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연산군일기 19권, 연산 2년 11월 23일 병인 2번째기사 1496년 명 홍치(弘治) 9년

사간원이 마음가짐, 경연, 간쟁에 대한 상소 등을 올리다

사간원이 상소하기를,

"신은 들으니 임금이란 조정의 근본이요, 처음 즉위한 이는 또 임금의 근본이니, 고금 천하에서 다스리고 어지러워지는 시초는 임금의 계통(繼統)을 이은 처음에 있는 것입니다. 신 등이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자주 덕음(德音)을 내리시어 우리 도를 일으키고 풍속을 두터이 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으시니, 이것은 실로 전하께서 성덕(聖德)을 빛내고 태평[隆平]을 불러오는 지극한 뜻으로 종묘 사직의 한없는 아름다움이요 신민의 크나큰 행복입니다마는, 우리 도가 일어나고 풍속이 두터워지는 소이(所以)는 오로지 전하의 한 몸에 달려 있습니다.

맹자(孟子)는 이르기를, ‘임금이 어질면 어질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한 번 임금을 바르게 하면 나라가 안정된다.’441)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요는 심술(心術)을 바로하고 경연(經筵)에 나가고 간쟁(諫諍)을 받아들이는 등 몇 가지 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이 몇 가지 일이 모두 이루어지면 우리 도는 저절로 성하고 풍속은 저절로 순수해질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임금의 마음이 한 번 바르면 나머지는 근심이 없다.’고 하였으니, 정사를 헐고 다스림을 해치는 여러가지 폐단은 족히 논할 것이 없습니다. 삼가 몇 가지 일을 조목지어 한 통을 만들어 들이오니,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째는 심술(心術)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신은 들으니, 임금은 오직 만류(萬類)의 종(宗)이요 마음은 곧 한 몸의 주인입니다. 일념(一念)으로 반드시 공경하면 몸이 평안하고 온 천하[九有]의 추대를 누리며, 한 순간이라도 혹시 게을러지면 몸이 위태롭고 백년의 대업을 잃는다고 합니다. 또 들으니,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법이요, 그런데 마음은 법을 제어하는 것은 도요, 도를 보존하는 것은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은 몸의 주인이요, 몸은 집의 근원이요, 집은 나라의 근본입니다. 집이니 나라니 하는 것은 마음을 미루어 하는 것이요, 도니 법이니 하는 것은 마음의 운용하는 것입니다. 천하가 많더라도 다스리는 것은 도에 있고, 사해가 넓더라도 어거하는 것은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학(大學)》 팔조목은 한 마음으로 주인을 삼았으니, 천하로부터 요약하면 몸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마음에서 통어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뜻으로부터 미루어 보면 만사 만물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마음에 주관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마음이 바르면 안에서 연유하여 밖으로 도달케 되어 신이 동하고 하늘이 따르는 것이니 몸이 자연 닦여집니다. 몸이 닦여진지라 집이 자연 정돈되고, 집이 정돈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집니다. 작게는 집에서, 크게는 나라에서 통일 단합[統中元會]함이 모두 나의 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임금은 능히 그 마음을 바로하여 한 마음으로 만물의 화육을 주재할 수 있다면 조정 백관에서 만백성에 이르기까지 바른 데로 귀일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교만하고 사치한 마음은 지극히 높은 데서 생기기 쉽고, 치란 흥망은 한 마음을 조심하고[操] 놓아버리는[舍] 데서 온다.’고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좀 더 유의하소서.

