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빙 등이 시비와 사정을 가리고 불경 박아내는 일을 거두기를 상소하다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 윤효빙(尹孝聘)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이 듣자오니, ‘훈(薰) 유(蕕)는 한 그릇에 같이 담아 둘 수 없고, 얼음과 숯[氷炭]은 서로 용납되지 않는다.’ 하니, 이는 사(邪)와 정(正)이 양립하지 못함을 말한 것입니다. 대개 오도(吾道)와 이단(異端)에 있어,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의 분별이 어찌 특히 훈유(薰蕕)와 빙탄(氷炭)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을 뿐이겠습니까. 더구나 사도와 정도가 가름해서 사라지고 자라나곤 하여, 이것이 성하면 저것이 쇠하고, 저것이 성하면 이것이 쇠하므로, 그 성쇠의 기틀에 따라 국가의 치란(治亂)이 달렸고 사직의 안위가 판단되니, 임금으로서는 그 기틀을 살펴서 미리 막지 않아서 되겠습니까? 우리 국가는 열성(列聖)이 서로 계승하여, 유술(儒術)을 존숭하고, 석가(釋迦)와 노자(老子)를 배척하여 정도를 지키고 사문(斯文)을 일으킨 것이 지극하였으니, 신들은 당(唐)·우(虞)·삼대(三代)445) 시대의 정치를 오늘날에 다시 볼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원각사(圓覺寺)에서 불경 몇 권을 박아낸다는 사실을 신들은 듣고서 의혹스럽습니다. 전하께서 무슨 보신 바가 있어 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불교가 세상을 의혹시키고 백성을 속여서, 천하를 좀먹는 것은 진실로 전하께서 익히 살피고 밝히 분별하시는 바인데, 반드시 그 사설(邪說)을 펴서 온 나라 사람의 이목을 놀라게 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비록 그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고 그 서적을 불태워서 영원히 없애지는 못할망정 어찌 그 서적을 널리 박아내어 숭봉(崇奉)하는 꼬투리를 열어 놓으려 하십니까? 옛날 한유(韓愈)가 헌종(憲宗)이 부처의 유골(遺骨)을 맞아 들이는 것을 간하는 표(表)에 ‘백성은 어리석고 어두워서 깨치기 어려우니, 장차 이르기를 「천자(天子) 같은 대성(大聖)으로도 오히려 한마음으로 공경하고 신앙하는데, 우리 백성들은 무슨 사람이기에 부처에 대하여 다시 신명(身命)을 아끼랴.」 하며, 이마를 불태우고 손가락을 불태워[焚頂燒指] 오히려 뒤질까 걱정할 것입니다.’ 하였으니, 유가 어찌 본 바가 없어서 문득 과당한 논을 하였겠습니까. 전(傳)에 이르기를 ‘위에서 좋아하는 자가 있으면 아래서는 반드시 더 심한 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였으니, 대범 백성이 윗사람을 따르는 것은 마치 풀이 바람에 몰리는 것과 같사온데, 이제 만약 한 번 허망한 풍습을 터놓아 백성의 선창(先唱)이 되면 다른 날에 이마를 불태우고 손가락을 불태우는 백성을 전하께서는 장차 어떻게 금단하시겠습니까. 또 모를 일은 전하의 이 행사가 장차 불교를 신봉하여 중외에 널리 펴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장차 선왕을 위하여 명복을 빌려고 하는 것입니까? 만약 그 교를 신봉하여 그러는 것이라면, 전하의 고명하신 학문으로 반드시 이 행사를 하지 않으실 것이오며, 신들도 역시 전하께서 반드시 하지 않으실 것으로 아오며, 만약 명복을 빌려고 하는 것이라면, 선왕의 성덕(聖德)이 고명 정대하여 이미 상제(上帝)에게 밝게 이르렀는데, 하필이면 불경을 박아내어 부처에게 아첨하며 오랑캐의 풍습을 따라야만 전하께서 보본(報本)의 정성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까? 더구나 선왕의 성덕(盛德)이 불교의 해로움을 깊이 밝히시와 일찍이 그 뿌리를 없애려 하였으니, 전하의 이 행사는 선왕의 뜻과 선왕의 일을 계술(繼述)함에 있어 잘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전하께서 만일 ‘이 일은 자전(慈殿)의 뜻에서 나온 일이라, 나는 알 바 아니다.’라고 하신다면, 신들의 의혹이 더욱 심합니다. 필부(匹夫)가 부모를 섬기는 데도 옳지 못한 일을 당하면 오히려 자꾸 간하여 과실이 있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는데, 더구나 일국 신민의 주인으로서 한갓 부모의 명령을 따르는 것만을 효도로 삼으시어, 시비를 가리지 않고 고분고분 순히 받들기만 한다는 말씀입니까.
