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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295권, 성종 25년 10월 28일 계미 1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언관의 간언을 받아들일 것 혼인과 연회의 사치를 금지할 것 등에 관한 대사헌 이의 등의 상소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이의(李誼)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신(臣) 등이 삼가 살펴보니,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착한 일을 하면 온갖 상서로움을 내리고, 착하지 못한 일을 하면 온갖 재앙(災殃)을 내린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오직 길함과 흉함이 어긋나지 않고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은 오직 하늘이 재앙과 상서를 내리심이 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니, 천인(天人)이 감응(感應)하는 이치가 은미(隱微)합니다. 하늘과 사람이 그 형세는 비록 멀다 하여도 그 이치는 사이가 없으니, 인사(人事)가 바르면 정기(正氣)가 응하여 상서(祥瑞)가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며, 인사(人事)가 바르지 않으면 사기(邪氣)가 응하여 재변(災變)이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홍범(洪範)》서징(庶徵)1150) 이 비록 억지로 끌어다 합치시켰다고는 하나 감소(感召)하는 이치는 거짓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달 11일(병인)에 하늘이 크게 천둥하고 번개가 치면서 우박이 내렸습니다. 이에 전하께서는 측연(惻然)히 경구(警懼)하시어, 전지(傳旨)를 내려 구언(求言)1151) 하시고 녹수(錄囚)1152) 하며 소방(疏放)하여 원왕(冤枉)1153) 함이 없도록 하시니, 그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걱정하시는 생각이 지극하셨습니다. 하오나 신 등은 언관(言官)으로 대죄(待罪)하면서 감히 끝내 잠자코 있을 수 없어, 삼가 본 바를 조목조목 진달(陳達)하겠습니다.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임금은 간쟁(諫諍)을 따르면 성스러워진다.’고 하였습니다마는, 대개 인주(人主)는 높이 깊은 궁중에 계시니, 듣는 것이 모자라고 보는 것이 막히어 비록 과실(過失)이 있더라도 어떻게 들으며 비록 빠뜨리고 잃어버림이 있더라도 어떻게 이를 아시겠습니까? 예전에 진선지정(進善之旌)1154) 을 세우고 비방지목(誹謗之木)1155) 을 설치하였던 것은 그 천하지선(天下之善)을 오게 하여서 자기의 덕(德)을 도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주(人主)의 위엄은 뇌정(雷霆)과 같으며 인주의 세력은 만균(萬鈞)을 범하면서 감히 말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즉위(卽位)하신 이래로 묻기를 좋아하시고 간언(諫言)함을 즐거워하시어, 그 항소(抗疏)하는 자가 있으면 위엄을 풀고서 용납하시고 봉사(封事)하는 자가 있으면 칭찬하시고 받아들여 권장하셨으니, 사람들이 모두 다 말하기를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년(近年) 이래로 간혹 언사자(言事者)가 있으면 일마다 조목의 순서에 따라 번번이 힐문(詰問)을 더하여 반드시 언근(言根)의 출처[所自出]를 궁구(窮究)하시니, 신 등은 그윽이 언사자(言事者)가 말을 은휘(隱諱)하여서 전하께서는 정론(正論)을 들으실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이강(李絳)1156) 이 이르기를, ‘인신(人臣)으로서 진언(盡言)하기가 어찌 쉽겠는가? 열 가지 일을 진달하고자 하면서 그 5, 6을 버리고, 상전(上前)에 이르러서는 그 8, 9를 깎아버린다.’고 하였으니, 인신(人臣)으로서 진언(進言)하기가 어려움이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또 천변(天辯)1157) 을 놓아 신기(神機)를 동(動)하여 대답하기 어려운 말로써 핍박하면 위엄을 범하고 꺼리는 것을 촉범(觸犯)함은 비록 용감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잘할 수 없는데, 더구나 겁을 내는 사람이겠습니까?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허심(虛心)으로 잘 살펴 받아들이소서.