둘째는 경연에 납시는 것입니다.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하면, 옥이 아름답지만 갈고 다듬은 후에만 구슬[珪璋]을 이루며, 금이 단단하지만 갈고 쪼아낸 후라야 좋은 그릇[利器]을 이루는 것입니다. 임금도 천부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반드시 좌우 전후에서 연마하고 익숙해져야만 그 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임금은 한 몸으로 광대한 천하를 통할하며, 한 마음으로 번거로운 만기(萬機)를 다스리는데, 선과 악이 물려 닥치니 옳고 그름을 쉽게 밝히지 못하며, 충성과 간사가 함께 이르니 참과 거짓을 쉽게 분간하지 못합니다. 진실로 옛것을 상고하거나 바른 학문으로써 내 마음의 권(權)·도(度)·승(繩)·묵(墨)을 삼지 않는다면 이치와 의리가 밝지 못하여 많이 들어도 의혹하기 쉽고, 마음과 뜻이 안정되지 못하여 선을 지켜도 혹 변하기 쉽습니다. 성종 대왕께서는 성학(聖學)이 이미 매우 고명하시어, 다시 경연에서 얻을 것이 없었지만 날마다 세 번씩 경연에 납시어서, 큰 선비들과 함께 조석으로 의논하고 생각하시었는데, 이것은 우리 전하께서 친히 보신 바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고명하신 자질을 천품으로 타고나시기는 하였지만 보양(輔養)하는 도도 지극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보양의 도는 언어로 부연하여 아뢰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오랫동안 함양(涵養)하고 훈도(薰陶)하여 바른 말을 듣고 바른 일을 본 후에야 덕성이 안에서 충족되고 도화(道化)가 밖에서 흡족해질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성상의 학문은 아직 성종 대왕을 지나지 못하실 터인데, 즉위하신 이래로 드물게 경연을 여시니, 신 등은 그윽이 의혹하는 바입니다. 이것이 비록 성체가 미령하시어 그렇다고 하지만 깊은 궁궐에 계실 때는 많고, 사대부를 친근히 하시는 날은 적으면 전하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훈도 함양하겠습니까.

옛날 당(唐)나라의 환관 구사량(仇士良)은 그 무리들에게 가르치기를, ‘임금으로 하여금 글을 읽고 옛것을 알게 하지 말며 또 선비들을 곁에 있게 하지 말라. 그가 전 세상의 흥망한 사실을 보고서 마음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할 줄을 알게 되면 우리들은 소외 배척 당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 등이 그윽이 염려하는 것은, 전하께서 경연에 납시지 않으시면 선비는 곁에 있을 기회가 없고, 환관만 날마다 앞에 대하게 되는데, 볕 한 번 쪼이고 열 번 추워지면 움싹이 더러 꺾일 것이며, 제(齊)나라 하나에 많은 초(楚)나라가 있으면 잘못된 것으로 옮겨질까 두렵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정사보시는 여가에는 반드시 일시(日時)에 구애하거나 그 예모를 번거롭게 할 것 없이 지극한 도를 물으신다면 점점 젖어들고 다듬어져서 그르고 편벽된 말이 들어갈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사람을 알면 밝지 않음이 없고, 일을 거행하면 마땅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성덕에 어찌 작은 도움만이겠습니까. 이것이 궁궐 안에 깊이 거처하시면서 근시의 무리들과 친근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손익의 차이가 다를 뿐만이 아닙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현철한 임금은 반 걸음 사이라도 바른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조금 굽어 살피소서.

셋째는 간쟁(諫諍)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 등이 들으니,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임금의 아름다운 덕이다. 임금이 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나라가 위태롭다.’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중훼(仲虺)442)성탕(成湯)을 칭송하기를, ‘간함을 좇아 거스르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부열(傅說)443)고종(高宗)을 경계하기를, ‘간함을 좇으면 성인이 된다.’ 하였습니다. 하물며 성탕·고종과 같은 성군이 아님에야, 더욱 〈간함을〉 받아들이는 데 게을리 하여서는 안됩니다. 대저 임금은 크기는 하늘이요 높기는 신이며 그 위엄은 뇌정입니다. 임금이 진실로 먼저 간함을 거절할 마음이 있다면 대간(臺諫)이 진언 하면 곧 말하기를, ‘색책(塞責)444) 을 하는 것뿐이다.’ 하며, 시종이 선한 말을 하면, ‘명예를 좋아하는 것뿐이다.’고 하면서, 반드시 궁지에 빠질 말로 물으며, 대답하기 어려운 말로 힐문할 것인즉, 신하들로서 자기 몸을 아끼려는 자가 많고 녹만 유지하려는 자가 많으니, 어찌 괴롭게 하늘에 항거하고 신을 저촉하면서 뇌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위엄을 거슬르겠습니까. 이렇기 때문에 나라를 중흥하는 임금은 상을 주어 가면서 간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부터 임금은 누구나 다스리는 임금이 되려고 하지만 항상 어지럽게 되며, 누구나 밝은 임금이 되려고 하지만 항상 혼암(昏暗)하게 되는 것은 그 원인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하고 간함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하의 덕이 성탕·고종과 같은 성인에 모자람이 없는데, 간함을 좇는 도량은 아직도 다 성탕·고종의 순탄함만 같지 못하니, 신 등은 그윽이 의혹됩니다. 즉위하신 이래로 대간의 복합(伏閤)445) 이 거의 없는 날이 없건만, 받아들이는 데에는 아직도 난색을 보이시니, 성왕(聖王)께서 간언 따르기를 흐르는 물과 같이 하는 미덕이 아닌 듯합니다.

