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을 파직시킨 일에 대하여 대간이 논의하다
대간이 서계(書啓)하기를,
"상의 전교에, ‘이임보(李林甫)는 간신이지만 노사신(盧思愼)은 간신이 아니다.’ 하셨는데, 신 등의 생각으로는, 사신의 간사가 어찌 임보와 다르리까. 임보가 정승이 되었을 적에, 천하의 어진 선비가 모두 대궐로 나가니, 임보가 자기 과실을 말할까 염려해서, 어사(御史)로 시험을 뵈어 모두 합격되지 못하게 하고는, 초야(草野)에 버려진 이가 없음을 들어서 진하(陳賀)했습니다. 사신(思愼)이 영의정으로,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대간을 하옥(下獄)시키자, 영주(英主)의 위단(威斷)이라고 아름다움을 임금께 돌리고 치하하였으니 그 간사함이 동일합니다.
당 명황(唐明皇) 때에 태자(太子)가 참소를 입자, 장구령(張九齡) 등이 절실한 말로 해명을 하니, 임보가 중인(中人)을 시켜서 말하기를, ‘이는 천자의 집안 일인데 외신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여, 태자가 드디어 폐위되었습니다. 전하께서 모후(母后)를 추념(追念)하여 신주(神主)를 모시려고 하시자, 조정에서 모두 불가하다고 했는데, 유독 사신만이 말하기를 ‘선왕의 일시 교훈을 어기는 것은 그 과실이 작으니, 숭봉(崇奉)하는 예전을 마땅히 차례로 거행해야 하옵니다.’ 하였으니, 그 종유(慫臾)한 것이 임보보다 더한데, 특별히 전하께서 그 말을 써주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임보가 대간(臺諫)에 대해서 가만히 말하기를 ‘밝은 임금이 위에 계시니, 신하는 순종하기에 바쁘다. 그대는 장마(仗馬)를 보지 못했는가? 울지 아니하면 삼품(三品)에 해당한 꼴과 콩을 실컷 먹고, 한 번만 울면 배척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대간이 녹만 먹고 자급(資級)만 기르게 되어 언로(言路)가 막혀 마침내 그 난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신이 경연(經筵)에서 대간을 억눌러 말하기를 ‘대간이 모두 공자(孔子)가 아닐진대 그 말이 반드시 다 선(善)하지는 못할 것이니, 결코 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고, 또 대간에게 ‘고자질하여 곧은 이름을 취하기를 좋아하니 이 풍습은 불가불 개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임보는 단지 대간을 풍자하여 말을 못하게 한 것뿐이었지만, 오히려 천하를 어지럽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사신은 바로 상의 앞에서 송언(訟言)을 빌려 대간을 억눌렀으니, 그 간악함이 이러한데도 전하께서는 오히려 바른 말하는 정승으로 여기시니, 이야말로 이필(李泌)의 이른바, ‘사람은 모두 노기(盧杞)의 간사함을 아는데 폐하만 알지 못하시니, 이것이 이른바 진짜 간사한 것’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를 말한 것입니다.
대간이 여러날을 두고 논박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므로, 조순이 논박하는 즈음에 충분이 격동하여 아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 중(中)을 잃은 것이니, 전하께서 마땅히 관용하셔야 할 것이온데 파직에까지 이르게 하십니까. 신 등이 당초에 조순과 같이 상의하여 말을 한 것이므로 피혐할 것을 청했는데 윤허하지 않으시니, 신 등은 청컨대 순과 함께 파직시켜 주소서. 만약 신 등의 피혐하는 것을 듣지 않으려면, 청컨대 조순을 너그러히 용서하시고, 빨리 사신의 유영(諛侫)한 죄를 캐물으소서. 또 윤공(允恭)은 백성 다스리기에 적합하지 못하고, 희지(熙止)는 근시(近侍)하는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되오니, 청컨대 아울러 개차(改差)하소서."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7책 25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260 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역사-고사(故事) / 인사-임면(任免)
○癸亥/臺諫書啓:
上敎以爲: "李林甫則奸臣, 盧思愼非奸臣。" 臣等之意, 思愼之奸, 何異林甫? 林甫爲相, 天下徵士皆詣闕下, 林甫恐言己失, 使御史監試, 皆不中程, 以野無遺賢陳賀。 思愼爲領議政, 當殿下卽位之初, 下臺諫於吏, 則歸美英主之威斷而喜賀, 其奸一也。 唐 明皇時, 太子被讒, 張九齡等切言以明之, 林甫使語中人曰: "此天子家事, 外臣何知耶?" 太子遂廢。 殿下追念母后, 欲爲立主, 朝廷皆以爲不可, 思愼獨曰: "違先王一時之敎, 其失小。 追崇之典, 當次第擧行。" 其慫慂過於林甫, 特殿下不用其言耳。 林甫對臺諫微語曰: "明主在上, 人臣將順不暇。 君不見仗馬乎? 不鳴則飫三品芻豆, 一鳴則斥之。" 由是臺諫持祿養資, 言路蔽塞, 卒致其亂。 思愼於經筵, 抑折臺諫以爲: "臺諫非孔子, 則其言未必盡善, 決不可聽也。 且臺諫好訐以爲直, 此風不可不革。" 林甫只風臺諫不言, 猶足以亂天下, 況思愼乃於上前訟言折臺諫。 其奸如是而殿下猶以爲正言之相, 此正李泌所謂: "人皆知盧杞之奸, 而陛下不知, 此所謂眞奸邪也。" 臺諫累日論駁, 未蒙允許, 舜於論駁之際, 忠憤激中, 不覺言之失中, 殿下所當優容, 而至於罷職。 臣等初與趙舜同議言之, 請避不允, 臣等請與舜竝罷。 如不聽臣等之避, 請優容舜, 亟劾思愼諛侫之罪。 且允恭不宜臨民, 熙止不宜居近侍之地, 請竝改差。
不聽。
- 【태백산사고본】 7책 25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260 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역사-고사(故事)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