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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9권, 연산 1년 9월 26일 병오 1번째기사 1495년 명 홍치(弘治) 8년

대간의 간언을 들을 것과 노사신 등의 죄를 처단할 것 등에 대한 사간원의 상소

사간원에서 상소하기를,

"신들이 생각하옵건대, 임금의 한 몸은 관계가 지극히 중합니다. 혹 성인이 되고, 혹 어리석은 이가 되는 데에, 그 이해가 인민에 관계되는 것과 위망(危亡)이 국가에 관계되는 것이 매우 큽니다. 전하는 지금 처음 즉위하셔서 새로이 모든 정사를 보시니, 금일은 곧 우리 조정의 흥륭(興隆) 쇠잔의 근본이며, 종사의 안정 위망의 기틀이며, 생민 휴척(休戚)의 출발이며, 역년(歷年) 구원(久遠)의 근원이며, 현(賢)·사(邪)가 진퇴하는 즈음이며, 천명(天命)이 가고 오는 분기점이며, 인심의 이합(離合)하는 때이오니, 어찌 깊이 두려워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임금의 덕은 간하는 것을 좇는 데 있고, 간하는 것을 좇는 요점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습니다. 마음이 바르면 중심이 비고, 비면 나를 잊으며, 나를 잊으면 사람을 좇기 쉬운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간함을 좇는 근본을 삼고, 간함을 좇는 것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계제(階梯)를 삼아야 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체(體)가 되고, 간함을 좇는 것이 용(用)이 되어서 체(體)와 용(用)이 이미 서고, 표(表)와 이(裏)가 서로 돕는다면 국가가 흥륭하고 종사가 편안하며, 생민이 복을 받고 역년(歷年)이 오래 가며, 어질고 능한 이가 나오고 하늘과 사람이 합치되어서, 다스리는 도가 완성될 것입니다.

신들이 반복하여 생각하옵건대, 무릇 세상의 임금들이 그 누가 간함을 좇는 것이 아름다움을 모르리까마는 그 마음이 혹은 교착되고 넓지 못하며, 혹은 강하고 패려(悖戾)하여 공손하지 못하며, 혹은 협소하여 소견이 없으며, 혹은 어두워서 밝지 못하며, 혹은 자만스럽게 어진 척하며, 혹은 남을 이기려 하여 자기 마음대로만 하며, 혹은 명찰(明察)함을 스스로 자부하며, 혹은 위엄으로 결단하여 마음대로만 하는데, 이상 8가지에 한 가지만 있더라도 반드시 간함을 들을 것이 없다 하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 없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가 임금의 마음속을 교묘히 알아 내고, 임금의 의지를 엿보면서 생황(笙簧)552) 처럼 이설(異說)을 하고, 경술(經術)에 빙자해서 말을 꾸며가며 천 가지 만 가지로 〈임금의 뜻에〉 영합(迎合)하기를 갖가지로 하여, 군신 상하가 서로 옳다고 따르기만 하게 됩니다. 그런 후에는 국사는 글러지고 위망은 이를 것이니, 아! 간함을 거절하는 화가 여기까지 이르는 것은 그 형세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저 조정의 바른 의논은 대간에게 있는 것이요, 대간의 말하는 것은 종사(宗社)가 아니면 인민을 위한 것이니, 그 말은 이로운 것이 임금에게 있는 것이옵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로운 것이 임금에게 있는데도 임금이 굳이 거절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러므로 옛부터 간함을 거절하는 임금을 어두운 임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질고 슬기로운 임금은 천하의 이목(耳目)을 자기의 이목으로 삼고 천하의 선한 것을 자기의 선함으로 삼으며, 부지런히 힘써서 혹시라도 아름다운 말이 숨겨짐은 없을까, 정직한 의논을 미처 듣지 못함은 없을까 하여, 면전에서 대들며 듣기 거북한 말을 하여도 거리끼지 않으며, 비위를 거스르고 소매를 잡아당겨도 성내지 않고, 온화한 안색으로 자신을 낮추며 마음을 터놓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가 그 마음을 즐겁게 하지 못하고 충신 의사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게 되어, 언로(言路)가 더욱 넓어지고 국가의 