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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22권, 연산 3년 3월 11일 계축 4번째기사 1497년 명 홍치(弘治) 10년

병조 판서 노공필 등이 순변사를 보내는 일로 건의하다

병조 판서 노공필(盧公弼) 등이 아뢰기를,

"순변사의 가지고 가는 사목은 미진한 곳이 있는 듯하옵니다. 군중을 출동하는 것은 큰 일이오니 상세하게 계획하고 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승 등으로 상의 확정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사목이 이러하니, 가사 순변사가 만나는 것이 없다면 그저 갔다 그저 돌아올 것이겠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이계동과 좌·우수군 절도사가 일시에 배를 띄워서 여러 섬을 수색한다면 왜인이 돌아갈 곳이 없으니 반드시 만나 잡히는 곳이 있을 것이고, 비록 포획되는 것이 없더라도 변장들이 이로써 항식(恒式)을 삼아서 조금만 변방의 경보가 있어도 항상 나가 수색할 것인즉, 왜노(倭奴)가 반드시 마음대로 다니면서 일으키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이계동은 아뢰기를,

"신 등이 소시에 대마도 통신사(通信使)로 왕래하여, 바다 길의 험하고 편리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광양(光陽)에서 진도(珍島)까지 6, 7일 길이 되는데, 그 사이의 여러 섬이 얼마인지 모르게 많습니다. 지금 왜노가 먼저 침범한 것이 4척이요, 후에 침범한 것이 2척입니다. 대저 수로는 육로와 다른데, 이 6척의 배를 잡기 위하여, 큰 군사를 출동하여 일시에 출동하였다가 만일 풍세가 험하면 수중의 변고를 알 수 없습니다. 신이 국가의 중한 임무를 받아 육로에서 멀리 제어(制御)할 수 없으니, 마땅히 병사·수사 들과 함께 각각 병선을 타고 요충지(要衝地)를 점거하여, 날래고 재력(材力)이 있는 자를 택해서 각기 기계를 갖추어 비거도선(鼻居刀船)·복작선(鰒作船) 등 물 위에서 경쾌하고 편리한 배 백여 척으로 먼저 도적이 있는 곳을 탐지하되, 교대로 출입하기를 잇따라 하여야 역시 끝까지 소굴을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니, 반드시 많은 군사를 함께 출동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이 탐색한 후에 군사를 출동하는 일을 자세히 생각해서 아뢰겠습니다."

하고, 한치형(韓致亨)·이극돈(李克墩)이 아뢰기를,

"왜적의 있고 없음을 확실히 알 수 없는데, 풍세가 험할 때에 갑자기 많은 군사를 출동하였다가 불리한 일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또 군사의 일이란 멀리서 짐작할 수 없는 일이오니, 기회를 보아 처치하는 것은 계동에게 맡겨야 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치형·계동의 아뢴 것이 옳도다. 기회를 엿보아 처치함이 가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2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201 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교통-수운(水運)

    ○兵曹判書盧公弼等啓: "巡邊使齎去事目, 恐有未盡處。 動衆大事, 不可不詳計而熟慮之。 令政丞等商確何如?" 傳曰: "可。" 又啓: "事目如此, 假使巡邊使若無所遇, 則空行空返乎? 臣意以爲, 李季仝及左右水軍節度使, 一時發船, 搜探諸島, 則倭人無所逃歸, 必有遇獲之處。 雖無所獲, 邊將等以是爲恒式, 而少有邊警, 常常搜探, 則奴必不得縱肆竊發矣。" 季仝啓: "臣等少時以對馬島通信使往來, 熟知海路險易。 自光陽珍島六七日程, 其間諸島不知幾何。 今倭奴先犯者四船, 後犯者二船。 大抵水路非如陸路, 爲此六船, 至發大軍, 一時齊進, 若遇風險, 則水中變故未可知也。 臣受國家重事, 不可遵陸遙制, 當與兵使、水使等, 各乘兵船, 以據要衝之地。 擇驍勇多材力者, 各備器械, 以鼻居刀船、鰒作船, 輕利水上者百餘艘, 先探賊藪, 迭出迭入, 陸續不絶, 亦可以窮探窟穴, 不必大軍竝發也。 故臣以探索後發軍事, 詳料以啓。" 韓致亨李克墩啓: "倭賊有無, 不可的知。 風險之時, 遽發大軍, 恐有不利。 且兵不可遙度, 臨機處置, 當在季仝。" 傳曰: "致亨季仝所啓是矣。 臨機處置可也。"


    • 【태백산사고본】 6책 22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201 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교통-수운(水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