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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20권, 연산 2년 12월 9일 임오 2번째기사 1496년 명 홍치(弘治) 9년

가자, 김효강, 노사신 부자 등의 일로 구치곤 등이 경연에서 아뢰다

강독하여 일식(日食)하는 대목까지 이르렀다. 이승건이 아뢰기를,

"일식은 큰 변입니다. 인군이 덕을 닦고 정사를 시행하면 재앙이 변하여 상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주부(朱浮)472) 의 상소를 보면 사람을 잘못 쓰면 〈재앙이〉 거기에 응한다고 하였으니, 인군은 사람 쓰는 것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대사헌 구치곤(丘致崑)은 아뢰기를,

"근자에 오래도록 경연에 납시지 않으심은, 신 등은 인군의 몸이 편치 못하여 그러한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9월 이후로 여러 달을 납시지 않았습니다. 인군은 본디 날마다 어진 선비와 대부(大夫)를 면접하여 성학(聖學)을 넓혀야 합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조심하여 검소한 덕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고 요(堯)임금은 따로 이은 지붕에서 흙으로 쌓은 층계에 거처하였으며, 순(舜)임금은 궁실을 낮게 하고 의복을 조악하게 하였습니다. 또 〈주(周)나라문왕(文王)은 〈의복을 조악하게 하여〉 곧 백성을 편안히 하는 공을 이루고, 농사짓는 공을 이룩하였으며 한(漢)나라 문제(文帝)노대(露臺)473) 를 만드는데 백금(白金)의 비용을 아꼈고, 후궁(後宮)의 옷을 땅에 끌리지 않게 하였습니다. 옛날 인군들이 모두 검소한 덕을 숭상하였으니 후대의 인군도 이것을 몸소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신이 듣사온즉, 세종조에서는 관작을 아껴서 반드시 30삭(朔)이 찬 후에야만 가자(加資)하고 승수(陞授)했으며 특별 가자를 자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중직(中直)474) 으로 판사(判事)에 제수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 가자가 매우 자주 있고 자급(資級)을 범람하게 시여(施與)하여, 실직이 주부(主簿)475) 인데도 자급은 통훈 대부(通訓大夫)인 자가 대개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통정 대부(通政大夫)가 1백여 인이며 가선 대부(嘉善大夫) 이상인 사람도 70여 인이니 관작의 범람함이 이렇게까지 되었습니다. 진(晉)나라 문공(文公)조(曹)나라 임금에게 희부기(僖負羈)476) 를 등용하지 않은 죄를 책망하면서 말하기를, ‘초헌(軺軒)477) 을 탄 자가 3백이다.’고 하였으며,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저기 그 사람들, 3백이나 되는 적불(赤芾)478) 이네.’라고 하였으며, 진(晉)나라 때에도, 〈대부의 관에 장식하는〉 돈피가 부족해서 개 꼬리로 이었다는 비방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두가 관작을 아끼지 않고 함부로 소인을 등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임금은 모름지기 관작을 중하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였는데, 왕이 좌우의 사람들을 돌아보며,

"대사헌의 말이 어떤가?"

하므로, 어세겸(魚世謙)이 아뢰기를,

"구치곤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격을 따라 쓰는데, 조정에 있는 선비가 만일 삭수(朔數)479) 가 차면 예에 따라 자품을 주는 것이니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폐단을 구제하려고 하면 다 경장(更張)하여야 하겠으니 일이 매우 가볍지는 않습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유래가 오래었으니 가볍게 고칠 수 없는 것이다."

하자, 홍귀달(洪貴達)이 아뢰기를,

"구치곤의 말은 반드시 다 경장하자는 것은 아니고, 위의 뜻이 관작을 아껴 특별한 은혜 외의 관작을 함부로 시여할 수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고, 어세겸이 아뢰기를,

"근자에 사람을 쓰는 데 있어서 아직 임기가 차지 못하였더라도 추이(推移)하여 전용(轉用)하는데, 20삭(朔)이 지났다면, 30삭의 임기는 못 채웠더라도 될 수 있지만, 지금은 겨우 10여 삭이 지나면 승수(陞授)하여 수년 동안에 앉아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만일 참으로 어질고 유능한 이가 있다면 이렇게 차례를 뛰어 올리는 것도 가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조에서 권세를 농락하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구치곤이 아뢰기를,

"대저 육조의 낭관(郞官)을 중하게 여기는 것은, 기한이 찬 후에는 당연히 승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기한이 차지 못하였더라도 다투어 등용되니 매우 불가합니다."

