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성세명 등이 외척 등용과 상과 관직을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해 상소하다
사헌부 대사헌 이의(李誼)와 사간원 대사간 성세명(成世明)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이 모두 보잘것없는 자격으로 외람되게 대간(臺諫)의 자리에 있으면서, 근일 일을 말한 것이 성상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니, 조정에 죄를 얻고 공론(公論)에 기롱을 당할까 염려해서 여러번 사직을 청원하였습니다마는, 또 허락을 얻지도 못하였습니다. 말이 받아들여지지도 못하고 직책을 사면할 수도 없으니, 장차 무슨 방법으로 우러러 성덕(聖德)을 돕겠습니까. 오직 직분의 해야 할 것을 다해서 성상의 위임하신 뜻에 부응(副應)하여야 하겠습니다. 신들이 들으니 ‘일하는 것은 시초에 선하더라도 나중을 잘하기가 어렵다.’ 하옵는데, 시초에 만일 선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장차 어찌 되겠습니까. 이제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이오니, 선악의 기틀과 치란(治亂)의 조짐이 모두 여기서 결정되는 것인데, 경계해야 할 만한 조짐이 흔히 있으니, 환을 예방하는 일을 늦출 수 없으므로 삼가 조목을 들어서 말씀드려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옛날부터 임금이 대간을 두어 언로(言路)를 넓힌 것은 대개 바른 말을 듣고, 바른 도를 행하려는 것으로서 소매를 끌어잡고 난간을 꺾는 일까지 있더라도 모두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선비들도 즐거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전하께서 새로 천명(天命)을 이어받았으니 그 덕을 새롭게 할 때요, 간하는 것을 좇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며, 다른 사람에게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이 가합니다. 신들이 요즘 전하의 잘못하시는 일을 들자면, 궁중 전지에 의하여 외척을 등용하며, 공론(公論)을 어기어 상과 관직을 함부로 쓰는 것 같은 일에 대하여, 연일 궐문 밖에 엎드려서 여러 수십 번 말씀드렸는데, 성상께서는 심히 거절하실 뿐만 아니라 추국하려는 생각까지 가지십니다. 그렇다면 선비로서 제 몸을 아끼는 자가 많은데, 누가 뇌정 같은 위엄에 항거하고 임금의 뜻을 거슬려서 화를 취하려 하겠습니까. 이것은 언로가 막힐 조짐입니다.
석씨(釋氏)의 화복 윤회(輪回)의 이야기는 요망하고 허탄하기 너무도 심한 것이어서, 국법상 반드시 죄주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치죄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찌 그 법을 숭봉해서야 되겠습니까. 국상 초에 예조에서 의주(儀註)를 따르지 않고, 망령되고 요망한 술법을 받들어, 앞장서서 재지내기를 청하여 전하의 큰 효성을 손상하였으며, 근일에는 흥천사(興天寺)에서 빈어(嬪御)317) 들이 다투어 재물과 비단을 허비해가면서 부처에게 재지내고 중을 공양하는 것을 예사로 여겨 괴이한 짓인 줄을 모르니, 이것은 이단이 다시 일어날 조짐입니다.
