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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19일 계축 7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김종직의 조의제문 등에 대한 권오복의 사초 내용

윤필상(尹弼商) 등이 아뢰기를,

"그윽이 듣자오니 권오복(權五福)의 사초(史草)도 역시 일손의 것과 같다 하온데, 어제는 단지 경유(景𥙿)의 사초만을 내렸으니, 신 등은 모르겠습니다만, 오복의 사초를 당초에 초계(抄啓)하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이미 초계했는데도 미처 내려 주지 못하셨습니까?"

하니, 주상은 명하여 사초 4폭을 보여 주었는데, 모두가 긴관(緊關)한 일이 아니었다. 오직 오복의 사초에 이르기를, ‘김종직이 일찍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는데, 간곡하고 측은하고 침착하고 비통하여 남이 말 못하던 데를 말하였으므로 사림(士林)간에서 전해 외었다. 식자들은 말하기를 ‘제(帝)의 복(服)이 구장(九章)이라 하였는데, 지금 칠장(七章)이라 이른 것은 무슨 까닭이냐? 이는 반드시 뜻이 있어 지은 것이니, 크게 세교(世敎)에 관계되므로 썩지 않게 남겨 둘 만하다.’ 하였고 ‘또 《청구풍아(靑丘風雅)》를 편찬하면서 인물(人物) 성씨(姓氏) 아래에 주(註)하기를,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 등과 더불어 노산(魯山)을 복위(復位)시킬 것을 꾀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권남(權擥)세조를 추대했다 하였으니, 직필(直筆)이 늠름하여 듣는 자로 하여금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하였다. 그래서 필상 등이 낭청(郞廳)을 보내어 잡아오고 가사(家舍)를 밀봉할 것을 청하니, 왕은 ‘가하다.’는 전교를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22 면
  • 【분류】
    역사-편사(編史)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弼商等啓: "竊聞, 權五福史草, 亦如馹孫, 而昨日只下景𥙿史草, 臣等未知五福史草初不抄啓耶, 抑已抄啓而未下耶。" 上命示史草四幅, 皆非緊關事, 唯五福史草云: "金宗直嘗著《弔義帝文》, 懇惻沈痛, 道人所不道處, 士林傳誦。 識者曰: ‘帝服九章, 而今云七章何也? 此必有爲而作, 大關世敎, 可垂不朽。’ 又撰《靑丘風雅》, 註人物姓氏下曰: ‘成三問李塏等, 謀復魯山。’ 曰: ‘權擥推戴世廟。’ 直筆澟然, 聞者起敬。" 弼商等請遣郞廳拿來, 封其家舍, 傳曰: "可。"


  •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22 면
  • 【분류】
    역사-편사(編史)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