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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12권, 연산 2년 2월 29일 정축 4번째기사 1496년 명 홍치(弘治) 9년

대간이 경연에 힘쓸 것 등을 상소하다

대간이 상소하기를,

"신들이 듣자옵건대, ‘상(上)에서 법을 취하면 겨우 그 중(中)을 얻고, 중에서 법을 취하면 이는 하(下)가 된다.’하옵는데, 고니[鵠]를 새기다 이루지 못하면 그래도 따오기[鶩]와 같지만, 범을 그리다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 개와 같다는 비유가 정히 이를 이른 것이니, 사대부도 오히려 이러한데, 하물며 임금임에리까. 이러므로 옛날의 크게 유위(有爲)한 임금은 뜻을 세움을 먼저 할 일로 삼지 않은 이가 없으니, 뜻을 세움이 높은 데에 있으면 작게 이루는 것으로써 만족하게 여기지 않아서 진취하는 바가 원대한 데에 도달하고, 뜻을 세움이 높지 않으면 소행이 사위(事爲)의 말단에 급급한 데에 지나지 않아서 날로 낮은 데로 향할 따름입니다. 전일에 신들이 전하의 과실을 논하였더니, 하교하시기를, ‘사람이 요(堯)·순(舜)이 아니고는 누가 과실이 없겠느냐.’하시고, 전하께서 간쟁을 거절하시는 것을 논하였더니, 하교하시기를, ‘너희들이 비록 그렇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겠느냐.’하시매, 신들은 전하께서 우연히 이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여겼사온데, 이제 와서 보니, 전하께서 실정(失政)은 더욱 심해지고 간쟁은 더욱 굳게 거절하시면서 오히려 회오(悔悟)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하교하시기를, ‘내가 밝지 못하다.…’하셨습니다. 아아! 임금이 간쟁을 거절하는 것을 금기로 삼지 않으면 정론(正論)이 어디로부터 나오겠으며, 요(堯)·순(舜) 같기를 스스로 기약하지 않으면 좋은 정치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겠습니까.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그 뜻을 정하시어 · 같기를 기약하시고서, ·의 정일(精一)하여 중(中)을 잡은 것이 제왕의 학문이 된다는 것을 들으시면, ‘저도 임금이요 나도 임금인데, 저는 이를 능히 하거늘 나는 이를 능히 하지 못한단 말인가.’하시고, 날로 경연(經筵)에 납시어 치도(治道)를 강론하시고 ·이 여러 신하에게 어진 정승을 천거하게 하여, 그를 백규(百揆)091) 에 앉혀서 평화롭고 명랑한 정치를 이루었다는 것을 들으시면, 자신을 책하기를, ‘저도 임금이요 나도 임금인데 저는 이것을 능히 하거늘 나는 이것을 능히 하지 못한단 말인가.’하시와 어진 정승을 가려 천위(天位)를 함께하여 ·과 같지 못한 것은 버리고 ·과 같은 데로만 나아갈 것을 생각하소서. 간쟁(諫諍)을 받아들이고 환시(宦寺)를 억제하고 형벌(刑罰)을 삼가고 민력(民力)을 아끼는 일 같은 것으로 말하면 모두 지금 당한 급무이오니, 전하께서 이 두어 가지 일을 지성으로 행하신다면 어찌 ·에게 미치지 못할 것을 걱정하오리까. 삼가 그 일을 아래와 같이 아룁니다.

