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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3권, 연산 1년 2월 8일 임술 4번째기사 1495년 명 홍치(弘治) 8년

빈전 도감이 재궁의 이동 경로·우제의 절차와 대비의 진향의 어려움을 아뢰다

빈전 도감(殯殿都監)이 아뢰기를,

"재궁(梓宮)이 동가(動駕)할 적에 전하께서 돈화문(敦化門) 안에서 지송(祗送)하셔야 하는데, 전하께서 만약 재궁을 수행하여 빈청(賓廳) 앞을 경유하시어 진선문(進善門) 밖으로 나가신다면, 잡인(雜人)이 요란스러울 뿐더러 길도 협착하니, 전하께서 도보(徒步)하시기도 역시 어렵습니다. 만약 권도(權道)를 따라 먼저 막차(幕次)에 나아가시기로 하면, 전하께서 조전(祖奠)을 행하신 다음에 소교(小轎)를 타시고 인화문(仁和門)을 벗어나 인정전(仁政殿) 앞을 경유하여 먼저 돈화문 안으로 나가시면 되는데, 돈화문 안도 역시 협착하니, 마땅히 막차(幕次)를 진선문(進善門) 동편에 마련하고 서쪽을 향하여 지송(祗送)하셔야 옳겠습니다. 또 우제(虞祭)를 행한 뒤에 대비(大妃)께서 진향(進香)하시는 것은 예문이나 전례에 없습니다. 이극돈(李克墩)·성현(成俔) 등의 뜻은 하현궁(下玄宮)하고, 흙으로 절반쯤 메우고 제주(題主)170) 하고, 한낮에 우제(虞祭)를 지내므로 절차가 매우 많고, 반혼(返魂)이 이를지 늦을지 그것도 또한 알 수 없으니, 그날 우제 뒤에 대비께서 진향(進香)하기는 진실로 어려울 것인데, 만약 대비의 망극하신 정을 따르기로 한다면 반혼한 뒤에 대비께서 혼전(魂殿)에 나아가 조석 상식할 때를 기다려서 나와 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였고, 윤효손(尹孝孫)의 뜻에는 이런 것이 예문에 실리지 않았으니, 우제 후에 대비의 진향은 수시로 행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2 책 646 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註 170]
    제주(題主) : 신주를 쓰는 것.

○殯殿都監啓: "榟宮動駕時, 殿下祗送, 當於敦化門內。 殿下若隨榟宮, 由賓廳前, 出進善門外, 則雜人紛擾, 路且狹窄, 殿下徒步亦難矣。 如欲從權, 先就幕次, 則殿下行祖奠之後, 乘小轎, 出自仁和門, 由仁政殿前, 先詣敦化門內, 可矣。 而敦化門內亦狹窄, 宜設幕次于進善門外東邊, 向西祗送, 可也。 且虞祭後, 大妃進香, 於禮文與前例無之。 克墩成俔等意以爲: ‘下玄宮, 塡土半坎; 題主, 日中而虞, 節次甚多, 返魂早晩, 又未可知也。 其日虞祭後, 大妃進香, 固難。 若從大妃罔極之情, 則返魂後, 大妃詣魂殿, 待朝夕上食時出見, 若何?’ 孝孫意以爲: ‘此於禮文不載, 虞祭後, 大妃進香, 無時可行。’ 云矣。"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2 책 646 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