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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95권, 성종 25년 10월 20일 을해 1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헌납 남세담 등과 흥복사와 자수궁의 불사·경이·박연생의 일에 대해 의논하다

사간원(司諫院)에 전교하기를,

"상소(上疏) 안에 사대부(士大夫)가 서로 그 첩(妾)을 도둑질한다는 것과 반승(飯僧)·재불(齋佛)과 여알(女謁)이 장차 성하려 한다는 등의 말은 무엇을 이름인가? 경이(景伊)의 일을 그대들은 반드시 중궁(中宮)의 오라버니에게 사사로이 하여 금부(禁府)에 옮기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소민(小民)이라도 만약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겨서 옮기기를 청하면 이를 들어주어야 하는데, 어찌 말함이 이와 같은가?"

하니, 헌납(獻納) 남세담(南世聃)이 대답하기를,

"이철견(李鐵堅)은 대신(大臣)으로서 부장(部將) 정호(鄭灝)의 첩(妾)을 사통하였으니, 이것은 그 첩(妾)을 훔친 것입니다. 또 지난 여름에 흥복사(興福寺)에서 반불(飯佛)할 새, 사족(士族)의 부녀(婦女)가 도성(都城)을 비우고 가서 모이었기에 신 등은 국문(鞫問)하기를 청하였는데, 전하께서는 윤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자수궁(慈壽宮)의 반불(飯佛)을 홍문관(弘文館)에서 이를 말하였으되 알지 못한다는 것으로 대답하셨습니다. 흥복사(興福寺)자수궁(慈壽宮)의 반불(飯佛)은 모두 귀근(貴近)의 소위(所爲)인데도 전하께서는 죄책(罪責)을 더하지 않으시어 소민(小民)이 서로 전전(轉轉)하여 본받되 마음 편안하게 여기고 괴상히 여기지 않습니다. 신 등이 근일(近日)에 예궐(詣闕)하니 문안(問安)하는 비복(婢僕)이 날이 다하도록 그치지 않았음을 보았으니, 이것은 끊임없이 왕래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경이(景伊)는 원고(元告)이면서 형신(刑訊)을 받았으며, 헌부(憲府)에서 그 척인(隻人)1139) 을 다스리기를 청하니, 전교(傳敎)하기를, ‘경이(景伊)에게 형벌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헌부에서 다시 그 피고를 고신(栲訊)하기를 청하였으나 피고 박연생(朴延生)에게는 일장(一杖)도 내리지 않아서 자복(自服)할 만한 말이 없었으므로 다시 문초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며, 윤은로의 상소[疏]로 인하여 금부(禁府)에 이송(移送)하였으니, 이것은 성상(聖上)께서 추국(推鞫)하여 끝까지 힐문하여서 시비(是非)를 분변하려고 함입니다. 그러나 소민(小民)은 어찌 윤은로에게 사사로이 한다는 의심이 없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실수한 바가 내게 있으면 내 마땅히 그 잘못을 자임(自任)하겠다. 그러나 인신(人臣)이 인군에게 진언(進言)하는데는 마땅히 말하여야 할 일로써 말하는 것이 마땅하지 인군(人君)이 알지 못하는 일로써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흥복사(興福寺)자수궁(慈壽宮)의 불사(佛事)는 내가 알지 못하는 바인데 그대들은 이르기를, ‘죄책(罪責)을 더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나 월산 부인(月山夫人)은 나의 형수이며, 선왕(先王)의 후궁(後宮)은 나의 조모(祖母)이니, 그를 치죄(治罪)할 수 있겠는가? 그대가 나로 하여금 치죄(治罪)하려고 하면 이것은 풍속(風俗)을 그르침이 그대들로부터 비롯함이니, 이것은 그대의 망령된 말이다. 족친(族親)이 사람을 보내어 문안(問安)함은 오늘부터 비롯한 것이 아닌데, 어찌 이를 가지고서 지목하여 여알(女謁)이 장차 성하려 한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내가 경이(景伊)박연생을 형신(刑訊)하도록 하였으나 헌부(憲府)에서는 단지 박연생만 형신하기를 청하였고, 내가 또 경이(景伊)박연생을 아울러 형신하도록 하였는데 헌부에서는 끝내 경이를 형신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나의 위령(威令)이 행하지 않음이다. 이제 금부(禁府)에서 경이(景伊)박연생 등을 함께 추국하도록 한 것은 한군데로 돌아가도록 함이다. 비록 소민(小民)이라도 타사(他司)에 옮기기를 청하면 원통하고 억울함이 있을까 염려하여서 들어주는데, 더구나 윤은로는 재상(宰相)으로서 옮기기를 청하였으니, 그것을 청납하지 않음이 옳겠는가?"