이익이 더욱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부터 간함을 받아들이는 임금을 밝은 임금이라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천품이 영특 통달하고 슬기로운 기질이 과감 강의(剛毅)하시어, 역대에 찾더라도 비할 이가 드무니, 대소 신민이 손을 모아 이마에 얹고 치화(治化)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시무(時務)에 응하고 기밀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총명과 영단(英斷)으로 선묘(宣廟)553) 에 부합하여야만 대소 신민들이 이에 고무(鼓舞)할 것이니, 이것이 우리 나라 종사 신민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신들의 직책이 간원(諫院)에 있으면서, 전하의 미덕만을 칭찬하고, 전하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신들 역시 영신(佞臣)입니다. 나라의 영신이 있는 것은 사직의 복이 아닙니다. 신들이 차라리 꺼리지 않고 말한 죄로 죽임을 받을지언정, 감히 전하의 잘못을 따라 아첨하여 이루게 하여 선릉(宣陵)을 저버리고 전하를 그르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전하의 잘못은 간함을 막는 데에 있습니다. 정사하시는 처음에 먼저 일을 말하는 유생(儒生)을 죄주어서 온 나라에 보이니, 이른바 이기려고 힘써 마음대로 하고, 위엄으로 결단하여 함부로 할 조짐이 자못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묘하게 알아 내고 엿보는 자가 드디어, 위엄으로 처단한다는 말로 임금의 뜻을 맞추며, 가는 곳마다 저의 꾀를 맞히려 하니,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윤탕로(尹湯老)는 척리(戚里)의 신하로서 상복[衰麻]이 몸에 있는데도 창가(娼家)에서 방종하게 술 마시어 크게 전하의 풍화(風化)를 손상하였으므로, 사헌부에서 용서하라는 전지(傳旨)를 봉함하여 돌려보내니, 크게 곧은 선비의 기풍이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포상 장려하기를 바삐하여 사기를 양성하여야 할 것인데, 도리어 명을 거역한다는 죄명으로 옥에 가두시니 되겠습니까. 대간이 중국 사신을 간휼(奸譎)하다고 한 것은 비방한 것이 아니라, 전하를 허물 없는 곳으로 인도하려 한 것이니, 그 마음이 가상하여, 그 말이 용서할 만도 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조옥(詔獄)에 내리어 국문하시고 또 따라서 파직하시니, 간함을 거절하는 형적이 이로부터 더욱 현저합니다. 근자에는 대간이 일을 의논하면 전교하기를, ‘인군을 속인다.’ ‘무슨 면목으로 다시 와서 말을 하느냐.’ ‘감히 나를 이기려고 한다.’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니, 위엄스러운 이 전교가 뇌성 벽력보다도 더 심하니, 선비가 말을 다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만스러운 음성과 안색으로 사람을 천리 밖에 거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들은 이것이 전하께서 임금이 간함을 받아들이는 이익과 간함을 거절하는 손해에 대하여 깊이 모르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스스로 선택하기를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전하의 총명 예지(睿智)와 강의(剛毅) 과단은 천품으로 타고나신 것입니다. 대저 사람의 기질이란 귀천이 다르지 않고 상하가 다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기질은 아름답지만 학문이 넓지 못하면, 흩어진 마음을 거두어 모으고 사심을 극복하여 정일(精一)하게 수정(修正)하는 공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것을 보아도 좋은 줄을 모르고 악한 것을 보아도 악한 줄을 모르는 것이니, 그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마음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이기려고 애쓰며, 마음대로 하고 위엄으로 처단하여 함부로 하려는 생각이 일어날 것이요, 이렇게 하기를 말지 않으면 상습이 되는 것이니, 세월이 쉬지 않고 가서 춘추가 점점 높아져서 학문은 벌써 늦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마음대로 하고 함부로 하기를 꺼리어 언로(言路)는 막히고 사기는 저상(沮喪)되며, 대신은 고식지계(姑息之計)로 앉아서 늙어 죽기나 기다리고, 대간은 위엄을 두려워하여 제 몸만 아껴서 입을 봉하여 존망(存亡)이 조석간에 있게 되더라도 말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니 전하께서는 무엇으로 아시겠습니까. 