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하늘은 총명하시니 성군(聖君)은 이를 본받는다.’ 하였고, 《주역(周易)》에 말하기를, ‘오랑캐를 포용(包容)하고 맨몸으로 큰 물을 건넌다.’고 하였으니, 대개 인주(人主)의 덕(德)은 총명한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또한 포용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총명함이 지나치면 종핵(綜核)1158) 함에 가깝고 포용함이 지나치면 우유(優游)1159) 함에 가까우니, 종핵 우유(綜核優游)함은 진실로 제왕(帝王)의 미덕(美德)이 아닙니다. 총명하되 종핵함에 이르지 않고 포용하되 우유함에 이르지 않으면 제왕(帝王)의 덕(德)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하늘의 총명(聰明)함을 본받고 포용[包荒]하여 다스림을 본받으시어 즉위(卽位)한 이래로 서무(庶務)의 결단을 관대함으로써 임하시고 명확함으로써 살피시어, 천하가 평화롭게 다스려진 지가 이미 26년이 되었는데, 요즈음은 대체(大體)에 관계되지 않은 유사(有司)의 작은 일에 혹 몸소 검핵(檢核)을 더하시어 성려(聖慮)를 휴손(虧損)하시니, 이는 비록 전하께서 만물(萬物)에 두루 밝으시어 그러하시더라도 그 제왕(帝王)이 포용(包容)하는 덕(德)에 아마도 더러 해로움이 있을 듯합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임금[元首]이 자질구레하고 번잡하면 신하[股肱]가 게을러져서 만사가 실패하리로다.’고 하였으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생각하소서.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특이한 물건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고 항상 쓰는 물건을 천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은 곧 넉넉하여진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검소한 덕(德)을 삼가하여 오직 영원한 계획만 생각하소서.’라고 하였으니, 대개 주옥(珠玉)과 금수(錦繡)는 사람의 이목(耳目)을 기쁘게 하기에 쉬운 까닭으로 예전의 성군(聖君)은 반드시 물리치고서 완상(玩賞)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내 마음을 사치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漢) 문제(文帝)는 오로지 절검(節儉)을 숭상하여 몸소 익제(弋綈)1160) 를 입고 발에는 가죽신을 신었으며 총애하는 신 부인(愼夫人)도 옷자락을 땅에 끌지 않았으며, 경제(景帝)도 금수(錦繡)로써 인끈 같은 것을 짬은 여공(女功)을 방해함이라 하여 특별히 조서(詔書)를 내려 없애게 하니, 천하(天下)가 멀리서 그리워하고 사모하여 풍속을 이루어 해내(海內)에 부서(富庶)한 효험을 초치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이래로 다스리는 도리를 번번이 준수하시고 검약(儉約)함을 돈독히 행하시어, 궁중(宮中)의 복어(服御)는 모두 순박(淳朴)함을 좋아하여 하나도 분수에 넘치는 사치가 없었고, 이웃 나라에서 바친 특이한 물건은 모두 여러 유사(有司)에게 부치어 내탕(內帑)에 들이지 않으셨으며, 무릇 혼인(婚姻)과 연회(宴會)에 지나치게 사치한 자는 별도로 조장(條章)을 세워서 이를 금지하시고, 왕자녀(王子女)의 혼례(婚禮)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전지(傳旨)를 내려, 그 사치함을 금지하셨습니다. 다만 요즈음은 부경 사개(赴京使介)1161) 의 행차를 당할 때마다 제용감(濟用監)의 포자(布子)를 많이 내어 당물(唐物)1162) 을 무역하도록 하여 구름 같은 무늬가 있는 금곡(錦縠)1163) 은 모두 정품(精品)만을 골라서 궁중의 소용을 삼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여항(閭巷)의 소민(小民)이 흡연(翕然)1164) 히 화(化)하여 무릇 혼구(婚媾)의 의복(衣服)과 음식(飮食)의 도구는 다투어 사치스럽고 화려함을 숭상하여, 재산(財産)을 기울이고 가산을 탕진하면서 그 비용으로 충당하니, 가난한 자는 공급하지 못하여 예(禮)를 올리지 못하고 혼인(婚姻)의 기한을 어기면서도 오로지 이것을 거치려고 힘쓰니,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서는 더욱 심하게 되어, 상투를 높이고 소매를 넓힌다는 말은 대개 이 때문인 것이오니,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가라앉혀 생각하소서.