하였다. 남세담(南世聃)이 말하기를,

"흥복사(興福寺)자수궁(慈壽宮)의 불사(佛事)를 성상께서 알지 못한다고 하심은 옳습니다. 그러나 귀척(貴戚)이 영불(侫佛)하는 일을 감행(敢行)하면서도 성상(聖上)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함이 옳겠습니까? 월산 부인(月山夫人)과 선왕(先王)의 후궁(後宮)에게는 비록 가죄(加罪)할 수가 없더라도 그것을 종용(從臾)하였음은 잘못이 됩니다. 위로 성상의 총명을 가리고 아래로는 재화(財貨)와 포백(布帛)을 허비하여서 성치(聖治)를 욕되게 하였으니, 암자[庵]의 주승(主僧)과 일을 주관한 사람 같은 이는 당연히 다스려 그 나머지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제 성명(聖明)이 위에 계시고 내외로 엄격함이 있는데, 당시에 있어서 어찌 여알(女謁)의 성(盛)함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치평(治平)한 날이 오래 되어 정교(政敎)가 혹은 쇠퇴해서 안으로 혹 여사(女史)가 폐이(廢弛)하고, 밖으로 혹 출입(出入)이 무방(無妨)하면 문안(問安)함을 인연하여서 왕래(往來)가 그치지 않아, 혹은 좌도(左道)1140) 로써 나오는 자와 혹은 사첨(邪謟)1141) 으로써 나오는 자의 간언(奸言)과 비사(卑辭)를 록 따라서 듣게 되십니다. 사군자(士君子)가 약간 예의(禮義)를 알면서도 간혹 간진(干進)1142) 하려는 뜻이 있으면 교묘한 말로 꾸며대고 유세(游說)하여 군상(君上)의 뜻을 옮기도록 하는 자가 있는데, 더구나 사리(事理)를 알지 못하고 국체(國體)를 알지 못하는 부인(婦人)과 소자(小子)와 같은 이겠습니까? 이는 먼저 금(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원고와 피고 두 사람의 소송 증거가 구비되면 여러 법관이 오사(五辭)1143) 를 듣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박연생(朴延生)은 이미 그 실정[情]을 다 말하였으니 다시 오사(五辭)를 들음은 불가(不可)하며, 만약 소송한 자의 거짓으로 꾸며대는 말로 인하여 여러 번 다른 관사로 옮긴다면 사송(詞訟)은 어느때에나 실정을 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흥복사(興福寺)자수궁(慈壽宮)의 불사(佛事)는 처음에 나에게 말하지 않았으니,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본시 불교를 숭상하지 않는데 그대들의 말함이 이와 같음은 옳지 못한 것이다. 족친(族親)이 나에게 문안(問安)함이 아니고 다만 중궁(中宮)의 족친(族親)이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였는데 중궁이 답하였을 뿐이며, 글[書]로나 말[言]로써 출입하게 한 것이 아니다. 재상(宰相)들도 문안(問安)할 때에는 곧바로 정원(政院)을 경유하여 공연(公然)히 입계(入啓)하니, 그대들이 궁금(宮禁)의 일을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아룀이 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295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59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풍속-풍속(風俗) / 사상-불교(佛敎) / 윤리(倫理) / 사법-재판(裁判) / 왕실-비빈(妃嬪)

  • [註 1139]
    척인(隻人) : 피고인(被告人).
  • [註 1140]
    좌도(左道) : 바르지 못한 도(道). 사도(邪道).
  • [註 1141]
    사첨(邪謟) : 간사하고 아첨함.
  • [註 1142]
    간진(干進) : 벼슬을 바람. 관리가 되고자 함.
  • [註 1143]
    오사(五辭) : 《서경(書經)》 주서(周書) 여형편(呂刑篇)의 주석에 보면, "오사는 오형(五刑)에 걸리는 공사(供辭)이다."라고 하였으며, 일설에는 "《주례(周禮)》 추관(秋官)에서 말하는 오청(五聽)을 가리킨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오청이란 첫째는 사청(辭聽)으로 그 말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니 정직하지 않으면 말이 번거로우며, 둘째는 색청(色聽)으로 그 안색(顔色)을 관찰하는 것이니 정직하지 않으면 얼굴을 붉히며, 세째는 기청(氣聽)으로 그 기식(氣息)을 관찰하는 것이니 정직하지 않으면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네째는 이청(耳廳)으로 그 듣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니 정직하지 않으면 정신이 헷갈리며, 다섯째는 목청(目聽)으로 그 눈동자가 주시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니 정직하지 않으면 흐릿하다는 다섯 가지를 말함.