왕자군과 부마는 부귀한 집안에서 생장하여 마음이 교만하기 쉽고 뜻이 넘치기 쉬우며 세력이 이루어지기 쉬우므로, 도에 맞게 거느리면 둘러쌓은 성의 견고함을 가져오지만, 도에 어긋나게 거느리면 서로 해치는 화가 있는 것이 옛날부터 그러합니다. 임금은 여기에 있어서 은혜로 표시하고 의로 가르치며 도로 대우하여 조금이라도 어그러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만일 혹시라도 도를 잃는 일이 있어, 화와 근심을 조성한다면 사직의 복이 아닙니다. 전번에 풍원위(豐原尉)의 구사(丘史)가 한 감찰을 구타하고, 회산군(檜山君)의 집 종은 문묘에서 말썽을 일으켰으며, 계성군(桂城君)의 집 종은 유생을 결박 협제해서, 중외가 깜짝 놀라고 가슴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또 계성군의 종이 아직도 전악을 버리지 않고, 세력을 의지해서 마음대로 방자하며 큰 도회 중에 모여 행세하는 선비를 결박해다가 때리고 꾸짖으며 능욕 보이기를 못할 짓 없이 하였습니다. 계성이 이것을 금하지 못하고 도리어 법사에서 국문하는 것을 성내며, 사사 분을 아뢰어서 분분히 송사를 일으키니, 왕자군의 교만 방종할 조짐입니다. 외척(外戚)이나 왕후의 친족은 돈녕부(敦寧府)에 두어서 은혜로 양육할 따름이요 일을 맡기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만일 오늘 한 사람을 등용하고, 명일에 또 한사람을 등용하여 세도의 불길이 날로 성해져 그 근거를 제거하지 못하게 된다면, 폐해가 앞으로 측량할 수 없게 되어, 한(漢)나라의 여(呂)318) ·왕(王)319) ·양(梁)320) ·두(竇)321) 나, 진(晉)나라의 양(楊)·가(賈)322) , 당(唐)나라의 무(武)323) ·위(違) 같이 될 것이니, 그 화가 참혹해질 것입니다. 전하께서 청정(聽政)하신 이래로 이철견(李鐵堅)을 등용하여 판의금(判義禁)으로 삼고, 윤탄(尹坦)을 다음 자리에 두며, 안우건(安友鶱)을 발탁하여 참판으로 승진시키고, 또 신수근(愼守勤)을 승지로 임명하여 왕명 출납하는 지위에 두어서, 10여 일 사이에 여러 사람의 의논을 배제하고 공도(公道)를 어기면서 등용을 수행한 것이 4, 5인에 이르니, 이것은 외척들이 용사할 조짐입니다.
내시[宦寺]는 궁궐에 출입하는 신분으로 모든 음식이나 소제하는 일들을 맡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교묘하게 안색을 엿보고 뜻과 취미를 잘 알아맞추니, 그들의 달콤한 말과 아첨하는 태도가 집요하고 핍절하여 임금의 시청(視聽)을 혹하게 함이 있어, 마침내는 군왕의 권위를 의지하여 국가에 화를 미치는 자가 많습니다. 이제 엄용선(嚴用善)은 한 고자[熏腐]의 몸으로서 조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법을 꺼리지 않으며, 음식 만드는 사람[庖人]의 원한을 호소하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 감히 직계(直啓)하니, 그의 심중이 어찌 전하를 가까운 사이[褻狎]로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환관이 권세를 희롱할 조짐입니다.
집안을 잘 다스리는 자는 바깥말이 내정에 들어오지 않고 안말이 내정에서 나가지 않게 하니, 이것은 내외를 엄히 하고 사사로 청탁하는 것을 막는 길입니다. 사대부의 집안도 그러한데, 하물며 구중 궁궐 깊은 곳임에리까. 상궁(尙宮) 조씨(曺氏) 같은 이는 정말 공로가 있다면, 의식을 하사하는 것이 가한데, 어찌 그 친족을 보호하고 호역을 면제하는 사명(私命)을 조정에 선포해서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그 친족 중의 아무 남자, 아무 여자의 몇 결(結), 몇 짐[負]을 성상이 어디서 아셨겠습니까. 반드시 조씨가 스스로 아뢴 것입니다. 왕궁은 깊고 엄숙하며 장막과 발이 엄하고 깊숙한데, 한 늙은 여종이 자기의 사삿일을 어전에 아뢰게 되니, 어찌 집을 바로하는 도에 손상이 되는 일이 아닙니까. 이것은 여알(女謁)이 성행할 조짐입니다.