전(傳)에 말하기를, ‘천자는 유무(有無)를 묻지 않고 제후(諸侯)는 다소(多少)를 묻지 않으며, 백승(百乘)의 가(家)에서는 취렴(聚斂)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인민은 집에 간직하고 제후는 나라에 간직하며 천자는 해내(海內)에 간직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의 인군(人君)이 재화(財貨)를 사사로이 하지 않은 것은 그 물욕[人心]이 생겨 화단(禍端)을 열까 두려워함입니다.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이래로 덕(德)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재화(財貨)를 천하게 여기시어, 정사를 일으키고 어짊을 베푸시어 날로 애민(愛民)하는 것으로써 일을 삼으셨습니다. 무릇 제도(諸道)의 내수사(內需司)의 곡식은 일체를 그 고을에 수입(輸入)하게 하고 식리(殖利)를 취하지 못하게 하여 백성이 안연(晏然)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년 이래로는 그 곡식을 다시 환곡(還穀)하게 하여 노복(奴僕)에게 이를 부치어 식리(殖利)하게 하여 이미 위차(委差)가 된 자는 거의 모두가 용천(庸賤)한 서리(胥吏)의 무리이므로 한갓 영구(營求)하는 것으로써 일을 삼아 관부(官府)를 출입(出入)할 적에는 사신[使介]과 같음이 있으며, 여염(閭閻)에서 여러 날을 유숙하면서 만단(萬端)으로 찾아서 징수하고 관위(官威)를 빙자(憑藉)하여 백성을 침탈[漁奪]하며, 풍년과 흉년을 돌아보지 않고 독촉하여 징수함이 날로 심하여, 화곡이 등장(登場)하지 못하였는데도 책포(責逋)하는 자가 먼저 이르러서 실가닥을 풀고 곡식을 두량(斗量)하여 상납(償納)하기에 겨를이 없으니, 백성의 곤고(困苦)함이 어찌 이보다 심함이 있겠습니까? 화기(和氣)를 손상시키고 재앙(災殃)을 부름도 또한 반드시 여기에 말미암지 않음이 없습니다. 신 등은 또 듣건대 근자에는 제사(諸司)의 미포(米布)를 빈번하게 수송하여 내수사(內需司)에 부치게 한다고 하는데, 이는 비록 내전(內殿)의 소용으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왔더라도 그러나 사사로이 받드는 것으로써 함부로 허비할 수는 없습니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도 해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대개 재물을 손상하면 반드시 백성을 해롭히게 됨을 이름이니,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가라앉혀 생각하소서.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말하기를, ‘위태로울까 하는 자는 그 지위를 편안하게 하는 자이며, 망할까 하는 자는 그 생존하는 것을 보존하는 자이다.’라고 하였고,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가르치지 않은 백성을 활용하여 싸우게 하면 이는 백성을 버리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비록 승평(昇平)한 때를 당하더라도 진실로 싸움[戰]을 잊을 수 없으며, 더욱 미리 사졸(士卒)을 양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치병(治兵)한 자는 10년 동안 생취(生聚)1165) 하고 10년 동안 교훈(敎訓)하였다.’고 하였으니, 그 양성함을 평소에 하지 않으면 완급(緩急)에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이래로 포상(苞桑)의 경계[戒]1166) 를 생각하시고 조종(祖宗)의 무양(撫養)하신 법(法)을 거듭 밝히시어, 교대하여 번휴(番休)하게 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를 보살피도록 하였으며, 또 습사(習射)하고 연재(鍊才)하여 정예(精銳)한 데에 이르기를 기약하시어 교양(敎養)하는 도(道)가 지극하셨습니다. 