옛날 부열(傅說)고종(高宗)554) 에게 말하기를 ‘나무가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임금이 간함을 좇으면 성스러워집니다.’고 하니, 고종이 이르기를, ‘훌륭하다, 부열아! 그대가 좋은 말을 하지 않았던들 내가 행할 일을 얻어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군신간의 성의로 서로 믿던 그 당시의 기상을 지금 와서도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선묘께서 일찍이 경연에 납시어 《상서(尙書)》를 토론하다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안색을 바로하고 감탄하며 좌우의 사람들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임금의 도는 무엇이 이에 더하겠는가. 임금만이 아니라 신하된 자도 말을 잘 받아들인 후에야만 임금에게 간할 수 있는 것이니, 그대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하고, 또 하교하시기를 ‘내가 일찍이 일을 말하는 신하를 한 명도 죄준 일이 없다. 그대들은 임금의 뜻을 거슬리는 것을 혐의 삼아서 말을 다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고 하셨는데, 신 등이 이 하교를 볼 때마다 오열(嗚咽)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아! 선묘조께서 처음 정사하실 때에는 간함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하여 그것으로 가법(家法)을 남겨 전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선묘조의 뒤를 이은 아드님입니다. 지금 무엇을 본받아야 하겠습니까? 가법을 본받지 않을 것이겠습니까. 가법을 지키는 도는 어찌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마음을 다스리고 간함을 좇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도는 어찌하여야 하겠습니까? 성상의 학문을 넓히는 일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학문에 부지런하며 광음(光陰)을 아끼되 촌분간이라도 소홀히 하지 마소서. 학문의 도는 계속하면 광명하고, 중지하면 황폐[鹵莽]하는 것입니다. 거둥하신 이튿날에도 경연(經筵)은 폐할 수 없으며, 상식(上食) 드린 날도 석강(夕講)에는 납셔야 합니다. 하루 동안에도 어진 선비를 대하는 시간이 적으면 학문은 자연 성글어지는 것이니, 임금의 덕이 성취하는 것은 경연에 있습니다. 전하께 거슬리는 말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이 도가 아닌가 찾아보고, 전하께 공손한 말이 있으면 그것이 그른 도는 아닌가 찾아 보아야 합니다. 도에 찾아 보아서 그 말이 도에 합하는 것이면 말이 비록 귀에 거슬리더라도 반드시 들어야 하며, 그른 도가 아닌가 찾아 보아서 그 말이 그른 도에 관계되는 것이면 말이 비록 공손하더라도 반드시 배척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이것이 곧 학문의 공이요 사사를 이기고 욕심을 이기는 큰 단서(端緖)가 되는 것입니다. 사사를 이기고 욕심을 이기면 이른바 마음이 바르고 비는 것이니, 비면 나를 잊고, 나를 잊으면 사람을 좇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람을 좇으면 나에게서 마음대로 하려는 생각이 없어지고 남에게서 선한 것을 취하기를 즐겨하게 될 것이니, 이런 뒤에야 선묘(宣廟)의 가법을 지키고, 종사의 끝없는 복을 이룰 것이니, 힘쓰지 않아서 되겠습니까.

