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성종실록 277권, 성종 24년 5월 5일 무진 4번째기사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성균관에 명하여 예조와 함께 권학 절목을 의논하게 하다

이에 앞서, 성균관(成均館)의 생원(生員)·진사(進士)·유학(幼學) 10여 인의 전강(殿講)414) 에서 약(略)415) 또는 조(粗)를 받은 자가 두어 사람이고 나머지는 다 불통(不通)이었으므로, 그 뒤에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한 자가 유생(儒生)이 배움에 부지런하지 않은 것을 아뢰니, 성균관의 당상(堂上)에게 명하여 예조(禮曹)와 함께 권학 절목(勸學節目)을 의논하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의논하여 아뢰기를,

"1. 생원·진사 등이 일과(日課)를 규피(規避)하여 저녁에 모였다가 아침에 흩어지고, 혹 학교에 있더라도 청강(聽講)하려 하지 않으며, 또 제술(製述)하지 않는 자가 자못 많으니, 이제부터는 한 달에 10일 이상 청강한 자와 3순(旬)에 한 번 제술하여 차등(次等) 이상으로 입격(入格)한 자는 착명(著名)한 일수(日數)대로 원점(圓點)416) 을 주고, 이 격례(格例)에 미치지 못한 자는 원점을 반으로 줄일 것.

1. 별시(別試)417) 때마다 원점은 임시하여 점수를 정하되, 석점(夕點)을 계산하지 말고 조점(朝點)만을 계산할 것.

1. 《대전(大典)》에 전년 가을에 초시(初試)하고 봄에 복시(覆試)418) 하게 되어 있는 것은 그 뜻이 대개 삼동(三冬)에 학문을 쌓게 하려는 것인데, 지금 유생은 초시에 입격(入格)하면 본디 공(功)을 쌓는 것이 없고 네다섯 달 동안 외는 데에만 애써서 입격되기를 바라므로, 여느 때에는 전혀 글을 읽는 데에 마음 쓰지 않으니, 초시(初試)·복시(覆試)를 우선 고례(古例)대로 모두 초봄에 시험하여 뽑을 것.

1. 생원(生員)·진사(進士)의 양친(兩親)과 계후(繼後)한 부모의 노병(老病)으로 진성(陳省)419) 하면 으레 원점을 계산하지 않아야 하겠으나, 수양(收養)420) ·시양(侍養)421) 이라면 간사하게 속이는 것을 가리기 어려우니 모두 쓰지 말 것.

1. 《주역(周易)》은 이학(理學)의 근본이 되는 것인데, 근래 《주역》을 배우는 유생(儒生)이 적어서 역학(易學)이 이에 따라 폐기되어 없어질 듯하니, 이제부터 강시(講試)는 삼경(三經) 중에서 《주역》을 먼저 강(講)하여 불통(不通)한 자는 시험하지 말 것.

1. 달마다 전강(殿講)하여 강획(講畫)422) 한 뒤에 식년(式年)423) 에 통계(通計)하여 3통(通) 이상인 자는 회시(會試)에 직부(直赴)시키고, 2통(通) 이하인 자는 초시 때에 분수(分數)를 아울러 계산하되 조(粗)와 약(略)은 쓰지 말 것."

하니,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정부(政府)에 의논하라고 명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이극배(李克培)·유지(柳輊)가 의논하기를,

"이것은 한때 폐단을 바로잡은 방책(方策)이고 영구히 시행할 법이 아니니, 우선 절목(節目)대로 시험하여 보소서."