하지만 근자에는 왕자군(王子君)의 제택(第宅)을 하나같이 영선(營繕)하게 되어서는 갑자기 수군(水軍)과 보병(步兵)을 징발하여 역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토목(土木)의 역사를 보면 추초(箠楚)의 괴로움이 있어, 부유한 자는 상자[箱]를 기울이고 행담[篋]을 뒤엎어 가면서 그 값을 후하게 주어 일에 나가지 않기를 기약하여 가난한 데에 이르르고, 가난한 자는 빌려서 양식을 가지고 그 일[功]에 나아가지만 조금이라도 더디고 늦어지는 것이 있으면 채찍으로 때려 벌(罰)하고 징속(徵贖)1167) 하도록 독촉하여 납부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고을의 수령〈守邸〉에게 징수하게 하므로 향리(鄕里)에까지 그 속전(贖錢)을 충당하기에 미치니,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장(田莊)을 탕진하여 남음이 없습니다. 이에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모두가 괴로워 다투어 도피(逃避)하기에 겨를이 없는데, 더구나 그 좌작 진퇴(坐作進退)1168) 의 절도를 익히는 것이겠습니까? 이것도 또한 화기(和氣)를 상하고 재앙을 부르는 하나의 단서이오니,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가라앉혀 생각하소서.

신 등은 듣건대 재앙은 망령되이 일어나지 않고 감(感)함이 있어서 응(應)한다고 하였습니다. 금년(今年)에는 한황(旱蝗)1169) 에 이어서 풍재(風災)가 있고 또 뇌변(雷變)이 있어 재앙의 징조가 아울러 나타났으니 또한 어찌 비롯함이 없는데도 그러하겠습니까? 혹자는 황천(皇天)이 전하(殿下)를 인애(仁愛)하여 정녕(丁寧)하게 견책(譴責)을 보이어서 경구(警懼)하게 함이라고 하니, 전하께서는 깊이 수성(修省)을 더하시어 날로 조심하고 날마다 새롭게 하시어서 천견(天譴)에 보답함이 마땅합니다. 대저 수성(修省)하는 요체는 민심(民心)을 화(和)하게 함에 있으며, 민심을 화하게 하는 것은 특히 전하(殿下)의 일심(一心)에 달려 있습니다. 대개 천하(天下)의 만사(萬事)는 모두 인주(人主)의 마음속으로부터 오니, 밖에서 구(求)함은 불가(不可)한 것입니다. 인주의 한 마음은 공격하는 자가 많으니, 하나라도 부정(不正)함이 있으면 많은 욕심이 이를 타서 드디어 마음을 상(喪)하고 뜻을 어지럽히게 되는데, 비유하면 불로써 기름[膏]을 녹이고도 그 융합(融合)함을 깨닫지 못함과 같으니, 그것을 발휘해서 정사(政事)를 하면 따라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으면 그 민심이 화(和)할 수 있으며 화기(和氣)가 응(應)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다만 마땅히 본원(本源)을 징철(澄澈)1170) 하게 하여 뜻[意]을 수어(守禦)하기를 성(城)과 같이 하고, 잘못을 얻지 않도록 생각하여 얻으면 곧 고치고, 빠진 정사를 듣지 않도록 하시고 들으면 문득 수정하여 일념(一念)이라도 태만하지 마시고 하늘에 응답하기를 성실로써 하시면 재앙(災殃)이 바뀌어 상서가 되고 화(禍)가 바뀌어 복(福)이 될 수 있을 것이오니,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유심(留心)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그대들이 말한 바는 시행(施行)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내가 만약 유유(唯唯)하면서 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대를 속임이니, 부득이하여 묻는다. 이제 그대들의 말이 이와 같으니, 내가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장령(掌令) 조달생(趙達生)이 대답하기를,

