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무·김일손 등과 대간의 직에 대하여 논하다
사간 이의무·헌납 김일손·정언 이주가 아뢰기를,
"대간이란 조정의 이목이라 그들이 규탄하는 일이 흔히 풍문에서 나오는데, 지금 만약 그 출처를 추문(推問)하는 꼬투리를 터놓는다면 폐단이 장차 적지 않을 것이니, 단연코 따져서는 안됩니다."
하고, 이어 재지내는 일을 논하니, 전교하기를,
"옛말에, ‘선왕(先王)의 성헌(成憲)을 본보기로 삼으면 길이 허물이 없다.’하였으니. 재지내는 일은 조종조(祖宗朝)에서 하던 일이며, 또 옛말에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법(法)을 시행하지 않는 실수를 하는 것이 낫다.’하였으니, 말의 출처는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하매, 이의무 등이 다시 아뢰기를,
"예(禮)에 벗어나는 일은 성헌(成憲)이라 할 수 없으며, 조종조에서 특히 전조(前朝)671) 의 폐습을 인습한 것이니,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또 말의 출처는 따져야 할 것이 못 되니, 만약 혹시 추문하게 되면, 이로부터 사람들이 대간에게 알릴 리도 없으며 대간 역시 감히 임금께 말씀을 다 여쭈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대간이 풍문에 의하여 규탄하는 것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고, 송조(宋朝)에서 또 법을 세워놓았으니, 지금 만약 그 말의 출처를 따진다면 뒤에는 풍문에 의하여 규탄하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저 윤채(尹埰)·정진(鄭溱)은 간사하고 잔인한 사람이어서 전일에 정진은 형제간에 화목하지 못했고, 윤채는 문서를 위조한 때문에 국문(鞫問)을 당하게 되었는데 형신(刑訊)한 뒤 자백하였으니, 그 사람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전일에 윤채의 사위 이계금(李繼金)이 무풍정(茂豊正)과 허함(許瑊)이, 같이 연회를 했다고 무고하여, 자기 장인[妻父]의 죄를 벗겨 주려고 하다가 마침내 무고했다고 자복하였으니, 지금 만약 윤채 등을 형신한다면 실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사헌부가 합사(合司)하여 아뢰기를,
"어제 전교에, ‘대간이 스스로 붕당을 만들어 정직한 선비를 배척한다.’하셨으니, 무릇 붕당이란 거룩한 세대에는 있는 것이 아니며, 한(漢)에는 당고의 화[黨錮之禍]672) 가 있었고, 당(唐)에는 우리의 당[牛李之黨]이 있었고, 송(宋)에는 낙촉의 당[洛蜀之黨]673) 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말세의 일입니다. 전하께서 신들을 지적하여 붕당을 한다 하시니, 피혐(避嫌)을 청합니다."
하니, 대간에게 전교하기를,
"내가 즉위한 이래로 대간이 노상 궐정(闕庭)에 서서 논쟁만 벌이니, 어리석은 백성들의 생각에 ‘지금 사왕(嗣王)이 무슨 과오가 있어서 이 지경에 이르는 것일까?’ 할터이니, 이것이 어찌 옳은 일이겠느냐."
하매, 이의무 등이 상차하기를,
"용렬하고 우매한 신들이 전하께서 채택해 주심을 입어 간원(諫院)에 봉직하고 있거니와, 엎드려 살펴보옵건대, 전하께서 총명하고 인효(仁孝)하시어 바른 말을 잘 받아들이시니, 경사스럽고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며,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이야말로 할 말을 숨김 없이 다할 날이라 여겼습니다. 어려서 공자 맹자를 배운 것은 장성해서 임금을 섬기려는 것이며, 임금과 어버이는 일체이므로 두 가지로 다룰 수 없습니다. 신들이 선왕의 교양(敎養)하심을 입어 집에 있어서도 일찍이 불사(佛事)를 마련하여 죽은 어버이에게 올린 일이 없었으니, 오늘에 와서 유독 평소에 배운 바로써 임금을 섬기지 못한다면 이는 임금과 어버이를 둘로 여기는 것입니다. 신들은 이번 재지내는 일이 전하의 본의가 아니심을 알기 때문에 논집(論執)하여 철회하지 않는 것인데, 전하께서 곧 하교하시기를, ‘근일에 강직한 신하가 자리에 있으므로 사설(邪說)이 행세하지 못한다.’하시니, 신들이 이런 격려하심을 들으매, 진실로 감히 감당하지 못합니다. 선을 선할 줄 알면서 능히 쓰지 못하면 선을 아는 보람이 없고, 언책(言責)을 맡겼는데, 그 말이 행해지지 않으면 그대로 눌러 있을 수 없으므로, 마침내 본직을 사퇴한 것인데, 각기 소견을 고집하여 간혹 차이가 생겼으되 전하께서 죄책을 가하지 않고, 또 피혐하는 것도 받아 주지 않으시고 남과 화평히 지내면서도 구차히 따르지 않는 뜻[和而不同之意]을 용서하시고 각기 취직(就職)하게 하시니, 신들이 감격하고 황공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 신들로 하여금 복직하게 하신 것은 다시 말하게 하신 것이니, 신들 역시 다시 전자의 논쟁을 고집하여 그 직무를 다할 따름입니다. 전하께서 이미 취직을 명하셨으니, 수륙재(水陸齋)를 파하셔야 합니다. 신들이 또 듣자오니, 정진(鄭溱)·윤채(尹埰)의 이미 의논된 옥사(獄事)를 풀어 주고자 하여 명하여 전 대간을 금부(禁府)에서 심문하여 말의 출처를 캐내라 하신다 하니, 대소 신민들이 모두 크게 놀라워서 그 까닭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대간이 입을 다물어서 조정의 이목이 귀머거리 소경이 될 것입니다. 임금이 엄밀한 자리에 깊이 계시어 스스로 살필 수 없어 대간을 이목으로 삼는 터인데, 그들을 귀머거리 소경으로 만들면 어찌 복되는 일이라 하리까.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수륙재(水陸齋)를 파하고 말의 출처를 캐는 것을 정지시키시면 이 이상 더 소원이 없겠습니다."