하늘이 형벌하고 상주는 권리를 임금에게 주었기 때문에 상을 천명(天命), 형벌을 천토(天討)라고 합니다. 임금은 하늘을 대신하여 행하는 것이니, 참람하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공이 있는데 상주지 않고 공이 적은데 상이 중한 것은 상의 참(僭)함이요, 죄가 없는데 형벌을 받고 죄가 중한데도 사(赦)를 받는 것은 형벌의 남(濫)함이니, 천리대로 처리하여 그 마음을 감복시킨 뒤라야 사람을 권장하고 징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번에 대사(大赦)를 반포한지 겨우 6, 7일인데, 왕위를 계승하였다 하여 또 대사를 반포하여, 강상(綱常)324) 과 절도에 관계된 죄인이 모두 사를 입으니, 덕이 지극히 흡족합니다. 그러나 사(赦) 없는 나라에 형벌이 반드시 공평합니다. 대개 사라는 것은 선을 손상하고 악을 키우고 이치를 거스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한 명의 도둑을 사하여 1백 명의 양민에게 해를 입힌다면, 자주 사하여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치화(治化)를 손상하기에 알맞습니다. 3도감에서 논상할 때에 3등으로 나누어서 차례를 정하였으니, 정밀하다 할 만하고, 공이 1등에 해당하면서 아직 자궁(資窮)에 이르지 못한 자에게는 상으로 한 자급을 더하는 것도 오히려 가하거니와, 공이 3등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진배(進排)하는 사람이나, 조제(助祭)하는 사람들을 그 수고와 편함을 논하지 않고 함께 한 등급씩 올리니, 차례를 정한 의미가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은 형벌과 상이 적당하지 못할 조짐입니다.
사풍(士風)의 미악(美惡)은 국가의 치란(治亂)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옛날의 선비들은 세 번 읍하고 나오고, 40세가 되어야 벼슬하되, 임금이 작(爵)에 대한 명이 있으면 모두들 서로 사양하였습니다. 지금 조급하게 나오려고 애쓰는 자들은 남몰래 이로운 길을 취하고, 어둔 밤에 찾아 다니며 애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대낮에도 뻔뻔스레 은상(恩賞)을 희망하여 혹은 임금이 승하하신 날에 3도감의 낭청(郞廳)이 되려 하고, 혹은 시호(諡號)를 올리는 제사에 집사가 되기를 원하니, 그 한 조각 창자에는 탐욕과 비루한 것뿐이요, 그 밖에 명분이나 절의[名檢]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 마치 시장에 들어가서 금을 훔치되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을 일일이 적발하지는 못하지만, 경박하게 꼬리 치는 태도를 사림(士林)에서 비루하게 여기오니, 이것은 염치(廉恥)의 도가 없어질 조짐입니다.
대간(臺諫)의 직책은 기강(紀綱)을 일으키고 풍속을 깨우치며 불법을 탄핵하는 것이므로 말이 임금[乘輿]에게 관계되면 임금이 얼굴빛을 고치고, 일이 정부[廊廟]에 관계되면 재상이 꺼리는 것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임금을 움직이고 백관을 규찰(糾察)하여 조정을 중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왕조에 있어서는 홍흥(洪興)이 공사(公事)로 인하여 헌대(憲臺)325) 를 거슬렸다가도 파직을 당하였습니다. 더구나 이제 병조의 낭관이 사죄(私罪)를 범하고 법사를 업신여긴 것은 법에 의거하여 내치는 것이 가한데, 당상관이 사사로이 두둔하고, 정부에서 구원하여 한두 명의 미관(微官)을 보호하느라 조정의 원기를 무너뜨리니, 이것은 기강이 서지 않을 조짐입니다.