"전하(殿下)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시게 하려고 함이 아닙니다. 하지만 언사(言事)를 가지고 그 근원을 구문(句問)하시면, 언로(言路)가 막힐까 염려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대들은 제용감(濟用監)의 포자(布子)를 많이 내어서 당물(唐物)을 무역하도록 하여 궁중(宮中)의 소용을 삼는다고 하나, 본감(本監)으로 말하면 왜인(倭人)의 의복(衣服)을 관장하고, 상의원(尙衣院)은 궁중(宮中)의 의대(衣襨)를 관장하고 있으며, 재상(宰相)의 약재(藥材)에 이르러서는 부득이 중국[中朝]에서 매매하여 있고 없는 것을 힘써 교역(交易)한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였다. 국가에 일이 있으면 반드시 수군(水軍)으로 역사시켰다. 풍년(豐年)이면 역사시키고 흉년(凶年)이면 방환(放還)하였음은 이것도 또한 부득이한 것이니, 그대가 비록 말하더라도 시행(施行)할 수는 없다. 제군(諸君)의 집이 화려하고 사치하다는 일은 내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담장이 높은 까닭으로 외인(外人)이 보기에는 높고 크다고 생각하겠으나 속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아, 이미 정원(政院)으로 더불어 의논하여 그 제도를 정하도록 하였다. 천변(天變)은 모두 내가 정사를 잘못한 소치이다. 그러나 어찌 모두 여기에서 말미암았겠는가? 그대가 내수사(內需司)를 폐(廢)하려고 하지만, 그 사이의 자질구레한 일을 그대가 어찌 알겠는가? 양전(兩殿)을 공봉(供奉)하는 것과 아이들에게 내려 주는 것과 같은 것은 그 소용이 다단(多端)하니, 만약 이 일을 가지고 제사(諸司)를 다 번거롭게 하면 그대 또한 반드시 논계(論啓)할 것이니, 그대들이 말하는 바는 모두 시행(施行)할 수가 없다. 그대가 내가 친히 자질구레한 일을 〈검찰한다고〉 이름은 알지 못하겠으나, 무슨 일을 지목함인가? 만약 지목하여 말하면 내 마땅히 고치도록 하겠다."

하였다. 조달생(趙達生)이 말하기를,

"신(臣)은 감히 확실하게 아무 일이라고 지목하지 못합니다. 대저 자질구레한 일을 몸소 스스로 검핵(檢核)하시니, 성려(聖慮)가 휴손(虧損)될까 두렵습니다. 한 가지 일로써 말하면 전일에 말값[馬價]을 몸소 점검(點檢)하시었으니, 이것도 또한 옳지 못한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대 말이 매우 마땅하다. 인군(人君)이 신하의 직분을 행하면 옛사람도 이를 그르다고 하였으니, 이제부터는 마땅히 유사(有司)에 회부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295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59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왕실-국왕(國王) / 무역(貿易) / 재정-상공(上供) / 금융(金融) / 군사-군역(軍役)

  • [註 1150]
    서징(庶徵) : 하늘에서 인간 세상에 내리는 온갖 상징(象徵).
  • [註 1151]
    구언(求言) : 나라에 재변(災變)이 있을 때 임금이 근신하는 의미에서 시정(時政)의 잘못과 민폐(民弊)에 대한 바른 말을 구하던 제도.
  • [註 1152]
    녹수(錄囚) : 수금(囚禁)된 죄인에 대하여 그 죄상·신문·처결 상황을 살피는 것임.
  • [註 1153]
    원왕(冤枉) : 원통하게 누명을 씀. 원억(冤抑).