하였다. 김일손(金馹孫)·이주(李胄)가 서계(書啓)하기를,
"전하께서 하교하시기를, ‘대간이 혹시 사혐으로 작은 원망도 앙갚음하려 들면 안된다.’하시고, 또 하교하시기를, ‘내가 즉위한 이래로 대간이 노상 궐정에 서서 논쟁만 벌이고 있으니, 저 어리석은 백성들의 생각에 지금 사왕(嗣王)이 무슨 과오가 있어 이 지경에 이르는 것인가 여길까 염려된다.’하시니, 이 말씀은 조정의 복이 아닙니다. 이때를 당하여 온 조정의 신하가 모두 전하를 보좌하여 지극한 선(善)에 이르시게 하고자 하는데, 더구나 대간이 전하의 이목(耳目)이 되었으니,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사혐을 품고 작은 원망도 앙갚음하려 하겠습니까. 전하께서 만약 이러한 생각을 가지신다면 조정에서 믿을 만한 자가 없을 것이니, 대간이 장차 손발을 놀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하였으니, 대간이 노상 궐정에 논쟁을 벌이며 기탄없이 바른 말을 하는 것은 전하께서 밝으시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간관(諫官)이 따로 없어 공업·상업하는 천인들까지도 다 간할 수 있게 되었는데, 후세에 와서 비로소 간관을 두어 언책을 맡은 자로 하여금 능히 그 책임을 다하게 하였으니, 조정에 간쟁(諫諍)의 풍습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므로 식자들은 임금에게 돌릴 것입니다.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밝은 것은 백성이니, 비록 우매하다 하더라도 어찌 모르겠습니까. 만약 전하께서 이렇게 생각을 가지신다면 아첨하는 무리들이 전하의 의사에 영합하여, 대간도 역시 앞으로는 말하지 않는 것을 아름다운 일로 삼을 것이니, 후일의 폐단을 이루 말할 수 있으리까."
하였다. 대사헌 권경희(權景禧) 등이 아뢰기를,
"자고로 대간이 풍문을 듣고서 규탄하므로 악한 무리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제멋대로 굴지 못하였는데, 지금 만약 말의 출처를 따진다면 비록 관계된 일이 있을지라도 사람들이 반드시 대간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며, 대간이 비록 소문이 있을지라도 공사(公事)에 대하여 발론하지 못할 것이니, 그렇다면 대간이 장차 입을 다물게 되고 나랏일이 글러질 것입니다. 또 사간 이의무(李宜茂)·헌납 김일손(金馹孫)·정언 이주(李胄)가 의논이 일치되지 않아 서로 피혐하다가 지금 갑자기 다시 합하여 논계하였으니, 자못 대간의 체모를 잃은 것입니다."
하였으나, 들어 주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55 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註 671]전조(前朝) : 고려.