지금의 수상인 자는 고명(顧命) 받은 대신으로서 새로 정사 보는 때를 당하여 임금을 도에 맞게 인도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급급하게 한다는 일이 모두 맑은 의논[淸論]에 용납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자면, 예조에서 재지내기를 청하는데 도리어 옳다고 하면서 힘써 찬성하고, 유생들이 불교를 배척하였다 하여 죄를 입는데는 한 마디의 구원하는 말이 없습니다. 어진이 쓰기를 주공(周公)의 토포 악발(吐哺握髮)326) 하듯 하여야 할 것인데, 충훈부(忠勳府)의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천거한 것이 탐람 부정한 죄인이며, 대체를 알기를 병길(丙吉)이 죽은 사람을 묻지 않는 것327) 같이 하여야 할 것인데, 정부의 장관이 되어서는 두둔한 것이 병조랑(兵曹郞)의 사죄(私罪)이며, 왕을 훈계하는 것은 이윤(伊尹)의 밝히 말하는 것 같아야 할 것인데, 처음 경연(經筵)에 들어가서는 위의 고문(顧問)이 있을 적에 묵묵히 가부의 말이 없으며, 여러 왕자군의 교만 방종이나, 외척들의 지나친 관작이나, 환관들의 무엄함이나, 나인들의 청탁이 공공연히 행해지는 것이나, 염치의 상실, 기강의 훼손 등에 대해서는 모두 까마득하게 자기에게 관여되는 일이 아닌 듯 등한이 보아 넘기고, 한 가지라도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발연(艴然)히 사직하고 가니, 부탁 받은 대신으로서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조정의 해체(解體)될 조짐입니다.
옛날 당(唐)나라의 위징(魏徵)은 태종(太宗)을 보좌하여 정관(貞觀) 년간의 훌륭한 정치를 이루었는데, 그래도 끝마침을 잘하지 못할까 염려해서, 열 가지 조짐을 상소하여, 임금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밝히고 답답하여 길이 탄식[鬱結長嘆]하였다는 말이 있기까지 하였습니다. 신들의 구구한 마음으로 일찍이 요(堯)·순(舜)의 정치가 있기를 전하께 바랐는데, 청정(聽政)하신지 수개 월이 안 되는 사이에, 태종의 정관 년간의 다스림은 없고, 위징이 말한 열 가지 조짐의 걱정이 있어서 치화(治化)가 도리어 당 태종에게 부끄러움이 있사오니, 어쩐 일입니까. 위징이 상소하여 말한 조짐은 당 태종의 만년(晩年)에 일어났는데, 신들이 상소하여 말씀 드린 조짐은 전하의 첫 해에 일어나니, 신들은 답답하여 길이 탄식하는 것이 위징보다 배나 됩니다. 신들이 생각하기에는 화한(禍患)이 일어나는 것은 세미(細微)한 데에 감추어져 있사온데, 그것이 드러나게 되면 지혜 있는 자라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오니, 항상 조심하고 공경히 도모하여 그 미세한 것을 막고 그 조짐을 없앤 뒤에야만, 그 나중을 잘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오늘에 있어서〉 사려를 심원(深遠)하게 하고 기미(幾微)를 잘 살펴서 어려운 일을 쉬운 데서 도모하고 큰일을 사소한 데서 시작하는 것은 전하의 한 마음이 바른 데에 있습니다.
전하께서 정말 날마다 경연에 납시어,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널리 알아보아서 정일(精一)한 묘리를 연구하며 거기에 더욱 빛내는 공을 가하신다면 마음의 체(體)가 물과 거울처럼 맑고, 마음의 용(用)이 저울과 말[度]처럼 공평해질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邪)와 정(正)의 미묘한 것을 살피고 공과 사의 나뉨을 살피시어, 예로써 종실(宗室) 친척을 대하고 엄숙으로써 환관을 거느리며, 공평으로써 상과 벌을 행하며, 정(正)으로써 유(儒)와 불(佛)을 분변하여, 나아가서 모든 일이 만 가지의 노력을 이것으로 조처하게 되어, 공평 정대한 마음으로 공평 정대한 정사를 행한다면, 사유(四維)328) 가 절로 펴지고 기강(紀綱)이 절로 서며, 공도(公道)가 절로 행해져서 백관이 정(正)으로 귀일(歸一)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도 만 가지 일을 보시는데, 조짐이 천백 가지로 일어나서 구원할 수 없게 될 것이오니, 서리를 밟는 경계329) 가 그칠 때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 잘못씀을 나무랄 것이 못되고, 정사의 과실을 헐뜯을 것이 못되며, 오직 임금의 마음의 그른 것을 바로하는 데에 있을 뿐이니, 이것이 신들이 끝내 잠자코 있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이 점에 잠심(潛心)하소서."