1. 경연(經筵)에 부지런하는 것입니다. 무릇 임금의 마음은 다스림을 만들어 내는 근본인 동시에 만화(萬化)의 근원이니, 그 본원(本源)이 맑고 깨끗하여 마치 거울이 비치고 저울대가 평평한 것과 같으면, 능히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게 알아서 사람을 쓰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각각 마땅함을 갖게 될 것이오며, 다스림을 만들어 내는 근본을 깨끗하게 하게 온갖 정화(政化)의 근원을 맑게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오라, 다만 경연에 부지런히 납시어 성학(聖學)을 강명(講明)하고 치도(治道)를 자문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근자에 옥체(玉體)가 미령하시어 경연에 납시지 않은 적이 거의 서너 달이 되었사오니, 비단 성학(聖學)이 중도에서 폐하게 된 것뿐만이 아니라, 어진 사대부(士大夫)들을 접견하실 길이 없고, 금중(禁中)에서 대하시는 것은 내시 밖에 없으니, 모르시는 가운데에 마음이 옮겨가고 뜻을 빼앗기는 것이 어찌 적다하오리까. 〈이런 처지로서는〉 사람을 쓰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 정도(正道)를 얻지 못함을 괴이하게 여길 수 없사옵니다. 옛날 한 고조(漢高祖)가 병이 나서, 문지기에게 명령하여 여러 신하를 들여보내지 못하게 했는데, 번쾌(樊噲)가 문을 밀고 곧장 들어가고 대신들이 그 뒤를 따라가 보니, 고조가 내시 한 사람을 베개삼아 누워 있으므로 번쾌 등이 고조를 뵙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폐하(陛下)는 유독 조고(趙高)의 일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하니, 고조가 웃고 일어났습니다. 대저 문을 밀고 들어가 뵙는 것은 진실로 임금이 하루라도 정사(正士)를 보지 않으면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들이 득의하여 총명을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성궁(聖躬)이 강거하시게 되면 경연을 게을리하지 마시고 시종 여일하게 하소서.

2. 어진 정승을 택하는 것입니다. 삼공(三公)이란 임금의 팔다리요 백관(百官)의 모범이라, 국가의 치란(治亂)과 종사(宗社)의 안위(安危)가 하나도 관계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정괄(鄭佸)이 죽은 뒤로 전하는 여러 달 정승을 자리를 비워 두시니, 온 나라 사람이 모두 목을 늘이고 눈을 씻으며 어진 정승이 나오기를 기대하였는데, 급기야 선마(宣麻)092) 를 보니 용렬한 정문형(鄭文炯)이었으니, 누구인들 실망하지 않으리까. 대저 서까래의 지목은 대들보에 알맞지 않고 느린 말[馬]의 자질로는 운소(雲霄)에 올라가지 못하는 법이온데, 지금 문형(文炯)을 삼공의 자리에 앉힌 것은 곧 서까래를 대들보로 쓰고 느린 말로 운소에 오르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러고서 지치(至治)를 이루고자 바란다는 것은 역시 어렵지 않겠습니까.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문형을 파직하시고 알맞은 인재를 다시 구하여 삼공의 소임을 맡기소서.

3. 간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나무는 먹줄을 맞으면 곧아지고, 임금은 간언을 들으면 성스러워진다.’하였고, 전(傳)에 이르기를, ‘좋은 약이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충성된 말이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다.’하였으니, 예로부터 지금까지에 간쟁을 거절하고서 어지러워지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진 시황(秦始皇)이 직언을 듣기 싫어하다가 망이궁지변(望夷宮之變)093) 을 빚어냈고, 수 양제(隋煬帝)가 사람들이 자기에게 아첨하는 것을 좋아하다가 강도지화(江都之禍)094) 를 재촉한 일 같은 것은, 앞에 간 수레가 엎어진 것을 뒤에 오는 수레가 조심해야 하는 본보기인데, 근일에 대간의 논계를 하나도 들어 주신 일이 없으시니, 심히 조정의 복이 아니옵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아집을 버리시고 남의 공정한 의견을 다르시며, 허심 탄회하여 간쟁을 받아들이소서.

4. 내시들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내시는 궁중을 지키고 명령을 전달할 따름이니, 어찌 조정의 공사(公事)에 간여할 수 있으리까. 한(漢)·당(唐)의 말엽에 내시들이 권세를 부려 조정의 정사에 멋대로 간여하여 마침내는 공경(公卿)을 노예와 같이 보고 천자(天子)를 문생(門生)과 같이 여겨, 나라의 형세가 무너져서 그 화가 참혹하였으니, 이는 대개 일찌감치 분변하지 않은 데서 말미암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오직 우리 성종대왕께서 이 폐단을 깊이 아시고 법으로써 통렬히 다스리시되 털끝만큼도 용서하지 않으셨으니, 사왕(嗣王)이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부터 내시들이 용사(用事)하기 시작하여 용선(用善)은 앞에서 먼저 부르고 효강(孝江)은 뒤에서 화답하였사온데, 그 문서와 법령(法令)을 농간하여 천청(天聽)을 기만한 죄는 효강이 오히려 용선보다 더하오니, 용선·효강이 어찌 유독 성종 앞에서는 손을 움츠리고 전하 때에는 간사를 부리는 것입니까? 어찌 전하의 첫 정사에 한 번 시험하여 그 천심(淺深)을 엿보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정에 있는 신하들로서는 한심이 여기지 않는 자가 없사온데, 전하께서만 깨닫지 못하시니, 어찌 통분하지 않겠습니까.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그 죄를 다스리시어 그 나머지 자들을 일깨우소서.