더구나 전하는 영명한 자질로 강단(剛斷)에 넉넉하신데, 강단이 곧 임금의 덕입니다. 전하의 강단이 마음을 다스리고 간함을 받아들이는 미덕에 사용된다면 그 강함은 세우기 어려운 의지를 발할 수 있고 제어하기 어려운 사정(私情)을 극복할 수 있으며, 그 결단은 뉘우치기 어려운 화를 이길 수 있고 듣기 어려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확장해 사용하여 사물마다 가는 곳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면 이것이야말로 강단의 덕입니다. 예전 제왕으로 이것을 실행한 이가 있으니, 요(堯)·순(舜)·우(禹)·탕(湯)입니다. 나를 버리고 남을 좇는 것은 요임금의 강단이요, 사악(四岳)555) 에게 물어서 총명을 더하는 것은 순임금의 강단이요, 착한 일을 들으면 절하는 것은 우임금의 강단이요, 간함을 좇아 거스르지 않는 것은 탕임금의 강단입니다. 이 네 임금은 강단의 덕을 가지고 강단하여야 할 곳에 사용하였습니다. 그 후에는 교만하고 사나운 임금이 있어, 강하지 않을 데 강하고 단하지 않을 데 단하였으므로, 일찍이 강단 두 글자에 의하여 실수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전하께서 또한 살피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전번 노사신(盧思愼)은 전하께 강단의 덕이 있음을 보고 위단(威斷)의 설을 말씀 드려서 전하로 하여금 일을 말하는 신하에게 위단을 더하게 하려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신이 전하의 강단의 덕을 전하의 언로(言路)를 막는 기구로 삼으려 한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괴이한 소리를 생황(笙簧)처럼 놀리고 경술(經術)을 빙자 가식(假飾)하여 전하를 그르치는 자이므로 원래 깊이 그 죄를 다스려서 간사함을 멀리 하셔야 합니다. 지금 그 정승의 직만을 파면시키고 부원군으로 옮겨 봉하였는데, 그의 마음이 개전(改悛)이 없고 그 혀가 그대로 있으니, 경연에서 반드시 모실 것이요, 일을 의논하는 데 반드시 참여할 것입니다. 이것은 전하께서 사신의 죄에 대하여는 정말 강단하야 할 것인데 강단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정숭조(鄭崇祖)는 본래 용렬 누추하고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는데 게다가 탐욕이 있고 마음이 검어서 시정배(市井輩)와 연락하니, 이 역시 시정의 무리입니다. 함(涵)윤탕로(尹湯老)와 죄가 같으니, 죄는 같은데 벌은 달리하여 에게 사정을 둘 수는 없습니다. 유생 이배근(李培根) 등은 선묘께서 승하하신 날에 장가들었습니다. 대소 신민이 어쩔 줄 몰라 애통하는 때에 조용히 계교를 정하고 단신 미복(微服)으로 대낮에 남몰래 장가들었으니, 그의 불충(不忠)함을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다시는 과거 보아서 벼슬길에 통하지 못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송흠(宋欽)은 원래 천한 집안으로서 의술로 출세하여 위계가 2품에 이르렀으니, 벌써 분수에 지나치는데, 지금 또 전의감 제조(典醫監提調)가 되니, 이렇게 되면, 출척(黜陟)하는 권리가 종기 치료하는 의원의 손에 있게 되는 것이므로, 이것은 조정의 체면이 안 서고 사림이 욕을 보는 것입니다. 