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사의 판부 문제를 승정원 등과 논의하다
승정원이 아뢰기를,
"전번 장례원(掌隷院)에서 아뢴 내수사(內需司)의 관자(闕字)의 판부(判付)356) 는 모두 신 등이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수사원 김여산(金呂山)을 불러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서제(書題)357) 상효손(尙孝孫)이 쓴 것이다.’ 합니다. 대저 정원은 옛부터 후설(喉舌)의 곳이어서 모든 공사(公事)가 반드시 여기를 경유하여 나고 들고 한 후에야만 조정의 기강이 어지럽지 않는 것인데, 지금 내수사에서 멋대로 아뢰고 멋대로 판부를 쓰고 있습니다. 대저 판(判)이라는 것은 왕의 말이기 때문에 주서(注書)·한림(翰林)이라도 쓰지 못하고, 승지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서제가 쓸 수 있겠습니까. 또 내수사의 종 흥수(興守)가 노비(奴婢)를 진고(陳告)하는 것은 위법(違法)이 많기 때문에 성종께서 모두 개정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사실을 조사하는[考核] 때에 있어서 봉안역(奉安驛)에 속할 노비를 본사(本司)에 속하도록 들어 판하(判下)하였는데 판하가 한번 내리면 이미 성명(成命)이 되어, 영영 국법이 되는 것입니다. 대저 입법(立法)이란 비록 조정의 대신이라도 반드시 확실하게 의논하여 정하는 것인데, 어찌 내수사에서 멋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홍문관과 대간이 이것을 가지고 반박 논란하니, 청하옵건대 급히 국문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내수사에서 판부하는 것은 조종조로부터 그러했다. 만일 예전의 준례가 아니라면 당연히 죄주어야 할 것이다. 또 그 노비가 내수사에 속하여야 할 것인지의 여부를 금일 예궐(詣闕)하는 재상들에게 의논하라."
하자, 신승선(愼承善)·어세겸(魚世謙)·한치형(韓致亨)이 의논드리기를,
"내수사에 종 흥수 등이 범람하게 사연을 진고하였는데, 무신년358) 에 의금부에서 추고(推考)할 때, 홍수 등이 증여 받은 노비 3백여 구(口)를 선두안(宣頭案)359) 에 남몰래 등록한 사실을 일일이 초사에서 자복하였습니다. 지금 장례원에서 분간(分揀)할 때, 봉안역의 노비는 그것이 매해 정식 명부[正案]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출생한 해가 아주 다르니 연접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의하면, 아뢴 바 봉안역의 노비는 사실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내수사의 수교(受敎)는 정원을 경유하지 않았으며, 장례원에서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사실을 캐낼 수가 없사오니, 청하옵건대 법사(法司)에 내려 보내어 자세히 사실을 알아서 아뢰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의금부로 하여금 장례원과 내수사에 알아보아 시비를 결단하게 하라."
하였다. 이어 내수사에서 판부한 단자(單子) 백여 장을 내어 정원(政院) 정승들까지 보이며 이르기를,
"내수사에서 멋대로 판부한 것은 이미 전례(前例)가 있었다."
하니, 정승들이 아뢰기를,
"지금 이 단자를 보니, 모두 전곡(錢穀)을 출납한 일들 뿐이요, 비록 노비에 관한 것이 있더라도 유루(遺漏)한 노비를 추쇄(推刷)하는 것뿐이며, 이와 같은 예는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8권 9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145 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신분-천인(賤人)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재정-상공(上供)
- [註 356]판부(判付) : 허가하는 것.
- [註 357]
서제(書題) : 서리.- [註 358]
무신년 : 성종 19년.- [註 359]
선두안(宣頭案) : 내수안(內需案)에 속하는 노비를 20년마다 자세히 조사하여, 새로 만들어 임금에게 바치던 원적부(原籍簿).○承政院啓: "前者掌隷院所啓內需司關字判付, 皆非臣等所書。 故招內需司員金呂山問之, 答曰: ‘此書題尙孝孫所書。’ 夫政院古(親)〔稱〕 喉舌之地。 凡公事必由此出入而後, 朝廷紀綱不亂。 今內需司擅啓, 而擅書判付。 大抵判是王言, 故雖注書、翰林不得書, 而惟承旨得書, 豈書題所得書? 且內需司興守陳告奴婢, 多有違法, 故成宗命皆改正。 今方考核之時, 乃以當屬奉安驛之奴婢, 請屬本司。 又以爲: ‘一般公賤則當盡屬內需司。’ 以此立法判下。 判下一降則已爲成命, 永爲國法矣。 夫立法, 雖朝廷大臣, 必商確以定, 豈內需司所得擅也? 今弘文館與臺諫以此駁論, 請亟鞫問。" 傳曰: "內需司得爲判付, 自祖宗朝然, 若非古例, 固當罪之。 且其奴婢當屬內需司與否, 議于今日詣闕宰相。" 愼承善、魚世謙、韓致亨議: "內需司奴興守等汎濫陳告辭緣, 戊申年義禁府推考時, 興守等受贈奴婢三百餘口, 宣頭案暗錄事, 一一服招。 今掌隷院分揀時, 奉安驛奴婢, 非徒各年正案明白懸付, 其所生年歲懸絶, 不可連接。 據此所啓奉安驛奴婢, 似爲的實。 內需司受敎, 不由政院, 掌隷院亦不知, 未得商覈, 請下法司, 詳加閱實以啓。" 傳曰: "其令義禁府, 辨掌隷院、內需司斷決是非。" 仍出內需司判付單子百餘, 示政院, 政丞等曰: "內需司擅自判付, 已有前例。" 政丞等啓: "今觀此單子, 皆錢穀出納等事而已。 雖有奴婢事, 不過遺漏奴婢推刷而已, 無如此例。"
- 【태백산사고본】 5책 18권 9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145 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신분-천인(賤人)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재정-상공(上供)
- [註 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