5. 형벌(刑罰)을 삼가는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어쩌다가 저지른 재앙은 사(赦)해 주고, 고의로 방종한 것은 형(刑)을 가한다.’하였으니, 만약 죄가 중형에 해당하는데 도리어 경하게 하면 간악한 마음을 키우는 것이 되고 죄가 경형에 해당하는데 도리어 중하게 하면 호생(好生)의 덕을 이지러지게 하는 것이므로 진실로 기쁨으로 인하여 가벼이 풀어 주어도 안되고, 성남으로 인하여 지나치게 죄주어도 안됩니다. 근일에 와서 한때의 사랑과 미움으로써 경중이 전도되는 것은 매우 작은 일이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밝히 살피시고 신중히 처결하시어 중(中)을 잃지 말게 하소서.

6. 민력(民力)을 아끼는 것입니다. 옛날의 성왕(聖王)은 백성을 보기를 상할 것 같이 여겨 어린 아이를 보호하듯이 할 뿐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편안하고자 하는 것을 알면 어루만져서 수고롭지 않게 하며, 백성이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알면 후히 하여 궁곤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왕씨(王氏)는 말하기를, ‘세상을 다스리는 데 백성을 사랑하는 것만한 방법이 없다’하였고, 맹자(孟子)는 이르기를,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 못하다’하였으니, 진실로 백성이란 오직 나라의 근본이어서 근본이 굳건해야 나라가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성상(聖上)께서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는데도 대신(大臣)이 한 가지 일을 맡게 되면 백성들의 농사때임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봉행하여 일을 끝내는 것만을 능사로 삼아서 국맥(國脈)을 쇠잔하게 하려는 것입니까? 근자에 축성 체찰사(築城體察使)가 개성부(開城府)·한산군(韓山郡) 등을 계청(啓請)하여, 아울러 올 봄 안으로 성을 쌓고자 하는 것을 전하께서 신들의 말을 들으시고 명하여 정지시키셨는데, 체찰사가 자기 뜻이 달성되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여겨서 힘써 전의(前議)를 주장하여 다시 시행할 것을 청하여, 전하의 백성을 사랑스럽게 마음으로 하여금 도리어 백성을 해롭게 하는 일을 하시게 하였으니, 신들은 통분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대개 개성부한산군은 모두 다 내지(內地)로서 조석에 적(敵)을 받을 땅이 아니오니, 민력이 소생되고 농사가 한가한 때를 기다려서 쌓더라도 역시 늦지 않습니다. 신이 보기로는, 이 두 도(道)의 백성이 국상(國喪)을 당한 이래로 일차로 산릉(山陵)의 상장(喪葬)의 역사에 피곤했고, 재차로 중국 사신의 행차에 피곤했으며, 또 선릉(宣陵)에 나무를 심고 장생전(長生殿)에 황장목(黃腸木)을 운반하는 역군을 계속해서 조달했고, 그 나머지 공부(貢賦)를 출하하는 역꾼도 역시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니, 한 집의 재력은 한도가 있사온데, 백성 부리는 역사는 쉴 줄을 모른다면 어찌 측은하지 않으리까. 이때를 당해서는 비록 입은 옷을 벗어서 입혀 주고, 먹는 밥을 밀어 주어 먹이더라도 오히려 유리 분산을 면하지 못할 터인데, 어찌 그 농사철도 헤아리지 않고서 또 성 쌓는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까. 나라를 튼튼히 하기를 원하면서, 도리어 나라의 근본을 흔든다면 되겠습니까. 단 강원(江原) 일도는 토지가 메마르고 주민이 드물어서 다른 도에 비할 바가 아니며, 근일에 와서는 그 힘이 더욱 피곤하온데, 어찌 이미 피곤한 백성을 출역시켜 바닷물을 달여서 소금을 만들어 이 쓸데없는 승도(僧徒)들을 공양해서 되겠습니까. 하물며 불교의 요망하고 황탄함은 새 정사에 있어 마땅히 먼저 배척해야 할 바이온데, 지금 비록 그 무리들을 다 뽑아다가 군액(軍額)에 충당은 못할망정 어찌 존숭하고 신앙하여 백성의 힘을 수고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왕은 그 덕을 써서 하느님께 기원하여 명(命)을 길게 하소서.’하셨으니, 옛날의 제왕은 덕을 공경하는 것으로써 명을 길게 하는 실상을 삼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으로써 연대를 오래 가게 하는 근원을 삼았으며, 일찍이 부처에게 아첨하여 복과 수를 얻었다고 듣지 못했습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급하지 않은 역사를 정지하여 민력을 늦추어 주고 나라의 근본을 굳건히 하소서.

