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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17권, 연산 2년 8월 19일 계사 3번째기사 1496년 명 홍치(弘治) 9년

평안도 관찰사 등이 동의한 야인 대책을 의논하다.

절도사(節度使) 변종인(卞宗仁)이 동의(同議)한 방략에 이르기를,

"신들이 유서(諭書)의 전단(前段)을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저들로 더불어 약속하여 강 건너 수십 리 사이에 표(標)를 세워서 와서 둔(屯)치게 하지 못하도록 하고, 만약 금령(禁令)을 어기거든 다 적(賊)으로 논하여 용서하지 말자.’하였으나, 신들은 ‘저들이 만약 국가의 호령을 듣고 영안도(永安道)의 성밑 야인(野人)처럼 복종한다면 가하거니와, 저들이 먼 곳의 험한 것을 믿고 국가의 위엄을 겁내지 않고 강변에 왕래하면서 마음대로 사냥하다가 틈을 타서 침범하는 것을 저들이 좋은 계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비록 약속한들 저들은 본디 짐승의 마음이니, 어찌 즐겨 약속을 따르리까. 한갓 국위(國威)만 손상할 뿐이다.’생각합니다. 절도사가 군마를 많이 거느리고 강을 건너가 시위하는 것도 혹시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토단병(土團兵)324) 은 약하고 당조번(當助番)의 군사 또한 적어서 겨우 각자의 경계를 지켜서 농사를 보호하기에도 겨를이 없고, 만약 다만 변방 군사만 징집한다면 군액(軍額)이 많지 못하여 모든 진(鎭)이 빌 것이요, 남병(南兵)을 아울러 징집한다면 당조번(當助番)이 왕래하여 휴식이 없음이 또한 심할 것이니, 이는 시위도 되지 못하고 다만 스스로 먼저 피로할 뿐입니다. 또 강물이 넓고 깊어서 크게 가물어도 두어 달 안에는 오히려 여울을 건너지 못하는데 더구나 각진(各鎭)의 마상선(馬尙船)325) 의 수효가 적어서 대군(大軍)이 건너기 어려울 것이니 전단(前段)의 의논은 단연코 행할 수 없습니다. 신이 유서(諭書)의 후단(後段)을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가 대강(大江)을 경계로 삼았는데, 저 사람들이 만일 약속을 따르지 않고, 혹은 겉으로는 따르고 돌아서서는 위반한다면 어떻게 일일이 책(責)하리오. 책하여도 되지 않으면 위엄만 손상할 뿐이요, 또 물이 얕을 때에는 진병(鎭兵)의 수효가 적어서 열병(閱兵)하려 하여도 군사의 위세가 엄하지 못하여 강여울을 건너기가 또한 어려운데, 저들이 혹 험한 요지에 질러 막는다면 실로 위태한 일이다.’하니, 이는 적실한 의논입니다. 그러나 신들은 생각하기를, 탐지하는 것은 적(賊)의 실정을 미리 알아서 걱정을 방비하고자 하는 것인데, 군사들은 예사로 알아서 탐지하기를 삼가지 않고 낮에는 거짓 강을 건너는 척하였다가 저녁에는 도로 건너오고, 심한 자는 당번이 되면 집에 있으면서 교대하는 날을 기다리되 장수된 자가 역시 예사로 알아서 감독을 엄하게 하지 않으므로 이 때문에 매양 사기(事機)를 잃어서 저들로 하여금 뜻을 얻게 합니다. 신들이 생각하옵건대, 탐지하는 사람이 비바람과 눈서리를 무릅쓰고 푸서리를 걷고 들에서는 잠을 자면서 범의 입으로 깊숙이 들어가는데, 그 위태로움이 이와 같아도 걷는 괴로움만 있고 조그마한 상이 없으니, 만약 능히 탐지하는 자에게는 그 공을 따져서 상으로 베[布]를 주고 특이한 자는 자급(資級)을 올려 영화롭게 하고, 삼가지 않은 자는 죄를 주어 먼 진(鎭)으로 귀양보내어 징계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군사들이 장차 상을 요망하고 죄를 겁내어 반드시 능히 조심해 탐지하여 한 진(鎭)의 이목이 될 것입니다. 또 근년 이래로 저들이 사냥한 것을 탐하여, 모두 큰 화살을 가지고 오랫 동안 강변에 있으면서 조금도 우리를 꺼리는 태도가 없어서, 위원(渭原)으로 깊숙이 들어와 약탈한 뒤에 계속해 벽동(碧潼)의 변(變)이 있어, 변방 백성이 편히 살 수 없어서 혹은 성안으로 들어오고, 혹은 멀리 산막(山幕)으로 들어가서 왕래하면서 농사를 짓고 거름하는 것이 시기를 잃어 장차 살 수 없게 되어 백성의 곤함이 지극한데, 적세(賊勢)는 그치지 않아 다투어 보복할 마음을 품어 강변에 잠복하여 날마다 엿보기를 일삼으니, 그 형세가 징계하지 않고는 그치지 않을 모양입니다. 만약 탐지하는 것을 잘하여 적(賊)의 많고 적은 것을 알고는 우리의 굳센 군사를 선발하여 그 방비 없는 틈을 타서 밤에 가서 부딪치고 또 그 돌아가는 길을 질러 막아서 군사를 매복하여 기다리면 섬멸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이와 같이 하면 저들이 반드시 보복하고자 하여 대거(大擧)하여 군사를 매복시켜 놓고 지치고 약한 자로써 도전할 것이니, 우리는 군사를 거두고 사태를 보면서 건너가 쫓을 생각은 말고 다만 저들로 하여금 왕래하기에 피로하게 하여 이와 같이 두세 번 하여 이익을 얻는 바가 없도록 하면 오래 가면 저들이 장차 마음이 해이하여 마음대로 사냥할 것이니, 우리가 또 방비 없는 틈을 타서 전처럼 무찌른다면 저들이 반드시 강변에서 자취를 거둘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우환이 마침내 쉬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7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136 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註 324]
    토단병(土團兵) : 향토를 자위(自衛)하기 위하여 훈련하는 집단의 군사.
  • [註 325]
    마상선(馬尙船) : 거룻배 뜨는 통나무를 파서 만든 배 따위 작은 배. 마상이.