○乙亥/傳于司諫院曰: "疏內士大夫相竊其妾及飯僧、齋佛、女謁將熾等語, 何謂耶? 景伊事, 爾等必以爲, 私於中宮之兄, 移於禁府耳。 然雖小民, 若以爲不公而請移, 則聽之, 何言之若是耶?" 獻納南世聃對曰: "李鐵堅, 以大臣私部將鄭灝妾, 是竊其妾也。 去夏興福寺飯佛, 士族婦女, 傾都往會。 臣等請鞫之, 而殿下不允。 今者慈壽宮飯佛, 弘文館言之, 而以不知答之。 興福慈壽之飯佛, 皆貴近之所爲, 而殿下不加罪責, 小民, 轉相倣傚, 恬不爲怪。 臣等近日詣闕, 見問安婢、窮僕, 窮日不止。 不爲憧憧往來者乎? 景伊, 元告而受訊, 憲府, 請治其隻人。 傳敎曰: ‘加刑景伊。’ 憲府, 更請栲訊其隻。 而隻朴延生, 不下一杖, 無辭自服, 不宜更問, 因殷老之疏, 移送禁府。 是聖上推鞫窮詰, 欲辨是非也, 然小民, 豈無私殷老之疑乎?" 傳曰: "所失在予, 則予當自任其失。 然人臣, 進言於君, 當以所當言之事而言之, 不可以人君所不知之事而言之也。 興福寺、慈壽宮佛事, 予所不知, 而爾云: ‘不加罪責’, 然月山夫人, 予之嫂也, 先王後宮, 予之祖母也, 其可治罪乎? 爾欲使予治罪, 則是誤風俗, 先自爾等始矣。 是則爾之妄言也。 族親遣人問安, 非自今日始也, 豈可以此, 而指謂女謁將熾耶? 予令刑訊景伊延生, 而憲府, 請只刑延生, 予又令竝刑景伊延生, 而憲府, 終不刑景伊, 此則予之威令, 不行也。 今禁府, 竝推景伊延生等, 使之歸一也。 雖小民請移他司, 慮有冤抑而聽之, 況殷老, 以宰相而請移, 則其可不聽乎" 世聃曰: "興福寺慈壽宮佛事, 上以謂不知則是。 然貴戚, 敢行侫佛之事, 而使聖上不知, 可乎? 月山夫人與 先王後宮, 雖不得加罪, 其從臾爲非, 上以蒙蔽聖上, 下以糜費財帛, 以累聖治, 如庵主僧及幹事之人, 在所當治, 以警其餘。 今聖明在上, 內外有嚴, 在當時, 豈有女謁之盛歟? 然治平日久, 政敎或衰, 內或女史之廢弛, 外或出入之無妨, 則因緣問安, 往來不止。 或以左道而進者, 或以邪謟而進者, 奸言卑辭, 或從而聽之矣。 士君子, 稍知禮義, 或有干進之意, 則巧辭游說, 以移君上之意者, 有之, 況不識事理, 不知國體, 如婦人、小子乎? 此不可不先禁也。 兩造具備, 師聽五辭, 今朴延生, 旣輸其情, 不可更聽五辭。 若因訟者之飾辭, 累移他時, 則詞訟, 何時得情乎?" 傳曰: "興福寺慈壽宮佛事, 初不言於予, 予何以知之? 予本不崇佛, 爾等, 不宣言之若此也。 族親, 非問安於予也。 但中宮族親, 遣人問安, 而中宮答之耳, 非以書以言而出入也。 宰相等問安, 則直由政院, 公然入啓, 爾等不知宮禁之事, 故啓之如此耳"


  • 【태백산사고본】 47책 295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59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풍속-풍속(風俗) / 사상-불교(佛敎) / 윤리(倫理) / 사법-재판(裁判)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