7. 구장(舊章)095) 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어기지도 잊지도 말고 옛 제도만을 따르라.’하였고,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선왕의 성헌(成憲)을 본뜨시어 길이 어김이 없게 하소서.’하였습니다. 주(周)나라에서는 선왕·강왕[成康]을 이르고, 한(漢)나라에서는 문제(文帝)·경제(景帝)을 일컫는 것은 능히 문왕·무왕[文武]고제·혜제[高惠]의 법을 지켰기 때문이니, 주(周)의 자손이 길이 문왕·무왕의 법을 지켰다면 어찌 능이 쇠락(衰落)하기에 이르렀으며, 한(漢)의 자손이 길이 고제·혜제의 법을 지켰다면 어찌 위망에 이르렀겠습니까. 오직 우리 성종대왕께서 세상에 뛰어나신 고견으로 날마다 원신(元臣) 석보(碩輔)와 더불어 둘다 깊이 생각하고 먼 장래를 염려하시어 짐작 손익(損益)하여 《대전횡간속록(大典橫看續錄)》을 만들었는데, 무릇 정사를 좀먹고 백성을 해롭게 하는 것은 모두 삭제하고 싣지 아니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기구로 삼았으니, 그 자손 만세를 위한 계획이 지극하신 것이옵거니와, 전하께서는 이를 준수하여 잃어버리지 마셔야 하며, 일시의 이해(利害)로 자주 고쳐서는 안됩니다. 전하께서 비록 효강(孝江)의 편녕(偏佞)을 사랑하실지라도 하늘에 계신 성종의 영(靈)에 어찌 하시겠습니까.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그 법을 준수하여 길이 길이 어김이 없게 하소서. 옛날 이윤(伊尹)태갑(太甲)의 상신(相臣)이 되자 말하기를, ‘나는 내 임금을 ·으로 만들지 못하면 마음에 부끄러워서 마치 저자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과 같다.’하였는데, 태갑이 그 말을 아름답게 받아들여 능히 진실한 덕으로 끝마쳤으니, 태갑은 비록 중등 가는 임금이라 해도 오히려 ·으로써 스스로 기약하였는데, 하물며 전하께서는 생지(生知)의 성(聖)으로서 ·으로써 스스로 기약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태갑(太甲)의 아래에 계시겠습니까. 동중서(董仲舒)는 말하기를, ‘학문을 힘쓰면 견문이 해박하여 아는 것이 더욱 밝아지고, 힘써 도(道)가 행하면 덕이 날로 나아가서 크게 공효가 있다.’하였고, 또 ‘생각을 더하는 데에 있을 따름이다.’하였으니,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이 말을 체득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상소의 사연은 진실로 좋으니, 내가 두고 보겠으며, 말한 일에 대해서는 들을 수 없다. 다만 상소에 경연에 나가지 않는 것을 들어 말한 것은 나 역시 그렇게 여기나 내가 바야흐로 병으로 복약(服藥)하고 있으므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하매, 대간이 사직하고 물러갔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2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77 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 / 재정-역(役)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왕실-경연(經筵) / 왕실-궁관(宮官) / 역사-고사(故事)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

  • [註 091]
    백규(百揆) : 온갖 벼슬아치의 어른.
  • [註 092]
    선마(宣麻) : 누른 빛 또는 흰 빛의 마지(麻紙)에 조(詔)를 쓰는 것. 곧 임금이 재상을 임명하는 사령서를 뜻함.
  • [註 093]
    망이궁지변(望夷宮之變) : 망이궁(望夷宮)은 진(秦)의 궁 이름. 조고(趙高)가 여기서 이세(二世:호해(胡亥)를 말함)를 시해(弑害)하였음.
  • [註 094]
    강도지화(江都之禍) : 강도(江都)는 수(隋)의 지명, 수 양제(隋煬帝)가 여기서 우문 화급(宇文化及)에게 시해되었음.
  • [註 095]
    구장(舊章) : 선왕의 법.

