 몸으로써 외람되이 융숭한 명령을 받자와 사국(史局)에서 대죄(待罪)한 지가 지금 수년이 되었사오나, 오직 찬술(撰述)이 기일을 지연시키는 것으로 두려움을 삼았을 뿐이오며, 그 시조(施措)의 위배됨을 스스로 알지 못했사옵니다. 근일에 사관(史官)의 부도(不道)한 말을 늦게야 계품(啓稟)하였으니, 달갑게 부월(斧鉞)의 베임을 받아야 합니다마는, 그러나 구구한 마음을 머금고 있을 수 없사옵기로, 삼가 진달하기를 아래와 같이 하옵니다.
대저 실록을 수찬하는 예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시정기(時政記)》와 《경연일기(經筵日記)》와 제사(諸司)의 등록(謄錄)으로 무릇 상고할 만한 문서라면 모두 다 주워 모아서 연대(年代)를 나누고 방(房)을 나누어 각기 근정(斤正)하여 편집하게 하고, 여러 신하의 사초는 연월일에 따라 전문(全文)을 바로 써서, 그 사이에 부입(附入)하므로 편언 척자(片言隻字)라도 가감(加減)이 있을 수 없사오며, 편성하여 도청(都廳)에 올리면 도청은 각방(各房)의 당상관을 소집하여 함께 거취(去就)를 의논해서 비록 적은 일이라도 적실하면 그대로 두고 아니면 삭제하옵는데, 하물며 국가의 대사에 있어서입니까.
신 등이 찬술한 바는 이미 함께 의논하여 삭제를 마친 것이 초년(初年)부터 을사(乙巳)년까지이온데, 그 사이의 거취(去就)가 얼마인지 알지 못하오며, 그 이미 인출(印出)한 것은 초년부터 을미(乙未)년까지 되었으니 이미 인출된 것을 상고하면 겨우 7년입니다. 신 등은 취사(取捨)한 것은 하나가 아니므로 지금 사초(史草)의 전문(全文) 두 조문을 별지(別紙)에 쓰고 또 인출된 정본(正本) 두 장에 표를 붙여 아뢰오니, 만약 보아 주시오면 신 등의 버리고 취한 흔적을 환히 짐작하실 것이오며, 미처 함께 의논하지 못한 곳의 버리고 취함에 있어서도 또한 이로 인해서 따라 아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엎드려 듣자오니, 어제 오방(五房)의 낭청(郞廳) 강경서·이수공이, 권오복 등의 사초(史草)를 부입(付入)한 것 때문에 모두 형장 신문을 받았다 하는데, 이것은 신 등이 미처 함께 의논하지 못한 바입니다. 경서(景敍) 등이 어찌 제 마음대로 취사할 수 있사오리까? 신 등은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와 감히 복심(腹心)을 털어 아뢰오니, 바라옵건대 성자(聖慈)는 보아 주시옵소서."
하니, 추관(推官)에게 전교하기를,
"이 말이 어떠하냐?"
하매, 필상 등이 아뢰기를,
"그들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 일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낭청이 만약 보았다면 당연히 도청(都廳)에 고했어야 할 것이온데, 지금 그렇지 못했으니, 그 사정을 신문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니, ‘알았다.’ 전교하였다. 어세겸(魚世謙) 등에게 전교하기를,
"내가 경(卿) 등을 그르다 하는 것은 일손(馹孫)의 사초를 보고도 즉시 와서 계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며, 강경서·이수공을 그르다 하는 것은 그들이 이와 같은 부도(不道)한 일을 보았다면 마땅히 도청에 고하여 함께 의논해서 삭제해 버렸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23 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乙卯/實錄廳堂上魚世謙、李克墩、柳洵、洪貴達、尹孝孫、許琛、安琛上箚曰:
臣等皆以無狀, 濫承隆命, 待罪史局, 數年于玆, 唯以撰述稽期爲懼, 不自知其施措之違。 日者史官不道之言, 遲緩啓稟, 甘受斧鉞之誅, 然區區方寸, 不可含鬱, 謹陳露如左。 大抵《實錄》修撰之例, 《承政院日記》、《時政記》、《經筵日記》、諸司《謄錄》, 凡可考文書悉皆裒集, 分年分房, 使各斤正編輯, 諸臣史草, 隨年月日, 直書全文, 附入其間, 片言、隻字不得有所增減編成, 上之都廳, 都廳招集各房堂上, 共議去取, 雖事之小者, 的實則存之, 否則削之, 況國家大事乎? 臣等所撰, 其已共議畢削者, 自初年至乙巳, 其間去取, 不知其幾。 其已印出者, 自初年至乙未, 竊考已印僅七年, 而臣等所取捨者非一, 今將史草全文二條, 書于別紙, 又於印出正本二張, 付標以啓, 若賜睿鑑, 則臣等去取之跡, 可以洞照, 而其未及共議處去取, 亦可因此而例知矣。 伏聞, 昨日五房郞廳姜景叙、李守恭以權五福等史草付入, 竝受刑訊。 此則臣等未及共議處, 景叙等安得擅自取捨哉? 臣等不勝惶恐, 敢布腹心, 伏惟聖慈垂覽焉。
傳于推官曰: "此言何如?" 弼商等啓: "所言是矣。 然此非凡事之比, 郞廳若見, 當告于都廳。 今不然, 其情不可不問。" 傳曰: "知道。" 傳于世謙等曰: "予以卿等爲非者, 見馹孫史草, 不卽來啓也。 以姜景叙、李守恭爲非者, 見其如此不道事, 則當告都廳, 共議而削去之也。"
-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23 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