옛날 대순(大舜)은 태화(泰和)의 치(治)에 이르렀으니, 아무 일도 말할 것이 없을 것 같으나 백익(伯益)은 법도를 잃음이 없을 것을 경계하였고, 대우(大禹)단주(丹朱)같이 거만함446) 이 없으라고 경계하였습니다. 대순 같은 성인으로서 어찌 법도를 잃거나 단주와 같이 거만하겠습니까마는, 그 신하들의 경계하는 바가 이러하였습니다. 순임금으로서도 경계하여야 할 것인데, 하물며 순임금만 못한 후세의 임금이겠습니까. 우리 태종조에 어떤 조신(朝臣)이 경계하여 아뢰기를, ‘신우(神禑)447) 와 같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태종의 신공 성덕(神功聖德)이 성탕(成湯)·무왕(武王)과 가지런한데 어찌 이런 비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 신하의 말이 미친 것이 아니면 망령된 것이니, 당연히 법으로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태종은 이 신하를 버려 둘 뿐만 아니라 또 받아들이고 상까지 주었습니다. 성왕(聖王)의 도량은 천지(天地)와 같이 크시니, 우리 조선 억만년의 한없는 기업(基業)이 분명코 여기에서 연유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곧 전하의 가법(家法)이니, 공경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신하는 임금에게 잘 간하여야 하는데, 그 간한 것을 임금이 받아들이게 하지 못하게 한다면 참으로 잘 간하는 신하가 아니요, 임금은 간한 것을 잘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신하로 하여금 반드시 간하게 하지 못하게 하면 참으로 간함을 받아들이는 임금이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더욱 간함을 좇는 도량을 넓히시와 신 등은 참으로 잘 간하는 신하가 되고, 전하는 참으로 간함을 잘 받아들이는 임금이 되신다면 이 나라의 더 없는 다행일까 합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는 조금 굽어 살피소서.

옛날에 구양자(歐陽子)는 말하기를, ‘신하로서 말을 다할 수 있는 자는 감히 말하기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으며, 임금으로서 간함을 잘 받아들이는 자는 항상 듣기 어려운 말을 들으려 한다. 그런 후에야만 아래서는 실정을 숨김이 없고 위에서는 들음을 막는 일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말을 다하고서 화를 입는 것은 옛날 사람들이 경계한 바이지만, 말하는 책임에 있는 신하들이 어찌 잠잠하게 있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전하는 춘추가 젊으시고 처음으로 임금의 자리[九五]에 임하시니, 이야말로 성조(聖朝) 융체(隆替)의 근본과 종사(宗社) 안위의 기틀과 사방의 다스리고 어지러워질 수 있는 사단과, 만백성이 잘 살고 못 사는 시초와 군자·소인이 소멸하고 성장하는 갈림과 천명(天命)·인심이 흩어지고 합하여지는 까닭이 바로 오늘에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국가[大器]가 이미 안정되었다 하시지 말고 위태롭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며, 사방이 이미 다스려졌다 하시지 말고 어지럽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며, 신 등의 말하는 몇 가지의 일이 오활하다 하시지 말고 더욱 유의하여 주소서. 아직 보지 못한 일을 조심하시며, 아직 듣지 못한 일에 두려워하시어, 거처하시는 데에서는 일정한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실 때에는 잘못하는 일이 없으시다면 우리 도의 성대함과 풍속의 순후함을 날을 지정할 〈정도로〉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신 등이 전하를 요(堯)·순(舜) 같으신 임금이 되시기를 기약하면서 혹시 털끝만한 실수라도 있을까 염려하여 감히 어리석은 회포를 드러내는 것이니, 전율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고, 다시 아뢰기를,

