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건 등과 윤호와 월산 대군의 부인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논쟁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집의(執義) 민사건(閔師騫)이 아뢰기를,
"신 등이 윤호(尹壕)는 삼공(三公)에 적합하지 않다고 누순(累旬) 동안 논계(論啓)하였는데, 권력이 대간(臺諫)에게 있도록 하려고 한 것은 아니며 그 직분을 다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이 우의정(右議政)을 논(論)하면서 다만 부랑(浮浪)하고 절개가 없다는 등의 말뿐이다. 대간은 공의(公議)로써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만약 남의 말을 두려워한다면 무엇을 취하겠는가? 우의정은 다만 늙고 쇠약하여 행동거지가 불편할 뿐이다. 내가 이른바 권력이 대간에게 있다는 것은 뒷날의 폐단을 염려한 것이다."
하였다. 민사건이 말하기를,
"뇌정(雷霆)과 같은 위엄에도 오히려 두려워할 줄 모르는데 어찌 당시 사람들의 의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관(官)은 반드시 갖출 것이 아니라 적합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삼공(三公)은 반드시 물망(物望)이 있는 자를 가려뽑아서 진정시키고 승복하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지금 윤호(尹壕)가 삼공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대간(臺諫)뿐만이 아니라,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아는데, 전하(殿下)께서는 결점이 없다고 여기십니다. 그러나 삼공은 음양(陰陽)의 도(道)를 조화시키며 모든 책임이 모여드는 곳이니, 이 사람을 거기에다 보임(補任)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약 결점이 없다면 어느 곳인들 기용하지 않겠는가? 지금 고요(皐陶)와 직(稷)·설(契) 같은 자만 모두 찾아서 임용할 수는 없다."
하였다. 민사건이 말하기를,
"대간(臺諫)·홍문관(弘文館)에서 모두 그를 불가하다고 말하는데, 오히려 윤허하지 않으시니, 이 때문에 전하께서 사사로움을 두신다고 의심합니다. 반복(反覆)해서 생각하여 보아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호는 바로 신(臣)의 처(妻) 고종(姑從) 오라버니입니다. 그런데 신이 어찌 남의 말을 듣고서 아뢰겠습니까? 신 등이 공의(公議)로써 집요(執拗)하게 논박하는데, 윤호의 마음 역시 어찌 편안하겠습니까?"
하고, 정언(正言) 김사지(金四知)는 말하기를,
"윤호(尹壕)가 출근하고 연회(宴會)에 나아간 것이 아무리 성상의 명령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지금 바야흐로 대간(臺諫)이 번갈아가며 공박을 하니,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것이 마땅한데, 어제 조참(朝參)554) 에도 와서 참여하였으니, 미련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알 만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윤호가 어찌 문을 닫고 나오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이미 출근하였고 또 대간이 아무리 논박한다고 하더라도, 돌이켜보아 자기에게 과실이 없고, 삼공(三公)이 모두 연고가 있어서 부득이하여 와서 참여했을 뿐이다. 어떻게 조참(朝參)에 삼공이 모두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김사지가 말하기를,
"요즈음 가뭄의 재변(災變)이 심중(深重)하니, 더욱 마땅히 정승을 가려서 뽑아야 할 때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가뭄의 재변이 어찌 우의정(右議政) 때문에 빚어진 것인가?"
