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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90권, 성종 25년 5월 7일 갑오 6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허침 등이 합사하여 윤호의 관직 개정과 흥복사 불사를 사주한 중 학조의 처벌을 요구하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허침(許琛)이 와서 아뢰기를,

"신이 사직(辭職)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으시니, 비록 부끄러운 마음을 품었다 하더라도 반열(班列)에 나아가 그 직임을 담당하여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 전교하시기를, ‘임금과 신하는 일체(一體)이니, 당연히 미치지 못하는 것을 서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전하의 이 말씀은 매우 훌륭합니다. 군상(君上)이 신자(臣子)의 과실[過擧]을 보고 죄줄 만하면 죄주며 용서할 만하면 용서하고, 신자가 군상의 과실을 보고 말할 만하면 말을 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는 것이 예나 지금의 공통된 의리입니다. 신 등이 윤호(尹壕)는 삼공(三公)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말하였는데도, 전하께서는 신 등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셨으니, 아마도 불가(不可)한 듯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영의정(領議政)이 말하기를, ‘세조조(世祖朝)에는 왕후(王后)의 아비로 정승(政丞)이 된 자가 많았는데, 윤번(尹璠)은 정승이 되지 못했지만 그의 아들 윤사분(尹士昐)은 정승이 되었으니, 세조께서 어찌 짐작하지 못하셨겠습니까? 지금 윤호는 드러난 과실이 없는데 대간(臺諫)이 여기에 이르도록 굳게 고집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만약 적합한 사람이 아닌데도, 으레 왕후의 아비라고 하여 삼공을 삼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나 지금 우의정(右議政)의 경우는 과실이 없으니, 무엇이 불가함이 있겠는가?"

하였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허침(許琛) 등과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윤민(尹愍) 등이 합사(合辭)562) 하여 아뢰기를,

"대신(大臣)이 이렇게 아뢴 것은 잘못입니다. 삼공은 당연히 어질고 능력이 있는 이를 가려뽑되 당시의 선임(選任)을 극진히 해야 합니다. 어찌 다만 드러난 허물이 없다는 것으로 〈삼공을〉 삼겠습니까? 이것은 관망(觀望)하면서 뜻을 따르려는 말일 뿐입니다. 옛날의 어진 임금은 모두 친근(親近)하다는 혐의(嫌疑)로 왕후의 친척을 기용하여 정승을 삼지 않았으니, 이것은 성덕(聖德)의 일입니다.

세조조(世祖朝)와 예종조(睿宗朝)에 윤사분(尹士昐)·윤사흔(尹士昕)·한백륜(韓伯倫)이 모두 정승이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적합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조께서는 성자(聖資)가 고명(高明)하셨으나, 삼공으로 뜻을 삼지 않으시고 적합한 사람을 가려뽑지 않아, 겨우 임명하였다가 갑자기 개차(改差)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 삼공을 거친 자가 매우 많은데, 이것은 본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한 사람도 감히 그것을 말한 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바른 말을 즐거이 들으시며 과실[過擧]을 남겨 두지 않으시니, 신 등은 아마도 후세(後世)에 윤호(尹壕)는 어질지도 않은 사람인데, 외척(外戚)이었기 때문에 그를 기용하였다고들 의논할 듯합니다. 그렇게 되면 성덕(聖德)에 누(累)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 아무리 윤호를 드러난 과실이 없다고 여기시더라도 신 등이 지난 날에 아뢴 말은 모두 윤호의 과실이었으니, 신 등의 말을 결단코 들어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흥복사(興福寺)의 일은 신 등이 학조(學祖)가 주장(主張)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나머지 따라간 부녀(婦女)들이 많으니, 비록 모두 추국(推鞫)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학조를 추국하는 것이 무슨 화기(和氣)를 감상(感傷)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청컨대 추국하여 죄를 다스리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재상(宰相)이 만일 말한 바가 있으면 경(卿) 등이 번번이 그것을 논(論)하여 말하기를, ‘옳지 못하다.’고 하니, 어찌 옳겠는가? 경들은 세조조(世祖朝)와 예종조(睿宗朝)에 윤사분(尹士昐)·윤사흔(尹士昕)·한백륜(韓伯倫)을 정승(政丞)으로 삼았지만 모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경들은 후진(後進)의 인사(人士)이다. 대사간(大司諫)이 비록 구인(舊人)이기는 하나 당시에는 틀림없이 미관(微官)이었을 터인데 어떻게 세조의 본뜻을 알았겠는가?