平安道觀察使李克均、節度使卞宗仁, 同議方略云: "臣等伏覩諭書前段, 或謂: ‘與彼約束, 越邊數十里間立標, 勿令來屯, 如或違禁, 皆以賊論不饒。’ 臣等以爲: ‘彼若聽國家號令, 奔走服役, 如永安道城底野人, 則可矣, 彼恃遠處險危, 不畏國家威勢, 往來江邊, 縱意獵獲, 乘便作耗, 彼謂得計, 我雖約束, 彼本獸心, 安肯從約? 徒損國威耳。’ 節度使多率軍馬, 越江耀兵, 是或可也。 然土團兵弱, 當助番軍卒亦少, 僅守各界, 護農無暇。 若只徵邊兵, 則軍額不多, 而諸鎭空虛。 竝徵南兵, 則當助番往來, 無休亦甚。 此謂不足示威, 而祗自先疲矣。 且江水洪深, 酷旱數三朔內, 猶不涉灘, 況各鎭馬尙船數少, 大軍難涉, 前段之論, 斷不可行也。 臣伏覩諭書後段, 或謂: ‘我以大江爲界, 彼或不從約束, 或貌從背違, 何以一一責之? 責之不得, 傷威損重。 且水淺時, 鎭兵數少, 欲觀兵, 兵勢不嚴, 江灘過涉亦難。 彼或據險要之地, 實是危道。’ 此是的論也。 然臣等以謂: ‘體探所以預知賊情, 欲以備患也, 而士卒狃於尋常, 不謹體探, 晝則佯爲越江, 暮則還渡。 甚者逢點在家, 期待遞日, 而爲將帥者, 亦以爲常, 撿之不嚴。 以此, 每失事機, 令彼得志。’ 臣等竊思之, 體探之人沐風雨、冒霜雪, 草行野宿, 深入虎口。 其危如是, 有道途之苦, 無尺寸之賞。 若能體探者計其功, 或給賞布, 特異者加級以榮之, 不謹者罪配遠鎭以懲之。 如是則士卒將要賞畏罪, 必能謹愼探候, 爲一鎭耳目矣。 且近年以來, 彼人等貪於畋獵, 俱持大箭, 久在江邊, 略無憚我之狀。 自渭原深入虜去之後, 繼有碧潼之變, 邊民不得安居, 或城內疊入, 或遠入山幕, 往來農事, 收穫失時, 將不聊生。 民困極矣, 而賊勢不止, 爭懷報復, 潛伏江邊, 日以窺覘爲事, 其勢不懲不止也。 如謹其體探, 知賊多寡, 抄我勁卒, 乘其無備, 犯夜觸之, 又要其歸路, 伏兵以待, 可以殲之矣。 一度如是, 彼必欲報, 大擧伏兵, 以疲弱挑之。 我則斂兵觀變, 無越逐之意, 但使彼疲於往來。 如是數三, 無所獲利, 久則彼將弛心, 縱意畋獵。 我又乘其無備, 勦擊如前, 則彼必斂迹江邊矣。 不然則患終不息。"


  • 【태백산사고본】 5책 17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136 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