신들은 듣자오니, 《서경(書經)》에, ‘낳은 아들이 그 처음 낫을 적에는 착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다.[若生子罔不在厥初生]’ 하였고, 또 ‘마지막을 삼가기를 처음에서 한다.[愼終于始]’ 하였으니, 옛날의 임금들을 내리 보면 즉위한 처음에는 비록 사(邪)를 누르고 정(正)을 두둔해서 정치의 근원을 깨끗이 하지만 항상 끝까지 지켜 나가는 이가 적어서 걱정인데, 이제 전하께서 새로 보위(寶位)에 오르시어 선왕의 어렵고 큰 업을 지켜 나가시니, 바로 성학(聖學)을 존중함으로써 국가의 명맥을 부식(扶植)하여, 위로 선왕의 물려 주신 중책을 저버리심이 없고, 아래로 신민들이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시며 날로 새롭고 또 새롭게 하시기에 겨를이 없으실 것인데, 이제 맨 먼저 요괴 허망한 일을 행하여 스스로 처음부터 삼가는 도리를 잃어버리시니, 신들은 후일의 폐단이 장차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을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신들이 듣자옵건대, 이제 바야흐로 공장을 불러들이고 재목을 모집한다 하니, 이는 비록 조정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신들은 몹시 괴이하게 여깁니다. 무릇 유자(儒者)라면 이단(異端)에 있어서는 말로써 벽파하기를 오히려 이르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오며, 또 듣자오니, 학교는 풍화(風化)의 근원지로 인재가 그에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라, 옛날 제왕들이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분이 없었는데, 요즘 무뢰(無賴)한 중들이 남학(南學)을 중수하려 한다 하오니, 더구나 그들이 건축한 집을 가져다 우리들의 공부하고 휴식하는 장소로 삼아서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국가의 영선(營繕)은 각자 맡은 부서가 있는데 하필이면 중들[緇髡]의 힘을 빌어야만 학사(學舍)를 수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한때의 편의를 이롭게 여겨 그 영축(營築)을 허락한다면, 이는 국가가 스스로 풍화의 근본을 무너뜨린 것인 동시에 승가(僧家)의 입 놀릴 자료만 만들어 줄 뿐이니, 어떻게 후세에 보이리까.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사와 정의 기틀을 통찰하시어 불경 박아내는 명령을 거두시고, 또 유사(有司)에게 명하시어 승도(僧徒)가 하는 일을 대행하게 하여, 한편으로 전하의 유신(維新)의 정치를 보이시고, 한편으로 이단이 진리(眞理)를 어지럽히는 조짐을 막아 주시면 종묘 사직도 매우 다행하고 오도(吾道)도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불경 박아내는 일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닌데, 그대들의 말이 지나치다. 승도(僧徒)가 남학(南學)을 영선하는 일은 정지시키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 면