하였는데, 상소가 들어가매, 왕이 친히 글로 써서 내리기를,
"경들의 상소문 뜻을 보고 내가 매우 가상히 여긴다. 내가 변변치 못하기 때문에 고금의 사리에 통달하지 못하므로 모든 하는 일에 잘못이 있는 데 대해서 이처럼 간곡하게 말하니, 경들의 충성을 여기서 알 수 있다.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지나간 것은 다시 고치기가 자못 어렵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12 책 674 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풍속(風俗) / 사상-불교(佛敎) / 역사(歷史)
- [註 317]빈어(嬪御) : 후궁, 나인(內人) 등의 여자.
- [註 318]
여(呂) : 여녹(呂祿) 여산(呂産).- [註 319]
왕(王) : 왕망(王莾).- [註 320]
양(梁) : 양기(梁冀).- [註 321]
두(竇) : 두영(竇嬰).- [註 322]
가(賈) : 가충(賈充).- [註 323]
무(武) : 무삼사(武三思).- [註 324]
강상(綱常) : 윤리.- [註 325]
헌대(憲臺) : 사헌부.- [註 326]
토포 악발(吐哺握髮) : 옛날 주(周)나라 주공(周公)이 어린 조카 성왕(成王)을 보필할 때에, 혹시라도 천하의 어진이를 다 등용하지 못할까 해서, 한 번 밥 먹을 때에도 세 번씩이나 먹던 것을 뱉았고, 한 번 목욕하는 동안에도 세 번씩이나 머리칼을 쥐고 나와서 선비들을 맞이하던 일을 말함.- [註 327]
병길(丙吉)이 죽은 사람을 묻지 않는 것 : 병길(丙吉)은 한(漢)나라 선제(宣帝)를 보좌하던 어진 재상. 일찍이 외출하다가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패지어 싸우며 무수한 사상자가 길에 있음을 보고, 그 이유를 물어 보지도 않고 지나니, 이속이 괴이하게 여기며, 재상인 그의 무심함을 질문하였다. 그런데 이때 병길이 이속에게 대답한 말은 이러하였다. "백성이 싸우고 살상하는 일을 처리하는 것은 장안령(長安令)·경조윤(京兆尹)의 직책에 해당하는 일이니, 그들이 예방하고 또 잡아서 처리할 것이요, 승상(丞相)은 연말에 그들이 이런 일을 잘하고 못한 것을 심사해서 상벌을 행하는 것이다. 재상은 작은 일을 친히 하지 않는 것이니, 이런 것을 도로상에서 묻는 것이 아니다." 《한서(潢書)》 내길전(內吉傳).- [註 328]
사유(四維) : 예·의·염·치(禮義廉恥)를 말함.- [註 329]
서리를 밟는 경계 : 《주역(周易)》 곤괘(坤卦) 중에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履霜堅氷至]"는 데서 생긴 말이다. 즉 서리가 오는 것은 얼음이 얼 조짐을 보이는 것이니, 작은 조짐을 보고 큰일이 생긴 것을 미리 주의 방지하여야 한다는 말이다.臣等俱以無狀, 濫居臺諫。 近日言事, 未克回天。 深恐獲罪於朝廷, 見譏於公論。 累請辭職, 又未蒙兪。 言未見納, 職未得辭。 顧將何術, 仰裨聖德。 