우윤공(禹允功)은 이미 산릉(山陵)을 감독한 공으로 자급(資級)이 초승(超陞)되었으며, 세 도감의 감역관(監役官)도 논공 행상(論功行賞)을 하였는데, 한 사람도 거듭하여 받은 자는 없으니, 공은 같은데 상은 다르게 하여 윤공만을 우대할 수는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사신의 간사함을 멀리하여 경연에 접근시키지 말으시고, 숭조의 사명(使命)을 거두어 전대(專對)하게 하지 말으시며, 유생과 의 죄를 다스려서 교화를 바로 하시고, 송흠의 제조의 소임을 회수하여 조정의 체모를 높이고, 윤공의 승진시키는 명을 고쳐서 관작과 포상을 중히 하신다면 어찌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전(傳)에 이르기를 ‘그 시초가 있고도 그 마침이 없는 자는 있지만, 그 시초가 없고 그 마침이 있는 자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의 도는 하나가 아니지만, 그중에도 간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크고 가장 먼저 하는 것입니다. 가장 크고 가장 먼저 하는 도를 처음 정사하는 날에 행하지 못한다면 전하께서 과연 그 시초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시초에는 간하는 것을 기뻐하다가도 나중에는 혹 간하는 것을 거절하게 되기도 하는데, 시초부터 간함을 거절하면 나중엔 어찌 되겠습니까. 신들은 지금에 있어서 대간을 가두고 대간을 파직한다면, 장차는 대간을 죄주게까지도 되어 그 폐단을 구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합니다. 신들은 전하의 이목(耳目)의 관직에 있으면서 전하의 총명하신 덕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귀는 듣는 것을 주관하고, 눈은 보는 것을 주관하는데, 보고 듣는 것이 넓지 못하시다면 신들의 죄입니다. 보는 것은 밝히려 하고, 듣는 것은 밝게 하려 하는데 총명함을 쓰지 않는 것은 전하의 허물입니다. 드리는 말씀이 보잘것없더라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신들은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 상소를 보니, 경연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근일 발병 때문에 기거하기가 어려워서 아직 못 나가게 된 것이다. 기타 말한 것은 자세히 보고 결정 짓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9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7 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註 552]
    생황(笙簧) : 생황은 관악기(管樂器)의 일종. 생은 목재의 관(管)을 말하고 황은 관의 구멍에 붙인 엷은 조각을 말하는 것이다. 기후가 차겁고 더움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나므로, 이것을 아첨 잘하는 간신들이 때에 따라 말을 달리 하는 데에 비유한다.