하고, 노사신(盧思愼)이 의논하기를,

"절목대로 시행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만, 제3조의 초시(初試)·복시(覆試)를 모두 초봄에 시험하여 뽑는 일은 안될 듯합니다. 두세 달 동안 외는 것만을 애쓰더라도 글을 읽는 것이며, 또 《대전(大典)》의 법(法)이 그러한데, 어찌 쉽사리 어지러이 고칠 수 있겠습니까? 제4조의 수양 부모(收養父母)의 노병(老病)으로 진성(陳省)하는 것을 쓰지 않는 일도 안될 듯합니다. 수양 부모가 죽으면 3년 동안 복상(服喪)하므로 친부모(親父母)와 다를 것이 없으니, 참으로 노병이라면 어찌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5조의 《주역(周易)》을 먼저 강(講)하여 불통(不通)은 시험하지 않는 일도 안될 듯합니다. 중국[中朝]에서는 전경(專經)의 법(法)을 써서 각각 잘하는 것을 뽑으므로 인재를 얻는 것이 많거니와, 반드시 《주역》이 이학의 근본이 되는 것이기는 하나, 오경(五經)은 다 경중(輕重)을 비교할 수 없으니, 《주역》을 배워야 뽑는다면 인재를 얻는 길이 넓지 못할 것입니다. 《주역》을 강하는 자는 다른 글들보다 획수(畫數)를 더 준다면, 사람들이 스스로 《주역》을 배우는 일에 권면(勸勉)할 것입니다."

하고, 허종(許琮)이 의논하기를,

"제술(製述)을 잘하는 자도 있고 잘하지 못하는 자도 있는데, 차등(次等)에 들지 못한 자의 원점(圓點)을 반으로 줄이는 것은 온편(穩便)하지 못합니다. 전년 가을에 초시(初試)에 입격(入格)한 자가 네다섯 달 동안 외는 것만을 애쓰더라도 배우는 자에게는 워낙 유익하거니와, 공(功)을 쌓은 것이 있는 자는 강획(講畫)이 절로 많고 공을 쌓은 것이 없는 자는 강획이 절로 적어지니, 《대전(大典)》대로 시행하여도 무방할 듯합니다. 《주역》을 먼저 강하여 불통(不通)한 자를 시험하지 않는 것은 융통이 없는 일이 될 듯합니다. 그 나머지 절목(節目)은 모두 이대로 시행(施行)하소서."

하고, 이철견(李鐵堅)이 의논하기를,

"절목대로 시행하소서. 다만 강경(講經)에 관한 절목은 《대전(大典)》에 실려 있으므로 쉽사리 고칠 수 없으니, 표(表)·전(箋)을 제술(製述)할 때의 예(例)에 따라 분수(分數)를 더 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정문형(鄭文炯)이 의논하기를,

"절목대로 시행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만, 삼경(三經) 중에서 《주역(周易)》에 불통(不通)한 자를 시험하지 않는 법은 예전부터 없던 일입니다. 전례(前例)로는 삼경에 한하여 시강(試講)하고 삼경을 지내면 자원(自願)에 따라 사경(四經)·오경(五經)을 다 강하여 분수를 주었는데, 그 유래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만약에 《주역》에 불통(不通)한 자를 죄다 뽑지 말게 한다면, 그 밖의 네 경(經)에 통할 수 있는 자도 시험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니, 대체(大體)에 있어서 어떠하겠습니까? 과거(科擧)를 베풀어 사람을 뽑는 것은 앞으로 크게 쓰려는 것이거니와, 고금(古今)의 장상(將相)은 다 《주역》에 통한 자가 하였겠습니까? 더구나 중국에서는 전경(專經)의 법을 베풀어서 사람을 뽑으므로 반드시 삼경(三經)을 강할 것 없으니, 유생(儒生)이 반드시 《주역》을 배우게 하려면 강획(講畫)을 표전(表箋)의 예(例)에 따라 갑절하여 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옛말에 ‘과목(科目)을 드물게 하여 인재(人才)를 기른다.’ 하였습니다. 유생이 청강(廳講)하지 않고 글읽기를 부지런히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시험하여 뽑는 수에 말미암고 또 사장(詞章)으로 뽑는 데에 말미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중국의 제도를 본떠서 3년에 한 번 과거를 베푸는 것은 미리 기르려고 뽑는 것이며, 이따금 여러 관(館)의 관원이 모자라거나 학문을 권장하려고 때없이 별시(別試)하는 것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방도입니다. 그러나 신이 보건대, 병오년424) 이래로 별시(別試)하여 사람을 뽑는 것은 없는 해가 없고, 한 해에 두 번 뽑기도 한데다가, 한 글에서 조(粗)를 받은 자까지 다 뽑기도 하고 오로지 사장(詞章)으로 뽑기도 하였으니, 국가에서 어느 겨를에 유생을 미리 길렀겠으며, 누가 경서(經書)에 전념하였겠습니까?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옛 법에 따라 과목(科目)을 드물게 하여 미리 기르고 별시(別試)를 당하더라도 오로지 강경(講經)을 주로 한다면 유생이 어찌하여 청강(聽講)하고 글읽기에 전념하지 않겠는가 합니다."