  • [註 1154]
    진선지정(進善之旌) : 나라의 정사(政事)에 대해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고 유익한 말을 진달해 달라는 뜻으로, 중국 요(堯) 임금 때 사통 오달의 네거리에 깃대를 세워놓고 정사에 유익한 말을 할 사람은 그 아래 서 있게 하던 깃발을 말함.
  • [註 1155]
    비방지목(誹謗之木) : 나라의 잘못된 정사(政事)를 지적해 주고 유익한 말을 진달해 달라는 뜻으로, 요(堯) 임금 때 다리 가에다 나무 판자를 세워놓고 거기에다 정사(政事)의 잘못된 점을 기록하게 하던 나무를 말함.
  • [註 1156]
    이강(李絳) : 당(唐)나라 헌종(憲宗) 때 직간(直諫)하기로 유명한 신하.
  • [註 1157]
    천변(天辯) : 임금의 변론(辯論).
  • [註 1158]
    종핵(綜核) : 사물(事物)의 본말(本末)을 밝힘.
  • [註 1159]
    우유(優游) :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냄.
  • [註 1160]
    익제(弋綈) : 검은 빛깔의 비단.
  • [註 1161]
    부경 사개(赴京使介) : 부경 사신(赴京使臣).
  • [註 1162]
    당물(唐物) : 중국의 물화(物貨).
  • [註 1163]
    금곡(錦縠) : 금사(錦紗).
  • [註 1164]
    흡연(翕然) : 일치 합동(一致合同)하는 모양.
  • [註 1165]
    생취(生聚) : 생민(生民)을 기르고 재물을 모음.
  • [註 1166]
    포상(苞桑)의 경계[戒] : 《주역(周易)》 비괘(否卦)의 "망할까 망할까 하여 무더기로 난 뽕나무에 매듯 한다[其亡其亡 繫于苞桑]."는 것을 인용한 것으로, 언제나 비운(否運)이 다시 이르러 망하지나 않을까 염려하면서 단단한 뽕나무에 잡아매듯 미리 철저한 대비를 한다는 경계임.
  • [註 1167]
    징속(徵贖) : 속전(贖錢)을 징수함.
  • [註 1168]
    좌작 진퇴(坐作進退) : 군사가 훈련을 받을 때 일체의 행동 지시에 대한 동작을 말함. 좌(坐)는 앉는 동작, 작(作)은 일어서는 동작, 진(進)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작, 퇴(退)는 뒤로 물러가는 동작을 말함.
  • [註 1169]
    한황(旱蝗) : 한재(旱災)와 황재(蝗災).
  • [註 1170]
    징철(澄澈) : 대단히 맑음.

○癸未/司憲府大司憲李誼等上疏曰:

臣等謹按, 《書》曰: "作善降之百祥, 作不善降之百殃。" 又曰: "惟吉凶不僭在人, 惟天降災祥在德。" 天人感應之理, 微矣。 天之與人, 其勢雖遠, 而其理無間。 人事正則正氣應之, 祥瑞之所由起, 人事不正則邪氣應之, 災變之所由生也。 《洪範》庶徵, 雖曰: "牽合", 而感召之理, 不誣。 乃於本月十一日丙寅, 天大雷電以雹。 殿下惻然警懼, 下旨求言, 錄囚疏放, 勿令有冤枉, 其所以敬天憂民之念, 至矣。 臣等待罪言官, 不敢終默, 謹以所覩條陳焉。 傅說曰: "惟木從繩則正, 惟后從諫則聖。" 蓋人主, 高居深宮, 虧聽阻明, 雖有過失, 何以聞之, 雖有闕遺, 何以知之? 古之所以樹進善之旌, 設誹謗之木者, 欲其來天下之善, 以助己德也。 然人主之威, 雷霆也, 人主之勢, 萬鈞也, 苟不開導以求諫, 和顔色以受之, 誰不自愛, 冒雷霆觸萬鈞而敢言乎? 殿下卽位以來, 好車樂諫, 其有抗疏者, 霽威以容之, 封事者, 褒納而奬之人, 皆樂爲之盡言。 近年以來, 間有言事者, 隨事逐條, 輒加詰問, 必究言根之所自出, 臣等竊恐言事者, 以言爲諱, 而殿下不得聞五論也。 李絳曰: "人臣盡言, 豈易哉? 欲陳十事, 而去其五六, 及至上前, 削其八九。 人臣進言之難, 如此, 而又縱天辯, 動神機, 迫之以難對之辭, 則犯威觸諱, 雖勇者, 尙不能, 況怯者乎?" 伏願殿下虛懷察納焉。 書曰: "性天聰明, 惟聖時憲。" 《易》曰: "包荒用馮河。" 蓋人主之德, 莫大於聰明, 而亦莫大於包容也。 然聰明之過, 近於綜核,包容之過, 近於優游, 綜劾優游, 固非帝王之美德。 聰明而不至於綜核, 包容而不至於優游, 則帝王之德, 備矣。 殿下, 憲天聰明, 體易包荒, 卽位以來, 庶務之斷, 寬以臨之, 明以察之, 淸明之治, 已二十六年。 而近者, 非關係大體, 有司細事, 或親加檢核, 虧損聖慮, 此雖殿下, 智周萬物而然也, 其於帝王包容之德, 恐或有妨。 《書》曰: "元首叢脞哉, 股肱惰哉, 萬事隳哉。" 伏惟殿下, 潛心焉。 《書》曰: "不貴異物, 賤用物, 民乃足。" 又曰: "愼乃儉德, 惟懷永圖。" 蓋珠王、錦繡, 易悅於人之耳目, 故古之聖君, 必却而不玩者, 以其侈吾心也。 昔 文帝專尙節儉, 身衣弋綈, 足履革舃, 所幸愼夫人, 衣不曳地。 景帝, 以錦繡纂組, 妨女功, 特詔除之, 天下望風成俗, 以致海內富庶之效。 殿下, 卽位以來, 動遵理道, 敦行儉約, 宮中服御, 皆好淳朴, 無一侈靡。隣國所獻異物, 皆付諸有司, 不入內帑。 凡婚姻宴會之過侈者, 別立條章, 以禁之, 至於王子女婚禮, 屢降傳旨, 以禁其侈。 但近者, 每當赴京使介之行, 多出濟用監布子, 令貿唐物, 雲紋(錦穀)〔錦縠〕 , 皆擇精品, 以爲宮中之用。 由此閭巷小民, 翕然化之。 凡諸婚媾衣服飮食之具, 爭尙奢麗, 傾財破産, 以充其用。 貧者不給, 無以爲禮, 婚姻愆期, 職競由此。 上好下甚, 高髻廣袖之語, 蓋以此也。 伏願殿下潛心焉。 傳日: "天子不問有無, 諸候不問多少, 百乘之家, 不畜聚歛之臣。" 又曰: "人民蕆於家, 諸候蕆於國, 天子蕆於海內。" 古之人君, 不私財貨者, 恐其生人心而開禍端也。

殿下, 卽位以來, 貴德賤貨, 發政施仁, 日以受民爲事, 凡諸道內需司之穀, 一切輸入其官, 不使取殖, 民庶晏然。 比年以來, 復還其穀, 付之奴僕, 使殖焉。 旣遣委差, 又使邑宰掌之, 爲委差者, 率皆庸賤胥吏之輩, 徒以營求爲業。 出入官府, 有同使介, 信宿閭閻, 徵索萬端, 憑藉官威, 漁奪黎庶。 不顧年之豐歉, 徵督日峻, 禾未登場, 責逋者先至, 解絲量穀, 償納不暇。 民之困苦, 孰於此? 傷知召災, 亦未必不由於此。 臣等又聞近者, 頻輸諸司米布, 付之內需司。 此蜼出於內用之不獲已也。 然不可以私奉而濫費也。 