  • [註 553]
    선묘(宣廟) : 성종.
  • [註 554]
    고종(高宗) : 중국 은(殷)나라의 임금.
  • [註 555]
    사악(四岳) : 사악은 중국 상고 시대의 관직 이름. 사방 제후의 일을 맡아 보던 것인데 요임금 때에는 희화(羲和)·희화(羲和)·화중(和中)·희화(羲和)의 네 아들 희중(羲仲)·희화(羲和)·화중(和中)·화숙(和叔)이 그 관직에 있었다. 《서경(書經)》 요전(堯典).

○丙午/司諫院上疏曰:

臣等竊惟, 人主一身, 所係至重, 或聖、或愚, 利害之關於人民, 存亡之係於國家者甚至。 殿下方在初服, 新攬庶政, 今日乃我朝隆替之本, 宗社安危之機, 生民休戚之端, 歷年久遠之源, 賢邪進退之際, 天命去就之分, 人心離合之時, 豈不深可畏哉? 夫人君之德在從諫, 從諫之要在治心。 心正則虛, 虛則忘己, 忘己則從人易。 殿下當以治心爲從諫之根抵, 以從諫爲治心之階梯。 治心爲本, 從諫爲用, 體用旣立, 表裏相資, 則國家隆、宗社安、生民休、歷年久、賢能進、天人合, 而治道畢矣。 臣等反覆思之, 凡世之人主, 孰不知從諫之美? 由其方寸, 或膠固不廣, 或强戾不巽, 或狹小無見, 或暗昧不明, 或訑訑自賢, 或務勝自用, 或明察自小, 或威斷自肆, 八者有一焉, 則必以諫爲不足聽, 言爲不足受。 於是邪侫之臣巧探人主之肺腸, 伺察人主之志意, 笙簧異說, 緣飾經術, 千岐萬轍, 迎合百端, 君臣上下, 唯唯諾諾, 然後國事非, 而危亡至。 嗚呼! 拒諫之禍, 一至於此, 其勢然也。 夫朝廷正論在臺諫, 臺諫所言, 不在宗社, 則在人民。 其言利在君上, 不在其身, 利在君上, 而敢拒之者, 愚之甚也。 故自古拒諫之君謂之暗主。 賢智之君, 以天下之耳目爲己之耳目, 以天下之善爲己之善, 孜孜汲汲, 猶恐嘉言之或攸伏, 讜論之未及聞, 抗顔苦口, 不爲之忌, 逆鱗牽裾, 不爲之怒, 和顔而下之, 虛懷以受之, 邪奸諛侫無以悅其心, 忠臣義士得以盡其言, 致使言路愈廣, 而國家之利愈多, 故自古納諫之君謂之明主。 殿下天資英達, 睿質果毅, 求之後世, 罕有其比。 大小臣民, 攅手加額, 想望治化, 而殿下應務處機, 聰明英斷, 同符宣廟, 大小臣民於玆鼓舞, 此我國宗社、臣民之福也。 臣等職忝諫院, 徒譽殿下之美德, 而不規殿下之失德, 則臣等亦侫臣也。 國有侫臣, 非社稷之福也。 臣等寧伏不諱之誅, 不敢以殿下之失, 從臾成之, 負宣陵而誤殿下也。 殿下所失, 在於拒諫。 卽政之初, 首罪言事儒生, 以示一國, 所謂務勝自用, 威斷自肆之漸, 頗有其形。 故其巧探伺察者, 遂以威斷之說, 迎合所向, 思欲一中, 豈不畏也? 尹湯老以戚里之臣, 衰麻在身, 縱飮娼家, 大傷殿下風化。 憲府封還宥旨, 大有直士之氣, 殿下當褒奬不暇, 以養士氣可也。 反以逆命之名囚之可乎? 臺諫謂天使奸譎者, 非謗訕也, 欲導殿下於無過之地, 其心可賞, 其言可恕。 殿下反欲下詔獄, 而訊鞫之, 又從而貶罷之, 拒諫之迹, 自是益著。 近者臺諫論事, 則傳敎有曰欺君, 有曰何面目復來言歟? 有曰敢勝我, 有曰任汝心, 威哉是敎也! 甚於雷霆, 士不得盡其言矣。 不幾於訑訑聲音顔色, 拒人於千里之外乎? 臣等恐殿下不深明人主納諫之利, 拒諫之害也。 不然, 何自擇若是? 殿下聰明睿智, 剛毅果斷, 出於天性。 大扺論人氣質, 貴賤則不異, 上下皆同。 蓋氣質雖美, 學問未廣, 則其收斂復克, 精一修正之功未立, 而見善不知好, 聞惡不知惡, 何則, 其心暗也。 如是, 則務勝、自用、威斷、自肆之念, 起矣。 若此不已, 習以爲常, 歲月遷易, 春秋漸苒, 聖學已晩, 則至於自用自肆, 無所忌憚, 則言路壅塞, 士氣沮喪。 大臣姑息, 坐待老死; 臺諫畏威, 愛身杜口, 雖存亡在於朝夕, 莫得而言, 殿下何所因而知之? 