하고, 이극균(李克均)이 의논하기를,

"제1조의 한 달 안에 10일 이상이라는 것은 그 일수(日數)가 적을 듯하니 15일 이상으로 끊고, 제5조의 《주역》을 삼경 안에 갖추어 강경하는 것은 안될 듯하니, 표·전(表箋)의 분수(分數)대로 갑절로 정하여 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전일 경연(經筵)에서 함께 아뢴 권과 절목(權課節目)을 승지(承旨)가 잘 들었을 것이니, 써서 아뢰라."

하였다. 도승지(都承旨) 조위(曺偉)가 아뢰기를,

"첫째, 새로 급제한 권지(權知)를 여러 고을의 훈도(訓導)로 삼으면, 스스로 내가 어찌 오래 있으랴고 생각하고 수령(守令)도 저 사람은 오래 있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므로, 날마다 노는 것을 일삼고 전혀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사학(四學)425) 의 훈도(訓導)에 승문원(承文院)·교서관(校書館)의 권지를 나누어 차출하여 상사(常仕)426) 하게 하면, 본학(本學)의 관원 중에 정사(呈辭)427) 하거나 출사(出使)한 자가 있더라도 가르치는 일이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째, 외방(外方)의 유생(儒生)이 군역(軍役)을 면하려고 학술(學術)이 없는 자도 남에게 대강(代講)을 청하여 훈도(訓導)에 제수되는데, 하등(下等)을 차지하여도 훈도라는 이름을 얻어서 동반(東班)의 조사(朝士) 줄에 끼어 군역(軍役)을 면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옳지 않으니, 이 뒤로는 관찰사(觀察使)가 고강(考講)하여 가장 잘하지 못한 자를 아뢰고 그 시재(試才)428) 를 치부(置簿)한 데에서 이름을 삭제하고 또 고신(告身)을 거두고 군역에 차정(差定)하면, 배우지 못한 자가 사표(師表)의 직임에 함부로 제수되지 않을 것입니다.

네째, 생원(生員)·진사(進士) 중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더라도 글을 잘하는 자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뜻이 있는 자는 훈도가 되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아서 취재(取才)429) 에 응하려 하지 않으니, 이 뒤로는 생원·진사 중에 문명(文名)이 있어 사표(師表)를 감당할 자는 관찰사(觀察使)를 시켜 아뢰게 하여 특별히 훈도를 제수하여 가르치게 하소서.