唯盡其職分之當爲, 以副聖上委任之意耳。 臣等聞, 謀始猶善, 克終爲難。 始若不善, 終將奈何? 今殿下, 嗣服之初, 善惡之機, 治亂之兆, 皆決於此, 而可戒之漸, 間多有之。 思患預防, 不可緩也。 謹用條陳, 裨萬分一。 自古人君, 立臺諫之官, 以廣言〔路〕 , 蓋欲聞正言, 而行正道。 雖至牽(裙)〔裾〕 、折檻, 皆得優容。 故士亦樂爲之言。 今殿下, 新服厥命, 惟新厥德之時。 從諫如流, 樂取諸人可也。 臣等, 近將殿下之過擧, 如由中旨, 而用外戚; 違公論, 而濫賞職等事, 連日伏閤, 累數十言。 聖上, 非惟拒之甚固, 或有(推鞠)〔推鞫〕 之心。 然則士之自愛其身者, 多矣。 誰肯抗雷霆、批龍鱗, 以取禍哉? 此則言路閉塞之漸也。 釋氏禍福輪回之說, 妖誕太甚。 在王法, 所必誅者也。 縱不誅之, 豈可崇奉其法乎? 當國恤之初, 禮曹不遵《儀註》, 妄奉妖術, 首請設齋, 以傷殿下之大孝。 近於興天寺, 宮中嬪御, 競費財帛, 飯佛供僧, 恬不自怪。 此則異端復熾之漸也。 王子ㆍ君、駙馬, 生長富貴: 其心易驕, 其志易溢, 其勢易成。 馭得其道, 則致維城之固; 馭失其道, 則有相戕之禍, 自昔然矣。 人主當示之以恩, 敎之以義, 待之以道, 不使少有過差, 可也。 若或縱使失道, 釀成禍患, 則非社稷之福也。 頃者, 豐原尉丘史, 歐一監察; 檜山君家奴, 凌轢文廟; 桂城君家奴, 縛制儒生, 中外駭愕, 莫不痛心。 又今桂城之奴, 猶稔前惡, 憑勢自恣, 群聚大都之中, 縛致衣冠之士, 歐罵凌辱, 無所不至。 桂城旣不能禁, 尙怒法司之鞫, 啓達私憤, 蝟興訟獄。 此則王子君, 驕縱之漸也。 外戚后族, 置諸敦寧府, 養育以恩而已, 不宜任之以事。 若今日用一人, 明日用一人, 勢焰日熾, 根據莫除, 則其害, 將不可測。 如漢之呂、王、梁、竇, 晋之楊、賈, 唐之武、韋, 其禍慘矣。 殿下聽政以來, 用李鐵堅判義禁, 以尹坦副之, 擢安友騫陞參判, 又以愼守勤爲承旨, 置之喉舌之地。 旬日之間, 排群議、背公道, 必行用之者, 至于四、五人。 此則戚里用事之漸也。 宦寺出入宮禁, 凡饔膳、灑掃之事, 靡不任之。 巧伺候顔色, 善承迎志趣, 其甘言侫態, 浸潤膚受, 有以惑君上之視聽, 卒之憑依城社, 以禍國家者, 多矣。 今嚴用善, 以一熏腐之餘, 不畏朝廷, 不憚法憲。 以庖人訴怨細事, 敢爾直啓。 其心, 豈不以殿下爲褻狎, 而然耶? 此則宦官弄權之漸也。 善治家者, 外言不入於梱; 內言不出於梱。 此嚴內外, 杜私謁之道也。 士大夫之家, 猶然。 況宮闈九重之邃乎? 如尙宮曹氏, 苟有功勞, 賜之衣食, 可也。 詎可以庇族、復戶之私命, 宣布於朝廷乎? 況其族之某男某女, 幾結幾負, 聖上何從而知之乎? 必曹氏自達之也。 法宮深肅, 帷薄嚴奧。 一老婢, 得以自達私事冕旒之前, 豈不有虧於正家之道乎? 此則女謁盛行之漸也。 天以刑賞之柄, 付之人君。 賞曰, 天命; 刑曰, 天討。 人君, 代天而行之耳, 不可以僭濫處之也。 有功不賞, 功微賞重, 賞之僭也; 無罪受刑, 罪重見赦, 刑之濫也。 處之以天, 而能服其心, 然後可以勸懲人矣。 頃者, 頒大赦才六七日, 以嗣位, 又頒大赦, 罪關綱常、盜竊者, 皆得赦之, 德至渥也。 雖然, 無赦之國, 刑必平。 蓋赦者, 爲傷善、爲長惡、爲悖理。 赦一盜賊, 害百良民, 則數赦施恩, 適以傷治化也。 三都監論賞之時, 分三等以第之, 可謂精矣。 功在一等, 而未資窮者, 賞加一資, 猶之可也。 