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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88권, 성종 25년 3월 1일 경인 1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윤민·이균 등이 상소하여 환관 엄용선과 의관 송흠 등의 가자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다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윤민(尹愍)과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이균(李均)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신(臣) 등이 환관(宦官) 엄용선(嚴用善)·문중선(文仲善)과 의관(醫官) 송흠(宋欽)·김흥수(金興守)에게 가자(加資)한 일을 가지고 합문(閤門)을 지키면서 고집스럽게 논난하였는데 전하(殿下)께서 전교(傳敎)하시기를, ‘그대들이 말한 것은 다만 그 조짐을 염려(念慮)한 것이다. 그러나 환관이나 의관이 교만하거나 뽐내는 것은 인주(人主)의 명찰하고 명찰하지 못한 것과 제지하느냐 제지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셨습니다. 삼가 성상(聖上)의 정녕(丁寧)하고도 간곡(懇曲)하신 유시(諭示)를 듣고, 신 등이 진실로 전하(殿下)께서 총애(寵愛)만을 숭상하지 않고 특별히 그 조그마한 노고를 생각하시고 그 경사(慶事)를 기쁘게 여기셔서 이러한 명령이 있은 줄로 알았습니다. 또 성명(聖明)하신 아래 그 누가 감히 교만하거나 뽐내는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 등이 반복(反覆)하여 생각해 봐도 엄용선의 무리가 아무리 약간의 노고가 있다고 하나 직위(職位)가 높은 반열(班列)에 올랐으니, 성상의 은총(恩寵)이 이미 중(重)하므로 이제 와서 다시 상(賞)을 주는 것은 불가합니다.

종사(宗社)의 경사라면 마땅히 백관(百官)과 더불어 그 은명(恩命)을 같이 해야 할 것이며, 엄용선 무리에게만 적용되어서는 안될 뿐더러, 그들에게 대가(代加)213) 해서도 안되겠습니다. 〈모든 일이〉 처음에 삼가지 아니하면 끝내 구원할 수 없게 됩니다. 전하의 밝고 성스러움으로도 오히려 주저하고 의사하여 따르지 않는데, 만약 후세에 혹시라도 오늘날만 못하여 환시(宦寺)가 혹시 교만하고 방자한 데 이르게 되어도 대신(大臣)이 간혹 말하지 아니하며 대간(臺諫)도 간혹 간쟁(諫諍)하지 않고, 나아가 고집하며 논난하여도 간혹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라의 일이 장차 날마다 잘못되는 데 이를 것이니,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저수량(褚遂良)214) 이 〈당나라〉 태종(太宗)에게 말하기를, ‘충신(忠臣)이 임금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그 조짐을 막아야 할 것이니, 만약 화란(禍亂)이 이미 이루어지면 다시 간(諫)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엄용선의 무리에게 한 자급(資級)을 더하여 준다고 해서 반드시 화란(禍亂)이 곧바로 닥치는 것은 아니나, 신 등이 논열(論列)에서 감히 천위(天威)215) 를 모독하면서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진실로 그 조짐을 두려워해서입니다. 한(漢)나라 원제(元帝)가 한 사람의 석현(石顯)216) 을 등용(登用)했던 것이 어찌 후세(後世)에 와서 오후(五侯)217) 가 조정(朝廷)을 좌우하고 십상시(十常侍)218) 가 정권(政權)을 전제(專制)할 줄 알았겠으며,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한 사람의 고역사(高力士)를 임용(任用)한 것이 어떻게 희종(僖宗)전영자(田令孜)를 부르기를 ‘아부(阿父)’라 하고219) , 양복공(楊復恭)소종(昭宗)을 지목하여 ‘문생(門生)’이라고 하는 데220) 이를 줄 알았겠습니까? 이것은 가물가물하는 불길을 삼가지 않았다가 온 들판이 타버리게 되고 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경계하지 않았다가 하늘에 치솟는데 이르게 된 것입니다.

