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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17권, 연산 2년 8월 10일 갑신 1번째기사 1496년 명 홍치(弘治) 9년

정언 안팽수가 윤민·이극규를 죄주기를 청하다

정언 안팽수(安彭壽)가 아뢰기를,

"신이 오늘 처음 출사(出仕)할 때에 동료와 회의하지는 않았습니다마는 공론의 있는 바에 독계(獨啓)하는 것으로써 혐의를 삼지 못하겠습니다. 신주와 사당을 세우는 것은 선왕의 유교가 지극히 엄중한 것이니, 단연코 거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이 듣자옵건대, 유교에 ‘후일의 간사함을 막는 것은 임금의 할 일이므로 내 백년 뒤에라도 길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라.’하셨으니, 대저 아버지의 믿는 바는 아들이요, 임금의 믿는 바는 신하인데, 전하께서 통(統)을 이어받으셔서 능(陵)에 흙이 마르기도 전에 부왕(父王)의 유교를 배반하시니, 하늘에 계신 선왕의 영(靈)이 장차 누구를 믿겠습니까. 신이 아뢴 바 선왕의 유교를 따르시라는 것은 만세의 군신·부자의 대의(大義)요, 전하께서 신주와 사당을 세우는 일은 한 몸의 사은(私恩)이니, 사은과 대의 경중(輕重)이 스스로 판별되어 결단하기가 매우 쉬운 것입니다. 대간의 직책은 임금의 그른 것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써 자기의 임무로 삼는 것인데, 전하께서 선왕의 유교를 어기고 사친(私親)의 은혜만 생각하시어 허물이 장차 가리기 어렵게 되었으니, 대간으로서는 중한 꾸중을 피하지 않고 바로 간하여 임금을 허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인데, 윤민·이극규가 취임하는 처음에 임금의 비위를 맞추어 하늘에 계신 선왕의 영을 배반하였고, 이의무(李宜茂)는 처음에 동료와 회의하여 간하다가 지금은 중간에 변하여 영합하는 윤민극규를 따르니, 내치어서 그 영합하는 죄를 다스리소서."

하니, 들어 주지 않았다. 사간 민휘(閔暉)·장령 허집(許輯)이 아뢰기를,

"논핵을 당하고서 도리서 논핵한 자를 공격하는 것은 옛적에 없던 일입니다. 등이 도리어 신들이 정직하지 못하다거니 간사하다거니 하여 갖은 말로 헐뜯으니, 신이 깊이 통분합니다. 추국하소서."

하니, 들어 주지 않았다. 대사헌 윤민·대사간 이극규·집의 이의무가 아뢰기를,

"어제 신들이 동료에게 논핵을 당하였으므로 피혐하였더니 하교에 ‘만약 경들이 피혐한다 하여 체직시킨다면 이는 저들이 옳고 경 등을 그르다 하는 것이므로 체직시키지 않는다.’하셨습니다. 대저 시비(是非)는 둘이 함께 서지 못하는 것인데, 어찌 다 옳을 리가 있겠습니까. 변정(卞正)하소서."

