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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28권, 연산 3년 11월 9일 병오 2번째기사 1497년 명 홍치(弘治) 10년

판중추부사 이극균 등이 경안 등의 역로·양재, 찰방의 피폐한 정황에 대해 논의하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극균(李克均)이 아뢰기를,

"경안(慶安)의 일로(一路)는 광주(廣州) 덕풍역(德豊驛)원거인(元居人)625) 3호(戶), 경안역(慶安驛)에 원거인이 5호, 이천(利川) 아천역(阿川驛)에 원거인 3호, 오천역(五川驛)에 원거인 5호, 음죽(陰竹) 유춘역(留春驛)에 원거인 6호, 여주(驪州) 신진역(新津驛)에 원거인 8호, 양화역(楊華驛)에 운거인 5호(好), 안평역(安平驛)에 원거인 3호로, 《대전(大典)》에 으레 소로(小路)가 기록되어 있으니, 경상도(慶尙道) 안동(安東)의 도회 진상(都會進上)인 영덕(盈德)의 별진상(別進上)이 모두 이 길을 경유하며 왜인의 통행과 영릉(英陵)의 헌관(憲官)·집사(執事)가 줄을 대어 끊어지지 아니합니다. 각역에 말을 세우는 것은 적은데 겨를 없이 분치(奔馳)하니 장차는 지탱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일 받자온 교서(敎書) 내에 ‘조잔(凋殘)한 각역에 조역(助役)하는 정병(正兵)을 두라.’ 하셨는데, 《속록(續錄)》이 반강(頒降)한 뒤에 정파(停罷)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덕풍(德豊)·경안(慶安)·아천(阿川)·오천(吾川)·유춘(留春)양재도(良才道)에 예속시키고, 양화(楊花)·신진(新津)·안평(安平)평구도(平丘道)에 예속시키고, 경안역(慶安驛) 승(丞)은 방편상 파하는 것이 편의하리라 여기옵니다.

왜인이 경유하는 안평(安平)·신진(新津)·아천(阿川)·경안(慶安)·덕풍(德豊)은 전일 받자온 교서에 의하여 조역(助役)하는 정병(正兵)을 더 두는 것이 어떠하오며 또 양재(良才) 일로(一路)는 좌찬(佐贊)분행(分行) 두 역이 조잔하고 피폐함이 더욱 심하온데 경상·충청 양도의 진상(進上)과 왜인(倭人) 사객(使客)이 줄대므로 역리(驛吏)가 능히 감당하지 못할 형편이라, 도망하고 흩어져서 나타나지 아니하니, 그 소생시킬 방법을 해조(該曹)로 하여금 마련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그리고 신이 도로변에서 보오니 갑산(甲山)삼수(三水)는 들어가 사는 자들이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이를 손잡고서 재를 넘고 물을 건너느라 모진 고생을 다 겪고 있었습니다. 하물며 지금 영안도(永安道)는 궁음(窮陰)과 적설(積雪)로 지독한 추위가 다른 데에 배나 되오니 그 본가에서 떠나지 않은 자는 명년 봄에 들여보낼 것을 윤허하고, 또 그 호(戶)에서 뽑아내어 잔역(殘驛)에 소속시키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하고, 지사(知事) 홍귀달(洪貴達)은 아뢰기를,

"신이 지난번에 영릉(英陵)의 헌관(獻官)이 되어 여주(驪州)·광주(廣州) 각역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조잔하고 피폐한 것이 정히 극균(克均)의 아뢴 바와 같았습니다. 대저 역리(驛吏)한 것은 하루도 휴식을 얻지 못하므로 그 조잔한 꼴은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으나, 만약 때에 미처 구원하지 아니하면 종당에 인물(人物)이 다 흩어지고 말 것이니, 그런 뒤에는 소생시킬 방법을 베풀고 싶어도 어려울 것입니다.

성종조(成宗朝)에 신이 좌찬·분행 양역의 조잔하고 피폐함을 아뢰니, 병조(兵曹)에 명령을 내려 소생시킬 방안을 의논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병조는 각기 부실(富實)한 몇 집을 입주시키자고 청하여 이미 성명(成命)이 있었는데 미처 시행하지 못하고, 각도에 입주할 자를 다 삼수·갑산으로 들여보내라 명령하셨기 때문에 양 역에는 그때에 한 호도 들여보내지 못하였습니다.

요사이 신이 다시 두 역을 지났사온데, 그 조잔하고 피폐함이 예전보다 배나 더하므로 신은 찰방(察訪)을 보고 묻기를, ‘이에 앞서 역로의 피폐한 상황을 찰방이 직접 아뢴 예가 있는데, 두 역이 이와 같이 조잔하고 피폐하거늘 어찌 아뢰지 아니하는가?’ 하니, 찰방의 말이 ‘지금까지 그럴 만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하므로, 또 묻기를, ‘어찌하여 감사(監司)에게 알리지 아니 했느냐?’ 하니, 찰방의 대답이, ‘나는 사람이 비미(卑微)하고 감사는 일이 번다한데, 비록 알린다 할지라도 어찌 시행될 수 있겠소? 만약에 이름있는 조사(朝士)를 뽑아서 찰방을 삼는다면 거의 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므로, 신의 생각에도 역시 그렇게 여겼습니다.

지난번 황해도 칠참(七站)경기영서(迎曙) 등의 역이 조잔하고 피폐하므로 관적이 높고 이름 있는 조사(朝士)를 선택하여 찰방으로 삼았었는데, 그 후에 자못 소생하였으니, 지금 양재 찰방(良才察訪)에 있어서도 역시 선택해서 보낼 것을 청하옵니다."

