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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20일 갑인 2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사초에 기록된 정본의 일에 대한 정여창의 공술 내용

이수공(李守恭)이, 권경유·권오복의 사초를 기재한 것은 반드시 속셈이 있다 하여 한 차례 형장 심문을 했으나 불복하였다. 그리고 정분(鄭苯)은 바로 난신(亂臣)인데, 정여창(鄭汝昌)이 그를 ‘조용히 죽음에 나아갔으니 취(取)할 만하다. 마땅히 전(傳)을 지어야겠다.’ 한 것은 속셈이 있다 하여, 한 차례 형장 심문을 했다. 여창은 공초하기를,

"같은 때의 정승이었으나 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은 반역을 도모한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모두 참형(斬刑)에 처했는데, 정분만은 광양(光陽)으로 귀양가서 종말에 단지 교형(絞刑)에 처했으며, 정분이 또한 형(刑)에 임하자 말하기를 ‘죽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명절(名節)은 다름이 있다.’ 하였사온즉, 종서 등과 더불어 공모하지 않았는데 죄 없이 죽은 것 같으므로, 마땅히 전(傳)을 지어야 하였기에 써서 보내 준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323 면
  • 【분류】
    역사-편사(編史)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以李守恭景𥙿五福史草, 必有情, 刑訊一次, 不服。 鄭苯乃亂臣, 而汝昌謂: "從容就死爲可取, 宜作傳。" 必有情, 刑訊一次, 汝昌供: "同時政丞金宗瑞皇甫仁謀反明白, 故皆處斬, 則付處光陽, 終只處絞, 而亦臨刑曰: ‘死等矣, 而名節有異。’ 則與宗瑞等似非同謀。 無罪而死, 謂宜作傳, 故書送。"


  •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323 면
  • 【분류】
    역사-편사(編史)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