다섯째, 교수(敎授)가 된 문신(文臣)을 사람들이 다 천하게 여기므로, 이 때문에 학술(學術)이 있는 자가 있더라도 가르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여기지 않고 한가히 날을 보내는데, 개만(箇滿)430) 한 뒤에도 곧 벼슬을 옮겨 주지 않아서 혹 대여섯 해나 일여덟 해나 되는 자도 있으니, 이 뒤로는 30개월이 찬 자는 수령(守令)의 예(例)에 따라 곧 갈고 문신(文臣)를 번갈아 제수하면, 사람들이 다 자기 임무로 여기고 천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여섯째, 양계(兩界)431) 의 교수(敎授)·훈도(訓導)는 본도(本道) 사람이 아니면 혹 처음부터 부임(赴任)하지 않거나 부임한 뒤에 곧 정사(呈辭)하니, 이 뒤로는 교수·훈도를 제수한 뒤에 사는 곳에 이문(移文)하여 부임을 재촉하고, 기한이 지나도 부임하지 않은 자는 추고(推考)하여 논죄(論罪)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성균관(成均館)의 당상(堂上)에게 다시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겸 동지사(兼同知事) 이극증(李克增) 등이 아뢰기를,

"제1조의 새로 급제한 권지(權知)를 훈도(訓導)로 삼으면 노는 것을 일삼는다는 자는 관찰사(觀察使)를 시켜 엄하게 규찰(糾察)하게 하소서. 제2조의 승문원(承文院)·교서관(校書館)의 권지를 사학(四學)에 나누어 차출하는 일은 각각 맡은 것이 있는데다가 더구나 권지(權知)는 때에 따라 늘리고 줄이므로 거행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제3조의 외방(外方)의 유생(儒生)이 남에게 대강(代講)을 청한다는 일은 절로 그 벌이 있으니, 새 과조(科條)를 다시 세울 것 없습니다. 제4조의 사표(師表)를 감당할 만한 생원(生員)·진사(進士)를 훈도(訓導)에 제수하는 일은 우선 시험삼아 시행하여 보소서. 제5조와 제6조는 해사(該司)가 바야흐로 거행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전후(前後)의 절목(節目)을 모두 예조(禮曹)에 내려서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277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309면
  • 【분류】
    사법-법제(法制)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선발(選拔)

  • [註 414]
    전강(殿講) : 조선조 성종(成宗) 때부터 경서(經書)의 강독(講讀)을 권장할 목적으로 실시한 시험, 처음에는 문신(文臣) 중 경서에 뛰어난 사람을 뽑아 가끔 어전(御前)에서 경서를 시험하였는데, 이것이 전강의 시초였으며, 뒤에는 생원·진사 및 명문 자제에게도 적용하였음.
  • [註 415]
    약(略) : 과거(科擧) 강서과(講書科)의 성적을 매기는 등급의 하나로서, 보통 등급을 말함. 으뜸을 통(通), 그 다음 보통을 약(略), 그 다음 열등(劣等)을 조(粗), 낙제를 불(不)이라 하였음.
  • [註 416]
    원점(圓點) : 조선조 때 성균관(成均館) 유생(儒生)의 출석·결석을 점검(點檢)하기 위하여, 식당(食堂)에 들어갈 때에 도기(到記)에 찍는 점. 아침·저녁의 두 끼로써 한 점으로 하고, 50점에 이르면 과거(科擧) 볼 자격을 얻음.
  • [註 417]
    별시(別試) :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나 병년(丙年)마다 특별히 보이던 문무(文武)의 과거.
  • [註 418]
    복시(覆試) : 초시(初試)에 급제한 사람이 다시 보던 과거. 회시(會試).
  • [註 419]
    진성(陳省) : 백성들이 방납(防納)·휴가(休暇)의 청원(請願)이나 이속(吏屬)의 면제 등을 진정(陳情)할 때 관가에서 내려 주는 허가증.
  • [註 420]
    수양(收養) : 자손(子孫)이 없고 형제간(兄弟間)에도 자손이 없는 경우에 동성(同姓)·이성(異姓)의 관계 없이 3세(歲) 전의 아이를 데려다가 자기 성(姓)을 주어 제 자식처럼 기르는 것.
  • [註 421]
    시양(侍養) : 양사자(養嗣子)할 목적이 아니면서, 동성·이성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거두어 기르던 일. 수양(收養)은 자식이 없는 경우이나, 시양(侍養)은 자식이 있더라도 남의 귀한 자식을 대신 길러 주고 그 댓가를 받던 것임.
  • [註 422]
    강획(講畫) : 강경(講經)을 할 때 그 시험한 성적의 결과를 표시하여 긋던 획.
  • [註 423]
    식년(式年) : 과거를 보이기로 정한 해. 태세(太歲)가 자(子)·오(午)·묘(卯)·유(酉)가 드는 해임.
  • [註 424]
    병오년 : 1486 성종 17년.
  • [註 425]
    사학(四學) : 한성부(漢城府)의 오부(五部) 중에서 북부(北部)를 제외한 네 부(部)에 각각 하나씩 둔 학당(學堂). 곧 중학(中學)·동학(東學)·남학(南學)·서학(西學)임.
  • [註 426]
    상사(常仕) : 상시 근무.
  • [註 427]
    정사(呈辭) : 사직(辭直)·청가(請暇) 등의 원서를 관아에 제출하던 일.
  • [註 428]
    시재(試才) : 재예(才藝)를 시험함.
  • [註 429]
    취재(取才) : 재예를 시험하여 뽑음.
  • [註 430]
    개만(箇滿) : 개월법(箇月法)에 의하여 천전(遷轉) 또는 거관(去官)하는 관원이 그 근무 일수가 차던 것을 말함. 대개 외관(外官)은 30개월, 경관(京官)은 15개월이었음.
  • [註 431]
    양계(兩界) : 평안도와 함경도.