- 【분류】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건설-건축(建築)
- [註 445]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成均館生員尹孝聘等上疏曰:
臣等聞, 薰蕕不同器, 氷炭不相容, 此言邪正之不兩立也。 夫吾道異端, 是非邪正之辨, 豈特薰蕕、氷炭之不相合哉? 況邪正之道, 迭爲消長, 此盛則彼衰, 彼盛則此衰, 其盛衰之機, 國家之治亂係焉, 社稷之安危判焉。 爲人上者, 可不審其機, 而預爲之防乎? 我國家列聖相承, 尊尙儒術, 攘斥佛老, 所以扶持正道, 興起斯文者, 至矣。 臣等以爲, 唐、虞三代之治, 復見於今日矣。 臣等伏聞, 國家於圓覺寺, 印佛經若干卷, 臣等竊惑焉。 未審殿下有何所見, 而爲此擧也? 佛氏之惑世誣民, 耗蠧天下者, 固殿下所熟察, 而明辨者也, 而必演其邪說, 以駭一國之耳目, 何哉? 雖不能人其人、火其書, 以絶根本, 豈宜廣印其書, 以啓崇奉之端乎? 昔韓愈諫憲宗迎佛骨之言曰: "百姓愚冥難曉, 將謂‘天子大聖, 猶一心敬信, 百姓何人, 於佛更惜身命?’ 焚頂燒指, 猶恐後時。" 愈豈無所見, 而遽爲過當之論哉? 《傳》曰: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 夫民之從上, 猶草之偃風, 今若一開誕妄之風, 以爲民先, 則他日焚頂燒指之民, 殿下將何以禁之哉? 且不知殿下此擧, 將崇信其敎, 而欲廣布中外乎? 抑將爲先王薦導冥福而爲之乎? 若謂崇信其敎, 則以殿下高明之學, 必不爲此擧, 而臣等亦知殿下之必不爲也。 若欲薦導冥福而爲之, 則先王聖德, 高明正大, 固已昭格於上帝矣, 何必轉經諂佛, 徇夷虜之風, 然後得盡殿下報本之誠乎? 況先王盛德, 深明佛敎之害, 嘗欲痛絶其根, 則殿下此擧, 非繼志述事之善者也。 殿下如曰: "此出於慈旨, 非予所知。" 則臣等之惑滋甚。 匹夫事親, 當不義, 則猶且熟諫, 而使不至於有過。 況一國臣民之主, 而徒以從親之令爲孝, 不擇是非, 而曲爲承順乎? 臣等聞, 《書》曰: "若生子, 罔不在厥初生。" 又曰 "愼終于始。" 歷觀古之人君, 當卽位之初, 雖抑邪與正, 以澄出治之源, 而常患不克有終。 今殿下新登寶位, 嗣守先王艱大之業, 政思有以尊崇聖學, 培植國脈, 上無負先王付畀之重, 下不失臣民望治之心, 兢兢業業, 日新又新之不暇, 而今乃首擧妖誕之事, 自失謹始之道, 臣等恐後日之弊, 將有不可勝言者矣。 臣等聞, 今方募工鳩(村)〔材〕 , 是雖出於朝廷之命, 臣等竊怪焉。 夫儒者之於異端, 辭而闢之, 猶恐不至, 又聞學校, 風化之源, 而人材之所由出也。 古昔帝王, 莫不重之, 近有無賴僧徒, 欲重修南學, 況可以彼所築之室, 爲吾藏修游息之地乎? 況國家營繕, 自有攸司, 何必假借緇髡之力, 然後得修學舍乎? 爲利一時之便, 許其營築, 則是國家自毁風化之本, 而適爲僧家(籍)〔藉〕 口之資耳, 何以示後世乎? 伏願殿下, 洞察邪正之機, 追還印經之命, 又命有司, 以代僧徒之役, 一以示殿下惟新之政; 一以杜異端亂眞之漸, 則宗社幸甚, 吾道幸甚。
傳曰: "印經, 非吾所爲。 爾等言之過矣。 僧徒南學營繕事, 其停之。"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 면
- 【분류】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건설-건축(建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