자헌 대부(資憲大夫)는 육경(六卿)의 직질(職秩)인데 환수(宦竪)의 천한 자에게 더하여 주고, 2품(二品)은 재상(宰相)의 직급(職級)인데 의공(醫工)의 미천한 자에게 제수(除授)하셨으니, 오늘에 있어서는 진실로 염려할 것이 없다고 하겠지만, 어떻게 다른 날 총애받는 환관에게 함부로 관작(官爵)을 더해 주는 조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옛날 송(宋)나라 태종(太宗) 때 중관(中官) 왕계은(王繼恩)이 촉(蜀)을 평정시킨 공(功)이 있으므로, 중서(中書)221) 에서 선휘사(宣徽使)에 제수(除授)시키려고 하였는데, 태종이 이르기를, ‘짐(朕)이 지난 역사[前代史]를 읽어 보았기에 환관(宦官)을 정사(政事)에 참여시키고 싶지 않다. 선휘사는 집정(執政)하는 조짐이다.’고 하며, 마침내 제수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큰 공이 있어도 오히려 높은 관작(官爵)은 아꼈는데 더구나 엄용선 무리의 조그마한 노고이겠습니까?

당나라 의종(懿宗) 때에 악사(樂師) 이가급(李可及)이 새로운 소리를 잘 내므로 임금이 상장군(上將軍)을 삼았는데, 조확(曹確)이 간하기를, ‘태종(太宗)께서 문무 관원(文武官員) 6백여 명을 정하여 놓고 말하기를, 「짐이 천하의 어진 인사를 대우하여 공상(工商)의 잡배(雜輩)를 함께 머물러 있게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였으니, 송흠(宋欽) 등의 술업(術業)이 아무리 정교(精巧)하다 하더라도 어찌 조정(朝廷)의 높은 직질(職秩)로 가볍게 잡배에게 대해서야 되겠습니까?

신 등이 듣기로는 세종 대왕(世宗大王)께서도 일찍이 교시(敎示)하기를, ‘우리 나라는 금(金)이나 옥(玉)·토지(土地)로 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다만 관작(官爵)으로써 사대부(士大夫)를 대우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을 말미암아 33년 사이에 서대(犀帶)를 띤 자가 4, 5인에 지나지 않고 금대(金帶)를 띤 자도 많지 않다고 하니, 사대부를 대우하는 것도 이와 같은데 더구나 환관이나 의관이겠습니까? 이렇게 모범(模範)을 보이셨는데 전하(殿下)께서는 오히려 명기(名器)를 환관과 의관에게 함부로 더하시면서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으시니, 만약 후세에 혹은 오늘을 지적하여 고사(故事)로 삼고 함부로 하기를 너무 심하게 한다면 교만하고 방자한 환관과 〈총애를〉 희망하는 의관이 또 어찌 반드시 없을 것이라고 보장하겠습니까?

당(唐)나라 헌종(憲宗)이 환관을 관역사(館驛使)로 삼으니, 배인(裵潾)이 간(諫)하기를, ‘내신(內臣)과 외사(外事)는 직분(職分)이 각기 다르므로 마땅히 직위를 벗어나는 조짐을 막아야 하며, 일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반드시 처음에 경계하고 영(令)이 혹시 방해(妨害)됨이 있으면 반드시 큰 것에만 해당시켜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며, 의종(懿宗)이 중인(中人) 오덕응(吳德應)을 관역사(館驛使)로 삼았는데 대간(臺諫)이 논박(論駁)하니, 임금이 유시(諭示)하기를, ‘칙명(勅命)이 이미 시행되었으니 다시 고칠 수 없다.’고 하자, 유열(劉悅)이 말하기를, ‘예로부터 밝은 임금이 숭상하는 바는 간(諫)하는 것을 따름이 흐르는 물과 같이 한다고 하였는데, 어찌 이미 시행하였다고 해서 고치지 못하겠습니까? 또 칙명이 폐하(陛下)로부터 나왔는데 폐하로부터 고치는 것이 무엇이 불가하다고 여기십니까?’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殿下)께서는 작은 일이라고 해서 염려를 아니하시지 말고 성명(成命)이라고 하여 고치지 못한다고 여기지 마시고 빨리 엄용선 등의 관작을 거두어 조짐을 막는 경계를 삼가고 간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미덕을 드러나게 하소서."