○臺諫上疏曰:

臣等聞, 取法於上, 僅得其中; 取法於中, 斯爲下矣。 刻鵠類鶩, 畫虎類狗之喩, 正爲此也。 士大夫猶然, 況人主乎? 是以, 古之大有爲之君, 莫不以立志爲先。 立志在高, 則不以小成爲安, 而所就極於遠大; 立志不高, 則所行不過規規於事爲之末, 而日趨於汙下矣。 前日臣等論殿下過擧, 則敎之曰: "人非, 孰無過咎?" 論殿下拒諫, 則敎之曰: "爾雖云然, 予其畏哉?" 臣等以爲, 殿下偶發此言耳。 及今觀之, 則殿下失政滋甚, 拒諫益堅, 而猶不悔悟, 反敎之曰: "予不明。" 云云。 噫! 人君不以拒諫爲忌, 則正論何自而進; 不以(目)〔自〕 期, 則善治何由而致乎? 願殿下先定其志, 以爲期, 聞精一執中爲帝王之學, 則曰: "彼君也, 予君也, 彼能是, 而予乃不能是?" 日御經筵, 講論治道, 聞疇咨(君)〔群〕 臣, 擧賢相使宅百揆, 以致雍熙之治, 則責於己曰: "彼君也, 予君也。 彼能是, 而予乃不能是?" 擇賢相共天位, 以思去其不如, 而就如者。 至如納諫諍、抑宦寺、愼刑罰、愛民力, 皆當今之急務也。 殿下於此數事, 行之以至誠, 則何患乎不及也? 謹陳其事如左。 一曰, 勤經筵。 夫君心出治之本, 而萬化之源也。 本源澄淸, 如鑑空衡平, 能是是非非, 用人處事各當其可。 淸出治之本, 澄萬化之源, 不在乎他, 只在勤御經筵, 講明聖學, 迎訪治道耳。 頃緣聖體未寧, 不御經筵, 殆三四朔。 非徒聖學中廢, 賢士大夫無由接見, 禁中與居, 不過宦寺, 潛移默奪於冥冥之中者豈少哉? 無怪乎用人處事之未得其道也。 昔 高祖有疾, 詔戶者, 無得入群臣。 樊噲排闥直入, 大臣隨之, 上獨枕一宦者臥。 等見上流涕曰: "陛下獨不見趙高之事乎?" 帝笑而起。 夫排闥入見者, 誠以人君一日不見正士, 則姦侫得志, 壅蔽聰明。 願殿下竢聖躬强康, 毋怠經筵, 終始如一而已。 二曰, 擇賢相。 三公股肱, 一人表率百官。 國家治亂, 宗社安危, 無一不係。 鄭佸之死, 殿下虛相位累月。 一國之人皆延頸拭目, 想望賢相。 及見宣麻, 則乃庸劣文炯, 孰不缺望? 夫欂櫨之材, 不中棟樑; 駑駘之質, 不上雲霄。 今以文炯而處三公, 是以欂櫨而爲棟樑, 以駑駘而責雲霄。 以此而欲望致治, 不亦難乎? 願殿下罷文炯, 更求其人, 以責三公之任。 三曰, 納諫諍。 《書》曰: "惟木從繩則直, 后從諫則聖。" 《傳》曰: "良藥苦口, 而利於病; 忠言逆耳, 而利於行。" 自古及今, 未有愎諫, 而不亂者也。 若秦皇惡聞直言, 而釀望夷之變; 隋帝好人侫己, 而促江都之禍。 前車之覆, 後車當戒。 近日臺諫論啓, 無一聽納, 甚非朝廷之福。 願殿下舍己從人, 虛懷納諫。 四曰, 抑宦寺。 宦官, 守宮、傳令而已, 豈可得預朝廷公事也? 如之季, 宦官弄權, 擅干朝政, 卒至視公卿如奴隷, 目天子爲門生, 國勢陵夷, 其(秋)〔禍〕 慘矣, 蓋由辨之不早也。 惟我成宗大王深知其弊, 痛繩以法, 不貸毫髮, 在後嗣所當法也。 殿下卽位之初, 宦官用事, 用善唱於前, 而孝江和於後, 其舞文弄法, (期)〔欺〕 罔天聽之罪, 浮於用善用善孝江何獨縮手於成廟, 而售奸於殿下之時耶? 豈非以殿下初政, 嘗試爲之, 以窺其淺深耶? 在朝之臣莫不寒心, 而殿下不悟, 豈不痛哉? 願殿下深治其罪, 以警其餘。 五曰, 愼刑罰。 《書》曰: "眚災肆赦, (故)〔怙〕 (縱)〔終〕 賊刑。" 