○前此, 成均館生員、進士、幼學十餘人殿講, 或略或粗者數人, 餘皆不通。 其後入侍經筵者, 以儒生不勤學啓之, 命成均館堂上與禮曹, 同議勸學節目, 至是, 議啓: "一, 生員、進士等, 規避日講, 暮聚朝散, 雖或在學, 不肯聽講, 且不製述者頗多, 自今一朔內十日以上聽講者, 及三旬製述一度次等以上入格者, 依着名日數給圓點, 其不及此格者, 圓點減半。 一, 每別試時, 圓點臨時定數, 勿計夕點, 只計朝點。 一, 《大典》, 前秋初試, 春覆試, 其意蓋欲積學三冬, 今之儒生, 苟中初試, 則本無積功, 四、五朔內刻意記誦, 僥倖得中, 故常時專不用意讀書, 初覆試, 姑依古例, 竝於春初試取。 一, 生員、進士兩親及繼後父母, 老病陳省, 則例當不計圓點, 若收養、侍養, 則奸僞難辨, 竝勿用。 一, 《周易》, 理學之宗, 而近來儒生學《易》者少, 恐《易》學從此廢絶。 自今講試三經內, 先講《周易》, 不通者勿試。 一, 每月殿講講畫, 後式年通計, 三通以上者直赴會試, 二通以下者, 於初試分數幷計, 粗略勿用。" 命議于領敦寧以上及政府。 尹弼商李克培柳輊議: "此一時救弊之策, 非永久長行之法, 姑依節目試驗。" 盧思愼議: "依節目施行爲便。 但第三條, 初覆試竝於春初試取事, 恐不可行, 雖二、三朔內刻意記誦, 是亦讀書, 且《大典》之法如此, 豈可輕爲紛更? 第四條收養老病陳省勿用事, 亦恐不可。 收養父母死, 則服喪三年, 與親父母無異, 若眞老病, 豈可勿用? 第五條先講《周易》不通勿試事, 亦恐不可, 中朝用專經之法, 各取所長, 得人爲多, 若必學《易》, 然後取之, 恐得人不廣也。 講《易》者, 於諸書畫數加給, 則人將自勸於學《易》矣。" 許琮議: "製述有能、有不能, 不入次等者, 圓點減半未穩。 前秋初試入格者, 雖四、五朔刻意記誦, 於學者, 固爲有益, 有積功者, 講畫自多, 無積功者講畫自少, 依《大典》施行, 恐無妨也。 《周易》雖理學之宗, 五經不可輕重, 先講《周易》不通者勿試, 似爲膠固, 其餘節目, 竝依此施行。" 李鐵堅議: "依節目施行。 但講經節目, 載在《大典》, 不可輕改, 講《易》者, 依表箋製述例加給分數何如?" 鄭文炯議: "依節目施行爲便, 但三經內不通《周易》者勿試之法, (亘)〔亙〕 古所無, 前例限三經試講, 過三經則自願四五經皆講之給分, 其來已久矣。 若不通《周易》者, 悉令勿取, 則其他能通四經者, 亦不得與試, 其於大體何如? 設科取人, 將以大用, 古今將相, 皆通《周易》者爲之乎? 況中朝則設專經之法以取人, 不必講三經, 欲使儒生, 須業《周易》, 則講畫依表箋例倍給何如? 