하고, 의무가 또 서계(書啓)하기를,

"장령 허집(許輯) 등이 신을 논하되, ‘사당과 신주를 세우는 일은 처음에는 신들과 같은 사연으로 간하다가 이극규의 말을 듣고는 곧 그와 의논을 같이 하여 중지하고 간하지 않는다.’하여, 이것으로써 신을 허물합니다. 신이 사당을 세우는 일에 대하여 극규의 말로 인하여 곧 중지하고 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의 처음 마음으로는 반드시 전하의 마음을 돌리려 하여, 말을 다하지 않음이 없어 여러 번 사직까지 하였으되 전하의 들어 주지 않으심이 전일과 같으므로 신이 끝내 윤허되지 못할 줄 알고 좌중에 말하기를, ‘임금의 뜻은 마침내 돌릴 수 없는데 우리들의 간하는 것 또한 중지하지 않으니, 마음으로는 임금의 뜻을 돌릴 수 없음을 알면서도 오히려 중지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미안한데, 여러분의 뜻은 어떠한가?’하니, 좌중이 대부분 신의 말을 옳다 하면서 답하기를, ‘우리들도 임금의 뜻을 돌릴 수 없음을 알지마는 다만 홍문관에서 요즘 다시 아뢰려 한다 하니, 얼른 중지할 수는 없고 간략한 말씀으로 간하여 홍문관의 뜻을 살펴보고 또한 대사헌·대사간이 나오기를 기다려서 거취(去就)를 함께 의논함이 옳다….’하기에, 신이 곧 답하기를, ‘만약 그 불가한 줄 알면 곧 중지하고 말하지 않을 것이지 남의 말을 어찌 관계하랴. 나는 마음이 이미 정하여졌으니 어찌 다른 사람을 기다리리오.’하고, 이 뒤로부터는 신은 간하지 않았고 사간 이하는 간하였으되 간하는 것이 또 격절하지 않아 그저 끌어 갈 뿐이었으니, 참으로 성심과 정직한 도리가 아닙니다. 신이 마음으로 부족하게 여겨,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음으로는 간하지 아니하고자 하면서, 남이 자기를 의논할 것을 겁내어 간하지 않는다는 이름을 피하기 위하여, 남이 옳게 여기고 그르게 여기는 것을 억지로 따르는 것이니, 이는 언관(言官)의 정직한 마음이 아니다.’고 생각하였더니, 대사간 이극규가 나오게 되어서는 또한 나는 간하려 하지 않는다 하여, 그 뜻이 신과 같았을 뿐이니, 신이 어찌 그 말을 들은 뒤에 중지하였겠습니까. 지금 장령 이하가 신을 논하기를 ‘처음에는 합사(合司)하여 간하다가 대사간의 말을 들은 뒤에 간하지 않는다.’하여, 이것으로써 신을 허물하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저들이 신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요, 또한 스스로 중지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특히 남들이 자기를 의논하는 것을 겁낼 뿐인데, 이제 도리어 신이 간언을 중지하였다 하니, 통분함을 금치 못합니다. 이제 신이 저들과 뜻이 맞지 않으니,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저들은 부왕(父王)의 유교가 중하다 하기 때문에 이런 강개(慷慨)한 말을 하는 것이요, 그대들은 낳아 기른 은혜가 중하다 하기 때문에 이런 부득이한 말을 한 것이니, 어찌 그 사이에 옳고 그른 것을 가리겠는가."

하였다.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이 아뢰기를,

"대간이 이처럼 서로 공박하니, 반드시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 양편을 다 체직하소서."

하고, 승지 강귀손이 아뢰기를,

"대사헌 등이 장관으로서 논핵을 당하였으니, 이는 사중(司中)에서 용납되지 못한 것입니다. 저들 〈대사헌 논핵한 자들도〉 마음으로는 간하지 않고자 하면서도 남들이 자기를 의논할까 두려워하여 논계하기를 질질 끌어서 정지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무릇 대간이란 소회가 있으면 반드시 아뢰어 자기 몸을 곧게 행할 것이옵지 어찌 물의(物議)에 끌려서 억지로 남이 옳게 여기고 그르게 여기는 것을 따르겠습니까? 양편을 다 체직시키소서. 다만 그중에 사간 민휘와 정언 안팽수는 출사(出仕)한 지 얼마 안 되어 서로 공박하는 데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체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간(臺諫)들을 모두 체직시키겠다."

