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민효증이 제군과 옹주의 혼례 사치 등을 아뢰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집의(執義) 민효증(閔孝曾)이 아뢰기를,
"제군(諸君)과 옹주(翁主)의 길례(吉禮) 때에 혼인하는 집에서 사치(奢侈)스럽게 하는 일을 비록 전하께서는 미처 알지 못하고 계시나, 양대비전(兩大妃殿)께서는 행여 아실 수도 있습니다. 지나친 사치는 무익(無益)하니, 청컨대 자지(慈旨)1632) 로써 금단(禁斷)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외간(外間)에서 사치하는 일은 중궁(中宮)도 오히려 모르는데 양전(兩殿)께서 어찌 아시겠는가? 근래에 이 일을 말한 사람이 있었으므로, 내가 혼인하는 집에다 하교(下敎)하기를, ‘만약 지나치게 사치하는 일이 있으면 비단 폐단(弊端)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장차 나에게까지 누(累)가 미칠 것이니, 차후로는 다시 이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며, 이어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민효증이 말하기를,
"대저 호화(豪華)한 집의 자제(子弟)들은 부귀하게 생장(生長)하여 교만(驕慢)해지기 쉬우니 자제를 기르는 방도가 마땅히 이와 같아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신은 양전(兩殿)께서 아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양전께서 아셔서 이 폐단을 금지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혼인을 하면서 재물을 논하는 것은 몹시 옳지 못하다. 대간(臺諫)이 비록 말하지 않았어도 내가 이미 짐작(斟酌)하고 전지(傳旨)를 내려 금하였다. 만약 불법(不法)한 일이 있어 헌부(憲府)에서 거핵(擧劾)한다면 마땅히 죄주도록 할 것이다."
하였다. 민효증이 말하기를,
"비록 전지(傳旨)를 내리셨다고는 하나 사치스런 것이 예전과 같으니, 신은 지금 또다시 전지를 내려 금한다 하더라도 또한 전과 같을까 두렵습니다. 자지(慈旨)로 금단(禁斷)해야만 이 폐단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약 자지(慈旨)로 금지한다고 해도 폐단이 다시 전과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자, 특진관(特進官) 유지(柳輊)가 아뢰기를,
"법사(法司)가 있으니 만약 법을 어긴다면 마땅히 금지시킬 것입니다."
하였다. 정언(正言) 이세인(李世仁)이 아뢰기를,
"회덕현(懷德縣)은 몹시 잔폐(殘敝)한데 제사(諸司)의 노비 신공(奴婢身貢)1633) 의 포흠(逋欠)1634) 때문에 고을 수령으로 해유(解由)1635) 를 받지 못하여 사직(辭職)하고 떠난 자가 이미 3, 4명이나 됩니다. 국가에서 마땅히 생각하여 처치(處置)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니, 동부승지(同副承旨) 강귀손(姜龜孫)이 아뢰기를,
"회덕현은 신의 처향(妻鄕)입니다. 30년 이래 선환(宣喚)한 사람은 단지 한 사람뿐이었는데, 역시 해유(解由)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령(守令) 때부터 이 포흠(逋欠)이 있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해조(該曹)로 하여금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민효증이 또 아뢰기를,
"왕자(王子)의 집은 진실로 짓지 않을 수 없으나, 혼인(婚姻)하는 집의 빈부(貧富)를 보아서 조종조(祖宗朝) 때 고사(故事)에 의하여 그 값을 주고 스스로 짓도록 하면 폐단(弊端)이 없을 듯합니다. 만약 국가에서 모두 다 지어 준다면 노역(勞役)이 그치지 않아 백성들이 반드시 원망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에도 또한 이 일을 말하였기 때문에 백성을 사역(使役)하되 폐단(弊端)이 없도록 하라는 절목(節目)을 이미 의논하게 하였다. 그리고 값을 주는 일은 할 수 없다. 어찌 누구는 가난하고 누구는 부유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세인이 또 아뢰기를,
"경상도(慶尙道)는 벼가 결실(結實)이 되지 않아 백성들이 몹시 빈궁(貧窮)한데도 수령(守令)들이 환상(還上)1636) 이나 공물(貢物) 등의 일을 핑계대어 과렴(科斂)1637) 하는 것이 끝이 없으며, 불법(不法)한 일을 많이 행하니, 청컨대 조관(朝官)을 보내어 적발(摘發)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영사(領事) 노사신(盧思愼)이 대답하기를,
"조관을 뽑아 보낸다면 소요(騷擾)스러울 듯합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본도(本道)는 곡식이 여물지 않았고, 지금 바야흐로 양전(量田)1638) 을 하고 있으므로, 민간(民間)이 소요스러우니 다시 어사(御史)를 보낼 수가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284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43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재정-공물(貢物) / 재정-상공(上供) / 신분-천인(賤人) / 주생활-가옥(家屋) / 풍속-예속(禮俗)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1632]자지(慈旨) : 대비(大妃)의 전교(傳敎).