하고, 어세겸이 아뢰기를,

"무릇 각 관청의 관원을 반드시 그 자리를 채우려 하기 때문에 비록 임기가 차지 못하였더라도 혹 부득이하여 달 수를 헤아리지 않고 제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의 생각으로는 비록 삼공(三公)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상당한 사람이 없으면 그 자리를 비우는 것이 당연합니다. 각 관청 역시 혹 결원이 있더라도 남아 있는 자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니 반드시 자리를 채워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혹 외방에 사신으로 나가는 자가 있으면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지 않더라도 아직은 그 일을 못 보았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을 보아도 반드시 자리를 채우지 않아도 될 것임을 알 수 있으니, 임기를 채우는 법은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하고, 구치곤이 아뢰기를,

"전자에는 만포 첨사(滿浦僉使)를 전례에 따라 당하관(堂下官)으로 제수하였는데, 근자에는 당상관으로 임명하여 보냅니다. 그래서 파주 목사(坡州牧使) 유기창(兪起昌)을 어진 사람으로 여겨 특별히 당상관으로 승진시켜 제수하였는데, 감사 이극균(李克均)이 합당하지 못하다고 아뢰어 갈았으니 관작의 외람됨이 이러합니다."

하고, 승건(承健)은 아뢰기를,

"구치곤의 말이 매우 타당합니다. 근일 임금의 몸이 편치 못하여 경연에 납시지 못하였습니다. 인군의 도는 경연에 납시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바른 말과 곧은 의론을 들어서 시정(時政)의 득실을 아는 것이, 성덕을 함양하는 데 어찌 적게 도움이 된다고 하겠습니까. 또 사람을 쓰는 것은 국가의 중한 일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 쓰는 것뿐만이 아니라 상주고 벌주는 일은 더구나 분명하고 믿음 있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김효강(金孝江)이 해사(該司)와 승정원을 경유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새 법을 만들었는데, 위의 하교에서는 전례가 있었다고 하였으며 또 공신이라 하여 특명으로 버려두게 하였습니다. 성종조에 김효강은 전지(傳旨)를 거짓 전한 일 때문에, 법으로는 형장 1백을 때리고 고신(告身)을 다 빼앗은 다음 먼 곳에 부처480) 하여야 할 것인데, 성종께서 하교하여 이르기를, ‘그 정실인즉 거짓 전한 것이 아니라 잘못 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법조문을 버려둘 수는 없으니 장형(杖刑)만을 면해 주고, 직첩을 거두어 먼 곳에 부처하라.’고 하였습니다. 말을 조금 잘못했어도 이러하였는데, 하물며 마음대로 새 법을 만들어 나라의 정사를 어지럽힌 것이겠습니까."

하니, 왕이 이르기를,

"여러 의논을 보니, 모두 이르기를, ‘전 법조문대로 죄를 줄 수는 없지만 온전히 놓아 줄 수도 없다.’는 것인 듯하오. 나의 생각으로는 전례가 있고 또 그가 공신이고, 무정한 일이기 때문에 〈그저〉 버려둔 것인데 지금 경 등이 이를 말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내가 마땅히 법조문을 감하여 죄를 주겠소."

하였다. 구치곤이 아뢰기를,

"근래 사람들이 모두 당상관을 희망하여, 처음 변방 고을을 제수할 때에는, 연로하거나 병약하더라도 사양하지 않다가 겨우 3년이 지나면, 보전하여 갈려서 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재차 제수하게 되면 늙고 병들었느니 병든 어버이가 있느니하며 백방으로 피하려 하기 때문에 부득이 〈다른 사람을〉 당상관으로 승진시켜 보냈는데, 이것이 다름 아니라 관작을 범람하게 시여하게 된 까닭입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말한 것이 매우 타당하오."

하였다. 구치곤이 아뢰기를,

"노사신(盧思愼)은 군기시 제조(軍器寺提調)만을 갈고 사복시(司僕寺) 제조는 갈지 않았는데, 아비와 아들은 함께 포상 폄출(褒賞貶黜)을 의논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상피(相避)하는 법은 전에 없었기 때문에 이조에서 그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이라도 법을 만들면 이런 폐단은 없을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가하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20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169 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왕실-궁관(宮官)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註 472]
    주부(朱浮) :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 때의 어진 대신.
  • [註 473]
    노대(露臺) : 지붕 없는 건물.
  • [註 474]
    중직(中直) : 중직(中直)은 종3품문관의 품계(品階)이며 판사(判事)는 돈영부(敦寧府)와 의금부(義禁府)에 설치된 종1품직을 말함.
  • [註 475]
    주부(主簿) : 종6품직.
  • [註 476]
    희부기(僖負羈) : 춘추 전국 시대 조(曹)나라의 어진 대부로서 인군에게 정치에 대한 진언하였지만 조나라의 인군은 그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이웃 진(晉)나라에서 곤궁하게 지내면서 조나라 인군의 잘못된 시정을 잘 알고 또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희부기로부터는 남모르는 은혜를 입었다. 때문에 문공이 나중에 본국에 돌아가서 임금이 되어, 조나라를 정복하고는 조나라 인군에게 희부기를 등용하지 않는 죄 등 실책을 책망하면서 장병들에게 명하여 희부기의 집 재산을 노략하는 일이 없도록 명령하였다.
  • [註 477]
    초헌(軺軒) : 2품 이상의 관원이 타던 수레.
  • [註 478]
    적불(赤芾) : 붉은 가죽으로 무릎을 가리운 복식. 대부 이상의 옷이다.
  • [註 479]
    삭수(朔數) : 재임 월수.
  • [註 480]
    부처 : 거주 제한.