하였다. 김사지가 아뢰기를,
"박소(薄昭)는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지친(至親)인데도 오히려 그를 죽였습니다. 옛날의 제왕(帝王)은 아무리 지친의 사이라 하더라도 법(法)을 굽히면서 은혜를 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조정의 일을 가지고 말한다면 성녕 대군(誠寧大君)의 부인(夫人)이 대군을 위하여 연등(燃燈)을 베풀었는데, 세종(世宗)께서 그 비용을 돕자 태종(太宗)께서 들으시고 노여워하여 그 일을 주간(主幹)한 사람을 죄주셨으니, 이것은 진실로 커다란 귀감인 것입니다. 월산 부인(月山夫人)은 비록 추국(推鞫)할 수 없다 하더라도, 청컨대 승도(僧徒)와 부녀(婦女)들은 추국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부인(夫人)의 이번 거사(擧事)는 매우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큰 옥사(獄事)가 한 번 일어나면 원통하고 억울한 것이 틀림없이 많을 것이니, 이것은 법을 굽히고 은혜를 펴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시독관(侍讀官) 최부(崔溥)가 말하기를,
"중 학조(學祖)가 오로지 이 일을 위해서 왔으니, 맨먼저 앞장선 사람은 학조입니다. 이 중이 나라를 그르친 것은 이미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방종(放縱)하기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추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 학조가 하였다고 확실하게 지목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설경(說經) 이관(李寬)이 말하기를,
"만약 학조를 문초하신다면 어떻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승도(僧徒)들을 모아 자기들끼리 불사(佛事)를 일으키는 것도 오히려 불가한데, 더구나 사족(士族)의 부녀(婦女)들을 모아 산야(山野) 사이에서 하룻밤을 지새는 데 이른 것이겠습니까? 지금 추문(推問)하지 않으시면 이 중은 앞으로 어렵게 여기며 꺼려하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고, 최부는 말하기를,
"신 등이 상소(上疏)하자,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간(臺諫)과 함께 나란히 서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셨습니다. 인군(人君)의 앞에 있으면서 뇌정(雷霆)과 같은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대간과 시종(侍從)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와 같이 거절하시니, 언로(言路)가 아마도 장차 막힐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로 하여금 말을 못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만약 말할 만한 일이 있거던 대간(臺諫)과 홍문관(弘文館)에서는 선후(先後)를 따지지 말고 각각 마음속에 품은 것을 말하도록 하라."
하였다. 최부가 말하기를,
"신 등은 물의(物議)를 널리 채택하여 일이 대체(大體)에 관계된 연후(然後)에야 그것을 말합니다. 요즈음 가뭄의 재변이 더욱 심하니, 전하께서는 마땅히 정전(正殿)을 피(避)하시고 감선(減膳)555) 하셔야 하는데도,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시니,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망(物望)이 없는 자를 정승으로 배치하시니, 이것도 옳지 못합니다. 학조(學祖)는 하나의 요망한 중일 뿐입니다. 그가 요망하고 허탄한 말로 귀근(貴近)인 사람을 속이고 유혹하는데, 성명(聖明)한 세대(世代)에서도 그의 방자[縱恣]함이 이와 같으니, 아마도 막기 어려운 조짐이 있을 듯합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인군(人君)이 재변을 당하여 지극히 어리석지 않을 것 같으면 누가 두려워하면서 반성하고 수양하지 않겠는가? 정전(正殿)을 피하거나 감선(減膳) 같은 것은 바로 헛되게 꾸미는 것이다. 임금이 스스로 반성하지 아니하고 한갓 헛되게 꾸미는 것만 일삼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기 때문에 지난 날에 승정원(承政院)에 유시(諭示)하여 때맞추어 거행하지 못했을 뿐인데, 이것은 내가 과연 실수한 것이다."
하였다. 이관(李寬)이 말하기를,
"전하께서 부인(夫人)의 일을 옳지 못하다고 하시니, 이것은 큰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추국(推鞫)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아신다는 것이 유익함이 없습니다. 부인인 경우는 그만이겠지만, 만약 학조(學祖)를 아울러서 너그럽게 용서하신다면 앞으로 어렵게 여기면서 꺼려하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좌우(左右)에 고문(顧問)하였다. 특진관(特進官) 유자광(柳子光)이 아뢰기를,
"대간(臺諫)이 아뢴 바가 옳습니다. 그러나 학조가 주장(主張)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여러 해 동안 경영(經營)하여 마침내는 성(城)을 기울게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가는 데 이르렀으니, 부인의 행동에 있어서 역시 아름다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절은 부인(夫人)이 사사로이 창건(創建)한 것이니, 다른 부녀(婦女)들이 절에 올라가는 것과는 비교할 것이 아니다."
