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 국왕의 서계에 답하는 일을 의논하다
유구 국왕(琉球國王)의 서계(書契)에 답하는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회봉 물건(回奉物件)923) 은 서계에 기재하지 말고, 단지 사자(使者)에게만 주어서 보내는 것이 또한 무방합니다."
하고,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지금 온 사신(使臣)들이 진실로 유구(琉球)에서 보낸 바가 아니면 비록 서계(書契)를 부친다 하더라도 저들이 어찌 전하겠습니까? 그렇다면 회봉 물건을 기록하고 기록하지 아니하는 것이 경중(輕重)에 관계가 없습니다. 만약 국왕(國王)이 보낸 것이라면 그 회봉 물건을 서계 가운데 기록하지 아니할 수 없으며, 그 답서(答書)에도 확연[截然]하게 불신하는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답하는 서계 안에 ‘크게 서로 멀리 떨어진다.[大相遼絶]’라는 것과 ‘귀국의 사신으로 대접하지 아니한다.’라는 말은 아마도 온당하지 못할 듯합니다. 만약 고치기를, ‘서계 가운데 인문(印文)이 전에 온 인문과 조금 같지 아니함이 있으니, 아마도 간혹 거짓이 있을 듯하다.’하고 하면 일이 사실과 어긋나지 아니하고, 말도 조금 은미하고 순할 것입니다. 그러면 비록 정말로 유구에서 보낸 것이고 그 나라에서 그것을 본다고 하더라도 해로움이 없을 듯합니다."
하고, 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귀국 사신으로 대접하지 아니한다.’는 말은 온당하지 못합니다. 이 말을 고치면 보낸 물건을 수령(收領)한 것과 회봉(回奉)하는 일을 비록 아울러 기록한다 하더라도 가합니다."
하고, 이철견(李鐵堅)과 정문형(鄭文炯)은 의논하기를,
"지금 온 사신이 진실로 국왕이 보낸 바가 아니라면 회답(回答)하는 서계가 반드시 전통(傳通)되지 아니할 것이니, 그 회봉 물건을 비록 서계에 기록하더라도 또한 관계가 없습니다."
하고, 이극균(李克均)은 의논하기를,
"그 서계를 이미 회답하면 회봉 물건을 서계에 기재하지 아니하는 것은 단지 말단의 일입니다. 서계에 기재하지 아니하고 사자에게만 주어 보내면 저들이 즐겨 말없이 받겠습니까? 청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면 마침내 반드시 그대로 따라야 할 것입니다. 야차랑(也次郞) 등이 참으로 속여서 전한 것이라면 서계와 회봉 물건은 마침내 전할 이치가 없습니다."
하였는데, 노사신의 의논에 따랐다. 그 답한 서계에 이르기를,
"폐방(弊邦)이 귀국(貴國)과 더불어 비록 바다가 만리나 막히었고 길이 크게 멀다고 하더라도 대대(代代)로 화호(和好)를 돈독히 하여 그 내려옴이 이미 오래인데, 이제 일본국(日本國) 박다(簙多) 지방에 거주하는 왜승(倭僧) 범경(梵慶)과 왜자(倭子) 야차랑(也次郞) 등이 귀국의 사신이라고 일컬으며 우리 나라 지경에 와서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귀국이 옛 우호를 잊지 아니하고 이에 다시 통문(通問)924) 하니, 진실로 위로되고 기쁘게 생각하였었는데, 가지고 온 서계를 보자 그 인문(印文)이 전에 온 인문과 같지 하니하였습니다. 생가하건대, 우리 두 나라가 서로 친하면서 그 의빙(依憑)925) 하여 징험하는 바는 인신(印信)인데, 이제 이와 같으므로, 그 사이에 거짓됨이 있을까 염려스러우니 살펴서 양해하기를 삼가 바람니다. 사자(使者)가 가지고 온 물건은 삼가 이미 수령하였으며, 변변치 못한 토의(土宜)는 별폭(別幅)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280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364면
- 【분류】외교-유구(琉球)
- [註 923]
○丁未/議修答琉球國王書契事。 尹弼商議: "回奉物件, 勿載書契, 只給使者以送亦不妨。" 盧思愼議: "今來使臣等, 實非琉球所送, 則雖付書契, 彼豈傳之? 然則回奉物件, 錄與不錄, 無關於輕重也。 倘其所送, 則其回奉不可不錄於書契中, 其答書亦不可有截然不信之語, 今答書契內, ‘大相遼絶’, 及不以貴國使臣待之之意, 恐未爲穩, 若改之曰: ‘書契內印文與前來印文, 微有不同, 恐間有詐僞’云云, 則事不失實, 辭亦微婉, 雖眞琉球所使, 而其國見之, 恐亦無傷。" 許琮議: "‘不以貴國使臣待之’之語未穩, 此辭改之, 則所送物件收領與回奉事, 雖幷錄可也。" 李鐵堅、鄭文炯議: "今來使臣, 實非國王所送, 則修答書契, 必不傳通, 其回奉物件, 雖錄書契, 亦非關係。" 李克均議: "其書契旣已修答, 則回奉物件不載書契, 特末事耳。 不載書契而只給使者而送, 則彼肯無辭受之乎? 請之不已, 竟必從之矣。 也次郞等, 實爲詐傳, 則書契與回奉物件, 終無可傳之理。" 從思愼議。 其答書契曰: "敝邦與貴國, 雖隔海萬里, 道途遼遠, 而世篤和好, 其來已久。 今有日本國 博多地面居住倭僧梵慶、倭子也次郞等, 稱貴國使, 前到我境, 予謂貴國不忘舊好, 復此通問, 良用慰悅, 及觀齎來書契, 則其印文與前來印文不同, 念惟我兩國相好, 其所憑依以爲驗者印信, 而今乃如此, 慮有詐僞於其間, 伏惟照諒, 使者齎來物件, 謹已收領, 不腆土宜, 具在別幅。"
- 【태백산사고본】 44책 280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364면
- 【분류】외교-유구(琉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