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상 등이 성종의 장지로 광평의 묘를 주장하니, 예의를 갖추어 이장하게 하다
승정원에서 문안하니, 전교하기를,
"점차 나아간다."
하였다. 원상(院相) 윤필상 등이 아뢰기를,
"신이 듣자오니, 전하께서 면창(面瘡)에 약간 붉은 발[赤暈]이 있으며 또 고름이 나고 소변이 잦으시다 하니, 이것은 반드시 애훼(哀毁)의 소치입니다. 조섭하시고 의원을 불러 약을 물으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제는 이미 나아가니, 의원을 부를 필요가 없다. 근일에 조리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곡림(哭臨)을 폐하였으니, 이제부터는 마땅히 예절대로 하겠다."
하였다. 능 자리를 보는 재상 및 지리관에게 전교하기를,
"대왕 대비의 말씀이 ‘광평의 묘는 그 자손이 혹은 병들고 혹은 요사하였으며, 또 종재(宗宰)의 무덤이 많이 있으니, 그것을 발굴한다면 예장(禮葬)033) 을 해 주어야 할 것이므로 그 폐단이 적지 않다.’ 하시니, 다시 다른 곳으로 정하라."
하매, 필상 등이 아뢰기를,
"장사할 길지가 이보다 나은 곳이 없사오니, 대군의 무덤을 발굴하는 것은 헤아릴 것이 못됩니다."
하였는데, 최호원이 아뢰기를,
"길지로는 광평의 묘만한 곳이 없고 만일 부득이하여 달리 구한다면 대방동(大方洞)도 또한 좋습니다."
하매, 필상 등이 아뢰기를,
"대방동에는 물이 없고 또 길이 막혔으니, 쓸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왕 대비의 말씀이 ‘만약 이 땅을 쓴다면 무덤을 발굴할 것이 하나만이 아니고 민가도 또 헐어야 하니, 반드시 백성이 힘들 것인데, 대행왕께서는 평일에 백성이 힘들게 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셨으니, 하늘에 계신 영이 어찌 마음이 편안하시랴.’ 하셨으니, 다시 물으라."
하매, 필상 등이 아뢰기를,
"상장(喪葬)은 나라의 대사인데, 어찌 작은 폐를 헤아리겠습니까. 또한 광평의 묘는 건해좌(乾亥坐)로서 수파(水破)가 장생(長生)이므로 흉하지마는, 지금은 그 위에 임좌(任坐)로 정하므로 수파(水破)가 문곡(文曲)034) 이니, 길하기가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대비의 말씀이 ‘처음에는 광평의 자손이 일찍 죽고 또 병들었기 때문에 의심하였는데, 이제 좌향(坐向)을 고쳐서 정한다 하니, 무슨 의심이 있으랴.’ 하셨으니, 대군의 무덤을 옮기되 마땅히 예장(禮葬)을 할 것이요, 또 부인(夫人)의 집도 헐어야 할 것인데, 국가에서 일이 많아 관가에서 지어 줄 수는 없으니, 목면(木綿) 1천 필·정포(正布) 7백 50필·쌀 2백 석·황두(黃豆) 1백 석을 주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2 책 631 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주생활-가옥(家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乙未/承政院問安, 傳曰: "向愈。" 院相尹弼〈商〉等啓: "臣聞, 殿下面瘡, 微有赤暈。 且出濃汁, 而小便頻數。 此必哀毁所致也, 請調攝。 且召醫問藥。" 傳曰: "今已向愈, 不必召醫。 近因調理, 久廢哭臨, 自今當如儀。"
傳于看山宰相及地理官曰: "大王大妃敎云: ‘廣平墓, 則子孫或病或夭, 且多有宗、宰塚。 發之則當用禮葬, 其弊不貲。’ 其更卜他處。" 弼商等啓: "卜葬吉地, 無逾於此。 發大君之塚, 不足計也。" 崔灝元啓: "吉地無如廣平墓, 如不得已而他求, 大方洞亦可。" 弼商等啓: "大方洞, 無水且路阻, 不可用也。" 傳曰: "大王大妃敎云: ‘若用此地, 則發塚非一, 而民家亦當撤, 必勞民力。’ 大行王平日, 重勞民力, 在天之靈, 豈安於心? 其更問之。" 弼商等啓: "喪葬, 國之大事, 豈計小弊? 且廣平之墓, 乾亥坐而水破長生, 凶也。 今則改卜於其上壬坐, 而水破文曲, 吉莫大焉。" 傳曰: "大妃敎云, 初以廣平子孫早死且病爲疑, 今曰, 改卜吉, 有何疑焉。 遷大君塚, 當用禮葬。 且夫人之家應撤, 國家多事, 不可官造。 其賜木緜一千匹、正布七百五十匹、米二百碩、黃豆一百碩。"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2 책 6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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