若罪在重刑, 而輕之則長姦(究)〔宄〕 之心; 罪在輕刑, 而重之則虧好生之德, 固不可因喜以輕釋, 亦不可因怒以過罪。 近日以一時愛惡, 輕重顚倒, 甚非細故也。 願殿下明以察之, 愼以決之, 勿使失中。 六曰, 愛民力。 古之聖王, 視民如傷, 不啻若保赤子, 知民之欲安, 則撫之而不勞; 知民之欲富也, 則厚之而不困。 王氏曰: "治世莫如愛民。" 孟子曰: "地利不如人和。" 誠以民惟邦本, 本固邦寧也。 奈何聖上有愛民之心, 而大臣苟任一事, 則不顧民時, 唯以奉行辦事爲能, 以殘國脈乎? 近者築城體察使, 啓請(開誠府)〔開城府〕 韓山郡等處, 竝欲今春內築城, 而殿下以臣等之言, 命停之, 體察以己志不遂爲憾, 力主前議, 復請行之, 使殿下愛民之心, 轉爲殘民之擧, 臣等不勝痛心。 蓋開城府韓山郡, 悉皆內地, 非朝夕受敵之地也。 待民力旣蘇, 農務旣閑而築之, 亦未晩也。 臣觀此兩道之民, 自國恤以來, 一困於山陵喪葬之役, 再困於中朝使臣之行, 又宣陵植木、長生殿黃腸木之軍, 相繼調發, 其餘貢賦所出之軍不可勝數。 一家之財力有限, 而役民無休, 寧不惻然乎? 當此時, 雖解衣衣之, 推食食之, 猶未免離散, 豈可不計其農月, 而又興築城之役乎? 求以固國, 而反搖邦本可乎? 且江原一道, 地瘠民稀, 非他道比, 而近日其力尤困。 安可役已困之民, 煮海爲鹽, 而養此無用之僧徒乎? 況釋氏妖誕, 在新政所當先斥者也。 今縱不能盡汰其徒, 以充軍額, 豈可崇信, 以勞民力? 《書》曰: "王其德之用, 祈天永命。" 古之帝王, 以敬德爲永命之實, 以愛民爲享年之源, 曾未聞侫佛, 而得福壽也。 願殿下停不急之役, 以弛民力, 以固邦本。 七曰, 遵舊章。 《詩》曰: "不愆不忘, 率由舊章。" 《書》曰: "監于先王成憲, 其永無愆。" , 者, 以其能守, 之法也。 使之子孫, 長守之法, 則豈至於陵夷; 使之子孫, 長守之法, 則豈至於危亡哉? 惟我成宗大王以高世之見, 日與元臣碩輔, 深思遠慮, 斟酌損益, 勒成《大典》 《橫看續錄》, 凡蠧政害民者, 皆削去不載, 以爲經國之具, 其爲子孫萬世計至矣。 殿下固宜遵守勿失, 不可以一時之利害紛更也。 殿下縱愛孝江便侫, 奈成宗在天之靈何? 願殿下遵守其法, 永永無愆。 昔伊尹之相太甲, 乃曰: "予不克俾厥后爲, 其心愧恥, 若撻于市。" 太甲嘉納其言, 克終允德。 太甲雖曰中主, 猶以自期, 況殿下以生知之聖, 不以自期, 而反居太甲之下乎? 董仲舒曰: "勉强學問, 則聞見博, 而知益明; 勉强行道, 則德日進, 而大有功。" 又曰 "在乎加之意而已。" 願殿下深體此語。

傳曰: "疏辭則誠好矣, 予留而觀之。 所言之事, 不可聽也。 但疏中以不御經筵爲言, 予亦以爲然矣。 但予方病服藥, 故不御耳。" 臺諫辭職而退。


  • 【태백산사고본】 3책 12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77 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 / 재정-역(役)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왕실-경연(經筵) / 왕실-궁관(宮官) / 역사-고사(故事)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