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에 나가 전조를 감하는 것에 대해 이승건 등의 아뢴 바를 듣다
경연에 납시었다. 광무제 본기(光武帝本紀)의 전조 구제(田租舊制)를 감하는 데까지 강독했다.470) 시강관(侍講官) 이승건(李承健)이 아뢰기를,
"천하의 재보(財寶)는 일정한 수가 있는데, 백성에게 있지 않으면 관가에 있습니다. 재보는 국가의 소중한 것이니 원래 나라에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흩어 두는 것만을 못합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백성이 넉넉하면 인군으로 누가 부족해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왕자(王者)의 부(富)는 백성에게 간직되어 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백성에게 1푼을 너그럽게 하면, 백성은 1푼의 은혜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위에 있는 사람이 재물 모으는 데에 애를 쓰고 백성을 너그럽게 하는 의의를 모르면, 백성은 궁해지고 나라의 근본이 흔들릴 것이요,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인군은 모름지기 백성을 사랑하는 데에 애를 쓰고, 백성을 너그럽게 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야 합니다. 신이 듣사온즉, 근자에 함경·경상도 전세(田稅)의 등급을 경감시키기를 의논하여 실지 은혜가 백성에게 미쳤다 하니 신은 매우 기쁩니다."
하였다. 영사(領事) 어세겸(魚世謙)이 말하기를,
"30분의 1을 세납으로 받는 것을 선유(先儒)가 그르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세금을 적게 하려는 의사였지만 마침내는 〈세납을〉 배와 수레로 헤이게 되어 도리어 백성을 병들게까지 했던 것입니다."
하였는데, 이승건이 아뢰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무제(武帝)471) 때에는 군사를 다하고 무력을 발동하여 해내(海內)가 텅비고 궁핍하여졌기 때문에, 배와 수레로 헤이는 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만일 인군이 절용한다면 30분의 1을 세납으로 받더라도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때 경상도 관찰사 이의(李誼)가 백성의 실정을 생각하지 않고 그 세납을 높이 하니 백성들이 매우 병통으로 생각하였다. 사간원에서 너그럽게 할 것을 청하니 왕이 쫓아서 경하게 하려 하였는데, 호조 판서 이세좌(李世佐)가 오히려 덧붙일 계획을 하여 다만 두어 등급만을 감하니 당시 사람들이 지목하기를, 취렴(聚斂)하는 신하라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20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169 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재정-전세(田稅) / 역사-사학(史學)
○壬午/御經筵。 講至《光武紀》, 減田租舊制, 侍講官李承健曰: "天下財寶, 只有此數, 不在民則在官。 財寶國家所重, 固當聚之於國, 然不若散之於民。 古人云: ‘百姓足, 君誰與不足?’ 又曰 ‘王者之富藏於民。’ 又曰 ‘寬民一分, 則民受一分之賜。’ 若上之人以聚財爲心, 不知寬民之義, 則民窮而邦本搖, 邦本搖則國將危矣。 人君須以愛民爲心, 而寬民爲本。 臣聞, 近者議輕咸鏡、慶尙道田稅等第, 實惠及民, 臣甚喜悅。" 領事魚世謙曰: "三十稅一, 先儒非之。 初以薄賦爲意, 而終至於算舟車, 反爲病民矣。" 承健曰: "不然。 武帝時窮兵、黷武, 海內虛竭, 故至於算舟車。 若人君節用, 則雖三十稅一, 有何不足乎?
【史臣曰: "時, 慶尙道觀察使李誼不恤民隱, 高其年稅, 民甚病焉。 諫院請寬之, 王欲從輕, 戶曹判書李世佐猶懷附益之計, 只減數等, 時人目爲聚斂之臣。"】
- 【태백산사고본】 5책 20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169 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재정-전세(田稅)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