하니, 어서(御書)하기를,

"내가 아무리 훌륭하지 못하더라도 어찌 헤아려 보지 않았겠는가? 앞서 유시에 이미 다하였으므로 다시 말할 것이 없다."

하였다. 대간(臺諫)이 다시 아뢰기를,

"신(臣) 등이 진실로 전하(殿下)께서 헤아려 보신 줄 압니다. 그러나 반복(反覆)해서 생각하여 보건대 자헌 대부(資憲大夫)·가정 대부(嘉靖大夫)·가선 대부(嘉善大夫)는 국가(國家)에서 육경(六卿)을 대우하는 재상(宰相)의 직질(職秩)인데 함부로 환관이나 의관인 용렬하고 천한 무리에게 더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엄용선 등이 2품의 벼슬에 이른 것도 전하께서 이미 전날에 착오(錯誤)를 하신 것인데 어찌 재차 착오를 허용하려 하십니까? 지난번 경연(經筵)에서 대간(臺諫)이 논계(論啓)하고 시종 대신(侍從大臣)이 모두 불가하다고 하여 상의하지 않고도 말이 같았으니, 이것이 바로 공정한 의논입니다. 다시 더 헤아려 보고 쾌히 따르소서."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28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48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 [註 213]
    대가(代加) : 경우에 따라 품계(品階)를 올려 줄 사람을 대신하여 그 아들·사위·아우·조카에게 품계를 올려 주는 일.
  • [註 214]
    저수량(褚遂良) : 당(唐)나라 초기의 명신.
  • [註 215]
    천위(天威) : 임금의 위엄.
  • [註 216]
    석현(石顯) : 한(漢)나라 제남(濟南) 사람.
  • [註 217]
    오후(五侯) :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환관(宦官)으로서 제후(諸侯)에 봉(封)해진 다섯 사람. 신풍후(新豐侯) 단초(單超)·무원후(武原侯) 서황(徐璜)·상채후(上蔡侯) 좌관(左悺)·동무양후(東武陽侯) 패원(貝瑗)·여양후(汝陽侯) 당형(唐衡).
  • [註 218]
    십상시(十常侍) : 한(漢)나라 영제(靈帝) 때에 환관(宦官) 장양(張讓)·조충(趙忠)·하운(夏惲)·곽승(郭勝)·손장(孫璋)·필남(畢嵐)·율숭(栗嵩)·단규(段珪)·고망(高望)·장공(張恭)·한리(韓悝)를 말함.
  • [註 219]
    희종(僖宗)이 전영자(田令孜)를 부르기를 ‘아부(阿父)’라 하고 : 당(唐)나라 희종(僖宗)이 자질이 광망(狂妄)하고 혼탁(昏濁)하여 정치를 전영자(田令孜)에게 맡기고 아부라고 불렀던 고사(故事).
  • [註 220]
    양복공(楊復恭)이 소종(昭宗)을 지목하여 ‘문생(門生)’이라고 하는 데 : 양복공(楊復恭)은 본래 임씨(林氏)의 아들이었으나 환관(宦官)인 양현익(楊玄翼)의 양자(養子)가 되어 날로 기세가 높았다. 당시 소종(昭宗)이 환관에 의하여 세운 바가 되자 그들이 천자(天子)를 무시하고 스스로 정책을 세운 우두머리를 국로(國老)라 일컫고 천자를 문생이라고 하였음.
  • [註 221]
    중서(中書) : 곧 중서성(中書省)으로, 수(隋)·당(唐)·송(宋)·원(元)나라 등에서의 일반(一般) 행정(行政)을 심의(審議)하던 중앙(中央) 관청(官廳)·삼국(三國)의 위(魏)나라 때에 비롯되어, 원나라 때에는 상서성(尙書省)으로 바뀌고 명(明)나라 초기(初期)에 폐함.