하니, 명하여 대신(大臣)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그래서 윤필상(尹弼商)·노사신(盧思愼)·어세겸(魚世謙)·정문형(鄭文炯)·한치형(韓致亨)·노공필(盧公弼)·허침(許琛)·이숙함(李淑瑊)이 의논드리기를,

"역승(驛丞)626) 과 찰방(察訪)을 분설(分設)하는 것이 《대전(大典)》에 기재되어 있으니, 일시의 폐단으로써 경솔히 변경한다는 것은 불가하옵니다. 또 삼수(三水)·갑산(甲山)은 방어(防禦)가 가장 긴급하온데, 인물(人物)이 거의 죽어 모두 없어졌으니 마땅히 시급히 백성을 이사시켜서 실하게 만들어야 하오며, 분산하여 각역으로 들여보내는 것은 부당합니다. 극균(克均)의 아뢴 바와 같다면 구원하지 않을 수도 없으나, 그러나 여러 역에는 다 인마(人馬)와 위전(位田)이 있고 또 노비(奴婢)·조역(助役)이 있는데 유독 경안(慶安)의 한 역로(驛路)만이 더욱 심하게 조잔 피폐하다 하니 그 연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피폐한 연유와 피폐를 구출할 방법을 그 도의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자세히 탐문해서 마련하여 계문(啓聞)하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하는 것이 편의할까 하옵니다.

그리고 홍귀달(洪貴達)의 아뢴 바와 같이 양재 찰방(良才察訪)에 있어서는 관직이 높은 이름 있는 조사(朝士)로서 선택하여 보내는 일은 전조(銓曹)로 하여금 편·불편을 마련해서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니, 왕이 이에 좇았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8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294 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교통-육운(陸運) / 신분(身分) / 호구(戶口) / 군사-군역(軍役)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625]
    원거인(元居人) : 그 지방에 본래 살던 사람.
  • [註 626]
    역승(驛丞) : 《속대전》 이전에는 역승과 찰방이 따로 있었는데, 후에 찰방이 됨.

○判中樞府事李克均啓: "慶安一路, 廣州 德豐驛元居三戶, 慶安驛元居五戶, 利川 阿川驛元居三戶, 吾川驛元居五戶, 陰竹 留春驛元居六戶, 驪州 新津驛元居八戶, 楊花驛元居五戶, 安平驛元居三戶。 《大典》例錄小路, 而慶尙道 安東都會進上, 盈德別進上, 皆由此路, 倭人之行及英陵獻官、執事絡繹不絶。 各驛立馬者少, 奔馳無暇, 將不能支。 前日受敎內: ‘凋殘各驛, 有助役正兵。’ 《續錄》頒降後, 竝皆停罷。 臣意, 德豐慶安阿川吾川留春(良寸道)〔良才道〕 , 楊花新津安平平丘道, 慶安驛丞權罷爲便。 且倭人所經安平新津阿川慶安德豐依前受敎, 加助役正兵何如? 且良才一路, 佐賛分行兩驛凋弊尤甚。 慶尙忠淸兩道進上及倭人使客連絡, 驛吏勢不能當, 則逃散不現, 其蘇復條件, 令該曹磨鍊何如? 且臣於道路, 見甲山三水入居者, 携持老少, 跋涉甚苦。 況今永安道窮陰積雪, 冱寒倍他, 其未發本家者, 許令明春入送。 又抄出其戶, 以屬殘驛何如?" 知事洪貴達曰: "臣頃者以英陵獻官, 往還驪州廣州, 各驛凋弊, 正如克均所啓。 大抵驛吏不得一日休息, 凋殘無怪。 若不以時救之, 終至於人物盡散, 然後欲施蘇復之策難矣。 成宗朝臣啓佐賛分行兩驛凋弊, 命下兵曹議蘇復。 兵曹請各給富實入居十戶, 已有成命, 未及施行, 各道入居, 命盡入甲山三水, 故兩驛時未入一戶。 近臣復過兩驛, 凋弊倍舊。 臣見察訪問曰: ‘前此驛路弊事, 察訪直啓有例。 兩驛凋弊如此, 何不啓之?’ 察訪曰: ‘今不得爾。’ 又問曰: ‘何不報監司?’ 察訪曰: ‘我則人微, 監司事繁, 雖報之, 豈得施行? 是若選有名朝士爲察訪, 則(則)庶有爲矣。’ 臣意亦以爲然。 前者以黃海道七站及京畿 迎曙等路凋弊, 擇秩高有名朝士爲察訪, 其後頗有蘇復。 今良才察訪亦請擇遣。" 命議于大臣。 尹弼商盧思愼魚世謙鄭文炯韓致亨盧公弼許琛李淑瑊議: "分設驛丞、察訪, 《大典》所載, 不可以一時之弊, 輕易紛更。 且三水甲山, 防禦最緊, 人物死亡殆盡, 宜急徙民以實之, 不宜分入各驛。 但如克均所啓, 則不可不救。 然諸驛皆有人馬位田, 又有奴婢助役, 而獨慶安一路凋弊尤甚, 未知其由。 其受弊之由, 救弊之策, 令其道觀察使, 備細訪問, 磨鍊啓聞後, 更議爲便。 洪貴達所啓良才道察訪, 以秩高有名朝士差遣事, 令銓曹便否磨鍊, 施行何如?" 從之。


  • 【태백산사고본】 8책 28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294 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교통-육운(陸運) / 신분(身分) / 호구(戶口) / 군사-군역(軍役)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