경 등은 또 말하기를, ‘이것은 본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때 감히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때에 어찌 대간(臺諫)이 없었겠는가? 경 등이 선왕(先王)을 본받을 수 없다 하며 그 당시에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았다 하고, 또 지금의 재상을 비방하면서 나무라는데, 이것은 경 등이 스스로 옳게 여기고 혼자서만 말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재상이 말을 하면 대간이 번번이 불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재상이 국가의 일을 말하는 이가 없으니, 이러한 풍습은 매우 불가하다. 내가 지난 날에도 이미 그것을 말하였으니, 이와 같이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흥복사(興福寺)의 일은 결단코 들어줄 수 없으니, 지금부터 이 뒤로는 조심하고 다시 말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대간이 또 아뢰기를,

"옛날의 재상은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같은 반열(班列)에서도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이임보(李林甫)를 정승(政丞)으로 삼자 장구령(張九齡)이 말을 하였으며, 헌종(憲宗)황보박(皇甫鎛)을 정승으로 삼자 배도(裵度)가 말을 하였으니, 이는 충성스럽고 어질어서 한 바이며 재상의 고상한 운치(韻致)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양공(兩公)563) 처럼 어짊이 없으면서 대신(大臣)이 된 자는 안으로 임금의 뜻을 따르려고 관망(觀望)하는 마음을 두며, 밖으로는 같은 반열(班列)과 소원(疏遠)하고 꺼려하는 혐의가 있기 때문에 다 말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윤호(尹壕)는 현덕(賢德)과 물망(物望)이 있어서 삼공(三公)에 적합하다.’고 극력히 말하지 않고, 다만 ‘윤호는 드러난 과실이 없으니 이 또한 가하다.’고만 하였겠습니까? 그 말을 관찰해보면 그 뜻을 알 수 있으며 윤호의 사람됨도 알 만합니다. 인주(人主)가 과실이 있으면 대간(臺諫)이 된 자가 오히려 조정에서 면대하여 기탄없이 간하는데, 더구나 재상(宰相)이겠습니까?

윤사분(尹士昐)·윤사흔(尹士昕)·한백륜(韓伯倫)이 재능이 없다는 것을 남들이 누가 모르겠습니까? 선왕(先王)께서는 삼공은 특별히 한때의 권의(權宜)564) 에서 나온 것이며 만세(萬世)의 상경(常經)565) 은 아니라고 여기셨습니다. 윤호는 덕망(德望)도 없고 재능도 없어 훌륭한 것이라고는 일컬을 만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태정(台鼎)566) 의 지위에 배치하셔서 후세 사람들에게 비난과 비웃음거리를 물려주겠습니까? 그리고 학조(學祖)는 불사(佛事)를 주장하였으니, 바로 죄인의 괴수입니다. 그 나머지 승도(僧徒)와 부녀(婦女)들은 비록 모두 추국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학조 한 사람만 추국하면 또한 충분히 징계가 될 터인데, 어찌 다른 사람을 참여시키겠습니까? 청컨대 추국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경(卿) 등이 아무리 갖가지로 그것을 말하더라도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290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52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역사-고사(故事) / 사상-불교(佛敎)

  • [註 562]
    합사(合辭) : 임금에게 주청(奏請)할 때 여러 관사(官司)나 또는 여러 관원이 글을 합하여 연명(聯名)하여 상소하던 일. 교장(交章).
  • [註 563]
    양공(兩公) : 장구령과 배도를 가리킴.
  • [註 564]
    권의(權宜) : 임시의 편의.
  • [註 565]
    상경(常經) : 영구히 변하지 않는 법도.
  • [註 566]
    태정(台鼎) : 삼공(三公).