○朔庚寅/司諫院大司諫尹慜、司憲府執義李均等上疏曰:

臣等將宦官嚴用善文仲善、醫官宋欽金興守加資事, 守閤論執, 而殿下敎曰: "爾等所言, 只慮其漸耳, 然宦、醫之驕矜, 在人主明與不明, 制與不制爾。" 伏聞聖諭丁寧懇至, 臣等固知殿下非崇寵也, 特念其微勞, 喜其慶事而有是命也, 且於聖明之下, 就敢有驕矜者乎? 然臣等反覆思之, 用善輩雖有微勞, 位躋崇班, 上恩已重, 今不可更賞。 宗社之慶, 當與百官同其恩命, 不應於用善輩, 獨不使之代加也。 始之不謹, 終莫能救, 以殿下明聖尙遲疑不從, 如有後世, 或不如今日, 宦寺或至於驕恣, 而大臣或不能言, 臺諫或不能諍, 就使論執而或不聽納, 則國事將至於日非矣, 可不慮乎? 昔褚遂良言於太宗曰: "忠臣愛君, 必防其漸, 若禍亂已成, 無所復諫。" 今用善輩一資之加, 未必禍亂立至, 而臣等論列不已, 敢瀆天威者, 誠懼其漸耳。 之用一石顯, 安知後世五侯之擅朝, 十常侍之專政乎? 之任一力士, 安知至於僖宗之呼令孜爲阿父, 揚復恭之目昭宗爲門生乎? 是則焰焰之不謹, 至於燎原; 涓涓之不戒, 至於滔天者然也。 資憲, 六卿之秩, 而加諸宦竪之賤; 二品, 宰相之職而授諸醫工之微, 在今日固無可慮, 安知不爲他日寵宦濫爵之漸乎? 昔 太宗時, 中官王繼恩有平之功, 中書欲除宣徽使, 太宗曰: "朕讀前代史, 不欲宦官預政事。 宣徽使執政之漸也。" 終不授之, 則雖有大功, 尙惜高爵, 況用善輩之微勞乎? 懿宗時, 樂師李可及善爲新聲, 上以爲上將軍, 曹確諫曰: "太宗定文武官六百餘員曰: ‘朕以待天下賢士, 工商雜流不可處也。" 則宋欽等術業雖精, 豈可以朝廷之崇秩輕加之雜流乎? 臣等聞世宗大王嘗敎曰: "我國無金玉土田之奉, 只以官爵待士大夫。" 由是三十三年之間帶犀者不過四、五人, 帶金者亦不多, 待士大夫如此, 況宦、醫乎? 以此垂範, 殿下猶以名器濫加宦、醫, 不甚少惜, 若在後世, 或指今日爲故事而濫之太甚, 則驕恣之宦、希望之醫, 又豈能保其必無也? 憲宗以宦官爲館驛使, 裵潾諫曰: "內臣外事, 職分各殊, 宜絶出位之漸, 事有不便, 必戒於初, 令或有妨, 不必在大。" 懿宗以中人吳德應爲館驛使, 臺諫論駁, 上諭以勑命已行, 不可復改, 劉悅曰: "自古明君所尙者, 從諫如流, 豈有已行而不改? 且勑自陛下出之, 自陛下改之, 何爲不可?" 伏望殿下, 勿以爲細事而不慮, 勿以爲成命而不改, 亟收用善等之爵, 以謹杜漸之戒, 以彰從諫之美。

御書曰: "予雖不淑, 豈無料度? 前諭已盡, 無復所言。" 臺諫更啓曰: "臣等固知殿下料度, 然反覆思之, 資憲、嘉靖、嘉善, 國家所以待六卿宰相之秩, 不可濫加於宦、醫庸賤之流。 用善等致位二品, 殿下已誤於前日, 豈容再誤? 向於經筵, 臺諫論啓, 侍從、大臣皆曰不可。 不謀同辭, 是乃公論也。 更加料度快從。" 不聽。


  • 【태백산사고본】 46책 28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48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