《易》曰: "不傷財, 不害民。" 蓋傷財, 心至於害民。 伏願殿下, 潛心焉。 《易》曰: "危者, 安其位者也, 亡者保其存者也。" 《孔子》曰: "不敎民而戰, 是謂棄之。" 爲國者, 雖當昇平之時, 固不可忘戰也, 尤不可不預養士卒也。 古之治兵者, 十年生聚, 十年敎訓。 以其養之不素, 則無以爲緩急之用也。 殿下, 卽位以來, 念苞桑之戒, 申明祖宗撫養之法, 更迭番休, 使之得以仰事俯育, 又令習射鍊才, 期至精銳, 敎養之道至矣。 但近者, 王子君第宅及一應營繕, 輒發水軍步兵, 以役之。 彼見土木之役, 箠楚之苦, 富者, 傾箱倒篋, 厚給其價, 期不趨事, 以至於貧。 貧者, 稱貸齎糧, 以赴其功, 少有稽緩, 則鞭撻以罰之, 徵贖以督之, 未納者, 徵諸其邑之守邸, 貽及鄕里, 以充其贖, 祖業田莊, 蕩無餘矣。 於是, 貪富皆困, 爭爲逃避之不暇, 況習其坐作進退之節乎? 是, 亦傷知召災之一端。 伏願殿下, 潛心焉。 臣等聞災不妄作, 有感而應。 今年旱蝗, 繼有風災, 又有雷變, 咎徵竝現, 亦豈無自而然耶? 或者, 皇天仁受 殿下, 丁寧示譴, 以警懼之也。 殿下宜深加修省, 日愼一日, 以答天譴。 夫修省之要, 在於和民心。 民心之知, 特在殿下之一心。 蓋天下萬事, 皆自人主方寸中來, 不可求諸外也。 人主一心, 攻之者衆, 一有不正, 則衆欲乘之, 遂至心喪志耗。 譬如以小銷膏, 莫覺其融其發而爲政事, 從可知矣。 如是則民心其能和乎, 和氣其能應乎? 殿下但當澄澈本源, 防意如城。 思過不得, 得則便改, 闕政未聞, 聞則輒修, 一念母怠, 應天以實, 則災可轉爲祥, 禍可轉爲福矣。 伏願殿下留心焉。 傳曰: "爾等所言, 有不不可施行者, 予若唯唯而不行, 則是誑汝也, 不得已問之耳。 今爾等之言如此, 予其不言歟?" 掌令趙達生對曰: "非欲使殿下不言也。 但以言事而句問其源, 恐言路塞矣。" 傳曰: "爾等以爲, 多出濟用監布予, 令貿唐物, 以爲官中之用。 然本監, 掌倭人衣服, 尙衣院, 掌宮中衣襨, 以至宰相藥材, 不得已市于中朝, 懋遷有無, 自古而然。 國家有事, 必役水軍, 豐年則役之, 凶年則放之, 此亦不得已也。 爾雖言之, 不可施行。 諸君家華侈之事, 予未之知也。 但高其垣墻, 故名人見之, 以爲高大, 中未必然也。 已與政院, 議定其制耳。 天變, 皆予闕政所致。 然豈盡由於此? 爾欲廢內需司, 然其間細碎之事, 爾豈知之? 如兩殿供奉及兒輩賜與, 其用多端。 若將此事, 盡煩諸司, 爾亦必論啓矣。 爾等所言, 皆不可施行。 爾謂予親細事, 未知指何事歟。 若指言則子當改之矣。" 達生曰: "臣未敢的指爲某事也, 大抵細碎之事, 親自檢核。 恐虧聖慮以一事言之, 前日馬價, 親自點檢, 是亦不可也" 傳曰: "爾言甚當。 君行臣職, 古人非之。 自今, 當付有司。"


  • 【태백산사고본】 47책 295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59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왕실-국왕(國王) / 무역(貿易) / 재정-상공(上供) / 금융(金融) / 군사-군역(軍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