하였다. 민사건(閔師騫)이 말하기를,
"절에 올라가는 것을 말할 것 같으면 어찌 사사로이 창건하였다고 하여 다름이 있겠습니까? 부인은 지친(至親)이기에 추국할 수 없겠지만 그 법회(法會)에 참여한 자를 어떻게 추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290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524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왕실-종친(宗親) / 왕실-경연(經筵) / 사상-불교(佛敎)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과학-천기(天氣)
○御經筵。 講訖, 執義閔師騫啓曰: "臣等以尹壕不宜三公, 累旬論啓, 非欲權在臺諫, 欲盡其職也。" 上曰: "爾等論右議政, 只浮浪無節等語而已, 臺諫當以公議言之, 若畏人言, 則烏足取哉? 右議政但衰老, 起居不便而已, 予所謂權在臺諫者, 慮後弊也。" 師騫曰: "雷霆之威, 猶不知畏, 肯畏時人之議乎? 古云: ‘官不必備, 惟其人。’ 三公必須擇有物望者鎭服之可也。 今尹壕不合三公, 非徒臺諫, 國人皆知之。 殿下以謂無瑕疵, 然三公爕理陰陽, 百責所萃, 不可以此人補之也。" 上曰: "若無瑕咎, 則何所不用? 今不可盡得如皋陶、稷、契者用之也。" 師騫曰: "臺諫、弘文館皆言其不可, 而猶不允兪, 以此疑殿下之有私也, 反覆思之, 不可不聽。 壕乃臣妻之外兄, 臣豈聽人之言以啓乎? 臣等以公議論執之, 尹壕之心亦豈安乎?" 正言金四知曰: "壕之出仕赴宴, 雖出於上命, 而今方臺諫交攻, 宜杜門不出, 而昨日朝參亦來與焉, 其頑然無恥可知。" 上曰: "壕豈不欲杜門不出哉? 但旣已出仕, 且臺諫雖論, 顧無己過, 而三公皆有故, 不得已來參耳。 豈可於朝參, 三公皆不與乎?" 四知曰: "近來旱災深重, 尤當擇相之時也。" 上曰: "旱災豈由右議政致之耶?" 四知啓曰: "薄昭, 漢 文之至親而猶殺之, 古之帝王, 雖至親之間, 亦不屈法伸恩。 以我朝之事言之, 誠寧大君夫人爲大君燃燈, 而世宗助其費, 太宗聞而怒之, 罪其幹事之人, 此誠大鑑也。 月山夫人, 雖不可推, 請推僧徒、婦女。" 上曰: "夫人此擧甚失, 然大獄一起, 冤抑必多, 此非屈法伸恩也。" 侍讀官崔溥曰: "僧人學祖專爲此事而來, 首唱者學祖也。 此僧誤國已多, 今又放縱至此, 不可不推。" 上曰: "安能的指爲學祖乎?" 說經李寬曰: "若問學祖則安得諱乎? 聚會僧徒, 自作佛事, 猶且不可, 況聚士族婦女, 以至經宿於山野間乎? 今不推問, 則此僧將無所忌憚矣。" 溥曰: "臣等上疏, 殿下乃曰不可與臺諫竝立也, 在人君之前, 不畏雷霆者, 臺諫、侍從而已。 今拒之如此, 則言路恐將塞矣。" 上曰: "非欲使爾等不言也, 若有可言之事, 臺諫、弘文館, 當不計先後, 各以所懷言之。" 溥曰: "臣等旁採物議, 事關大體, 然後言之。 近來旱災尤甚, 殿下宜避殿減膳而猶不爾, 此不可也。 又以無物望者置相, 此亦不可也。 學祖一妖僧耳, 以妖誕之說, 誑誘貴近之人, 在聖明之世, 其縱恣如此, 恐有難杜之漸。" 上曰: "人君遇災, 若非至愚, 誰不恐懼修省乎? 若避殿減膳, 乃虛文也。 君不自省而徒事虛文, 似乎不可, 故前日諭于政院, 而時不擧行耳。 此則予果失矣。" 寬曰: "殿下以夫人之事爲不可, 此大幸也。 然知其不可而不推, 則其知之也無益矣。 夫人則已矣, 若竝擧學祖而寬貸, 則將無所忌憚矣。" 上顧問左右。 特進官柳子光啓曰: "臺諫所啓是矣。 然不可謂學祖主張也, 此事經營積年, 終至傾城而往, 於夫人之行, 亦不爲美。" 上曰: "此寺夫人所私創, 非他婦女上寺之比。" 師騫曰: "若言上寺, 則豈以私創而有異乎? 夫人至親, 不可推也, 其參會者, 何可不推?" 不聽。
- 【태백산사고본】 46책 290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524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왕실-종친(宗親) / 왕실-경연(經筵) / 사상-불교(佛敎)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