且古云疏科目養其人才, 儒生之不聽講、不勤讀, 實由於試取之數, 亦由於取之以詞章也。 我國倣中朝之制, 三載一設科, 欲其儲養而取之也。 其間或因諸館乏員, 或欲勸學, 無時別試者, 古之道也。 然臣觀丙午以來別試取人, 無歲無之, 或一歲再取之, 加以粗一書者皆取, 或專取詞章, 國家何暇儲養儒生, 誰復專意經書? 臣妄意, 依古法疏科目, 以儲養, 雖當別試, 專主講經, 則儒生何不聽講專心讀書乎?" 李克均議: "第一條, 一朔內十日以上者, 恐其日數少也, 十五日以上爲斷。 第五條, 《周易》三經內備經恐不可也, 依表箋分數倍畫給之何如?" 傳曰: "前日經筵僉啓勸課節目, 承旨詳聽之矣, 其書以啓。" 都承旨曺偉啓曰: "一, 新及第權知爲諸州訓導, 自以爲, 我豈久居於此, 守令亦以爲, 彼不久居此, 日以遊戲爲事, 專不敎訓。 二, 四學訓導, 以承文院、校書館權知分差, 令常仕則雖本學員有呈辭出使者, 可以訓誨無闕。 三, 外方儒生, 謀免軍役, 無學術者, 請人代講, 得除訓導, 雖居下等, 猶得訓導之名, 齒於東班朝士之列, 得免軍役, 甚不可。 今後觀察使考講, 最不能者啓聞, 其試才置簿內削名, 且收告身差定軍役, 則不學者不得濫授師表之任矣。 四, 生員、進士, 雖未登第, 多有能文者, 其中有志者, 不屑爲訓導, 不肯取才, 今後生員、進士有文名堪任師表者, 令觀察使啓聞, 特授訓導, 使之敎訓。 五, 文臣敎授, 人皆賤之, 以此雖有學術者, 不肯以敎訓爲(任已)〔己任〕 , 優游度日, 箇滿後亦不卽遷轉, 或至五六年、七八年者有之。 今後滿三十朔者, 依守令例卽遞, 而以文臣輪次除授, 則人皆以爲己任, 不以爲賤矣。 六, 兩界敎授、訓導, 若非本道人, 則或初不赴任, 或赴任後旋卽呈辭, 今後敎授、訓導除授後移文所居處, 催促赴任, 過限不赴者, 推考論罪。" 傳曰: "其更議于成均館堂上以啓。" 兼同知事李克增等啓曰: "第一條新及第權知爲訓導, 以遊戲爲事者, 令觀察使嚴加糾察。 第二條承文院校書館權知分差四學事, 則各有所任, 況權知隨時加減, 似難擧行。 第三條外方儒生請人代講事, 自有其罰, 不必更立新條。 第四條生員、進士堪任師表除訓導事, 姑試施行。 第五條及六條, 該司時方擧行。" 傳曰: "前後節目, 竝下禮曹施行。"


  • 【태백산사고본】 43책 277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309면
  • 【분류】
    사법-법제(法制)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선발(選拔)