- [註 672]
당고의 화[黨錮之禍] : 동한(東漢) 말엽에 환관(宦官)이 전권(專權)하였는데, 환제(桓帝) 때에 진번(陳蕃) 이응(李膺) 등이 이를 증오하여 공박하니, 환관들이 당인(黨人)이라 지목하여 종신 금고(終身禁錮)하였다. 이를 당고의 화 또는 당인의 화라 한다. 또 영제(靈帝) 때에 두무(竇武)·진번 등이 모의하여 환관을 죽이려 하였으나 누설되어 1백여 명이 죽음을 당하고 관련자들이 금고된 일이 있다.- [註 673]
낙촉의 당[洛蜀之黨] : 송 철종(宋哲宗) 때의 두 당파. 낙양(洛陽) 사람 정이(程頤)를 영수로 하는 낙당(洛黨)과 촉인(蜀人) 소식(蘇軾)을 수령하는 촉당(蜀黨). 이 밖에 유지(劉摯)를 영수로 하는 북쪽의 세력인 삭당(朔黨)이 있어, 낙촉삭 삼당(洛蜀朔三黨), 또는 철종의 연호를 따서 원우 삼당(元祐三黨)이라 한다.○癸丑/司諫李宜茂、獻納金馹孫、正言李冑啓: "臺諫朝廷之耳目也。 其所糾擧者, 多出於風聞。 今若開推問之端, 則弊將不貲, 斷不可問。" 因論設齋事, 傳曰: "古云: ‘監于先王成憲, 其永無愆。’ 設齋, 祖宗朝事。 古云: ‘與其殺不辜, 寧失不經。’ 言根不可不問。" 宜茂等更啓: "非禮之擧, 不可謂之成憲。 祖宗朝特因前朝弊習耳, 決不可爲也。 且言根非所當問, 如或推問, 則自是人無有告臺諫者, 臺諫亦不敢盡言於上矣。 況臺諫之風聞糾擧, 其來已久, 宋朝又立法。 今若問其言根, 後無有風聞擧劾者矣。 彼尹埰、鄭溱奸詐殘忍之人。 前此, 溱以兄弟不和, 埰以文記僞造被鞫, 而至刑訊乃服, 其爲人可知。 且前日埰之壻李繼金, 誣指茂豐正許瑊爲遊宴, 欲脫妻父之罪, 竟服誣罔。 今若刑訊埰等, 則可以得情。" 司憲府合司啓: "昨敎云: ‘臺諫自成朋黨, 排斥正直之士。’ 夫朋黨, 非盛世所有。 漢有黨錮之禍, 唐有牛、李之黨, 宋有洛、蜀之黨, 此皆衰世之事也。 殿下以臣等爲朋黨, 請避嫌。" 傳于臺諫曰: "自予卽位以來, 臺諫長立闕庭, 愚惑小民以爲: ‘今之嗣王有何過擧, 而至此也。’ 是豈可乎?" 李宜茂等上箚曰:
臣等庸愚, 蒙殿下採擇, 供奉諫省。 伏覩殿下聰明仁孝, 優納直言, 不勝慶幸, 私心以謂, 此誠盡言不諱之日。 幼學孔、孟, 壯欲事君。 君、親一體, 宜無二致。 臣等蒙先王敎養之方, 在家未嘗作佛事以薦亡親, 今日獨不能用所學以事君, 則是君、親而二之也。 臣等知設齋非殿下本意, 論執不回, 殿下乃敎曰: "近日鯁直之臣在位, 邪說不得遂。" 臣等聞此激礪, 誠不敢當。 善善而不能用, 則無貴於知善。 任言責而言不得行, 不宜冒居, 遂辭本職, 而各執所見, 間或異同。 殿下不加罪責, 又不受避嫌, 恕臣等和而不同之意, 使各就職, 臣等感激兢惶。 竊念, 殿下使臣等復職者, 使之復言也。 臣等亦當復執前言, 以盡其職而已。 殿下旣命就職, 當罷水陸。 臣等又聞, 殿下欲申鄭溱、尹埰已讞之獄, 命問前臺諫於禁府究治言根, 大小驚駭, 莫知其端。 從此臺諫鉗口結舌, 而朝廷耳目聾瞽矣。 人君淵居嚴密, 無由自察, 以臺諫爲耳目, 而使之聾瞽, 豈其福哉? 願殿下罷水陸之齋, 罷言根之推, 不勝至願
殿下敎曰: "臺諫或挾睚眦之讎則不可。" 又敎曰: "卽位以來, 臺諫長立闕庭。 恐愚惑小民以爲: ‘今嗣王有何過擧, 而至此?’ 此言非朝廷之福。 當此之時, 擧朝臣子, 咸欲輔導聖躬, 至於至善。 何況臺諫爲殿下耳目, 豈有一毫挾私, 以爲睚眦之報? 殿下若以此爲心, 恐朝廷無可信者, 臺諫將無所措手足矣。 古人云: "君明臣直。" 臺諫所以長立闕庭, 直言不避者, 由殿下之明耳。 古者諫無官, 工商之賤無不得諫。 後世始置諫官, 使(傳)〔專〕 言責者, 能盡其責, 彰朝廷有諫諍之風, 乃是美事, 識者必歸美於上。 至愚而神者民也。 雖曰愚惑, 亦豈不知? 若殿下以此爲心, 則諛佞之徒迎合上意, 臺諫亦將以不言爲美事, 他日之弊可勝言哉?
大司憲權景禧等啓: "自古臺諫風聞而糾劾。 故爲惡者有所疑畏, 而莫敢肆。 今若問言根, 則雖有關係之事, 人必不言於臺諫。 臺諫雖有所聞, 亦不得發於公事矣。 然則臺諫將鉗口結舌, 而國事非矣。 且司諫李宜茂、獻納金馹孫、正言李冑議不合, 相避嫌。 今遽復合論啓, 殊失臺諫之體。" 不聽。
- 【태백산사고본】 3책 1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55 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註 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