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연말 등이 차자를 올려 불경 박는 역사를 파하라고 하니, 대비전의 일로 핑계하다
홍문관 직제학(弘文館直提學) 표연말(表沿沫)·전한(典翰) 김수동(金壽童)·부응교(副應敎) 홍한(洪瀚)·교리(校理) 권유(權瑠)·부교리(副校理) 권오복(權五福)과 성희안(成希顔)·부수찬(副修撰) 손주(孫澍)·정자(正字) 성중엄(成重淹) 등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엎드려 듣자옵건대, 원각사(圓覺寺)에서 불경(佛經)을 많이 박아내기 위하여, 공장(工匠)을 사방으로 모집해서 역사(役事)가 한창 바쁘다 하오니, 매우 놀라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이시니, 마땅히 성학(聖學)에 마음을 깊이 두고 정도(正道)를 숭상하여 믿으시어 정치의 근원을 밝히셔야 하며, 불가(佛家)의 허망된 말 따위는 분명히 물리치고 깊이 끊으셔야 할 바인데, 도리어 그 교(敎)를 높이고 그 서적을 박아내어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려 하신단 말씀입니까. 대개 위에서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아래서는 반드시 그보다 더 심한 자가 있는 법이오니, 이렇게 나간다면 마침내 성덕(聖德)에 누가 될까 염려되옵니다. 사(邪)와 정(正)이 없어지고 자라나는 기틀이 바로 오늘에 있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빨리 그 역사를 파하시어 사도를 물리치시고 정도를 지키시면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 일에 대해서는 나는 실로 모른다. 만약 경(卿)들이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하매, 표연말 등은 다시 아뢰기를,
"한 나라의 일은 크든 작든 전하께서 다 아셔야 되옵니다. 실로 모르시는 일일지라도 사방에서 듣는 자가 전하께서 모르신다 이르겠습니까. 전하께서 못 들으신 때에는 어쩔 수 없거니와 지금은 이미 들으셨으니, 곧 정지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는 반드시 대비전(大妃殿)에서 하신 일일 것이다. 나는 실로 모른다."
하매, 표연말 등이 다시 아뢰기를,
"즉위하신 처음부터 무릇 불사(佛事)에 관한 것은 다 하교하시기를 ‘대비께서 하신 일이요, 나는 실로 모른다.’고 하시니, 밖에서들 누가 전하께서 모르신다고 여기겠습니까. 유해 무익한 일을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양전(兩殿)께서 전하에게 품하는 일이 없으시다면 사체가 어찌 되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양전께서 전부터 그러하셨는데, 내가 어찌 막을 도리가 있느냐."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2 책 687 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재정-역(役) / 사상-불교(佛敎) / 왕실-비빈(妃嬪) / 출판(出版)
○弘文館直提學表沿沫、典翰金壽童、副應敎洪瀚、校理權瑠、副校理權五福ㆍ成希顔, 副修撰孫澍、 正字成重淹等上箚曰:
伏聞, 圓覺寺多印佛經, 工匠坌集, 役事旁午, 不勝駭愕。 今殿下, 嗣服之初, 當潛心聖學, 崇信正道, 以淸出治之源。 如佛誕妄之說, 在所洞闢, 而深絶之。 顧乃尊其敎、印其書以道之? 夫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 若此不已, 恐終累聖德。 邪正消長之機, 正在今日。 伏望殿下, 亟罷其役, 斥邪、衛道, 不勝幸甚。
傳曰: "此事, 予實不知。 若非卿等言之, 予何得以知之。" 沿沫等更啓: "一國之事, 無小無大, 皆殿下所當知。 雖實不知之事, 四方聞者, 其謂殿下不知乎? 殿下未聞之時, 則已矣, 今旣聞之, 宜卽令停罷。" 傳曰: "此必大妃殿所爲之事, 予實不知。" 沿沫等更啓: "卽位之初, 凡干佛事, 皆敎之曰: ‘大妃所爲, 而予實不知。’ 外間, 誰肯以殿下爲不知也? 有害無益事, 豈可爲之乎? 兩殿, 不稟 殿下, 於事體, 何?" 傳曰: "兩殿, 自前而然。 在我, 何能止?"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2 책 687 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재정-역(役) / 사상-불교(佛敎) / 왕실-비빈(妃嬪) / 출판(出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