하매, 강귀손이 다시 아뢰기를,

"대사헌·대사간·집의는 체직시키는 것이 옳거니와, 사간·정언까지도 아울러 체직한다면 외인(外人)의 듣고 보기에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만약 체직하지 않는다면 저들이 반드시 홀로 체직되지 않음으로써 혐의로 삼을 것이니, 모두 체직시킨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132 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甲申/正言安彭壽啓: "臣今日始仕時, 未與同僚會議, 然公論所在, 不以獨啓爲嫌。 立主立廟, 先王遺敎至重, 斷不可擧。 臣伏聞, 遺敎曰: ‘防之後奸, 君之政也。 雖予百年之後, 永遵父志。’ 夫父之所信子也, 君之所任臣也。 殿下繼體承祧, 抔土未乾, 背父王之敎, 臣不敢知先王在天之靈, 將安信乎。 臣所啓遵先王之敎, 萬世君臣、父子之大義。 殿下立主立廟之擧, 一己之私恩, 私恩與大義, 輕重自判, 斷之甚易。 臺諫之職, 以格君之非爲己任。 殿下違先王之敎, 念私親之恩, 過將難掩。 爲臺諫者, 當不避重誅以直諫, 納君於無過之地, 而尹慜克圭拜職之初, 迎合主意, 背先王在天之靈。 宜茂初與同僚會議以諫, 今也中變, 從尹慜克圭之迎合, 當黜斥以正迎合之罪。" 不聽。 司諫閔暉、掌令許輯啓: "被劾而反攻論者, 古未有也。 等反以臣等爲不直也、回譎也, 極口詆毁, 臣深痛焉。 請推鞫。" 不聽。 大司憲尹慜、大司諫李克圭、執義李宜茂啓: "昨日臣等被劾於同僚, 故避嫌, 乃敎云: ‘若以卿等避嫌而遞之, 則是以彼爲是, 而卿等爲非, 故不遞。’ 大抵是非不兩立, 豈有兩是之理? 請卞正。" 宜茂又書啓:

    掌令許輯等論臣云: "立廟立主事, 初則與臣等同辭以諫, 及聞李克圭之言, 卽同其議, 中止不諫。" 以此咎臣。 臣於立廟之擧, 非因克圭之言, 卽止不諫也。 臣之初心, 必欲回天, 言無不盡, 至於辭職者屢矣, 而殿下之不聽猶昔, 臣知其終不允, 言于坐中曰: "天意終不可回, 吾等之諫亦不止。 心知其不可回天, 而猶且不止, 於心未安。 僉意何如?" 坐中多以臣言爲是, 而答之曰: "吾等亦知天意之不可回也。 但弘文館近欲更啓, 不可遽止。 當略其辭以諫, 觀弘文館之意, 亦待大司憲、大司諫之出, 共議去就可也。" 云云。 臣卽答曰: "如知其不可, 卽止不言, 奚恤人言? 我則心志已定, 何待他人?" 自此之後, 臣則不諫, 而司諫以下諫之, 諫且不切, 連延而已, 眞非誠心與直道也。 臣私心恨之以爲, 此無他, 心欲不諫, 而畏人之議己, 欲避不諫之名, 强隨人之是非, 此非言官正直之心也。 及大司諫李克圭出則亦云: "吾不欲諫也。" 其意乃與臣同耳, 臣豈聽其言而後止哉? 今掌令以下論臣曰: "初則合司以諫, 及聞大司諫言, 然後不諫。" 以此咎臣, 此何意也? 彼等非不知臣之意也, 亦非不欲自止也, 特怵於人之議己, 今反以臣爲中止, 不勝痛憤。 今臣旣與彼等不合, 不宜共處。

    傳曰: "彼等以父王遺敎爲重, 故爲此慷慨之言; 爾等以誕育之恩爲重, 故爲此不得已之言, 豈可辨是非於其間?" 領議政愼承善啓: "臺諫如是相攻, 必不得相容, 請兩遞。" 承旨姜龜孫啓: "大司憲等以僚長被劾, 是則不容於司中也, 彼等心欲不諫, 而畏人之議己, 連延不止而已。 凡臺諫有懷必達, 直己而行, 豈可牽於物議, 强隨人之是非? 請竝遞其職。 但其中司諫閔暉、正言安彭壽, 則出仕未久, 不與於攻駁之間, 當勿遞。" 傳曰: "臺諫等其皆遞之。" 龜孫更啓: "大司憲、大司諫、執義則遞之可也。 若司諫、正言則亦命竝遞, 其於外人聞見何?" 傳曰: "若獨不遞之, 則彼必以獨不遞爲嫌, 其竝遞之。"


    • 【태백산사고본】 5책 1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132 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