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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1권, 연산 즉위년 12월 26일 신사 5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성종을 위하여 수륙재를 올리려 하자 강백진·이의손이 반대하여 상소하다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강백진(康伯珍)·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이의손(李懿孫)이 아뢰기를,

"대행 대왕을 위하여 수륙재(水陸齋)022) 를 내리라는 전교를 듣자왔습니다. 대행왕께서 일찍이 불법을 좋아하지 않으셨고, 또 지금 신정(新政)의 처음이어서 신민이 좋은 정치를 바라는 시기이니, 사도(邪道)를 버리고 예문을 좇아야 할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선왕께서 어찌 다 불법을 좋아하셨으랴마는, 수륙재의 거행은 조종조로부터 이미 그러하였고, 대행 대왕께서도 그만두라는 유명(遺命)이 없었으니, 이제 문득 폐지할 수 없다."

하매, 백진 등이 다시 아뢰기를,

"대행 대왕이 불도를 본디 믿지 않으셨는데, 이제 칠칠일에 수륙재를 지낸다면 효자가 어버이를 받드는 뜻이 아니오니, 지내지 마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선왕께서 다 행하셨고, 대행왕께서 비록 불교를 좋아하지 않으셨으나, 또한 선왕을 위하여 행하셨으니, 나도 마땅히 대행왕을 위하여 행하겠다."

하였다.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성세명(成世明)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엎드려 듣자옵건대, 대행 대왕을 위하여 불재(佛齋)를 거행하려고 본관(本館)으로 하여금 소(疏)를 지어 바치게 한다 하오니, 못내 놀랍습니다. 이는 비록 애달프기 그지없는 정성에서 나온 것이나, 예도에 맞지 않는 일은 실로 효도를 다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대행 대왕이 평일에 불교를 믿지 않으신 것은 신민이 다 아는 바이온데, 이제 대행 대왕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려 하면서 대행왕의 평일의 생각과 반대되게 한다면, 이른바 죽은 이를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섬긴다는 도리에 너무도 맞지 않습니다. 하물며 정시(正始)하는 처음에 더욱 삼가야 할 바임에리까. 지금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애달퍼하는 때에 감히 이렇게 간절히 청하는 것은 참으로 관계됨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간에게 말한 그대로 말하여 주라."

하매, 백진 등이 다시 아뢰었으나, 좇지 않았다. 세명 등이 다시 아뢰기를,

"대행 대왕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불교를 믿지 않으시어, 도승(度僧)023) 의 법 같은 것은 선왕이 제정하시어 《대전(大典)》에 실렸는데도, 하루아침에 단연히 개혁하여 양민(良民)으로 하여금 다시 중이 되지 못하게 하셨고, 절을 새로 짓는 것을 일체 금지하였으며, 또 경연(經筵)에서도 말이 불사(佛事)에 미치면 매양 군신(群臣)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믿지 않음은 그대들이 아는 바이다.’ 하시던 정녕(丁寧)한 말씀이 분명히 귀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왕위를 이어받은 처음에 일마다 선왕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온데, 도리어 대행왕이 믿지 않으시던 일을 거행하여 부처에게 아첨하여 복을 구한다면, 하늘에 계신 대행왕의 영(靈)이 옳다 하시겠습니까. 더구나 정시(正始)의 처음은 온갖 교화(敎化)의 출발이며 온 백성이 보는 바이므로 더욱 삼가해야 할 것인데, 전교에 ‘선왕을 위하여 재를 지내는 것은 대행왕께서도 폐지하지 않으셨었고 또 그만두라는 유교(遺敎)가 없으셨다.’ 하시니, 실망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대행왕께서 재를 지내셨음은 특히 마지못해 돌아가신 상왕의 뜻을 따른 것이며, 또 유교가 없었음은 애초에 오늘날의 이 행사가 있을 줄을 모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전에 이미 다 말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2 책 623 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 왕실-의식(儀式)

  • [註 022]
    수륙재(水陸齋) : 불가(佛家)에서 물·뭍의 여러 귀신에게 음식을 차려 주고 경을 읽는 모임. 중국의 양 무제(梁武帝)가 금산사(金山寺)에서 한 것에서 비롯함.
  • [註 023]
    도승(度僧) : 중에게 도첩(度牒:처음으로 중이 되었을 때에 지급하는 허가증과 같은 것)을 줌. 또 그것을 받은 중.

○司憲府掌令康伯珍、司諫院正言李懿孫啓: "伏聞爲大行大王, 行水陸齋之敎。 大行王嘗不好佛, 且今新政之初, 臣民望治之時, 宜去邪道, 以從禮文。" 傳曰: "先王豈皆好佛! 然水陸之設, 自祖宗朝已然, 而大行王亦無遺命止之, 今不可遽廢。" 伯珍等更啓: "大行大王於佛道, 本不崇信。 今於七七之日, 若設水陸齋, 則非孝子奉先之意, 請勿行。" 傳曰: "先王皆行之。 大行王雖不好佛, 亦爲先王而行之。 予亦當爲大行王而行之。" 弘文館副提學成世明等書啓曰:

伏聞爲大行大王, 將設佛齋, 令本館製疏以進, 不勝驚愕。 此雖出於哀痛罔極之誠, 然非禮之擧, 實非所以盡孝之道也。 大行大王在平昔, 不信佛敎, 臣民所共知。 今欲爲大行盡誠, 而反於平昔, 則甚非所謂 ‘如事生之道’也。 況正始之初, 尤所當謹! 在今擗踊哀痛之時, 敢此籲號者, 誠以所關者大也。

傳曰: "其以語臺諫者, 語之。" 伯珍等更啓, 不從。 世明等更啓: "大行大王, 自卽位以來, 不信佛敎。 如度僧之法, 乃先王所定, 《大典》所載, 而一朝斷然革去, 使良民不復爲僧, 新創寺社, 一切禁止。 且於經筵, 語及佛事, 每敎群臣曰: ‘予之不信, 爾等所知。’ 天語丁寧, 炳然在耳。 今在嗣服之初, 事事宜遵先志, 而反擧 大行所不信之事, 佞佛求福, 則大行在天之靈, 其肯之乎? 況正始之初, 萬化所出, 萬民所觀, 在所尤謹, 而乃敎曰: ‘爲先王設齋。 大行王亦嘗不廢, 又無遺敎止之。’ 不勝缺望。 大行之有此擧, 特勉從先志耳, 非其本意。 且不有遺敎者, 初不知有今日之擧也。" 傳曰: "前言已盡。"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2 책 623 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