功在三等, 如進排之員、 助祭之士, 不論勞逸, 同陞一級, 等第之意, 果安在哉? 此則刑賞失中之漸也。 士風之美惡, 國之治亂係焉。 古之爲士者, 三揖而進, 四十而仕, 君有爵命, 則濟濟相讓耳。 今之務爲躁進者, 非徒冥行利道, 乞哀昏夜而已, 至有白晝靦面, 希望恩賞, 或於天崩之日, 求爲三都監郞廳; 或於上諡之祭, 求爲執事, 其一片腔子, 都是貪鄙, 不復知有名檢, 如入市攫金不見人也。 雖不能一一摘發, 其沾沾搖尾之態, 士林鄙之。 此則廉恥道喪之漸也。 臺諫之職, 得振紀綱、得警風俗、得以彈不法, 言關乘輿, 則人主禮貌之; 事屬廊廟, 則宰相畏憚之。 不如是, 則不能以動人主、糾百官, 而重朝廷也。 故在先王朝, 洪興因公事, 而忤憲臺, 尙且罷職。 況今兵郞犯私罪, 輕蔑法司者, 據法黜之, 可也。 堂上私庇之、政府營救之, 護一、二微官, 毁朝廷元氣, 此則紀綱不立之漸也。 今之首相者, 以顧命大臣, 當新服之日, 不以引君當道爲心, 其汲汲營爲者, 皆不爲淸議所容。 如禮曹請設齋, 則反以爲是, 而力贊之; 儒生以闢佛獲罪, 則無一言救之。 進賢, 宜如周公之吐握也, 而首忠勳, 則共薦者貪汚之罪人; 知大體, 如丙吉之不問死人也, 而長政府, 則所庇者兵郞之私罪; 訓王, 宜如伊尹之明言也, 而始入經筵, 則當顧問之際, 默無可否之言。 若於諸君之驕縱、戚畹之濫爵、宦寺之褻慢、內謁之公行, 廉恥之喪、紀綱之毁, 則皆邈然無預於己, 越視而不之恤焉, 一有不愜, 則艴然辭職而去。 付托大臣, 顧如是乎? 此則朝廷解體之漸也。 昔唐 魏徵, 佐太宗致貞觀盛治, 猶恐不終。 疏其十漸, 以明主可爲而不爲, 至有鬱結長嘆之說。 臣等區區之心, 嘗以堯、舜之治, 望於殿下, 而聽政不數月間, 無太宗 貞觀之治, 有魏徵十漸之憂, 其治化, 反有愧於唐宗, 何哉? 徵之所疏之漸, 起於唐宗之晩年; 臣等所疏之漸, 起於 殿下之初載, 臣等所以鬱結長嘆, 有倍於徵也。 臣等竊謂, 禍患之起, 藏於細微。 及其旣著, 智者不能謀。 惟當兢業以圖之, 防其微、杜其漸, 然後可以善其後也。 深思遠慮、審譏察微, 圖難於易、爲大於細, 在殿下一心之正耳。 殿下誠能日御經筵, 延訪群臣, 究精一之妙, 加緝熙之功, 此心之體, 如水如鑑; 此心之用, 如權如度, 由是而審邪正之微; 由是而察公私之分, 待宗戚則以禮、馭宦寺則以嚴、行賞罰則以公、卞儒釋則以正, 以至庶事萬務, 擧此而措之。 以公平正大之心, 行公平正大之政, 則四維自張、綱紀自立、公道自行, 而朝廷百官, (暮)〔莫〕 不一於正矣。 不然, 則一日萬機, 漸之所起, 至於千百, 而不可救。 履霜之戒, 無時焉已也。 人不足適、政不足間, 唯在於格君心之非, 此臣等所以不能終默也。 伏惟殿下, 潛心焉。
疏入, 御書以下曰:
觀卿所上疏章之意, 予甚嘉焉。 予以菲薄, 未能達古今之事理。 凡所有爲, 失誤之事, 卿等, 懇懇言之如是。 卿等忠誠, 於斯可知。 雖有誤事, 旣往, 頗難更改也。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12 책 674 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풍속(風俗) / 사상-불교(佛敎) / 역사(歷史)
- [註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