○講至日食, 承健曰: "日食變之大者, 人君修德行政, 則災變爲祥。 今觀朱浮上疏以謂: ‘用人之失, 應之也。’人君用人, 不可不愼。" 大司憲丘致崑曰: "近者久不御經筵。 臣等固知上體未寧而然也, 然自九月以後, 累朔不御。 人君固當日接賢士大夫, 以廣聖學。 《書》曰: "愼乃儉德。’ 茅茨、土階, 卑宮室、惡衣服, 文王卽康功、田功, 文帝露臺惜百金之費, 後宮衣不曳地。 古之人君皆以儉德爲尙, 後之人君所當體念也。 且臣聞, 世宗朝愛惜官爵 必滿三十朔, 然後加資、陞授, 而別加不數, 故多以中直, 授判事。 今者別加甚數, 資級濫施, 職帶主簿而資通訓者蓋多, 爲通政者百餘人, 嘉善以上者七十餘人, 官爵之濫, 一至於此。 文公數其不用僖負覊之罪曰: ‘乘軒者三百。’ 《詩》云: ‘彼其之子, 三百赤芾。’ 時亦有貂不足狗尾續之譏, 皆不惜官爵, 濫用小人之故也。 人君須以官爵爲重。" 王顧問左右曰: "大司憲之言何如?" 世謙曰: "致崑之言是矣。 然今用循資格, 在朝之士若朔數已盈, 則例授之資, 不得不爾。 若救此弊, 必盡更張, 事甚不輕。" 王曰: "其來久矣, 不可輕改。" 洪貴達曰: "致崑之言, 不必盡爲更張也, 欲使上意, 愛惜官爵, 特恩外官爵, 不可濫施。" 世謙曰: "近者用人, 雖未滿箇月, 推移轉用。 若過二十朔, 則雖未滿三十朔之期, 猶之可也, 今則纔經十餘朔而陞授, 數年之間, 坐致高位。 若實有賢能, 如是越次可也, 不然, 吏曹不無弄權之弊。" 致崐曰: "大抵以六曹郞官爲重者, 箇滿後當陞職故也。 今者雖未箇滿, 迭出用之甚不可。" 世謙曰: "凡各司官員必須塡差, 故雖未箇滿, 或有不得已而不計月數授之者。 臣意以爲, 雖三公無其人, 則當闕其位, 各司雖或有缺員, 其存者猶可辦事, 不必塡差。 今或有奉使于外者, 雖無他人以代之, 未見其闕事, 則其不必塡差可知。 箇滿之法不可壞也。" 致崐曰: "前者滿浦僉使例授堂下官, 近者, 差遣堂上官, 故以坡州牧使兪起昌爲賢, 特陞堂上授之。 監司李克均以爲不合啓遞, 官爵猥濫如此。" 承健曰: "致崐之言甚當。 近日上體未寧, 故未御經筵。 人君之道, 莫大於御經筵。 聞正言讜論, 而知時政得失, 其於涵養聖德, 豈曰少補? 且用人國家重事, 不可不愼。 非徒用人, 賞罰尤所當明信。 金孝江不由該司、政院, 擅立新法, 上敎以爲有前例, 且以功臣特命棄之。 成宗孝江以傳旨詐傳, 律當決杖一百, 告身盡行追奪, 遠方付處。 成宗敎曰: ‘其情則非詐, 傳乃誤傳也。 然不可全科棄之, 只贖杖, 收職牒, 遠方付處。’ 以言語小失, 尙且如此, 況擅立新法, 以亂國政乎?" 王曰: "觀諸議, 皆云: ‘雖不可全科罪之, 不可全釋。’ 予意以謂, 有前例, 且功臣, 而無情之事, 故棄之。 今卿等言之不已, 予當減科罪之。" 致崐曰: "近來人皆希望堂上, 初授邊邑之時, 雖有老病, 不以爲辭, 而纔過三年, 以保全遞來爲幸。 及其再授之時, 或以老病, 或以病親, 百端窺避, 故不得已陞堂上差遣。 此無他, 官爵濫施之故也。" 王曰: "所言甚當。" 致崐曰: "盧思愼只遞軍器提調, 而不遞司僕提調, 父子不可同議褒貶。 如此相避之法, 已前不立, 故吏曹因循用之。 若今立法, 可無此弊。" 傳曰: "可"


  • 【태백산사고본】 5책 20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169 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왕실-궁관(宮官)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