昔傅說復于高宗曰: "惟木從繩則正, 惟后從諫則聖。" 高宗曰: "旨哉, 乃不良于言, 予莫聞于行。" 其君臣之間誠意相孚, 一時氣象, 至今可想。 宣廟嘗御經筵, 論《尙書》至此, 斂容嗟嘆, 顧謂左右曰: "爲君之道孰加於此? 非獨人君, 爲臣者亦能受言而後, 能諫君, 爾等亦宜知之。" 又下敎曰 "予未嘗罪一言事之臣, 爾等勿以忤旨爲嫌而不盡言。" 臣等每觀此敎, 嗚咽不已。 噫! 宣廟初政, 汲汲納諫, 以遺家法。 殿下乃宣廟嗣子也。 今當何法, 不在家法乎? 守家法之道奈何? 曰治心從諫也。 治心之道奈何? 曰廣聖學也。 伏願殿下, 孜孜學問, 當惜光陰, 寸分之間毋自忽焉。 學問之道繼續則光明, 作輟則鹵莽。 行幸翌日, 經筵不可廢也, 上食之日, 夕講亦可御也。 一日之內, 接賢士之時少, 則學問自疎, 君德成就, 在於經筵也。 有言逆于殿下, 則必求諸道; 有言遜于殿下, 則必求請非道。 求諸道而言合於道, 則言雖逆, 而必聽; 求諸非道, 而言在於非道, 則言雖遜, 而必斥。 如是則乃學問之功, 勝私克己之大端也。 勝私克己, 則所謂心正而虛, 虛則忘己, 忘己則從人者得矣。 從人則在我無自用之念, 而樂取善於人矣, 如此然後, 可以守宣廟之家法, 而成宗社無(彊)〔疆〕 之休, 可不勉哉? 況殿下英資, 優於剛斷, 剛斷乃人主之德。 以殿下之剛斷, 用之於治心納諫之美, 則其剛可以發難立之志; 可以克難制之私; 其斷可以攻難悔之禍, 可以納難入之言。 擴而用之, 事事物物無適不然, 則是眞所謂剛斷之德也。 古之帝王有行之者, 是也。 舍己從人, 之剛斷也; 詢于四岳, 明(日)〔目〕 達聰, 之剛斷也; 聞善則拜, 之剛斷也; 從諫弗咈, 之剛斷也。 此四君者, 有剛斷之德, 而用之於當剛斷也。 (復)〔後〕 有驕愎之君, 剛於不當剛, 斷於不當斷, 未嘗不從剛斷二字失, 殿下亦不可不審也。 頃者盧思愼見殿下有剛斷之德, 進威斷之說, 欲使殿下加威斷於言事之臣, 是思愼以殿下剛斷之德, 爲殿下杜言之具, 此乃笙簧異說, 緣飾經術, 以誤殿下者也, 固當深治其罪, 以遠奸侫可也。 今也只罷其相, 移封府院君, 其心罔悛, 其舌猶在, 經筵必侍, 議事必參, 此殿下於思愼之罪, 固當剛斷而不剛斷也。 鄭崇祖本以庸陋無恥, 加以貪墨, 交結市井之徒, 此亦市井之流也。 湯老同罪, 不宜罪同罰異, 以私也。 儒生李培根等, 娶妻於宣廟升遐之日。 大小遑遑擗踊之時, 從容計較, 乃以單身微服, 白晝潛娶, 其爲不忠, 口不忍言, 不宜更許赴試, 以通仕路也。 宋欽本以賤系, 發跡醫術, 位至二品, 已越其分。 今又提調典醫, 是黜陟之權, 乃在瘍醫之手, 此朝廷之所以卑, 士林之所以辱也。 禹允功旣以山陵之功, 超陞資級。 三都監監役之官, 業已論功行賞, 無一疊受者, 不宜功同賞異, 以優允功也。 伏願殿下, 遠思愼奸侫, 勿接經筵; 收崇祖使命, 勿使專對; 治儒生與之罪, 以正風化; 還宋欽提調之任; 以尊朝廷。 改允功陞職之命, 以重爵賞, 豈不幸哉? 《傳》曰: "有其始而無其終者有矣, 未有無其始而有其終者也。" 人君之道非一, 而納諫乃最大最先者也。 以最大最先之道, 不見行於初政之日, 殿下果有其始乎? 始而悅諫, 終或至於拒諫, 始而拒諫, 其終奈何? 臣等恐今而囚臺諫、 罷臺諫, 則將至於罪臺諫, 而弊不可救也。 臣等在殿下耳目之官, 司殿下聰明之德, 耳司聽, 目司視, 視聽不廣, 臣等之罪也。視思明, 聽思聰, 聰明不用, 殿下之過也。 所進瞽說, 願留三思。 臣等謹昧死以聞。

傳曰: "今觀疏云: ‘不御經筵。’ 近因患足病, 難於起居, 玆以未御耳。 其他所言, 當細覽發落。"


  • 【태백산사고본】 3책 9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7 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