"문무 신하가 시사(試射)하여 가자(加資)하는 일은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또 노사신(盧思愼) 부자의 상피하는 일은, 어제 비록 하교하시를, ‘전례가 있다.’고 하셨으나 봉상(奉常) 종묘(宗廟)는 다만 제사 등의 일을 주관합니다. 그러나 병조(兵曹)에는 병권(兵權)이 있고, 군기시(軍器寺)에는 군무(軍務)가 있으니, 봉상 종묘 일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상소의 뜻은 매우 좋다. 내가 그것을 써 두고 보아야 하겠다. 너희들이 나를 · 같은 임금으로 되게 하려 한다면서 나를 성종과 같지 못하다고 한다. 무릇 사람의 기질이란 맑고 흐림이 서로 다른 것이니, 어찌 다 같을 수 있겠는가. 시사하여 가자하는 일에 대해서는, 옛사람이 이르기를, ‘문무를 함께 쓰는 것은 장구(長久)의 도다.’고 하였는데, 무사만을 쓰지 않을 것이랴. 상피하는 일은 들어 주지 않는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9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163 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註 441]
    ‘한 번 임금을 바르게 하면 나라가 안정된다.’ : 《맹자》 이루장(離婁章)에 나옴.
  • [註 442]
    중훼(仲虺) : 은(殷)나라의 신하.
  • [註 443]
    부열(傅說) : 은나라의 어진 신하.
  • [註 444]
    색책(塞責) : 책망을 면하거나 책임을 완수하는 것.
  • [註 445]
    복합(伏閤) :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조신이나 유생이 대궐 문에 이르러 엎드려 상소하던 일.
  • [註 446]
    단주(丹朱)같이 거만함 : 단주(丹朱)는 요(堯)임금의 아들. 거만하고 싸다니며 놀기만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요가 순에게 전위하였다. 순임금 때의 신하들은, 순임금에게도 혹시 단주같이 오만하고 법도를 잃는 일이 없을까 하여 이렇게 주의의 말로 권고한 것임.
  • [註 447]
    신우(神禑) : 고려조 말기의 임금.

○司諫院上疏曰:

臣聞, 人君者朝廷之本, 始卽位者又人君之本。 古今天下治亂之端, 莫不由人君繼統之初。 臣等伏覩, 殿下屢降德音, 欲以興吾道、厚風俗爲心, 此實殿下彰聖德、致隆平之至意, 乃宗社無疆之休, 臣民莫大之幸也。 然其所以吾道之興, 風俗之厚, 專在於殿下之一身。 孟子曰: "君仁莫不仁。" 又曰: "一正君而國定矣。" 然則其大要, 不越乎正心術、御經筵、納諫諍數事, 而數事旣盡, 則吾道自爾盛, 風俗自爾淳矣。 古人云: "君心一正, 餘無憂矣。" 若其傷政、害治, 多端弊途, 不足論也。 謹以數事條爲一通, 裨萬分一。 一曰, 正心術。 臣聞, 君惟萬類之宗, 心乃一身之主。 一念必敬, 身安而享九有之戴。 一息或怠, 身危而喪百年之業。 又聞, 治天下者法也, 制法者道也, 存道者心也, 而心者身之主也, 身者家之本也, 家者國之本也。 曰家、曰國者, 心之所推也; 曰道、曰法者, 心之所運也。 天下雖多, 治之在道; 四海雖廣, 御之在心。 故《大學》八條目, 以一心爲主, 自天下而約之, 以至於身, 無一不統於心; 自意而推之, 以至於萬事萬物, 無一不管於心。 心正則由內而達外, 神動天隨, 身自修矣。 身旣修矣, 家自齊矣, 家齊則未有國之不治也。 小而家, 大而國, 統宗元會, 皆不外乎吾之一心焉。 是以, 人君能正其心, 使一心足以宰萬化, 則朝廷百官, 以至萬民, 無不一於正。 古人云: "驕侈之心易生於崇高之極, 而治亂興亡係一心操舍之機。 伏願殿下, 少垂意焉。 二曰, 御經筵。 臣等竊念, 玉雖美, 追琢然後, 成珪璋; 金雖堅, 磨礪然後, 成利器; 人主雖有天資之美, 必賴左右前後磨礱漸漬, 然後乃可以成其德。 況人君以一身統天下之大, 以一心理萬機之煩。 善惡沓至, 是非未易明也; 忠邪竝臻, 眞僞未易辨也。 苟不稽古正學, 以爲吾心之權度繩墨, 則理義不明, 多聽而易惑; 心志不定, 守善而或移矣。 成宗大王聖學已極高明, 宜無待於經筵, 猶日三御經筵, 與鴻碩之儒, 朝夕論思, 此我殿下之所親見也。 今殿下雖睿聖之資, 得於天稟, 而輔養之道, 不可謂不至。 輔養之道非謂言語敷奏之間而已, 必涵養薰陶, 聞正言、見正事, 然後德性內充, 道化外洽矣。 況今聖學恐未踰成宗, 而自卽位以來, 罕開經幄, 臣等竊惑焉。 是雖聖躬未寧而然也, 然居深宮之時多, 而親士大夫之日少, 不識殿下誰與而薰陶涵養歟? 昔之宦官仇士良敎其徒曰: "毋令人主讀書知古, 且勿使儒士在側。 彼見前代興亡, 心知憂懼, 則(王)〔吾〕 輩疎斥矣。" 臣等竊恐, 殿下不御經筵, 則儒士無緣在側, 宦官日接於前, 而一曝十寒, 萌孽或摧, 一, 轉移可畏。 伏願殿下, 聽政之暇, 不必拘其日時, 煩其禮貌, 咨詢至道, 漸漬磨礱, 使非僻之言, 無自而入。 以之知人則無不明, 擧事則無不當, 其於聖德, 豈曰小補? 而與夫深處法宮之中, 親近暬御之徒, 其損益相距, 不啻萬萬。 古人云: "賢哲之君, 跬步不離正人。" 伏願殿下, 少垂察焉。 三曰, 納諫諍。 臣等聞, 納諫人主之美德也。 君不好諫, 則其國危。 是故, 仲虺成湯曰: "從諫弗咈。" 傅說高宗曰: "從諫則聖。" 況非成湯高宗之聖者, 尤不可怠於聽納也。 夫君之大天也, 其尊神也, 其威雷霆也。 人主苟先有拒諫之心, 臺諫而進言, 則曰塞責而已; 侍從而陳善, 則曰好名而已, 問之以必窮之辭, 詰之以難對之言, 則人臣之愛身者多, 持祿者衆, 何苦抗天觸神, 以忤雷霆不測之威哉? 此興王之所以賞之, 而使諫也。 自古人君莫不欲爲治君, 而常至於亂; 莫不欲爲明君, 而常至於昏。 其故無他, 患在於自用, 而不好諫也。 今殿下之德, 無讓於成湯高宗之聖, 從諫之量, 未盡如成湯高宗之易, 臣等竊惑焉。 自卽位以來, 臺諫伏閤, 殆無虛日。 聽納之際, 尙有難色, 恐非聖王從諫如流之美也。 昔大舜臻泰和之治, 若無事可言, 而伯益戒罔失法度, 大禹戒無若丹朱傲。 以大舜之聖, 寧有法度之失, 丹朱之傲, 而其臣之所戒如是。 而可戒則況後世之君之不如乎? 我太宗朝有一朝臣戒曰: "無若辛禑然。" 我太宗神功聖德, 竝駕, 豈有如此之比? 彼臣之言, 非狂則妄, 固宜置之於法。 然太宗不徒捨之, 又從而賞之, 聖王度量, 與天地同其大。 我朝鮮億萬年無疆之業, 未必不由於此, 卽殿下之家法, 而不可不敬念也。 古人云: "臣能諫君, 而不能使其君必納, 非眞能諫之臣; 君能納諫, 而不能使其臣必諫, 非眞納諫之君。" 願殿下益廣從諫之量, 使臣等爲眞能諫之臣, 而殿下爲眞納諫之君, 則國家幸甚。 伏願殿下, 少垂察焉。 昔歐陽子有言曰: "人臣之能盡言者, 不敢避難言之事; 人主之能納諫者, 常欲聞難聽之言, 然後下無隱情, 上無壅聽。" 然則盡言招禍, 雖古人所戒, 言責之臣, 豈宜默默? 況今殿下春秋旣富, 初臨九五, 此正聖朝隆替之本, 宗社安危之機, 四方理亂之端, 生民休戚之始, 君子、小人消長之際, 天命人心離合之由, 正在今日。 殿下毋謂大器已安, 而思所以危; 毋謂四方已治, 而思所以亂; 毋以臣等所言數事爲迂, 而益加之意焉。 敬愼所未見, 恐懼所未聞, 居有常念, 動無過擧, 則吾道之盛, 風俗之淳, 指日可待矣。 臣等期殿下爲之主, 而恐有纖毫之失, 敢露愚抱, 不勝戰慄之至。

仍啓曰: "文武臣試射加資事 甚未便。 且盧思愼父子相避事, 昨日雖敎曰: ‘有前例。’ 然奉常、宗廟只主祭祀等事, 兵曹則有兵權, 軍器寺則有軍務, 非奉常、宗廟之比。" 傳曰: "疏意甚善。 予當書而觀之。 爾等欲予爲之君, 謂予不如成宗。 凡人之氣質, 有淸濁之殊, 安能盡同乎? 試射加資事, 古人云: ‘文武竝用長久之道。’ 武士獨不可用乎? 相避事, 不聽。"


  • 【태백산사고본】 5책 19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163 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