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의》를 강하다
왕이 주강에 나갔다. 《대학연의》를 강하는데, 장구령(張九齡)·이임보(李林甫)의 충성과 간사에 있어 쓰고 버림이 거꾸로 되었다는 등의 말에 이르러, 시독관 김수동(金壽童)이 아뢰기를,
"장구령은 당(唐)의 강직하고 정대한 재상이요, 이임보는 나라를 그르친 간신이므로 역사가는 장구령을 일컫기를,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힘써 논쟁하였다.’하였고, 이임보를 칭하기를,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뱃속에는 칼을 품었다.’하였으니, 당 명황(唐明皇)으로 하여금 장구령에게 위임하고 이임보에게 혹하지 않게 하였다면 어찌 파천(播遷)의 화가 있었겠습니까."
하고, 강이 ‘성왕(聖王)을 스승으로 삼고 마음과 몸을 주장으로 삼는다.’는 말에 이르러 김수동이 아뢰기를,
"《대학연의(大學衍義)》의 글됨이 고금 제왕의 치란(治亂)과 득실(得失)을 갖추어 싣지 않은 것이 없어, 선(善)은 본받을 만하고 악은 경계할 만하니, 그 임금의 다스리는 방도에 유익됨이 큽니다. 그러나 성왕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마음과 몸을 주장으로 삼지 않으면 그 학문을 하는 것이 모두 구차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학문은 자기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데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고, 강이 ‘천자(天子)가 홀로 예문(禮文)에 밝은 유자(儒者)를 맞아들여 전적(典籍)을 발휘한다.’는 말에 이르러 참찬관(參贊官) 송질(宋軼)이 아뢰기를,
"예로부터 제왕의 학문이 혹은 경적(經籍)에 잠심하고 혹은 사장(詞章)을 하기 좋아하여, 각자의 방향이 같지 않으므로 치란(治亂)이 따라서 판단되는 것입니다."
하고, 강이 ‘헌종(憲宗)이 14편을 집성(集成)하여 병풍에 써서 좌우(左右)에 벌여 놓았다.’는 대문에 이르러 김수동이 아뢰기를,
"지금 14편의 조목에는 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는 방도가 갖추어졌는데, 다만 헌종이 능히 행해내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채(蔡)를 평정한 뒤에는 갑자기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배도(裵度)·이강(李絳)·배게(裵垍) 등을 다 붕당(朋黨)이라 하여 배척했으니, 예로부터 소인이 군자를 모함하려면 반드시 붕당으로 지목하여 일망타진(一網打盡)하는 것이므로 붕당의 설에 대하여는 임금이 분명하게 기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고, 송일이 아뢰기를,
"임금의 학문은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을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옛적의 임금이 좌우로 보살펴서 노상 생각이 여기에 있게 하고자 하여 혹은 무일편(無逸篇)을 그림으로 그린 일도 있었고, 혹은 십점(十漸)689) 을 써서 병풍을 만든 일도 있고 혹은 순리(循吏)690) 의 이름을 써놓은 일도 있었으니, 이 역시 제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성종께서 일찍이 고금의 선악(善惡)이 법과 경계가 될 만한 것을 채집하여 병풍을 만들고 사신(詞臣)으로 하여금 시를 지어 올리게 하여 보고 살피셨으니,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성종대왕(成宗大王)을 법으로 삼으시면, 감동되고 흥기됨이 진실로 그만두려 하여도 그만둘 수 없을 것입니다."
하고, 강(講)이 ‘남을 가르치되 자기를 이겨내고 예에 돌아가는 것[克己復禮]으로 한다.’라는 데에 이르러, 수동(壽童)이 아뢰기를,
"예란 천하에 제일 바른 것이나, 임금이 천하를 거느리는 도리도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전하의 신상을 두고 말씀드리더라도 삼전(三殿)을 섬기되 그 예를 다해야 하겠지만 예라는 것은 구차히 순종하여 어김 없는 것을 예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치에 어긋나지 않은 뒤라야 예라 할 수 있으니, 가령 삼전께서 만일 잘못하시는 처사가 계시면 부드러운 낯빛으로 간하시어 삼전으로 하여금 잘못하시는 처사가 없으시게 하셔야만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그때에 왕이 대비의 분부라 칭하고, 대간이 재를 지내지 말라는 간언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수동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1권 8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58 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乙亥/御晝講, 講《大學衍義》。 至張九齡、李林甫忠邪用舍顚倒等語, 侍讀官金壽童曰: "九齡 唐之剛正宰相, 林甫誤國之奸。 史氏稱九齡曰: ‘事無大小, 皆力爭。’ 其稱林甫曰: "口蜜腹劍。’ 使明皇委任九齡, 而不惑於林甫, 則安有播遷之禍哉?" 講至以聖王爲師, 心身爲主之語, 壽童曰: "《大學衍義》之爲書, 於古今帝王治亂得失, 無不備載, 善可法, 惡可戒, 其有益於人主之治也大矣。 然而不以聖王爲師, 心身爲主, 則其爲學, 皆苟而已。 故人君之學, 不過修己治人。" 講至天子獨延禮文儒, 發揮典籍之語, 參贊官宋軼曰: "自古帝王之學, 或潛心經籍, 或好爲詞章, 趨向不同, 治亂從而判矣。" 講至憲宗集成十四篇, 寫於屛風, 列之座右, 壽童曰: "今十四篇之目, 人君治天下之道備矣, 第恨憲宗不能行之耳。 故平蔡之後, 遽有驕心, 裵度、李絳、裵垍等遂以朋黨斥。 自古小人欲陷君子, 則必以朋黨目之, 一網打盡。 朋黨之說, 人君所當明卞之者也。" 軼曰: "人君之學, 當以躬行心得爲務, 然古之人君, 欲左右觀省, 念念在此, 故或有《無逸》爲圖者, 或有書十漸爲屛, 或書循吏之名者, 此亦帝王所當爲之事也。 成宗嘗采古今善惡之可法可戒者爲屛, 令詞臣作詩以上, 而觀省焉。 願殿下以成宗爲法, 則感發興起, 固有所不得已焉者矣。" 講至敎人以克己復禮, 壽童曰: "禮者天下之正, 人君御天下之道, 不過禮耳。 若就殿下之身而言, 事三殿當盡其禮。 然禮云者, 不以苟順無違爲禮, 不悖於理, 然後謂之禮。 假令, 三殿如有過擧, 下氣怡色以諫之, 使三殿無過擧之失, 可謂禮矣。" 時, 王稱大妃之旨, 不從臺諫設齋之諫, 故壽童及之。
- 【태백산사고본】 3책 11권 8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58 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