- [註 1633]
노비 신공(奴婢身貢) : 노비(奴婢)가 신역(身役) 대신에 바치던 공물(貢物).- [註 1634]
포흠(逋欠) : 관물(官物)을 사사로이 써서 모자라는 물건. 담당 관원이 보상하여야 하였음.- [註 1635]
해유(解由) : 관원들이 전직(轉職)할 때 재직중(在職中)의 회계 물품 출납에 대한 책임을 해제받던 일. 인수 인계가 끝나고 호조나 병조에 보고하여 이상이 없으면 이조에 통지하여 해유 문자(解由文字)를 발급하였음.- [註 1636]
환상(還上) : 춘궁기(春窮期)에 백성에게 대여한 곡물을 추수 후에 일정한 이자를 붙여 받아들이는 것.- [註 1637]
과렴(科斂) : 예(例)에 따라 부과하여 징수하는 것.- [註 1638]
양전(量田) : 일종의 토지 측량 제도로서 토지의 실제 경작 상황을 조사·파악하는 일로, 실제 내용은 토지의 비옥도(肥沃度)를 6등급으로 나누는 것임. 20년마다 한 차례씩 행하여 그 결과를 양안(量案)에 기록하여 호조(戶曹)·본도(本道)·본읍(本邑)에 보관함.○御經筵。 講訖, 執義閔孝曾啓曰: "諸君翁主吉禮時, 婚姻之家奢侈事, 殿下雖未及知, 兩大妃殿幸有知之之理, 過侈無益, 請以慈旨禁斷。" 上曰: "外間華侈之事, 中宮尙且不知, 兩殿豈知之乎? 近日有言此事者, 予敎婚姻家曰: ‘若有過侈, 非徒有弊, 亦將有累於予, 此後毋復如是。’" 仍顧問左右, 無有對者。 孝曾曰: "大抵豪華子弟, 生長富貴, 易至驕慢, 養子弟之方, 不宜如是。 臣非謂兩殿知之也, 欲兩殿知之而禁此弊也。" 上曰: "婚娶論財甚不可, 臺諫雖不言之, 予已斟酌, 下傳旨禁之。 若有不法事, 憲府擧劾, 則當罪之。" 孝曾曰: "雖下傳旨, 奢侈猶舊, 臣恐今雖復下傳旨禁之, 亦如前日也。 以慈旨禁斷, 則可以祛此弊矣。" 上曰: "若以慈旨禁之, 弊復如前則如何?" 特進官柳輊啓曰: "法司在焉, 如有違法, 當禁之。" 正言李世仁啓曰: "懷德縣甚殘敝, 而以諸司奴婢身貢逋欠, 邑宰不得解由, 辭職而去者, 已更三、四員, 國家當思有以處置。" 同副承旨姜龜孫啓曰: "懷德, 臣妻鄕也。 三十年以來, 宣換者只一人, 而亦不得解由, 不知某守令時, 致有此逋欠也。" 上曰: "令該曹議啓。" 孝曾又啓曰: "王子家舍, 固不可不造, 然觀婚姻家貧富, 依祖宗朝故事給其價, 令自造成, 則似無弊矣。 若國家盡造, 則勞役不止, 民必怨咨。" 上曰: "前日亦言此事, 故役民無弊節目, 已令議之矣。 給價事不可爲也, 豈可以某爲貧以某爲富乎?" 世仁又啓曰: "慶尙道禾(縠)〔穀〕 不實, 民間至貧, 守令依憑還上貢物等事, 科斂無藝, 多行不法, 請遣朝官摘發。" 上顧問左右。 領事盧思愼對曰: "發遣朝官, 似乎騷擾。" 上曰: "本道不稔, 時方量田, 民間騷擾, 不可復遣御史也。"
- 【태백산사고본】 45책 284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43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재정-공물(貢物) / 재정-상공(上供) / 신분-천인(賤人) / 주생활-가옥(家屋) / 풍속-예속(禮俗)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