○司憲府大司憲許琛啓曰: "臣辭職不允, 雖懷愧恥之心, 不得不就列, 而當守其職矣。 昨日敎曰: ‘君臣一體, 當交修不逮。’ 殿下此言甚善。 君上見臣子過擧, 可罪則罪之, 可赦則赦之, 臣子見君上過擧, 可言則言之, 可已則已之, 古今之通義也。 臣等言, 尹壕不合三公, 而殿下不聽, 臣等之言恐爲不可。" 傳曰: "領議政言世祖朝后父爲政丞者多矣。 尹璠不得爲政丞, 其子士昐爲政丞, 世祖豈不斟酌乎? 今尹壕無顯過, 臺諫不宜至此堅執云云, 然若非其人, 則不可例以后父而爲三公也。 今右議政則無過咎, 有何不可?" 司憲府大司憲許琛等、司諫院大司諫尹慜等合辭啓曰: "大臣之以此啓之者非矣。 三公當擇賢能而極一時之選, 豈只以無顯然之過而爲之乎? 此則觀望順旨之辭耳。 古昔賢君, 皆以親嫌而不用后戚爲相, 此聖德事也。 世祖睿宗朝, 尹士昐士昕韓伯倫皆爲政丞, 是皆非其人也。 世祖聖資高明, 不以三公爲意, 不擇其人, 纔拜輒改, 故其時經三公者甚多, 此不可爲法也, 而人無敢言之者。 今時則喜聞讜言, 無有過擧, 臣等恐後世議。 非賢者, 而以外戚故而用之云耳, 則有累於聖德, 故不得不啓。 殿下雖以爲無顯然之過, 然臣等前日所啓之辭, 皆是之過, 臣等之言決不可不聽也。 興福寺事, 臣等聞學祖主張, 其餘隨歸婦女衆多, 雖不可盡推, 推一學祖, 何感傷和氣之有? 請推鞫治罪。" 傳曰: "宰相如有所言, 卿等輒論之曰不可, 豈爲可哉? 卿等以爲世祖睿宗朝, 尹士昐士昕韓伯倫爲政丞而皆非其人, 然卿等後進之士, 大司諫雖舊人, 當時想必爲微官, 何以知世祖之本意? 卿等又謂此不可爲法, 其時無有敢言之者, 然其時豈無臺諫乎? 卿等以先王爲不可法, 其時無有言之者, 又非責今時宰相, 此則卿等似乎自以爲是而能獨言也。 宰相言焉, 臺諫輒以爲不可, 故宰相無有言事者, 此習至爲不可, 予於前日亦已言之, 勿宜如是。 興福寺事, 決不可聽也。 自今以後, 愼勿復言。" 臺諫又啓曰: "古之宰相, 有非其人, 同列亦有言之者。 玄宗, 以李林甫爲相, 而張九齡以爲言; 憲宗皇甫鎛爲相, 而裵度以爲言, 此忠賢之所爲, 而宰相之高致也。 今無兩公之賢, 而爲大臣者, 內有觀望順旨之心, 外有踈忌同列之嫌, 故不能盡言耳。 不然何不極言尹壕有賢德物望合於三公, 而只曰尹壕無顯然之過, 斯亦可矣云乎? 觀其言則其意可知, 而之爲人亦可知也。 人主有過擧, 爲臺諫者猶面折廷爭, 況宰相乎? 尹士昐土昕韓伯倫之非才, 人誰不知? 先王以爲三公者, 特出於一時之權宜, 非萬世之常經也。 尹壕不德不才, 無善可稱, 豈可置之台鼎之位以貽後人之譏笑乎? 學祖主張佛事, 乃罪之魁也, 其餘僧徒婦女, 雖不盡推, 推一學祖, 亦足懲矣。 何與他人? 請推鞫。" 傳曰: "卿等雖百般言之, 萬無可聽之理。"


  • 【태백산사고본】 46책 290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52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역사-고사(故事)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